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바다에 던져주오’ 카라 조슬린 인터뷰

전여울

미국 출신의 젊은 화가 카라 조슬린(Kara Joslyn)의 국내 첫 개인전이 페로탕 도산파크에서 개최된다.

사이키델릭한 분위기가 넘실거리는 모노톤 회화 너머로 작가는 바다를 경유해 의식과 무의식에 대해 말한다. 서울에서의 전시를 앞둔 어느 날, 그와 메일 인터뷰를 나눴다.

<W Korea> 미국 LA에 위치한 당신의 스튜디오를 자세히 묘사해줄 수 있나?
카라 조슬린 내 스튜디오는 LA에서도 가장 오래된 동네 중 하나인 보일 하이츠의 어느 창고 2층에 있다. 서향으로 아주 멋진 격자무늬 창문이 있지만, 안전을 위해 바깥으로 철조망을 쳤다. 그래서 거리 곳곳에 있는 야자수, 서정적인 일몰, 산업용 지붕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이 격자 패턴 너머로 본다. 전형적인 LA의 포스트 산업사회 풍경이다. 스튜디오엔 가짜 벽난로와 화초가 있어 아늑한 느낌도 든다. 최근 놀(Knoll)의 바르셀로나 체어를 닮은 소파 하나를 장만했는데, 지금 거기에 앉아 당신이 보낸 인터뷰 질문지에 답하는 중이다(아, 마리화나도 피우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소파에서는 답변지 따위를 쓰기보단 내 사랑하는 남자친구이자 예술가인 콘래드 루이즈(Conrad Ruiz)와 사랑을 나누기에 더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스튜디오 한쪽으론 오로지 작업만을 위한 공간이 있다. 난 그 공간을 종종 이렇게 부른다. ‘어른의 삶에서 벗어나 회화 속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 있는 장소’라고.

당신의 국내 첫 개인전 <Please Throw Me Back In The Ocean>이 4월 5일부터 28일까지 페로탕 도산파크에서 개최된다. ‘나를 다시 바다에 던져주오’ 란 뜻의 전시명이 흥미롭다. 당신에게 바다는 무슨 의미인가?
바다는 잠재의식을 상징한다. 또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전 작업에서 지하 세계나 수중과 같은 신화적 장소를 지속적으로 언급했는데, 그 장소들은 우리 안에 숨겨진 영혼과 교감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칼 융은 자아의 무의식 측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를 ‘그림자’라 했는데, 우리가 이러한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대면하지 않으면 곧 욕망에 지배되고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의식과 무의식을 동시에 이해하려는 태도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소위 ‘미국적인 것’, ‘미국의 풍물’, ‘미국의 문화’라 풀이할 수 있는 아메리카나(Americana) 개념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어쩌면 이번 전시를 통해 아메리카라는 집단무의식을 비틀어 그 이면을 의식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 같다.

주로 조개껍데기, 인형, 초승달, 가면 등 특정 사물을 근접 묘사하는 회화 작업을 펼친다. 이들은 갖가지 종이 공예품을 소개한 1950년대 미국 공예 서적에서 길어온 이미지들이라 알고 있다. 공예 서적에서 영감을얻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나는 빛과 어둠의 대조에 관심이 많다. 평소 흰 종이에 오로지 검은색 안료만 사용해 흑백 대비가 돋보이게 작품을 완성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다. 언젠가 공예 서적에 실린 종이 공예품을 봤는데, 흰 종이가 접히고 오려지는 과정에서 모서리진 부분이 생기고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는 사실을 불현듯 발견했다. 그때 비로소 빛과 어둠을 표현하는 어떤 결정적 힌트를 얻은듯했다.

한편 주제적 측면에서 내 작업은 ‘미국의그림자’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거다.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 모두가 폭압적인 20세기를 지나 일종의 ‘포스트모던 숙취’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에서 1950~60년대는 모더니즘과 자본주의가 고도로 이상화된 시절이다. 그 시기 사람들은 두 사상이 사회를 진보적으로 발전시킬 거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밝혀지지 않았나? 그 믿음의 결과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임이. 그래서 한 시대의 파편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1950년대 공예 서적이 계속해서 내 작업 세계에 문을 두드리는 것 같다.

홀로그램 효과가 나는 분말형 차량용 페인트, 과거 컴퓨터가 발명되기 이전 그래픽 디자인에서 사용되던 에어브러시를 작업에 활용하여 디지털 이미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유의 사이키델릭한 무드를 연출해주는 안료는 어떻게 발견했나?
할아버지가 1960년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설립한 최초의 테크 기업 ‘Optical Coating Laboratories Inc(OCLI)’에서 근무하셨다. OCLI는 오늘날 안경, 카메라, 디스플레이 등의 제조 분야, 방위 산업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박막 광학 코팅 기술(Thin-film Coatings)을 발명한 기업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작업에서 사용하는 색 변환 잉크, 홀로그램 기술도 발명했다. 오늘날 홀로그램 기술과 색 변환 잉크는 지폐나 신분증의 위조 방지를 위해 널리 사용된다. 어쩌면 미국 사회에서 가장 흔히 접하게 되는 기술인 셈이다. 이러한 재료들을 사용해 처음 작업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 어렴풋이 느낀 것 같다. 이는 곧 나의 개인적이고 가족적인 이야기를 회화에 교차시키는 방법이자, 나아가 미국 사회의 여러 측면을 작품에 담아내는 방법이라고.

언젠가 이런 말을 남긴 적 있다. “만약 사진이 거짓의 지표, 즉 거짓을 말하는 진실이라면, 나는 회화를 눈속임, 즉 진실을 말하는 거짓이라 생각하고 싶다.” 무슨 뜻인가?
우리는 사진을 보며 이를 진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수전 손택이 말했듯, 카메라는 거짓을 말한다. 사진 한 장에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지만, 사실 프레임 밖의 현실은 철저히 은폐되어있지 않은가. 어쩌면 사진은 단지 이야기, 조작, 거짓인 셈이다.

반대로 우리가 회화를 볼 땐 그것이 진실을 묘사하고 있거나 현실을 지표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회화가 환상이고 거짓이라는 것을 항상 잘 인지하고 있다. 회화가 철저히 ‘조건부 공간’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회화란 진실을 드러내기에 탁월한 매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에게 회화는 마법과도 같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무형의 것을 유형의 세계로 가져오는, 굉장히 비현실적이면서도 멋진 일이다.

예술가로서 무엇을 회의하나?
예술가들이 예쁘게 포장된 규범에 쉽사리 순응하는 것. 나는 항상 예술가란 환각 상태를 즐기고 난교를 벌이며 영혼과 대화하며 ‘왜’와 ‘어떻게’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란군, 시인, 반전주의자라고 생각한다.

89년생 회화 작가 오스틴 위너 인터뷰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세계적 아티스트의 전시 2편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GUILLAUME ZICCARELLI(인물), MARTEN ELDER(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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