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Itzy)의 예지는 예지일때 완벽하니까

권은경

있지(Itzy)의 리더 예지가 홀로 <더블유> 카메라 앞에 섰다.

LA, 애틀란타, 시카고, 뉴욕··· 미국 주요 지역을 거쳐 아시아의 마지막 도착지인 방콕까지, 15개 도시를 달리는 월드 투어의 긴 여정이 마침표를 찍기 전 서울에서 이루어진 만남이다.

분홍색 깃털 톱은 더 아티코 by 무이 제품.

<W Korea> 어제도 공연을 했더라고요? KSPO 돔에서 열린 <원더 스테이지>라는 페스티벌에 있지가 참여했죠.

예지 네, 맞아요. 어제 늦게 잠들었어요. 새벽 4시쯤?

있지가 아직 월드 투어 중이에요. 공연이나 촬영 때면 늘 단체로 움직이는 팀인데, 이번에 처음 개인 화보를 해보는거죠?

네. 이번 화보는 너무나 의미 있는 작업이에요. 우리가 여느 대기실에 가면 헤어 메이크업을 위한 의자가 최소 두 개는 있거든요. 그런데 오늘 도착했더니 의자가 하나뿐이더라고요.

단 하나의 의자. 그 모습에서부터 뭔가 낯설었겠네요.

아까부터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어요. 의상을 입을 때도 멤버들 간의 밸런스를 맞춰야 할 때가 많은데, 그런 거 없이 저 혼자 입고서 카메라 앞에 서니까…. 일단 진행 속도가 엄청 빠르네요(웃음). 저는 사실 성격이 급한 편이어서 진행 빠른 걸 좋아하는데, 그 점이 신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낯설어요. 저만의 모습을 팬분들도 보고 많이 좋아해주시길 바라요.

유튜브 있지 채널에 투어 중 찍은 영상이 부지런히 올라오더라고요. 휴스턴 인근에 슈가랜드라는 곳이 있는지 저는 몰랐어요. 슈가랜드라니, 이름부터 너무 귀여운 거 아니에요?

그쵸? 우리 팬들 이름도 귀엽거든요, ‘믿지’. 슈가랜드의 믿지라고 하니까 뭔가 요정들 같고, 어감이 더 귀엽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주 기분 좋았던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크롭트 니트 톱은 이자벨 마랑, 테일러드 재킷은 알렉산더 맥퀸 제품.

있지 월드 투어 ‘체크메이트’는 작년 8월 서울에서 출발했어요. 10월과 11월에는 북미 지역 8군데를 돌았고, 올해 들어서는 아시아를 돌고 있죠. 작년 11월 30일에 있지 미니앨범 <체셔(Cheshire)>가 나왔으니, 투어 중에 무대에서 선보일 프로그램이 바뀌었겠네요?

지난해 가을에 ‘Boys Like You’라는 영어 싱글도 냈거든요. 그럼 중간중간 세트 리스트를 좀 바꿔요. 최근에는 일본에서 공연했어요. 저희가 일본에서도 데뷔했기 때문에 일본 공연 때는 일본어로 된 곡을 추가하는 식이에요.

투어 영상을 보면 별로 긴장을 안 하는 거 같더라고요.

아니에요, 저희 긴장 많이 했어요. 제 경험상 긴장될 때는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준비를 많이 못했을 때 그 불안감에서 오는 긴장, 아니면 너무 설레서 생기는 긴장. 그런데 이번 투어를 하면서 준비를 완벽에 가깝게 해도 또 다른 긴장감이 들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4월 방콕을 끝으로 긴 기간에 걸쳐 진행된 월드 투어가 막을 내려요. 이번이 첫 번째 월드 투어라고 하지만, 사실 있지는 2019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프리미어 쇼케이스 투어라는 이름으로 미국 주요 도시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데뷔한 해에 벌인 일인데, 그때와 지금 확연히 다른 걸 느끼나요?

