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셸 오토니엘의 아름다움의 연금술

전여울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무수한 가능성의 세계로 진입하고, 그로써 다시금 마법화된 현실을 마주하기. 프랑스 예술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유리벽돌 신작 ‘Wonder Block’은 어쩌면 그가 부리는 아름다움의 연금술 끝에 현현한 경이 그 자체다.

초봄 정오, 창 너머로 드리운 햇빛은 프랑스 예술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신작 ‘Wonder Block’(2022)을 만나 파편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유리벽돌을 적층해 완성한 작품들은 토테믹한 분위기를 풍기며 언뜻 뻣뻣하게 선 사람, 혹은 신성한 제단 같은 모습으로 한옥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개관한 국제갤러리 한옥에서 오는 4월 16일까지 열리는 오토니엘의 개인전 <Wonder Blocks>의 첫인상이다.

‘경이로운 블록들’이라 풀이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오토니엘은 그의 대표적 조형 언어 중 하나로 꼽히는 ‘벽돌’ 형태의 작품 10점을 선보인다. 성서 속 바벨탑, 고대 벽돌무덤, 근현대 산업화 현장 등 시대와 장소를 가로질러 인류 문명과 동행한 벽돌은 1990년대 즈음부터 오토니엘의 작업 세계에 등장한 소재다. 유황으로 덮인 테라코타로 만든 벽돌 작업 ‘La Brique de soufre’(1990)를 선보인 이후 1969년 성소수자 해방 운동의 시작점인 스톤월 항쟁에서 영향 받은 ‘Precious Stonewall’(2010), 유리벽돌 1만여 개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쓰나미를 재현한 ‘The Big Wave’(2017) 등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뻗어 나갈 수 있는 모듈식 벽돌은 오토니엘이 부리는 연금술에 따라 조각의 개념을 넘어서 건축 규모로까지 확장되며 다양하게 변주되어왔다. 지난해 여름 35만여 관객을 운집시킨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정원과 정원> 이후 한국을 다시 찾은 오토니엘이 그가 벽돌 한 장을 통해 엿본 예술적 가능성에 대해 말했다.

신작 ‘Wonder Block’(2022). 인도 피로자바드 지역에서 생산한 유리벽돌을 적층해 완성했다.

<W Korea> 어젯밤 당신이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당신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보고 알았다. ‘한국에 도착했다’는 문구 다음 하트 모양 이모지 ‘♥’를 친절하게 붙였던데.
장-미셸 오토니엘 하하. 이모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즐긴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사는데 이모지만큼 효율적인 소통 방식도 없다. 두 손을 합장한 모양의 이모지도 좋아한다. 감사함을 겸손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라.

작년 여름 SNS 피드는 한동안 당신의 작품 ‘황금 연꽃’(2019)으로 도배됐다. 총 35만여 명이 다녀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정원과 정원>에서 하이라이트로 손꼽힌 작품이다.
그 전시는 작가인 나로서도 굉장히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미술관뿐 아니라 아주 아름다운 덕수궁 정원에서도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게다가 미술 전시, 특히 현대미술 전시에 그만한 인파가 몰리는 경우는 결코 흔치 않으니까. 한국의 젊은 관객들에게 큰 에너지를 받았는데, 동시에 작가로서 어떤 책임감을 느끼게 한 전시기도 하다.

책임감이라면?
어린 세대, 미래 세대에 긍정적인 비전을 줘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단순히 기쁨을 주는 것도 좋지만 작품을 통해 미래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용이나 구성적 측면에서 <정원과 정원>은 2021년 파리 프티팔레 미술관에서 개최한 <나르시스의 법칙(Le Théorème de Narcisse)>의 연장선에 있는 전시였다. 그런데 유독 서울에서의 전시가 감동적으로 다가온 건 전적으로 한국의 관객들 덕분이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렇게 많은 DM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계정을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를 일일이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작가로서 이렇게 즉각적으로, 또 많은 피드백을 받는 경험은 정말이지 흔치 않다.

