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운 여정

전여울

2022년 샤넬이 공동 주최하면서 새롭게 펼치는 ‘CHANEL X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지난 9월 24일부터 10월 13일까지, 이를 계기로 아시아 각국에서 모인 젊은 영화인 24명이 20일에 걸쳐 부산에서 특별한 영화적 여정에 나섰다. 올해의 모든 프로그램이 갈무리되며 수료식과 단편영화 상영이 이뤄졌던 지난 10월 12일, 그 특별했던 밤에 <더블유>가 동행했다.

지난 10월 12일 부산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CHANEL X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수료식 및 상영회 현장.
부산을 환하게 밝혔던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풍경.
지난 10월 12일 부산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CHANEL X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수료식 및 상영회 현장.
수료식에서 만난 부산국제영화제 남동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 아르투르 주라브스키 촬영감독, 김희정 연출 멘토, 샤넬코리아 PR 총괄 장회정.

“젊은 영화인들은 지금 엄청난 에너지와 동기, 순수한 열정을 갖고 영화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의 세계는 상당히 복잡하기에 앞으로 여러 역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요. 어느 순간엔 자신이 누구를, 무엇을 위해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 잊기도 하겠고요. 그런 순간마다 이곳 부산에서 보낸 스무 밤을 떠올리면서 다시금 순수한 열정을 불태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본 영화감독 스와 노부히로가 말했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샤넬과 부산국제영화제의 교육 프로그램 ‘아시아영화아카데미’가 만나 올해로 2회째 펼치는 ‘CHANEL ×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교장이기도 하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폐막을 향해 가던 지난 10월 12일, ‘CHANEL ×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수료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던 이날 영화의전당 소극장에서 만난 스와 노부히로가 건넨 말은 짐짓 ‘CHANEL ×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라는 존재의 의의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그의 말처럼 한 편의 영화가 세상과 관객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복잡다단할 터, 그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메가폰을 쥐고 있을 영화인에게 고비를 맞닥뜨릴 때마다 자신이 막 커리어를 시작했던 출발점으로 돌아가 순수를 되찾고 다시금 시작할 용기를 얻으라는 한마디는 어딘가 아시아영화아카데미의 설립 목적과 깊이 공명하는 듯했다. 2005년 아시아영화아카데미는 아시아 영화를 이끌어갈 차세대 영화인을 발굴하고 아시아 영화인들의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시작했다. 지난 18년간 아시아영화아카데미를 거쳐 간 영화인만 33개국의 383명. 여기엔 올해 5월 개최한 제76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선정된 영화 <차라리 겨울잠을 자고 싶어>의 감독 푸레브다쉬 졸자르갈, 감독주간 초청작 <불꽃 속으로>를 연출한 자랄 칸도 포함된다. 거장 감독들과 명성 있는 교수진의 지휘 아래 ‘영화 만들기’의 실제 와 철학을 배우는 아시아영화아카데미의 프로그램은 해마다 소이한 변화는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CHANEL X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어워드 수상자 및 수여자.

멘토와 강사들에게 연출, 촬영, 편집, 사운드, 프로덕션 디자인 등에 대한 심도 있는 강의와 실습 지도를 받는 ‘워크숍 및 멘토링’, 교장과 멘토들의 작품을 시사하고 그들의 영화 제작에 담긴 철학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인 ‘교수진 작품 시사’, 미국영화협회(MPA)가 함께해 그들로부터 실질적 피칭 노하우를 전해 들을 수 있는 워크숍 ‘Bridge to Hollywood’ 등. 그리고 이 프로그램들을 수강한 젊은 영화인들은 자신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두 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완성된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식 상영하며 시나리오 개발부터 후반 작업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공동 제작 과정을 총체적으로 경험한다. 2005년에 시작해 긴 역사를 이어온 아시아영화아카데미에도 부침은 있었다. 2020년부터 두 해 동안 전 세계적 록다운으로 일시 중단되며 공백이 생겼지만, 지난해 샤넬이 아시아영화아카데미에 공동 주최로 합류하며 다시금 새로운 로드맵을 제시하고 그 이름도 ‘CHANEL ×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로 변경하게 됐다.

