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에 대한 7가지 후일담

우영현

브라보! 멋지다! 박수를 받아 마땅한 <더 글로리>가 남긴 것들.

거의 완벽한 이야기

“용서는 없어, 그래서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 <더 글로리>는 주인공 동은의 이 말을 나 몰라라 하지 않았다. 용서와 관용 없이 처절하고 통쾌한 응징으로 카타르시스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 와중에 곳곳에 던져 둔 떡밥을 성실히 회수하며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두말할 것 없이 ‘용두용미’라는 호평이 주를 이뤘다.

사실 정밀하게 설계된 <더 글로리>의 서사에 튀는 장면도 있긴 하다. 동은이 복수를 마친 후 한밤중 옥상 난간에 서자 여정의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 등장해 동은의 마음을 돌린다. 응? 줄곧 동은의 뒤를 따라다녔다고? 뜬금없긴 한데 동은이 빌라 할머니에게 쓴 편지 속 ‘신의 개입’이 이런 건가 보다.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어른들이 있었다는 걸. 친구도, 날씨도, 신의 개입도요”.

이런 사고는 환영

<더 글로리> 파트2 공개 직후 넷플릭스는 당황했다가 이내 함박웃음을 짓지 않았을까. 웰메이드 ‘K-복수극’을 보려는 이용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일시적으로 넷플릭스 서버에 버퍼링 현상이 나타났다. 어떤 의심도 없이 <더 글로리>의 인기를 가늠하게 한 사건이었다.

실제로 파트2는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TV쇼 부문 글로벌 3위를 기록하고 얼마 뒤 금세 1위를 찍었다. 파트1의 이 부문 최고 기록은 4위였다. <더 글로리>의 기세가 글로벌 신드롬으로 번질 수 있을까? 두고 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애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며 한 시즌을 쪼개서 공개하는 넷플릭스의 전략은 활개를 치게 생겼다.

명대사 컬렉팅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죽어보자,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 “단 하루도 잊어본 적 없어.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가 없거든”, “도망이 아니라 희망이야”, “상처를 치료하려면 상처 위에 더 깊은 상처를 내야 해요. 새살이 다시 차오르도록”, “잘 크진 못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어느 봄에는 활짝 피어날게요”, “난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이런 걸 잘못이라고 하는 거야, 스튜어디스 혜정아.”…

<더 글로리>의 인물들은 어쩜 이렇게 말을 잘하는지. 마음을 후벼 파고, 무릎을 치게 만들고, 몇 번을 들어도 뻔하지 않고, 유행어처럼 번지고 쓰이는 대사들이 모두 주옥 같다. 명불허전 김은숙 작가의 전성기는 지금일지도. 그런데 이 문학적 순간 같은 대사들이 넷플릭스에서 어떻게 번역됐으려나.

더하고 뺄 것 없는 앙상블

<더 글로리>의 넘치는 미덕 중 하나는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캐릭터와 연기가 돋보였다는 점이다. 멜로 퀸에 머무르지 않고 씩씩하게 글로리하게 한발 나아가며 새로운 챕터를 맞이한 송혜교는 두말할 것 없고, 특히 빌런 5인조는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악역 캐릭터로 박수를 받은 임지연은 완벽히 다른 배우처럼 보였고 박성훈, 김히어라, 차주영, 김건우는 절호의 기회에서 거리낌 없이 불을 뿜었다.

정성일도 빼놓을 수 없다. 외딴섬 같은 하도영이 억장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측은함 대신 기품이 자르르 흐를 수 있었던 건 정성일이 해답이었다. 현남을 연기한 염혜란은 또 어떻고. 송혜교와 주거니 받거니 완성한 ‘나의 이모님’ 에피소드는 따로 떼어 보고 싶을 정도이며, 염혜란은 혼자서도 빛났다. 원했던 남편의 죽음을 확인한 현남의 얼굴에서 울음과 웃음이 번갈아 터져 나오는 장면은 배우의 어떤 경지를 드러냈다.

‘더 글로리’ 악역 5인 완전체 화보 공개

브라보! 로맨스

“복수 시작할 땐 나도 <테이큰> 같은 줄 알았지. 근데 시작하고 보니까 니들 뒤도 밟아야지, 돈도 벌어야지, 학교도 옮겨야지. 와, 너무 바쁘더라”. 그리고 동은은 사랑도 했다. 솔직히 <더 글로리> 애청자로서 동은과 여정의 로맨스는 엇박자처럼 느껴졌다. 동은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여정의 눈웃음과 그런 여정을 차마 밀어내지 못하는 동은의 감정선은 냉철하고 무게감 있는 복수극의 정서와 섞이지 못해 몰입을 깼다.

<더 글로리>를 다 보고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온 생을 건 복수를 완수한 동은은 스스로 계획한 결말 대신 여정을 선택하고, 그의 ‘칼춤 추는 망나니’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제서야 얄미웠던 두 사람의 멜로 서사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됐다. 가장 쉬운 해결책일 수 있지만 사랑의 감정은 동은의 선택과 엔딩을 뒷받침했다. 물론 “사랑해요”라는 대사로 매듭지어진 결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이를 지지한다. 러브 스토리가 부재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옥상에 선 동은이 여정에게 돌아가지 않았을 거고, 우리는 새드엔딩을 보게 됐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무너뜨린 영광

<더 글로리>는 서사적으로, 흥행적으로 해피엔딩을 맞았다. 그럼에도 온전히 그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 글로리>를 연출한 안길호 PD가 학교 폭력 의혹에 휘말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을 인정했다. 학교 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극을 만든 장본인이 가해자라는 사실에 충격과 배신감이 터져 나왔다. 김은숙 작가는 “고등학생 딸을 둔 학부형으로서 학교 폭력이라는 소재는 가까운 화두였다”고 얘기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곳 가까이에도 있었다.

<더 글로리> 예언서

필자는 <더 글로리> 파트1이 공개된 후 파트2 전개에 대한 예측을 공개했다. 뱉는다고 다 정답은 아니고, 선견지명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관대하게 채점을 해 보니 그래도 꽤 맞은 편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 되게 신난다. 내용이 궁금하다면 ‘<더 글로리> 파트2 예언서’ 기사를 찾아보길. 엄청나다.

‘더 글로리’ 파트2 예언서

믿고 보는 ‘더 글로리’ 배우들의 차기작

프리랜스 에디터
우영현
사진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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