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과 초현대를 오가는 2024 S/S 오트 쿠튀르 풍경

김민지

현대적 관점의 쿠튀르

완벽을 향한 집요한 탐구와 수작업에 대한 열정, 과정에 대한 매혹이 결합된 오트 쿠튀르의 세계. 극소수의 전유물로 치부되던 오트 쿠튀르는 점점 현실과 맞닿아 민주적인 것으로 진화하고 있다. 초현실과 초현대를 오가는 2024 S/S 오트 쿠튀르 풍경.

로봇 아기

쇼 제목 ‘스키아파-에이리언(Schiapar-alien)’에 걸맞은 하이브리드 요소를 확인할 수 있었던 스키아파렐리 쇼. 모델 매기 마우어가 ‘로봇 아기’를 품에 안고 등장한 신은 쇼가 끝난 후에도 며칠째 뜨겁게 회자됐다. (지난해 마우어는 스키아파렐리 2023 S/S 쿠튀르 쇼 백스테이지에서 아이에게 모유 수유하는 모습을 공개해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기도 했다.) 다니엘 로즈베리는 이번 컬렉션에 대해 틱톡에서 바이럴된 내용 가운데 자신의 컬렉션과 AI로 재창조한 룩을 비교하는 영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나의 과거 컬렉션이 인공지능을 만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에서 과거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하기도. 이는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상징하는 컴퓨터 칩, 오래된 플립형 휴대폰, 계산기, CD 등으로 로봇 인형을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혹자는 “21세기에는 디자이너 가방을 사야지, 디자이너 베이비를 사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기도 했지만, 몇 시즌 동안 쿠튀르 컬렉션 기간의 바이럴을 담당하는 천재 쿠튀리에 다니엘 로즈베리는 놀랍도록 미래적인 쇼로 쿠튀르 위크의 포문을 열었다.

공포 영화

피로 뒤덮인 베일부터 조종당하는 듯한 형태의 드레스, 가짜 피와 빨간 손톱, 번진 립스틱까지. 공포 드라마와 영화 에서 영감을 받은 로버트 운의 컬렉션. 홍콩 태생, 런던 기반의 로버트 운은 지난해 파리 오트 쿠튀르 패션위크에서 처음으로 공식 쿠튀르 컬렉션을 선보인 신성이다.

남자의 쿠튀르

오트 쿠튀르 무대 위를 걷는 우아한 남성복들.

복면 런웨이

앞이 보일까 싶은 복면을 쓴 의상들. 수백 개의 비즈로 얼굴을 덮은 스키아파렐리부터 시어한 베일을 쓴 메종 마르지엘라, 발렌티노 컬렉션까지.

명장면

패션의 압도적인 아름다움과 숭고하기까지 한 힘을 보여주는 오트 쿠튀르가 선사한 감동적인 장면! 많은 패션 팬들의 환호와 감동을 자아낸 2024 S/S 메종 마르지엘라 오트 쿠튀르 컬렉션. 올해의 첫 보름달이 뜬 파리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밑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는 이 도시에서 가장 취약한 공간을 오프라인으로 거니는 순간을 포착했다. 마치 사진작가 브라사이(Brassaï)의 관음적인 인물 사진처럼 무심코 넘어가기 쉬운 주변 풍경이 펼쳐진다. 런웨이에서 러키 러브(Lucky Love) 가스펠 합창단의 라이브 공연이 시작됐고, 이어 흑백 단편영화가 상영되었다. 달빛 아래 센 강변을 흥청망청 쏘다니는 사람, 그들의 옷에 새겨진 각인, 어둑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의 창문 너머로 벌어지는 일이 시야에 들어온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파리의 으스스한 분위기를 영화처럼 표현한 서막을 시작으로 촬영, 편집, 현장과 온라인 중계가 동시에 이루어진 다학제적 무대가 펼쳐졌다. 모델들은 극단적인 코르셋, 에로틱한 레이스 드레스, 빛바래고 뒤틀린 코트를 입고 축축하게 젖은 다리 밑과 바닥이 드러난 마루판을 오갔고, 그 풍경은 한 편의 으스스한 연극을 보는 듯했다. 더불어 팻 맥그라스의 작품인 도자기 같은 피부의 쇼 메이크업도 화제였다. 대담하고 실험적인 시도가 사라져가고 있는 이 시대에 큰 울림을 준 메종 마르지엘라 2024 S/S 쿠튀르. 쇼가 끝난 후 관객들이 발을 구르고, 기립하여 환호성을 보내며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했을 만큼 여운이 긴 쇼였다. 단연코 역사에 길이 남을 컬렉션.