“사실 아시아영화아카데미에서 펼치는 짜임새 있는 구성의 프로그램은 상당한 수준의 서포트가 없다면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게다가 아카데미가 조준하는 것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와는 거리가 멀죠. 결국 이들이 바라보는 것은 더 나은 먼 미래니까요. 그 때문에 이 지난하지만 동시에 보람찬 여정을 샤넬이란 기업이 나서서 전면적으로 후원한다고 들었을 때 ‘대단하다’는 생각에 감탄이 터져 나오더군요. 이런 시도가 일본에서도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부러움도 내심 있었습니다.(웃음)” 스와 노부히로의 말처럼 모든 종류의 지원은 예술을 더욱 활짝 꽃피우게 만든다. 2회째를 맞는 올해 ‘CHANEL × BIFF 아시아영화아카데미’도 샤넬의 지원에 힘입어 더 강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꾸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18일간 진행해온 프로그램 기간이 20일로 연장됐고 기존의 교장, 연출 멘토, 촬영 멘토로 구성된 3인 교수진 체제에 시나리오 전문가인 스크립트 닥터가 추가로 합류함으로써 아카데미에 참가한 영화인인 펠로들이 보다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구축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영화의전당 야외 마당에 설치된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로고.
올해 교장으로 함께한 일본 영화감독 스와 노부히로.

전 세계 37개국에서 503명의 지원자가 몰리며 21:1이란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올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종 선정된 아시아의 젊은 영화인 24명은 지난 9월 24일부터 20일 동안 부산에서 특별한 영화적 여정에 나섰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이들이 동고동락하며 제작한 단편영화 2편을 마침내 공개한 것은 지난 10월 12일. 영화의 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상영회와 수료식은 20일간의 뜨거운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자리였다. 영화 상영에 앞서 24명의 펠로 한명 한명이 호명되며 단상에 올라 수료증을 받을 때마다 객석 곳곳에서 환호가 터지기 일쑤였다. 서로의 젊음, 서로의 영화 세계의 목격자로서 스
무 밤 동안 함께 땀 흘리며 호흡해온 동료들에게 던지는 뜨거운 인사였다. 한편 이날, 프로그램 기간 중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펠로를 선정해 각종 어워드를 시상하는 자리도 마련됐는데, ‘CHANEL × BAFA 프로미싱 필름메이커 어워드’가 대표적이다. 그 수상자 중 한 명인 이란의 젊은 영화인 사데크 에스 하키가 건넨 말은, 비교적 영화 역사가 짧아 촘촘하고 밀도 있는 네트워크 구축에 어려움이 많았던 아시아 영화 신에 새로운 활력을 수혈하고자 했던 아카데미의 취지와 유독 공명하는 듯했다.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저로선 다국적 크루들과 함께 협업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의미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재능과 언어를 가진 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이번 아카데미에서 얻은 가장 값진 수확이었죠. 그 때문인지 새롭게 알게 된 것
도 많습니다. 우선 영화를 연출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것이자 그렇게 본 사람과 세상에 대한 해석이라는 것이죠.”

애프터 파티를 뜨겁게 달군 그루비룸.

낯선 타지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들은 키르기스스탄 불법체류자인 주인공의 내면의 갈등을 세밀하게 표현한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부산을 떠났던 주인공 리앙이 부산에 돌아온 이후 겪는 낯선 풍경과 감정을 그려낸 <핑크 트리>. 언어와 문화는 서로 다르지만 영화라는 공통의 언어로 제작한 두 편의 단편영화에선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거나 현 시대의 초상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하려는 젊은 영화인 특유의 참신하고도 과감한 도전이 돋보인다. 특히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은 ‘CHANEL × BAFA 프로미싱 필름메이커 어워드’의 또 다른 수상자인 키르기스스탄 감독 사마라 사긴바예바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는데, 그녀는 이번 작품의 출발점이자 자신의 영화 세계를 발동시키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필름메이킹은 곧 저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어요. 제 내면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세상에 전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죠. 그건 종이에 적어 전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영화는 목소리이고, 이는 제가 지금껏 필름메이킹 여정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시아에서 여성 영화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늘 무언가에, 누군가와 맞서는 것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히 여성 인권이 취약한 중앙아시아에선 여성 영화인이 그 사회에서 인정받는 경우가 거의 없죠. 언젠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영화란 매개체를 통해 예술로써 승화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요.” “지금까지 만든 영화를 통해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일 겁니다. 영화는 세상의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고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어온 듯합니다. 이를테면 관객들에게 어떤 용기를 건넨 거죠. 제가 부산에서 만난 24명의 펠로에게 결국 나누고자 했던 것도 영화를 만드는 특별한 기술이라기보다 단지 용기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지도자가 아닌, 가능한 한 후원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저 또한 지난 20일을 달려온 셈이죠.” 스와 노부히로의 말처럼 아시아 각국에서 모여든 젊은 영화인 24명이 보낸 20일은 어쩌면 그들의 앞으로의 20년을 위한 용기의 발판이 될 것이다. 20일이라는 영화적 여정은 비록 마침표를 찍었지만 이들이 그려갈 미래는 이제 출발선에 섰다.

애프터 파티를 뜨겁게 달군 그루비룸.
포토그래퍼
방규형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