엄청나게 달라요. 지금은 공연장이 아레나 급이고 규모부터 완전히 다르죠. 과거 투어 때는 공연 곡 수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데뷔 초에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를 응원해주는 해외 팬도 이렇게나 늘었구나’ 알게 되었는데, 단 몇 년 사이에 체감되는 변화가 너무 크니까 우리도 신기하면서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요.

해외 팬들이 한국어 노래를 다 따라 부르는 건 여전히 신기한 일이겠죠?

그냥 한국어 자체를 잘하세요. 노래는 외워서 따라 부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무대 위에서 무슨 말을 하면 통역가가 통역을 해주시기 전에 관객이 알아듣고 대답해요. 그 어느 나라에 가도 ‘와, 여러분 한국말 잘하시네요!’ 소리가 나와요. 이제는 K팝뿐 아니라 한국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이 많다는 걸 느껴요.

새삼스럽지만, 예지 씨는 춤을 아주 잘 춰요. 춤 선이 상당히 예쁘던데요? 팀의 리더이자 메인 댄서인데, 보컬과 랩도 다 소화하고 있죠?

감사합니다! 춤 외에는 다 연습생 생활하면서 처음 시작했어요. 영어도 그렇고, 연예인으로서 갖춰야 할 게 많더라고요. 저는 제가 못하는 상태를 드러내는 게 싫어요.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고만 싶죠. 그런데 데뷔 후에는 준비라는 걸 할 여유가 없어요. 연습생 시절에 후회 없이 뭐든 열심히 해두었지만,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을 때도 종종 있어요.

밑단을 풍성하게 장식한 백리스 드레스는 모스키노, 블랙 첼시부츠는 발렌티노 가라바니 제품.

좌우명이 ‘나를 믿자’라면서요.

좌우명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게 들리죠? 저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 문장이에요. 내가 노력한 만큼 무언가가 돌아온다는 걸 저는 일찍 깨달은 편이에요.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사실 저 자신이 가장 잘 알잖아요. 열심히 한 만큼 실력도 보상도 반응도 온다는 걸 안 이후에는, 나를 믿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됐어요.

‘나를 믿자’가 주변의 말에 휘둘리기보다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뜻인 줄 알았는데, 짐작과는 조금 다르군요.

남들의 말은 사실 ‘코멘트’ 정도의 의미죠. 물론 단 한 사람의 말이라도 받아들일 만한 것은 참고해야겠지만요. 저는 어릴 때도 그랬어요, ‘나는 가수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은 있었거든요. 하지만 ‘어떤 회사에서 트레이닝 기간을 거치고 어떤 가수가 될 것인가’ 문제는 내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목표를 높게 잡고 스스로 인정할 만큼 힘을 쏟으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느낀 게 JYP에 합격했을 때고요. 매번 좀 더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할 때마다 결국 나를 믿어야 했고, 그렇게 해서 인생 좌우명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긍정적인 성격인가요?

엄청요! 그런데 저, 가끔씩, ‘로봇 같다’는 말을 들어요(웃음). 사회생활이나 태도 면에서 저한테 모범생 같은 느낌이 있나 봐요. 예를 들어 힘든 연습생 시절을 얘기할 때도 사실 저에겐 힘든 것보다 재밌는 추억이 더 많거든요. 새벽까지 언니, 오빠들과 연습하고 그런 거 재밌었단 말이에요.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제가 생각하고 느낀 대로 얘길 해도 ‘정말? 그게 가능해?’ 같은 반응을 들을 때가 많아요.

그래도 예지는 꼰대와 거리가 먼 리더로 알고 있습니다만.

엇. 아닙니다. 저 꼰대스러워요(웃음). 제가 범생이 같다는 거, 한마디로 FM 기질이라는 뜻이거든요. FM적이라는 건 제 안에 꼰대가 있다는 말일 거예요. 어쨌든 내적으로는 기강이 잡힌, 정돈된 상태를 좋아해요.

스스로에게 엄격하다는 말 같군요. 멤버들을 아우를 때는 완전 편한 친구 사이 같던데요?

