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의 스포츠 스피릿

지난 7월 타이페이에서 만난 ‘2024 샤넬 오뜨 조알러리 스포츠(CHANEL Haute Joaillerie Sport)’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것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았다.

올해 6월 모나코에서 공개된 샤넬의 아이코닉한 스타일과 스포츠 정신이 함께 깃든 뉴 하이 주얼리 컬렉션 ‘오뜨 조알러리 스포츠’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대만 타이페이에서 선보이는 아시아 이벤트가 열렸다. 숱하게 출장을 다녔지만 타이페이는 처음이었다. 공항에서 내리니 습기와 열기, 이국적인 도시의 냄새가 우리를 환대했다. 대만의 영화감독 에드워드 양의 영화 <타이페이 스토리>에서 인상 깊게 본 이 도시는 마치 오래된 필름 사진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짙은 고독함이 느껴졌다. 아마도 태풍 ‘개미’와 함께 상륙한 탓이었을 것이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 사람이 별로 없는 거리, 매일같이 비가 내렸지만 무언가 깊고 진한 매력을 풍기는 이 멋진 도시에서 샤넬 오뜨 조알러리 스포츠 하이 주얼리 컬렉션 쇼가 펼쳐진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회색 도시에서 마치 영화 같은 그 순간을 즐기며, 샤넬 오뜨 조알러리 스포츠 하이 주얼리와 완전한 2박 3일을 함께했다.

“대담함, 구속받지 않는 창작의 자유, 기술적 완성도, 뛰어난 보석을 하나로 엮은 깔끔하고 간결한 이번 컬렉션은 샤넬 역사에 깊이 뿌리내린 스포티한 매력을 기념하며, 신체의 자유로움과 움직임의 우아함을 극대화한 작품들입니다.” 샤넬 주얼리 크리에이션 스튜디오 디렉터 패트리스 레게로(Patrice Leguéreau)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신체에 대한 인식과 움직임의 자유는 가브리엘 샤넬 작품의 핵심이자 샤넬 전 라인을 관통하는 정신이다. 기본 공식 같은 것이랄까? 아무리 아름다워도 움직임에 대한 자유가 없는 제품은 샤넬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의 범주에 들어오지 못한다. “전 저를 위해 스포츠 드레스를 만들었어요. 다른 여성들이 스포츠를 즐겨서가 아니라 제가 스포츠를 좋아해서였죠. 의상을 디자인하기 위해 야외 활동에 나선 건 아니었어요. 야외 활동을 하면서 의상을 떠올렸죠. 지금 이 순간, 제가 원하는 대로 삶을 즐기기 위해서요.” 가브리엘 샤넬의 당찬 이야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 1921년 그녀는 이미 스포티한 룩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그해 오트 쿠튀르 하우스 내에 ‘스포츠’ 아틀리에를 마련한 시대의 선구자다. 이번 컬렉션은 총 7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스웨트셔츠에 달린 스트링을 형상화한 ‘스웨터 라인’, 래커를 활용한 선명한 컬러로 룩에 역동적인 에너지를 넣은 ‘그래픽 라인’을 비롯해 최초로 샤넬 시그너처를 오픈워크 각인 형태로 오뜨 조알러리 컬렉션에 도입한 ‘프린트 라인 ’, 샤넬의 아이코닉한 퀼팅 모티프와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가브리엘 샤넬의 상징을 스포티한 버전으로 재해석한 ‘퀼티드 아이콘 라인’, 샤넬의 상징적인 숫자 5를 크로노미터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한 ‘스포티 5 라인’, 변형 가능한 모듈 콘셉트로 착용감이 가볍고 움직임이 자유로운 ‘골드 슬라이더 라인’까지. 샤넬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오뜨 조알러리 스포츠’ 컬렉션은 주얼리를 통해 움직임의 자유, 스포티함의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더불어 스포츠의 아름다움과 열정, 그리고 도전과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Graphic Line

샤넬의 아이코닉한 V 모티프의 쉐브론 라인으로, 리듬과 스피드를 표현한 그래픽 라인.

이번 하이 주얼리 작품을 안내하는 여정에서 내가 도슨트라면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올해의 작품 안에서는 사파이어, 루비, 스피넬, 가닛, 옐로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오닉스 등 높은 채도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원석의 밸런스를 눈여겨보셔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수년의 연구를 통해 완성한 카슈미르 사파이어 5피스로 구성된 세트는 그 자체로 걸작인데, 투 톤과 쓰리 톤의 대비를 통해 유색 보석의 찬란한 빛을 최상으로 끌어올렸고, 인체와 함께 그려내는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강조했다. 또한 전체적으로 한 작품에 두세 가지 이상의 컬러를 사용하지 않은 건 아마 진귀한 원석을 빛나게 하려는 의도였을 터.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단정한 절제미도 이번 작품을 바라보는 중요한 포인트다.

Sweater

드로스트링이 달린 스포츠 스웨터를 하이 주얼리로 재해석한 스웨터 라인.

Chanel Print

샤넬 로고를 스포츠 프린트로 재해석한 샤넬 프린트 라인.

한편 이 아름다운 상상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실현시켰는지도 주목해야 한다. 샤넬은 디자인뿐 아니라 기술적 노하우를 통해서도 고유의 독특한 미학을 창조한다. 예를 들어 샤넬 퀼팅 모티프가 고기능성 오픈워크 패브릭 스타일로 재해석되어 스포츠 모티프 장식의 유연한 메시 디자인으로 거듭난 것이나 샤넬에서 ‘스포츠 코드’라는 이름의 튜브 체인을 개발한 것이 그렇다. 또 견고한 초경량 알루미늄에 새로운 컬러를 입히고, 저밀도와 견고함을 갖춘 탄소섬유로 초경량 스포츠 커프를 제작했으며, 원석의 컬러 톤에 더욱 완벽하게 매치되는 톤의 래커칠을 통해 컬러 팔레트를 확장한 점도 지극히 샤넬답다. 이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주얼리를 바라보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 들 것이다.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것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샤넬의 하이 주얼리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샤넬에 있어 불편함이나 고통, 감내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샤넬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아름다움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 것. 오래전 샤넬이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켜주던 그 시절의 이야기와 닿아 있다. 다만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그것을 더 과학적으로 해결해준다는 점만 달라졌다. 샤넬의 정신은 그때도 지금도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진리임을 확인시킨다.

Sporty 5

가브리엘 샤넬의 행운의 숫자 5를 스냅 후크 형태로 재해석해 기능적인 디자인 요소로 변신시킨 스포티 5 라인.

Gold Slider

변형 가능한 모듈 콘셉트로 착용감이 가볍고 움직임이 자유로운 골드 슬라이더 라인.

Quilted Stars

샤넬의 아이코닉한 퀼팅 모티프와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가브리엘 샤넬의 상징(꼬메뜨, 숫자 5,사자 등)을 스포티한 버전으로 재해석한 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