이광호와 포르쉐, 꿈과 기술의 만남

W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은 포르쉐 코리아가 프리즈 서울 기간에 특별한 전시를 열었습니다.

포르쉐의 ‘아트 오브 드림’ 시리즈의 일환인 <캡슐 드림스케이프: #01 서울>. 밀라노, 프로방스에 이어 서울에서 선보인 전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한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조화롭게 소개했어요.

이번 프로젝트의 파트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시오 아스카리와 건축가 폴 쿠르넷이 공동 설립한 디자인 플랫폼 ‘캡슐’. 이들은 국내 작가인 이광호와 나이스워크숍, 그리고 해외 아티스트 오드리 라지, 테오필 블랑데, 에즈라 밀러와 협업해 멀티 큐레이터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디자인에 대해 다시 상상해 보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미션으로 둔 몰입형 전시답게, <캡슐 드림스케이프: #01 서울>은 에즈라 밀러의 디지털 인스톨레이션으로 시작돼요. 속도와 미래주의에 대한 생각을 추상적 파노라마로 표현한 실시간 생성 비디오를 감상한 후 공간으로 들어서면, 전시의 주인공인 ‘타이칸 터보 K-에디션’을 마주하게 되죠. 나이스워크숍이 단단하게 구축한 메탈 소재의 배경 위로 타이칸 터보 K-에디션과 오드리 라지의 3D 프린팅 조각품이 기술과 미래에 대한 상상을 자극합니다.

전시가 열린 성수동 베이직 스튜디오 2층에는 이광호 작가의 작품이 자리했어요. 작품의 제목은 ‘증기’. 이광호 작가는 전시의 테마인 꿈을 형상화해 폼 소재를 한 줄 한 줄 엮어 제작한 40개의 의자와 벤치 등의 아트워크를 제작했습니다. 관객이 작품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 직접 앉고 머물 수 있게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체험을 통해 전시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도록 했어요.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고, 경험을 우선시한 전시를 둘러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잘 만든 디자인’과 ‘잘 만든 아트’의 차이가 있을까? <캡슐 드림스케이프: #01>을 기획한 알레시오 아스카리와 이광호 작가에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포르쉐 전시에 함께하게 된 계기,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 이광호 작가와 함께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알레시오 아스카리 포르쉐와는 마치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연이 닿았어요. 작년에 전 세계 디자인 업계의 큰 행사 중 하나인 밀라노 살롱 드 모빌레에서 포르쉐 관계자와 만나게 됐고, 프리즈 서울 주간에 프로젝트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어요. 이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바로 이광호 작가였습니다. 그가 <캡슐>이 포르쉐와의 협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장인 정신과 혁신의 결합’이라는 방향성과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전시 기획부터 개최까지, 이 과정 중 한국의 아트 신이 다른 나라와 다르거나 특별하다고 느낀 점이 있나요?
알레시오 아스카리 기술과 혁신을 중심으로 발달한 곳인 동시에 문화유산과 뿌리를 중요시한다고 느꼈어요. 서울은 이 상반되는 특징들이 공존해 전시를 준비하며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포르쉐 드림스케이프 전시가 열리기 몇 주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흰색 소파 제작 과정을 먼저 공개했어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작품을 직접 소개해주세요.
이광호 이번 전시 주제인 ‘드림스케이프’를 위해서 꿈같은 느낌의 설치 작업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쓰임새가 있고 필요로 한 형태로 만들었지만, 작품의 제목인 ‘증기’처럼 곧 사라질 것 같다는 연상을 주는 느낌을 위주로 작업했습니다. 이 주제로 만든 것 중 하나가 소파였고, 그 외에 40개의 의자와 두 개의 벤치를 전시했어요.

이번 행사에는 포르쉐에서 주관하는 전시인만큼 아트와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술과 혁신도 강조하는데요. 작품 활동에 있어 기술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이광호 제 작업은 기술이라는 것을 눈에 띄게 활용하는 작업이 아니에요. 물론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테크닉’적으로 능숙해진 기법을 사용해 작업을 만들고 있긴 하죠. 하지만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나 기술의 발전과 같은 것들은 항상 흥미롭게 보고 있고, 또 그런 걸로 인해서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향이라던지 작업의 방향을 항상 고민도 해보고 가늠해 보는 요소로서 기술을 바라보고 있어요.

‘드림스케이프’를 주제로 한 전시를 위해 제작한 의자, 소파, 벤치는 특정 꿈을 생각하면서 만든 것인가요?
이광호 꿈같은 상상을 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시기적으로 계절이 여름이기도 했고, 서울이 워낙 열대야나 극한의 더위가 길게 이어졌기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비가 증기로 바뀌면서 소파와 같은 형상으로 변하는 상상을 해봤어요. 제가 직접 꾼 꿈은 아니지만, 작업으로 이어진 그런 상상이 나에게는 꿈과 비슷하지 않은지 생각해요.

개인 작업 과정과 브랜드와 함께하는 작업 과정은 다를 것 같아요. 이번 전시는 과정이 어땠나요?
이광호 협업을 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 관심도 증가해요. 포르쉐의 경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동시에 대부분의 남자가 선망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하므로 제안이 들어왔을 때 전시의 테마처럼 ‘꿈’같은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어요.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알레시오는 <캡슐>, <칼레이도스코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포르쉐 캡슐 드림스케이프를 비롯한 여러 행사 및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 이광호 작가와 협업하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점이 있었나요?
알레시오 아스카리 이광호 작가의 작품은 루즈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디테일 하나하나 신경 쓴 티가 나요. 저는 이런 점이 이광호 작가의 작품에 독특함을 더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를 활용할 줄 알고, 입체가 아닌 페인팅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죠. 실용적인 디자인과 추상적인 예술, 그 사이의 밸런스를 적절히 지키는 것이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유니크하게 만들어요.

‘잘 만든 디자인’과 ‘잘 만든 예술’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알레시오 아스카리 개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예술의 형태에 있어 수평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편이기 때문에 좋은 디자인, 좋은 아트, 좋은 음악, 좋은 건축물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우리 세대는 문화를 수평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이광호 저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차이점을 보려고 한 적은 없었고 오히려 더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고, 그 취향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 있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것들을 사용하거나 그저 바라만 볼 수도 있고. 지금은 이런 현상들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전시에 방문하는 관객들이 주목했으면 하는 포인트를 하나만 꼽자면?
이광호 이번 전시 주제가 관전 요소들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요. 깊숙한 내면에 담긴 이야기보다 시각적으로 봤을 때 꿈같은 상황들, 그리고 내가 작품들을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이걸 통해서 또 다른 상상을 할 수 있는 그런 여지. 이런 것들이 많이 담겨 있는 전시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자유롭게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상상하다 가면 좋겠어요.

알레시오 아스카리 다양한 포맷의 작품들을 담아낸 큐레이션을 봐주셨으면 해요. 단순히 작품 앞에 서서 시각적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경험을 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이광호 작가의 의자와 벤치가 있는 공간은 음악도 즐길 수 있고, 프리즈 주간에 진행된 오찬처럼, 식사를 할 수도 있는 곳이 될 수 있죠.

김예은
이미지
포르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