삐뚤빼뚤

네덜란드 듀오 디자이너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일까. 가위로 마구 자른 듯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의상을 선보인 빅터&롤프 컬렉션.

콘브라와 튀튀 드레스가 만나면

매 시즌 게스트 에디터를 초대하는 장 폴 고티에가 이번 시즌엔 시몬 로샤와 함께했다. 전위적이고 섹슈얼한 장 폴 고티에와 로맨틱한 시몬 로샤의 만남은 공개 전부터 많은 패션 팬들을 기대하게 했다. 상상을 가볍게 넘어서는 실험적인 장 폴 고티에의 콘브라와 로맨틱의 정수인 시몬 로샤의 튤 드레스 조합을 그 누가 상상해봤을까? 꽤 근사한 조합임은 틀림없다. 쇼가 끝나고, 장 폴 고티에는 감격한 듯 무대를 걸어 나온 시몬 로샤에게 축하와 격려의 포옹을 전했다.

살랑살랑

유서 깊은 하우스들의 극도로 섬세하고 비현실적일 만큼 고아한 룩. 걸을 때마다 살랑이는 매혹적인 질감은 오트 쿠튀르만의 아름다움이다.

청자 백자

한국의 미를 전파하는 유망한 쿠튀리에 미스소희 박소희의 두 번째 쿠튀르 런웨이. 유려한 곡선과 아름다운 색감은 한국의 도자기를 연상시킨다.

풍선처럼

쿠튀르 무대에 빠지면 섭섭한 극강의 볼륨 플레이.

바이럴 장인

레디투웨어 쇼보다 재밌는 옷차림의 셀러브리티를 만날 수 있는 오트 쿠튀르 프런트로의 낮과 밤. 독보적 존재감 젠데이아부터 매 컬렉션마다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래퍼 토미 캐시, 딸과 함께 발렌티노 쇼장에 등장한 카일리 제너, 크리스 제너와 함께한 킴 카다시안까지. 한국 셀럽으로는 펜디에 송혜교, 샤넬에 뉴진스 민지, 디올에 한소희, 메종 마르지엘라에 전종서, 스키아 파렐리에 CL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패션 놀이터

쇼의 감동과 판타지를 좌우하는 무대장치. 샤넬은 버지니 비아르의 요청으로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데이브 프리(Dave Free), 마이크 카슨(Mike Carson)이 디자인한 큼직한 샤넬 로고 버튼을 무대 정중앙 천장에 넣었다. 로댕 미술관의 정원에서 열린 디올 쇼는 아티스트 이사벨라 듀크로(Isabella Ducrot)의 설치물 ‘빅 오라(Big Aura)’로 공간을 꾸몄다. 23개의 오버사이즈 드레스를 생생한 그림으로 재정의하여 오트 쿠튀르의 웅장함을 실감케 했다. 파리 방돔 광장에 자리한 메종의 화려한 살롱에서 펼쳐진 발렌티노 쇼에선 그 시절 데필레(Défilés)의 친밀한 분위기가 묻어났다. 압도적 스케일로 혹은 하우스와 가장 친밀한 연출로 우리의 꿈과 기대를 현실화한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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