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뮈글러를 새롭게 정의하는 케이시 캐드월라더
팬데믹 기간에는 센슈얼한 패션 필름으로, 런웨이 쇼 복귀 후엔 획기적인 퍼포먼스로 자신만의 뮈글러를 새롭게 정의하는 케이시 캐드월라더(Casey Cadwallader). 대담함과 강렬함, 자신감에 대한 찬사로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한 옷을 만드는 ‘케이시 캐드월라더’의 창의적 세계.

인터뷰에 응해주어 고맙다. 2024 S/S 컬렉션 이후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
이번 컬렉션은 기존에 뮈글러가 해왔던 것에서 벗어나 다른 면을 선보일 수 있어 특히 고무적인 작업이었다. 옷이란 그 옷을 입는 순간, 내가 되고 싶은 자아 혹은 내가 살아보고 싶은 또 다른 수많은 자아를 실현시켜주는 매개체라는 철학을 담은 컬렉션이었다. 쇼에 함께한 관객이 좋은 시간을 보냈다라는 일차원적 개념을 넘어, 패션이 사람의 자아를 재형성하고 영감을 불러 일으키며 자극할 수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뮈글러를 입는 순간 새로운 내가 되는 것이다. 이번 컬렉션을 전개하며 배운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패션의 정신적 영향력인데, 옷이 인간에게 주는 어떠한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패션 필름으로 컬렉션을 발표하고, 쿠튀르 위크의 마지막 날씨-나우-바이-나우 쇼를 선보이다가 다시 패션위크 캘린더로 복귀했다.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나?
나는 뮈글러를 통해 예측 불가하고 대담하게 변화하는, 빠르게 태세를 전환할 수 있는 컬렉션의 유연함을 즐긴다. 패션위크를 통해 매 시즌 늘어나는 바이어들, 그리고 나의 컬렉션을 더 가까이 취재하고자 하는 미디어 관계자들에게 한층 더 명확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디자이너 혹은 크리에이티브 관점에서는, 다시 익숙한 프레임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거대하고 강력한 바람을 쇼 무대 장치로 사용했다. 바람에 날리는 긴 테일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시즌 콘셉트를 설명해달라.
연극성(Theatricality)이다. 연극성은 뮈글러가 가장 중시하는 요소다. 지적이며 도발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뮈글러의 퍼포먼스에 담아내고자 한다. 매 시즌, ‘퍼포먼스와 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시즌을 준비할 때마다 또 다른 퍼포먼스로 변화를 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당신의 시작점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건축을 공부했고, 마크 제이콥스에서 인턴십을 거쳤다. 어떠한 배경으로 패션을 시작한 건가?
항상 패션에 관심이 많았지만, 개인적 차원이었다. 코넬 재학 당시, 건축가가 되겠다는 생각엔 흔들림이 없었지만, 매 시즌 알렉산더 맥퀸이 이끄는 지방시, 톰 포드, 베르사체의 쇼를 찾아보며 패션을 탐닉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쇼 모델 제의를 받았는데, 그때 처음으로 코넬에 섬유&의상 디자인 학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몇몇 친구들과 타 과 학생도 쇼에 디자이너로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고, 우리의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대신 모든 패턴을 직접 만들고 봉제를 스스로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당시엔 옷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직관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브리콜라주(Bricolage)’ 기법을 활용해 선보였는데, 다양한 종류의 테이프로 보디의 몰드를 만들고 커팅 후 지퍼를 달았다. 지극히 맥퀸스러운 방식이었다. 쇼에 참여한 이후, 건축을 공부하는 나의 친구가 마크 제이콥스에서 인턴십을 하게 되었는데, 그해 여름 끝자락, 마크 제이콥스가 쇼를 준비하며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해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 쇼 준비에 참여했고, 마크의 팀이 나에게 푹 빠져 다음 여름 인턴십을 제안했다. 패션업계 인사이더로 체험한 수많은 작업이 놀라울 따름이었는데, 다음 날 있을 쇼를 위해 전날 새벽 3시에 금속 시퀀스를 플로어에서 커팅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충만한 에너지를 사랑했다.
취향과 미감 같은 직관적인 영역은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접한 것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장래 희망이 항상 바뀌고 꿈이 많았다. 과학 분야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해양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가, 후에 보석 전문가, 보석 디자이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을 지워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보석보다 자동차를 스케치하기 시작했을 정도니까.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건축 자재 판매업을 하셔서 건축에 당연히 관심을 가졌다. 언제나 집 안에 펼쳐진 건축물 청사진에 아버지가 마킹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나의 유년기는 다양성의 소용돌이라 정의하고 싶은데, 부모님과 친밀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관심사는 나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 여러모로 중요했다.
뮈글러의 센슈얼한 패션 필름을 보며 팬데믹 시기를 가장 영리하게 보낸 브랜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혼란의 시기, 위기를 기회로 바꾼 영리하고 준비된 브랜드. 그런 재미난 패션 필름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팬데믹 기간 런웨이에서 컬렉션을 선보일 수 없다면 영상을 통해 브랜드를 표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 자신과 세상에게 그저 그런 지루한 패션 필름은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한 순간이기도 하다. 나의 생각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기존 패션 필름들의 획일화된 룰을 깰 수 있을지 고민하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사실, 관객이 지켜보고 있는 한 번의 기회, 런웨이에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 수많은 돌발상황이 편재해 있는 현장이다. 패션 필름을 기획할 때는 모든 것이 가능했고 큰 위험 부담도 감수할 수 있었다. 생각대로 실현되지 않으면, 다시 하면 되니까…. 우리가 섭외한 모델들이 발현할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촬영 세트에서 모델이 눈 깜짝할 사이 공중으로 날아간다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져 런웨이에 착지하는 시도 같은 것. 런웨이를 걷는 모델에게 물을 수직으로 부어 적셔보기도 하고, 다시 드라이 세트를 걷게 해보았다. 모든 순간이 재밌었고, 음악과 피사체의 조화 그리고 빠른 장면 전환 등이 놀라움 그 자체였다.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고 무척 자랑스러웠다. 뮈글러에선 런웨이와 패션 필름이 절대 같을 수 없다.
