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악, 보상무, 학춤 등 레고로 되살아난 우리 역사와 전통. 한국의 미를 아이콘적으로 재해석하는 레고 아티스트 콜린진(Colin Jin)의 세계에 대하여.


당신을 수식하는 말 중 하나가 ‘K레고 아티스트’다. 어떻게 얻게 된 호칭인가?
2023년 10월 서울 소공동에 위치한 모리함 전시관에서 첫 개인전 <콜린진의 역사적인 레고>를 개최했다. 약 4년 전부터 한국 전통문화를 레고로 구현하는 작업을 펼쳐왔는데, 첫 개인전에서 이를 선보이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국가 무형문화재 1호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신라시대 유물인 사천왕사 터 출토품이자 호국의 상징인 녹유 용 얼굴무늬 기와, 학무와 학춤 등에서 모티프를 얻은 레고 아트 작품을 여럿 전시하면서 ‘K레고 아티스트’라 불리게 된 것 같다.
한국 전통문화를 레고 아트로 표현하게 된 계기가 있나?
사실 정규 교육을 받으면서 전통문화를 공부하지만 교과서만 봐선 고리타분하고 피상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지 않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성인이 돼서 우연히 역사책을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 전통만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돼 홀린 듯 작업을 시작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향악정재 중 하나인 ‘보상무’를 보면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무희들이 무대 중앙에 놓인 연꽃 항아리에 공을 던져 넣으며 춤을 추는데, 골인에 성공하면 상으로 꽃을 받고 실패하면 벌로 얼굴에 검은 점을 찍는다. 고리타분하다고만 여긴 궁중 무용에 이렇듯 예기치 못한 유희가 담겨 있는 거다.
전시 <콜린진의 역사적인 레고>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종묘제례악을 형상화한 동명의 작품이다. 어떻게 시작한 작품인가?
기존에 닥종이나 캐릭터 그림으로 종묘제례악을 묘사한 적은 있지만 장난감 블록으로 형상화한 사례는 없다고 들었다. 나아가 경복궁이나 광화문처럼 주요 건축물을 거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레고 아트는 많지만 종묘제례악과 같은 무형문화와 그 안의 사람, 서사에 주목한 아티스트는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종묘제례악은 보는 순간 매료됐는데, 왠지 시간이 걸려도 작품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상한 자신감이 들었다. 고증을 위해 <종 묘의궤>를 보면서 공부하고 적절한 레고 블록을 찾아 최종적으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대략 18개월이 걸렸다.

궁중 무용을 표현한 작품이 유독 많다. 네모반듯한 레고 블록을 재료로 역동적인 무용수의 움직임, 곡선이 강조된 한복을 표현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 같다.
맞다. 우선 레고 아트 세계에선 절대로 해선 안 되는 금기 사항이 몇 가지 있다. 기존의 레고 블록만 사용해야 하고 블록을 자르고 도색하거나 본드 같은 접착제를 사용해 결합해선 안 된다. 이러한 제약을 안고 곡선을 표현하려면 여러 어려움이 따른다. 아티스트마다 레고를 결합하는 방식이 있겠지만 나는 결합 방식을 최소화해 느슨하게 블록끼리 연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누군가 이 방식을 보고 한국 고유의 여백의 미를 살려 ‘숨구멍’을 만들었다고 표현해줬는데, 그 말이 꽤 정확한 것 같다. 결합 방식 외에 본래 용도와 다르게 블록을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학무와 학춤’ 작품에서 승무의 날렵한 버선코를 표현하기 위해 호랑이 송곳니 블록을 사용하고 새 깃털 블록으로 화려한 모자 장식을 만들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레고로 표현하고 싶은 한국 전통은 무엇인가?
정조의 화성행차. 1795년 거행한 화성행차는 준비 기간만 1년이 넘고 1,700여 명의 인원과 700여 필의 말이 행차에 동원됐다고 전해진다. 왠지 숙원 사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