멤버들에게 제 생각을 말할 때, ‘하자’라고 하기보다 ‘하면 어떨까?’라고 말하는 방식이 나아요. 멤버 수가 다섯이면 K팝 그룹에서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닐 수 있지만, 생각도 가치관도 다 다른 다섯 명이 모인 거죠. 누군가 ‘이렇게 하자’라고 해버리면, 또 누군가는 ‘그런데 있잖아’라고 다른 의견을 꺼내기 마련이에요. 제 의견에 물음표를 붙이는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야 분위기도 반응도 좋은 것 같아요. 멤버들이 제가 강압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잘 따라와주는 건 너무 고마워요.

진주 이어커프는 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 제품.

긍정 에너지가 떨어질 때도 물론 있겠죠? 그 에너지는 스스로 채워지나요?

컨디션이 안 좋고 무대 오르기 전에 버겁다는 느낌이 드는 날, 있죠. 내가 오늘 과연 잘 해내려나 걱정되고요. 그런데 무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에너지가 채워져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가도 무대를 통해 도파민이 다시 생성되는 느낌? 제가 춤추는 모습을 팬들만큼이나 저도 좋아하거든요. 저는 가수라는 직업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강력한 모범생 기질이 마구 느껴지고 있어요!

하하. 저도 기가 빨린다는 느낌 들기도 해요. 쇼핑몰이나 지하철처럼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똑같이 사람이 많아도 공연장에서의 느낌과는 다르죠. 기가 빠지는 것 같고 지치면 저도 그냥 가만히 누워 있고만 싶어요.

속보입니다. ‘황예지도 기 빨릴 때 있다.’ 쇼핑몰과 지하철이라니요, 월드 투어까지 하는 K팝 아티스트가 돌아다니면 마스크를 써도 알아보는 사람 많지 않아요? 특히 예지 씨의 이목구비 중 매력 포인트가 눈인데.

그래서 ‘예지랑 참 닮으셨어요’ 같은 소리를 정말 많이 듣습니다(웃음).

저는 있지 노래 중에서 2020년 여름에 나온 ‘낫 샤이(Not Shy)’를 가장 좋아해요. 발랄함과 걸 크러시가 공존한 느낌이거든요. 그런데 같은 해 먼저 발표한 ‘워너비’라는 곡을 녹음할 때, 가사 때문에 몇 번 울컥했다면서요?

데뷔곡 ‘달라달라’를 써주신 작곡가님의 곡이라 더 뜻깊기도 한데요. 언젠가 작곡가님이 ‘얘들아, 너희는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제 좌우명 때문인지 저는 ‘그냥 제가 되고 싶어요’라고 답했어요. ‘워너비’는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야 그냥 내가 되고 싶어, 굳이 뭔가 될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니까’라고 말하는 곡이에요.

PVC 프린지 케이프는 스포트막스 제품.

그 사람 자체로 개성이 빛나는 이들이 지금의 수많은 K팝 아티스트들이지만, 무대에 서기까지는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야’ 같은 사고방식과 자존감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듯해요.

누가 저에게 롤모델을 물어보면 저는 꼽기가 힘들더라고요. 존경하는 선배님들이야 많지만, 저마다 다른 인격과 개성이잖아요. 사람마다 다 다르게 태어났고, 그저 내가 잘하는 면을 봐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가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우리는 누군가와 비교될 일이 많아요. 연습생 중에서 데뷔 그룹을 추릴 때도 그렇고요. ‘남보다 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지칠 때가 있었어요.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 좀 들었거든요.

나를 잃어가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음. 연습생 초기에 저는 제가 묵직하고 파워풀한 춤을 추는 게 제 강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너만의 스타일이 없는 것 같다’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내가 이미 나인데, 내가 하는 게 내 스타일인데, 뭘 더 고쳐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할지 기준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답답해서 펑펑 울기도 했어요. 그러다 내린 결론은 ‘스타일적으로 뭘 바꿔볼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더, 더, 열심히 하자’였어요.

그 결심이 통했나요?

