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시드 존슨, 아시아 첫 개인전

권은경

팬데믹 이후의 아트 바젤을 앞두고 뜨거웠던 홍콩. 지금, 하우저앤워스 갤러리에서는?

라시드 존슨 개인전 중인 갤러리 풍경. 하우저앤워스 갤러리가 있는 건물에는 페이스, 데이빗 쯔워너, 화이트스톤 등등 여러 갤러리가 모여있다. INSTALLATION VIEW, ‘RASHID JOHNSON. NUDIUSTERTIAN’, HAUSER & WIRTH HONG KONG, 20 MARCH – 10 MAY 2023 © RASHID JOHNSO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JYPHOTO.

라시드 존슨 개인전 중인 갤러리 풍경. 하우저앤워스 갤러리가 있는 건물에는 페이스, 데이빗 쯔워너, 화이트스톤 등등 여러 갤러리가 모여있다. INSTALLATION VIEW, ‘RASHID JOHNSON. NUDIUSTERTIAN’, HAUSER & WIRTH HONG KONG, 20 MARCH – 10 MAY 2023 © RASHID JOHNSO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JYPHOTO.

라시드 존슨 개인전 중인 갤러리 풍경. 하우저앤워스 갤러리가 있는 건물에는 페이스, 데이빗 쯔워너, 화이트스톤 등등 여러 갤러리가 모여있다. INSTALLATION VIEW, ‘RASHID JOHNSON. NUDIUSTERTIAN’, HAUSER & WIRTH HONG KONG, 20 MARCH – 10 MAY 2023 © RASHID JOHNSO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PHOTO: JJYPHOTO.

홍콩이 아트 바젤 위크를 맞아 달아오르기 시작한 지난 3월 20일, 홍콩 센트럴 지역에 위치한 갤러리 하우저앤워스(Hauser & Wirth) 홍콩에서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 개인전 <Nudiustertian>이 오픈했다. 1977년생, 시카고 태생으로 뉴욕에 거주 중인 라시드 존슨은 회화를 메인으로 조각 및 설치, 영상 등 여러 매체의 작업을 하는 작가다. 지난 몇 년간 개인전을 꾸준히 한 것은 물론, 작년 한 해 동안에만 미주, 유럽, 중국과 일본 등에서 스물 다섯 개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가 아시아 지역에서 하는 첫 개인전이라 의미가 있다. 홍콩에서는 작년 연말에야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자가격리’ 지침이 해제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맞는 아트 바젤 홍콩은 미술계 관계자와 예비 관람객의 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라시드 존슨 개인전이 오픈하는 날 갤러리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참석자가 다수 몰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라시드 존슨   PHOTO: DANIEL SCHÄFER

전시 타이틀에 쓰인 단어, ‘Nudiustertian(뉴디어스터션)’은 이젠 사용되지 않는 옛 영어라고 한다. 의미는 ‘아주 최근의 과거.’ 우리가 막 지나친 최근의 과거라고 하면 코로나 팬데믹을 들 수 있다. 개인전을 채운 작품들은 작가가 몇 년 전부터 작업하고 발전시켜 2022년경 완성한 최신작이다. 크게는 ‘브루즈(Bruise, 사전적 해석으로는 ‘멍’이지만 ‘상처’나 ‘후유증’을 뜻할) 페인팅’, ‘바다 풍경(Seascape)’, ‘서렌더(Surrender) 페인팅’, 그리고 ‘무제의 브로큰 멘(Untitled Broken Men)’ 시리즈로 구성된다. ‘브루즈 페인팅’ 작품들에서 반복, 배열되는 다소 기하학적인 형태는 사람의 얼굴 형상을 닮기도 했고, 작가의 신경질적인 제스처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간격으로 배치된 비슷한 선과 색은 그 자체로 면밀하게 계산된 추상 작업이며, 팬데믹을 거치는 동안 작가가 느낀 감정을 담고 있다. 라시드 존슨은 그와 비슷한 형태를 ‘서렌더 페인팅’에서는 흰색으로, 또 캔버스 여백이 더 많이 드러나도록 작업했다. 그가 직접적으로 설명하진 않았지만, ‘멍’이라는 제목을 단 작업이 부정적 감정에 가까운 과정을 담고 있다면, 흰색만으로 표현된 시리즈에서는 그 과정 이후와 치유의 기운이 더 묻어난다.

라시드 존슨은 이전부터 불안감(Anxiety)을 주제로 한 작업을 다수 했다. 개인전 오픈일, 호주의 미술관인 아트 갤러리 오브 뉴사우스웨일스의 디퓨티 디렉터 Maud Page와 함께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에서 라시드 존슨은 자신이 ‘불안함을 타고난 인간’이며, 불안을 다룬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언급했다. “저는 제 작업에 시대정신을 표현할 의도 같은 건 없었어요. 하지만 지난 3년간 우리 모두가 극도로 불안한 시간을 보낸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홍콩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라시드 존슨은 한 아이를 둔 부모이기도 한데(그의 아내 역시 작가다), 아이를 교육하고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로서 자신의 불안감에 대해 더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졌다고 한다. 팬데믹과 락다운 기간 동안 뉴욕주 롱아일랜드 집에서 가족들과 붙어 지내며 한 작가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부족함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것이다. 미국의 현대미술 작가 중 ‘블랙 아트’를 추구하는 작가로 주목받는 그에게서 ‘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떼놓을 수 없는 작업 주제다. 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는 점, 도널드 트럼프와 총기 사고와 기타 등등의 환경에 속했던 양육자라는 점 모두 그 삶의 화두에 자연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라시드 존슨의 어머니가 아프리카 역사를 전공한 교수이기도 하니, 그는 어릴 적부터 집에서 흑인 문화와 역사를 두고 곱씹을 거리가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까?