특히 필름 디렉터 토르소(Torso)와의 팀워크가 돋보인다. 스타일리스트 헤일리 울런스(Haley Wollens) 등 당신과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어떤 영감을 주고받는가?
토르소와 헤일리는 뮈글러의 크리에이티브 패밀리다.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며, 서로를 응원한다. 그런 과정의 끝에 늘 마법 같은 성과물을 구현해낸다.
쇼나 패션 필름은 무대 연출만큼이나 음악이 중요하다. 이번 쇼는 공사장 사운드로 유명한 에비앙 크리스트(Evian Christ)와 함께했는데.
런웨이 쇼를 할 때 음악은 큰 영감을 주는 요소다. 컬렉션을 기획하는 와중 느낀 감정들을 대변한다. 감정을 소리로 변환시키는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은 크리에이티브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뉴노멀 시대의 핵심은 속도와 적응력이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패션 디자이너 혹은 이미지 메이커를 꿈꾸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나?
자신의 신념에 충실할 것. 이는 영향력을 구축하는 데 필수 요소다.
쇼 연출 얘길 나눴으니, 옷에 대한 얘기도 듣고 싶다. 당신의 세계와 창립자인 티에리 뮈글러의 유산은 어떻게 균형을 이루나?
뮈글러에는 매번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춘 방대한 규모의 아카이브가 존재한다. 유동적이며 페미닌한 화려한 드레이프가 존재하는가 하면, 지극히 남성적이고 구조적인 테일러링도 찾아볼 수 있다. 상반된 두 요소를 넘나들며 작업할 수 있어 대단히 흥미롭다. 뮈글러 안에 있는 극단적인 두 요소가 나의 작업의 시작점이고 지극히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비록 소규모 컬렉션을 전개하지만, 크리에이티브가 도달하는 범위가 넓고 다루고자 하는 것이 방대한 것이 뮈글러의 강점이다. 난 요즘 사람들은 다양한 유형의 작은 조각들로 옷을 입고 다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적인패션의 관점에서 뮈글러는 그것이 무엇이든 쿠튀르 컷, 해부학적 컷, 조각 같은 것이어야 한다. 빠질 수 없는 요소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뮈글러다운 느낌을 살릴 수 없어
균형을 맞출 수 없다.
당신의 눈과 오늘날의 문화를 통해 케이시 캐드월라더의 뮈글러를 새롭게, 또 성공적으로 정립했다. 언젠간 당신의 이름을 내건 하우스를 전개할 예정인가?
물론이다. 그건 언제나 나의 꿈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오리지낼리티를 지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오리지낼리티를 지키려면 디자인하는 것들과 방법이 완전히 의도적이어야 한다.
해외 유명 인사뿐 아니라, 많은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당신의 옷을 즐겨 입을 때 디자이너로서 큰 행복을 느낄 것 같다. 그들이 옷을 입고,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디자이너로서의 기쁨은 창조 능력에 있다. 뮈글러는 뮈글러를 입는 모든 이들을 가장 최고의 모습, 가장 강력한 존재로 변화시키는 브랜드다. 글로벌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할 때 흥미로운 건 매우 다양한 사람을 위해 매우 다른 종류의 상황에 맞춰, 협동 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커리어에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며 순간 가장 빛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방법을 깨닫는 것이다. 책임감이 막중한 일이기 때문에 매 순간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패션뿐 아니라 모든 게 너무 빠르게 지나가고 바뀐다.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지도 궁금하다.
뮈글러는 언제나 대담함을 추구한다. 동시에 민주적이며 인간의 따뜻함을 담고 있다. 뮈글러는 성별, 신체, 연령 및 성적 취향과 관계없이 모든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브랜드다. 뮈글러를 오늘날 세계 모든 이들에게 적합한 브랜드로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이 브랜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 우리의 옷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뮈글러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브랜드가 표현하는 문화와 커뮤니티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가 시대 흐름에 발맞추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뮈글러는 또 어떤 변화를 추구하고 있을까?
새로운 카테고리를 구축하고 있다. 백, 액세서리, 슈즈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지미추, H&M과의 협업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였다. 새롭게 준비 중인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더블유 코리아에게 힌트를 줄 수 있나?
곧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지켜봐달라.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안다. 최근 서울 방문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뮈글러와 케이시를 응원해주는 좋은 친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왔다.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서울 방문을 통해 또 다른 영감을 많이 받았다. 한국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장소나 순간을 공유해줄 수 있나? 한남동의 미니 바에서 밤새 달렸는데, 정말 재밌었다. 다음번 한국 방문 때 더블유 코리아가 일일 투어 가이드를 제안해도 될까? 전적으로!
- 사진
- 뮈글러
- 프로덕션
- 제프리 진(BOH Project)
- 번역
- 이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