네. 부정적인 피드백이 사라졌어요. 제 의지로 자연스럽게 제 스타일을 고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뭘 바꾼다 한들 그건 꾸며낸 나일 것 같았죠. 하던 걸 그저 열심히 팠더니 어느 순간 저는 색깔이 뚜렷한 멤버로 존중받게 되었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정해진 답이라는 건 없구나 싶어요. ‘인생에 답이 없는 순간이 참 많을 텐데, 그럼 다방면으로 준비해둔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나만의 스타일이 없다는 게 과연 무슨 의미일까. 한마디로 좀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었을까.’ 아직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해요. 한편으로는 제가 혼란스럽다가도 답을 못 찾고 그저 연습을 더 해서 달라졌듯이, 살면서 무언가에 너무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하고요.

비즈 장식 드레스는 발렌티노, 진주 장식 이어링은 발렌티노 가라바니, 리본 장식 헤어핀은 엘리자베스 모먼트, 롱부츠는 세르지오 로시 제품.

현명하게 들리네요. 혹시 박진영 피디는 이런 예지를 두고 어떤 코멘트를 해줬나요?

작년에 서울 콘서트를 했을 때 피디님이 오셨어요. 그때 솔로 무대에서 제가 두아 리파의 ‘Hotter Than Hell’을 불렀거든요. 춤 없이 보컬만 선보이는 무대도 해보고 싶어서 준비한 무대예요. 아무 말씀이 없어서 반응이 궁금했는데 저녁에 피디님 연락이 왔어요. ‘공연으로 예지의 잠재력을 많이 본 것 같다, 앞으로가 너무 기대된다, 오늘 참 멋졌다’ 하는 칭찬이었어요.

오! 박진영 피디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 아닌가요?(웃음)

피디님이 그냥 좋은 말만 해주는 분이 아니거든요. 고쳤으면 하는 점이 보이면 고쳐 질 때까지 짚어주세요. 그런 피디님한테 칭찬을 들었다는 점에서 너무 기뻤어요.

‘춤추는 나’라고 하면 어떤 느낌으로 묘사할 수 있어요?

이제 춤은 그냥 저 자체 같아요. 제가 머리로 어떤 생각을 하지 않아도, 혹은 이런 동작과 저런 동작을 뱉어도 자연스럽게 표현이 나와요. 노력과 시간이 쌓인 끝에 제 몸 안에서 스르르 나오는, 저의 일부가 된 느낌이에요.

있지는 격한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라이브를 고수하는 그룹 중 하나죠?

저희가 립싱크를 진짜 못해요. 립싱크로 하려면 입을 잘 맞춰야 하는데 그게 더 힘들거든요. 그러다 보니 목 상태가 안 좋아도 라이브를 고수해요. 가수의 본분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면서 뿌듯합니다.

이런 생각 해봤나요? 한 그룹이 오래 유지되기 위해 중요한 조건은 뭘까요?

멤버끼리의 사이가 관건이 아닐까 해요. 한 그룹 내의 사이란 사실 표면적으로 꽤 드러난다고 봐요. 유닛으로 움직이거나 팬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서로 그 자리에 없는 다른 멤버에 대해 말하게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진정으로 사이가 좋으면, 그럴 때나 카메라 불이 꺼진 뒤에도 티가 나는 것 같아요. 서로 끈끈하다면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그 힘이 발휘되고요.

있지 월드 투어는 일찍이 매진되면서 성공적으로 흘러왔어요. 사이좋은 한 그룹의 리더로서 팀의 미래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나요?

제가 데뷔 초에는 팀으로서 이루고 싶은 거, 개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거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목표를 세워도 결국 팀원끼리 한 마음으로 한 목표를 두어야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거 같더라고요. 가요계 선배님들을 떠올리면 ‘그 무대 엄청났지’, ‘그 노래 참 좋았지’ 식으로 기억에 남는 분이 많아요. 나중에 누군가 그런 기억을 떠올릴 때 거기에 있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오래 활동하는 팀이 되고 싶어요. 저는 더 좋은 모습으로 ‘믿지’에게 다가가는 예지가 되겠습니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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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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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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