과거 한국 여행 중 연꽃을 알게 됐고, 그것에서 감명받아 연꽃을 모티프로 한 연작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난 한국 여행에서 건져 올린 흥미로운 장면은 무엇이었나?
건축물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서울에 줄지어 선 현대적 건축물뿐 아니라 전통 정원 양식에서 특히 새로운 점을 많이 발견했다. 일본 정원이 사유의 공간이라면, 한국 정원은 시시각각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라는 인상이 있다. 이를테면 정원을 한 발, 한 발 밟을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라든지 정원을 산책하는 과정에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아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우연의 일치일까? 4월 16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Wonder Blocks>도 한옥을 전시 공간으로 삼는다.
실은 한옥 공간을 보고 반해 갤러리 관계자에게 이곳에서 전시를 열 수 있는지 직접 물어 성사된 전시다. 한옥의 비율과 구조가 특히 새로웠고, 다른 건축에 비해 층고가 낮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이런 장소라면 관객이 더욱 친밀감을 느끼며 작품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어찌 보면 공간에 특화된 전시인 셈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공간에서 당신이 오래 탐구해온 유리벽돌을 활용한 신작 10점을 선보인다. 공간과 작품이 서로 어떻게 공명하길 바라나?
우선 전시 공간이 크게 2개 파트로 나뉜다. 갤러리 서점을 겸한 작은 공간과 그보다는 비교적 큰 뷰잉룸으로. 각 공간에서 5점씩 총 10점을 전시한다. 우선 전자에 비치한 작품들의 경우 작은 조각도 충분히 공간과 공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마치 집에 갖가지 전통 오브제를 들여놓고 감상하듯 작품을 친밀히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다. 반면 뷰잉룸에선 한옥이라는 미니멀한 건축에 집중해 조각 작품 역시 미니멀한 방식으로 제작했다. 크기도 좀 더 키웠고 작품이 제단 형태를 띤다.

한국의 돌탑을 아는가? 한국의 등산로 주변에는 돌탑이 곳곳에 있다. 산행길에 돌탑을 만나면 저마다 소원을 빌며 돌멩이를 하나 올리는 풍습이 있다. 개인적으로 뷰잉룸에 전시된 작품을 보며 돌탑이 떠올랐다.
이번 작품도 어쩌면 유리벽돌로 쌓은 탑이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아이디어 같다. 작품이 제단 형태를 띠는데, 사람들은 제단에 꽃을 비롯한 갖가지 성물을 바치며 저마다 염원을 빌지 않나. 인도, 아프리카, 프랑스, 한국 할 것 없이 제단은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하는 성스러운 장소인 셈이다.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 바쳐지고 신성하고 명상적인 에너지가 깃든 장소라는 점에서 이번 작품이 출발하기도 했다.

과거 인도 여행 중에 유리벽돌 아이디어를 얻었다 들었다. 이후 2009년부터 유리벽돌을 작품에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여행이 당신에게는 ‘유레카’의 순간이었을 듯하다.
여행지에서 거리를 거닐며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는 것을 굉장히 즐긴다. 인도로 여행을 떠났을 당시엔 인도인이 유리라는 소재에 품는 마음, 꿈이 궁금했던 것 같다. 유리가 품고 있는 어떤 마법을 찾고 싶었달까. 인도에선 유리로 장식된 건축, 궁전이 무척 많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유리를 아주 소중한 광물처럼 여긴다는 걸 알 수 있다. 여행의 어느날, 델리에서 피로자바드로 이동하는 도중이었다. 피로자바드는 예부터 인도 유리 생산의 중심지로 꼽힌 지역인데, 무슨 영문인지 길가에 벽돌 더미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알고 보니 인도인들은 집을 짓기 위해 우선 땅을 사고 벽돌을 한 장 한 장 모은다는 거다. 나에겐 그 벽돌 무더기가 꼭 누군가 자신만의 집을 완성하기 위한 열망, 꿈처럼 다가왔다. 강렬한 영감의 순간이었던 거다.

