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 VS 데미안 허스트, 수익률 승자는 누구?

전여울

뒤샹의 ‘몬테카를로 채권’과 허스트의 NFT ‘아름다운 그림’의 수익률은?

뒤샹의 채권: 수익률 24,000%

마르셀 뒤샹, 몬테카를로 채권, 1924. Courtesy of Sims Reed Gallery.

지난 4월 마지막 주말, 뉴욕 파크 애비뉴 아모리에서 열린 제63회 뉴욕 고서적 페어(ABBA)에 마르셀 뒤샹이 1924년에 발행한 ‘몬테카를로 채권’(1924)이 출품됐다. 레디메이드의 발명가로 널리 알려진 뒤샹이니만큼 실제 채권에 서명을 해서 작품이 되게 한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할 법하지만, 뒤샹은 ‘몬테카를로 채권’이 작품이 아니라 진짜 채권이라고 주장했다. 채권을 발행한 시기는 뒤샹이 공식적으로 미술 만들기를 그만두고 체스 선수로 활동하던 1924년. 뒤샹은 1917년 레디메이드 ‘샘’을 공개했고, 1918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 징집을 피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가 9개월간 체류하며 체스를 접했다. 1920년에는 뉴욕으로 활동지를 옮겨 그리니치 빌리지의 마셜 체스 클럽에 합류했다. 1924년, 뒤샹은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열린 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두고 프렌치 챔피언십에 출전했다.

당시 체스와 더불어 뒤샹이 푹 빠진 게임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트랑테카랑트(Trente-et-Quarante) 카드 게임이었다. 뒤샹은 돈을 잃을 때마다 판돈을 두 배로 올려 베팅하는 ‘마틴게일 베팅법’을 신봉했는데, ‘수학적으로 증명된’ 이 방법을 통해 반드시 돈을 딸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필요했던 건 다만 돈을 딸 때까지 잃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리하여, 20%의 배당금을 보장하는 ‘몬테카를로 채권’을 발행하게 된 것이었다. 채권당 500프랑(현재 가치로 약 10,000 미국 달러)로 가격을 설정하고 총 30개의 채권을 발행했고, 실제로는 8개만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뒤샹은 결국 카드 게임에서 돈을 따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채권을 산 사람들이 그에게 딱히 상환이나 배당금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니, 뒤샹의 입장에선 남의 돈으로 신나게 카드 게임을 즐긴 셈이다.

채권을 산 사람의 입장은 어떨까. ‘몬테카를로 채권’ 중 하나가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240만 달러에 팔린 기록이 있다. 수익률로 환산하면 24,000%에 이른다. 뉴욕 고서적 페어에 출품되는 ‘몬테카를로 채권’은 판매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채권을 소장하고 있는 심스 리드 갤러리(Sims Reed Gallery)는 57만 5천 달러의 가격을 책정했다.

허스트의 NFT: 무한대의 수익률

Damien Hirst with The Beautiful Paintings, Damien Hirst, 2023.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The Beautiful Paintings NFT, Damien Hirst, 2023.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The Beautiful Paintings NFT, Damien Hirst, 2023. Photographed by Prudence Cuming Associates Ltd.

4월 초, 데미안 허스트가 NFT를 ‘드롭’ 했다. 9일 동안 진행된 판매를 통해 총 5,508점의 작품을 판매했다. 물리적으로 ‘출력’되는 작품 5,109점과 NFT 399개였다. 블록체인 기술로 예술 시장을 노리는 플랫폼 HENI와 허스트의 협업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인공지능이 학습한 허스트의 ‘스핀 페인팅(Spin Painting)’을 통해 25개의 ‘스타일’을 제시하고, 스몰-미디엄-라지-엑스라지 중 한 가지, 동그라미와 네모 둘 중 한 가지를 골라 작품을 ‘출력’하거나 이더리움 블록체인 상에 존재하는 NFT로 구매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했다. NFT의 가격은 2,000달러, ‘출력’ 작품의 가격은 1,500달러에서 시작해 사이즈가 한 단계씩 커질 때마다 1,500달러씩 늘어났다.

작품의 제목은 <아름다운 그림(The Beautiful Paintings)>으로, 인공지능과 GPT 알고리즘을 통해 5,508점의 작품 각각에 별도의 부제와 색상 설명을 덧붙였다. 이 작품을 구매하는 ‘컬렉터’는 HENI가 제공하는 ‘작품 생성 대시보드’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과 색상을 직접 고르거나 ‘무작위 생성’을 선택할 수 있었다. 뒤샹이 카드 게임의 판돈을 구하려고 어색하나마 직접 채권을 발행했다면, 데미안 허스트는 기술 회사의 힘을 빌어 작품 창작마저 구매자의 손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 학습과 코딩, 대시보드 디자인 등 많은 자원과 비용이 필요했을테지만, 어떻게 보면 무한대의 수익률을 거둔 셈이라 할 수 있다.

카드 게임 판돈을 마련하겠다며 30장을 발행한 뒤 8장만 판매에 성공한 뒤 그나마 벌어들인 돈을 판돈으로 탕진해버린 1924년 마르셀 뒤샹의 <몬테카를로 채권>과 자신의 그림 스타일을 인공지능에 학습시킨 뒤 버튼을 누를 때마다 디지털 NFT와 고해상도 출력물을 뽑을 수 있게 만든 2023년의 <아름다운 그림> 중 무엇이 더 예술적인 가치를 띨까? 사업 수완으로만 따지면, 일주일 남짓 NFT를 ‘드롭’한 뒤 200만 달러 넘는 돈을 한 번에 벌어들인 데미안 허스트가 마르셀 뒤샹을 압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허스트의 <아름다운 그림>이 뒤샹의 <몬테카를로 채권>처럼 24,000%의 수익률을 거두게 될 지, 미술관의 컬렉션이 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지게 될 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에디터
전여울
박재용(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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