반복, 배열되는 다소 기하학적인 형태는 사람의 얼굴 형상을 닮기도 했고, 작가의 신경질적인 제스처처럼 보이기도 한다. BRUISE PAINTING "LAST DAYS", 2022, OIL ON LINEN, 239.4 X 304.8 X 4.3 CM / 94 1/4 X 120 X 1 5/8 IN.

추상화 세 점이 나란히, 3연작. TRIPTYCH "LAND OF THE FREE", 2022, OIL ON LINEN, 3 PARTS, EACH: 122.6 X 91.4 X 5.1 CM / 48 1/4 X 36 X 2 IN, 3 PARTS, EACH: 125.1 X 94.6 X 6.7 CM / 49 1/4 X 37 1/4 X 2 5/8 IN (FRAMED).

팬데믹 기간 동안 작가가 바라본 바다와 배가 있는 풍경이 한 편의 추상시가 되었다. SEASCAPE "HEARTBREAKER", 2022, OIL ON LINEN, 239.4 X 305.4 X 4.3 CM / 94 1/4 X 120 1/4 X 1 5/8 IN.

라시드 존슨은 작업에 다양한 재료를 쓰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시어버터와 검정 비누(African Black Soap)가 그 예다. 이번 개인전에 시어버터를 활용한 설치 작업은 없지만, 그에게 시어버터는 의미 있는 물질이자 작업 재료 중 하나다. 어릴 적 그가 살던 시카고 동네에는 시어버터를 파는 곳이 흔했다고 한다. 화장품 원료로 많이 사용되는 시어버터는 서아프리카 지역의 시어 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지방이다. 시어버터가 건조한 피부에 강력한 보습제가 되어주는 것처럼, 이 재료에는 치유의 성질이 있다. 라시드 존슨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난 열매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오는 과정을 ‘여행’에 비유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이 여행이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여정(이를 테면 이민)과 비슷하다고 느낀 듯하다. 그는 시어버터에 딱히 유통기한이 없다는 점에도 큰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즉, 시어버터는 그에게 영적인 물질이다. Maud Page가 시어버터라는 재료의 의미를 물었을 때, 그는 아프리카와 밀접한 이 원료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캔버스 위에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은 작가의 몸짓이나 형태를 드러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재료 그 자체만으로 고유한 언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깨진 타일과 여러 재료를 이용한 콜라주 작업. UNTITLED BROKEN MEN, 2022, CERAMIC TILE, MIRROR TILE, BRANDED RED OAK, OYSTER SHELL, SPRAY ENAMEL, OIL STICK, BLACK SOAP, WAX, 125.7 X 97.8 X 6.4 CM / 49 1/2 X 38 1/2 X 2 1/2 IN.

깨진 타일과 여러 재료를 이용한 콜라주 작업. UNTITLED BROKEN MEN, 2022, CERAMIC TILE, MIRROR TILE, BRANDED RED OAK, OYSTER SHELL, SPRAY ENAMEL, OIL STICK, BLACK SOAP, WAX, 125.7 X 97.8 X 6.4 CM / 49 1/2 X 38 1/2 X 2 1/2 IN.

깨진 타일을 활용한 모자이크 작업인 ‘무제의 브로큰 멘’ 시리즈에서는 불안감이나 혼돈이 더 적극적으로 드러나고, 자화상 같은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작품에 쓰인 검은색은 검정 비누와 왁스, 오일 스틱 등을 이용한 것이다. 과거 라시드 존슨은 ‘불안’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시리즈에서 이 재료들을 통해, 대형 캔버스에 수많은 검정 얼굴들, 즉 수많은 흑인의 얼굴들을 남긴 바 있다. 그렇게 그는 세계 미술계의 최전선이자 주로 백인들이 이끌어가던 뉴욕 상업 갤러리에 익명의 여러 흑인들을 등장시켰다. 정체성에 관한 그의 탐구가 물론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바탕에만 집중되어 있는 건 아니다. 한 아이를 교육해야 하는 아버지로서 느끼는 부족함과 혼란이 컸다는 고백에 이어, ‘바다풍경’ 시리즈를 통해서는 락다운 기간 동안 집이나 스튜디오 근처를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로 바깥 공기를 마셔야했던 그의 일상을 상상해볼 수 있다. 산책길에 저 멀리 보이는 바다와 바다에 떠 있는 여러 척의 배들. 캔버스에서 시적이고 함축적으로 추상화된 그 풍경은 고립과 그리움, 표류, 탈출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우저앤워스 홍콩에서 열리는 라시드 존슨의 <Nudiustertian>전은 5월 10일까지 계속된다. 이 작가에 관한 특이 사항 하나. 그는 미국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에서 주최하는 영화, TV, 음악 시상식인 ‘제51회 NAACP 이미지 어워드(2020년)’에서 TV 영화 부문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다. 애초 사진을 전공하는 것으로 미술과 가까운 작업을 시작했던 라시드 존슨은 2019년 HBO에서 공개된 영화 <네이티브 선(Native Son)>의 감독이기도 하다. “필름 작업은 미술 작업과 완전히 달라요. 작업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자아(Ego)를 가지고 있거든요(웃음).” 세상에는 여러 매체로 작업하는 것에 능숙한 아티스트가 여럿 있겠지만, 미술을 본업으로 가진 라시드 존슨이 50여 년 전통을 가진 미디어 시상식에서 감독 자격으로 수상을 했다는 점은 이 작가를 둘러싼 모든 이야기 중 가장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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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에디터
권은경
사진가
STEPHANIE POWELL(작품 촬영), ALL IMAGES © RASHID JOHNSON, COURTESY THE ARTIST AND HAUSER & WI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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