우스갯소리 좀 하자면, 인도인들에게 벽돌이 집을 향한 염원이라면 한국 대학생들에게 벽돌은 절대 펼칠 일 없는 두꺼운 전공 서적의 의미도 갖는다(웃음).
하하, 뭔지 알 것 같다. 사실 벽돌은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하는 범지구적 재료다. 이러한 벽돌을 연약한 성질의 유리로 만들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생각했다. 게다가 유리라면 다양한 색을 입힐 수 있고, 빛이 투과되기도 하니까. 그리고 흔히 건물 외장재로 쓰여 사람들이 쉽사리 간과하는 벽돌을 작품으로 만들어 전시장 안에 들임으로써, 하나의 보석처럼 보일 수 있게 승화한다는 아이디어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당신의 작품 세계에서 벽돌이 등장한 것은 1990년 무렵이다. 그즈음 유황으로 뒤덮인 테라코타로 만든 노란색 벽돌 작업 ‘La Brique de soufre’(1990)를 공개했다. 당시만 해도 당신은 “벽돌을 활용해 무언가를 지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였나?
우선 유황이란 소재에 관심이 있었다. 유리와 마찬가지로 유황은 쉽게 모양을 변형할 수 있으면서 언제든 원래 상태로 회귀할 수 있는 가역성을 띤 재료다. 이런 유황을 재료로 노란 벽돌 형태의 ‘La Brique de soufre’(1990)를 완성했는데 사실 노란 벽돌 모티프는 전통 회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델프트 풍경’(1660~1661)이 대표적이다. 베르메르는 자신이 태어나고 거주한 도시 델프트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는데, 그림에는 수문이며 종탑, 건물이 사실적으로 묘사돼있다. 그런데 그는 그림에서 눈에 띄지 않는 벽돌 건물의 한 면을 아주 눈에 띄는 색깔인 노란색으로 칠했다.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 접근이다. 당시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베르메르의 노란 벽돌을 두고 논쟁이 오간 것으로 안다. 어쩌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노란 벽돌이 그림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지점으로 남았으니까. 학생 시절이 그림을 처음 접했는데, 당시의 노란 벽돌이 계속해서 내 안에 풀리지 않는 예술적 지점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인도에서 색색의 유리 벽돌을 발견하곤 모든 것이 연결되는 듯한 경험을 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벽돌을 시적으로 활용하는 데 매료된 듯하다.

과거 벽돌로 무언가를 지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 당신은 2010년대 들어 인터뷰에서 자주 “건축적 스케일로 작업하고 싶다”는 열망을 보였다. 이후 실제 유리벽돌 1만여 개를 활용해 길이 15m, 높이 6m의 대형 작업 ‘The Big Wave’(2017)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여러 이유가 있는데 우선 다수의 공공미술 작업을 하면서 관람객의 신체와 작품 속 내재된 에너지가 어떻게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커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실제 작품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작품을 크게 제작하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이런 접근이 평소 미술과 가까운 사람뿐 아니라 그보다 광범위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방식이라 느껴진다.

작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한 ‘아고라’(2019)도 조각을 넘어서 건축, 공간의 개념에 가깝게 다가가고자 한 당신의 열망이 반영된 작품이다. 2,750개의 스테인리스스틸 벽돌로 만든 ‘아고라’(2019)는 고대인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눈 광장 ‘아고라’에서 착안했다. 성역 없는 자유가 허용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아고라’(2019)는 당신이 현실 속에 지은 유토피아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어떤 유토피아적 공간을 선사하고 싶다는 마음에 ‘아고라’(2019) 작업을 하기도 했다. 내 작업에서 유토피아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 듯하다. 우선 ‘아고라’(2019)에서 나타나듯 사람들이 경계 없이 대화를 나누며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야말로 유토피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들이 희망을 품는 것 또한 유토피아적이라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탈피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도록 해준다. 동시에 우리는 현실적인 것을 바라보며 현실을 탈피하기도 한다. 우리는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세계에 살아가고 있지 않나. 현실을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사유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거다. 사유의 세계는 아무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 세계에 살아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검은 연꽃’, ‘루브르의 장미’ 연작 등 평소 꽃이라는 소재에 집중해 작업을 펼치기도 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꽃을 바라볼 때 비로소 꿈을 꾸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메타버스를 비롯해 가상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도 한다.
가상 세계를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요소, 혹은 현실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요소로 활용한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 다만 가상 세계에만 머물다 그곳에서 길을 잃어버린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웃음). 안 그래도 요 며칠 한국에 머물다 캐나다로 떠난다. 그곳에 있는 한 리서치 센터를 찾아 VR 기기를 착용한 채 나의 작품을 가상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는 방식을 궁리해볼 참이다. 고글을 쓰고 버추얼한 세상에서 작품을 감상한 다음, 실제 눈앞에 있는 작품을 감상하는 식으로 어떻게 두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꽤 흥미로울 것 같다.

작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정원과 정원>에서 공개한 ‘아고라’(2019). 총 2,750개의 스테인리스스틸 벽돌로 제작했다.

<정원과 정원>에 소개된 ‘프레셔스 스톤월’(2021). 신비로운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쓰나미를 재현한 벽돌 작업 ‘The Big Wave’(2018).

놀랍다! 개인적으로 좋은 의미에서 당신을 이 시대의 다이너소어라고 생각했다(웃음). 그간 인도의 전통 공예가들과 손잡고 유리벽돌 한 장 한 장을 아날로그한 방식으로 생산해왔으니까.
내 작업 과정에는 늘 컴퓨터가 있는걸?(웃음) 이전부터 작업을 컴퓨터상에서 3D로 구현해본 후 그걸 실물로 제작하곤 했다. 결국 지금 연구하고 있는 작업은 보다 인터랙티브한 방식으로 현실과 가상을 연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좀 전에도 언급한 “아름다움은 사람에게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오래전부터 당신이 강조해온 말이다. 당신의 작품 세계에서 아름다움은 무엇을 의미하나?
아름다움은 일종의 덫이라 생각한다. 마치 부비트랩과 같아서 누군가 아름다움을 마주하는 순간, 그 찰나에 그는 여러 세계에 진입하게 된다. 유혹, 물질성, 섹슈얼리티···. 아름다움을 통해 여러 세계와 생각을 마주하고 이들을 마음속에 하나씩 탑처럼 쌓는 거다. 때문에 아름다움은 나의 작업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에 진입하는 순간에 비로소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당신이 화단에 등장한 1980년대는 미니멀리즘, 신표현주의가 유행한 시절이다. 미술에서 ‘아름다움’이 추방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신 역시 ‘(작품이)그저 예쁘다’는 비평과 맞서야 했을 듯한데.
그 시기 미니멀리즘 미술에서 급진적이고 거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는데 이것도 천천히 변화하긴 했다. 몇몇 작가는 1980년대 이전부터 일찍이 아름다움을 미니멀리스트 형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솔 르윗은 전통적인 이탈리아 프레스코 기법을 활용해 ‘월 페인팅’ 연작을 제작했다. 당시 솔 르윗의 작품은 “너무 아름답다”는 비판을 받았다. 내가 젊은 작가였을 시절에도 선생님은 나의 작업이 너무 아름답다고 비판했다. 꽤 오래 아름다움과 씨름하다 급진적인 작업도 시도해보면서 아름다움을 거부하려 했지만 아름다움은 언제나 내게로 돌아왔던 것 같다. 어느 시점부턴 아름다움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것을 활용하여 일종의 선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그러게 된 데에는 아시아 여행이 큰 계기가 됐다. 아시아에서 아름다움은 오히려 ‘영성’과 연관되어 있었고, 그런 만큼 쉽게 받아들여지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작업이 아시아에서 더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오토니엘은 세상을 ‘다시’ 황홀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당신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적힌 문장이다. 왜 하필 당신은 ‘다시’ 세상을 황홀하게 만들려 하는가?
사실 예전만 해도 세상은 그다지 복잡하거나 살기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 인스타그램에서 지금 세상에 큰 회의를 느끼는 12세 아이의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안 그래도 우울한 지금의 세상이 자신이 18세가 됐을 땐 얼마나 더 우울하게 변해 있을지두려워했다. 생각해보면, 적어도 나의 세대에겐 미래에는 더 나은 세상이 펼쳐져 있을 거라는 낙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의 글을 보고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다시 세상을 황홀하게 만드는 것,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예술가의 책임이지 않을까?’

생각보다 SNS 친화적인 듯해 놀라는 중이다(웃음).
하하, 나도 인스타그램에 작품 사진을 올릴 때 약간의 내적 갈등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인스타그램도 결국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느냐의 문제다. 작품을 과시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작품 사진을 올림으로써 많은 관객이 전시장에 작품을 관람하러 오게끔 하는 초대장 역할로 사용하고자 한다.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가 흥미로웠던 것도 모두 인스타그램 덕분이다.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업로드했는데, 그 사진들이 곧 또 다른 관객을 전시장으로 오게 만든 초대장이 된 셈이었으니까.

2020년 몽트뢰에 4,000㎡에 달하는 대규모 스튜디오를 신설했다. 그곳이야말로 무수한 가능성이 깃든 유토피아일 듯하다. 만약 스튜디오에서 파티를 개최한다면, 시대와 국적을 떠나 누구에게 초대장을 발송하겠나?
오, 이런(웃음). 대답할 수 없다. 대관절 파티라니!

하하, 평소 당신이 자주 언급한 미니멀리즘 예술가 도널드 저드, 칼 안드레를 답변으로 기대했다.
물론 그들을 실제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파티를 즐길 것 같진 않다. 글쎄 파티라면··· 방탄소년단의 RM은 어떨까?(웃음)

전시장과 서점을 겸한 공간에선 비교적 작은 크기의 W‘ onder Block’ 연작을 선보인다. 이들 작품은 ‘작은 조각도 충분히 공간과 공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뷰잉룸에선 한옥이라는 건축에 집중해 미니멀한 조각 작품 5점을 전시한다. 제단 형태를 띤 작품들에선 명상적 에너지가 풍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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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쳐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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