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가영이 말하는 사랑과 사람

권은경

사랑과 사람에 대해, 자신과 자신이 연기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문가영

사랑이라는 거울은 감추고 싶었던 나의 옹졸함과 치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랑을 둘러싼 이해와 오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우리가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드라마 <사랑의 이해>를 마친 문가영이 사랑과 사람에 대해, 자신과 자신이 연기한 여자에 대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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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Korea> 문가영 씨 덕분에 오랜만에 멜로 드라마를 봤습니다. 사랑하는 일은 왜 그토록 씁쓸하고 쓸쓸한가요. 사랑. 사랑이라고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나요?

문가영 책임, 의지, 결핍… 그리고 구름.

구름요?

말랑말랑할 것 같고, 그 폭신함을 느끼고 싶고 만지고 싶은 기분이 드니까요.

그렇군요. 독서를 사랑하는 문가영이 나머지 단어들에 주석을 달아보세요.

책임은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말해요.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건 ‘너에게만큼은 상처받아도 좋다. 너한테서 내가 상처를 받겠다’라는 의미와 다름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선택에 대한 책임이란 상처에 대한 책임, 상처까지 받을 책임이기도 하죠.

절로 우러나는 마음만으로 사랑이 지속되긴 힘들 거예요. 노력과 정성이라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사랑뿐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렇죠.

네. 모든 관계는 나의 의지만 있으면 끝나지 않아요. 상대방에게도 ‘나의 의지’가 있죠. 어쨌거나 누구 한쪽의 의지가 없으면 관계가 끝나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관계에 실패했다는 건 의지가 줄어들었거나 변형되었거나, 아니면 그 의지가 향하는 대상이 바뀌었거나 하는 문제일 거예요.

자신의 결핍을 느끼나요?

요즘 결핍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인간관계에서 뭔가가 잘 안 되거나 문제점이 생기는 건 결국 나의 결핍 때문이라는 생각. 물론 영향을 끼치는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요. 사람은 결핍과 관련 있는 내 무언가가 건드려졌을 때, 내가 지키고자 하는 바운더리가 침범당했을 때 마음도 생각도 달라지죠. 연인끼리 싸울 때도 그렇고…. 제가 혹시 너무 부정적인 말만 늘어놓고 있나요?

저는 어제 유튜브에서 ‘사랑의 이해’라고 검색한다는 걸 ‘사랑의 종말’이라고 써버렸어요. 검색 결과들에서 이상함을 느끼기 전까진 단어를 잘못 쳐넣은 줄도 몰랐고요. 부정적이라고 하려면 그 정도는 돼야죠.

와. 뭘 갖다 대도 ‘종말’을 이길 순 없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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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사랑의 이해>는 은행을 배경으로 네 남녀의 사랑이 엇갈리고 지나치는, 템포가 느린 작품이었어요. 그 남녀 중에는 날 때부터 VIP 신분인 사람도 있고, 어떻게든 지금의 삶보다 나아지고 싶지만 쉽지 않은 사람도 있었죠. 문가영이 연기한 안수영은 우선 ‘KCU은행 영포점의 여신’이었어요(웃음). 그 인물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어요?

작품에 들어가기 전 받아본 시놉시스에, 안수영에 대한 설명 중 마지막 문장이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 같은여자다’.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 같은 여자라면?

아주 어려운 여자죠(웃음). 안수영은 감정도 무엇도 잘 드러내질 않아요. <사랑의 이해>는 하상수(유연석 배우)의 사랑 이야기예요. 그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자. 때문에 ‘저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싶게 불친절한 면도 있죠. 배우는 캐릭터를 통해 시청자를 설득해야 하지만, 저는 이번에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 여자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해하고, 아닌 사람은 말고. 그래도 상관없었어요. 바로 그런 점이 우리 드라마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드라마 속 서로 다른 인물들 입에서 ‘네가 왜 그랬는지 궁금해’ ‘왜 아무것도 묻지 않아요?’ 식의 대사가 몇 차례 나왔던 거 같네요. 우리는 때때로 상황을 납득하고 이해하려 하지만, 나조차 나를 이해 못할 때가 많죠. 하물며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군요?

네. 가장 오래 가까이 지낸 가족 구성원끼리도 사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세상엔 즉각적인 명쾌한 해답이 아니라 시간이 설명해주는 것들도 있잖아요. 이게 사랑일까 아닐까, 내 마음을 나도 확실히 모를 때가 있는 것처럼.

안수영이 자존심 센 여자라는 건 알 수 있었어요. 가늠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도 있고. 조금의 어긋남 속에서 남자가 다가오지만, 자꾸 도망가버리죠.

자격지심도 있죠. 제삼자 입장에선 ‘행복하게 연애하면 되지 왜 피할까?’ 할 수 있겠지만, 막상 당사자 입장이 되면 자격지심 그 하나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존재해요. 생각해보면 우리 안에는 저마다 자격지심이 있잖아요. 그걸 넘어서려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고요. 한숨을 쉬면서 숨 돌리는 시간요.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지만, 자신이 연기한 인물을 비교적 이해할 수 있었나요?

이해 가지 못할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는 안수영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내가 만난 캐릭터 중에 이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있었나 싶어요.

어떤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죠?

물러설 용기, 포기할 용기요. 나서는 것 만큼이나 물러서고 포기하는 것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이번 작품을 하면서 느꼈어요. 수영이가 처한 상황과 자라온 환경 등을 생각하면, 눈앞에 있는 걸 더 욕심내지 않고 포기하는 건 용기를 낸 결과예요. 상대를 확실히 끊어내려고 행동으로 보여주죠. 누군가는 그 행동을 도망이나 회피라고 하겠지만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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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해하는 건 사랑을 둘러싼 손익이 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원금이 보장되고 이율도 정확한 상품이 아니라, 자칫하면 파산에 이르는 불안정성을 가진 것. 우리가 사랑을 할 때, 그래서 온전히 그 사랑에 집중하지 못하는 걸까요?

결국엔 나라는 사람의 문제죠. 말했듯이, 나의 결핍 때문일 수도 있고요. 해답은 나에게…. 누군가로부터 진정한 이해를 받으려 하거나 누군가를 꼭 이해시키려는 거, 그건 어렵고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일이 좀 쉬워지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일지도 몰라요. 아니면 이해하는 척하거나.

이해와 오해는 붙어 다니는 애들 같아요. 굳이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애꿎은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고요.

상대방을 이해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저 끊임없이 그 사람을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행동이 더욱 소중한 의미를 갖게 돼요. 주변 사람에게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바로 그 점 때문인가 봐요. 그들은이해할 수도 없는 나를 두고 떠나지 않고 나름의 노력을 한다는 뜻이잖아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나요? 한마디로 ‘사랑은 기술이기에 기술을 연마하듯 훈련하면 실천할 수 있다, 우리 그렇게 사랑을 회복하자’라는 이야기죠.

저는 그 책을 어릴 때 읽었어요. 그래선지 ‘뭐야, 이게 사랑이라고? 사랑을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연애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거죠. 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건 내가 진심을 다하면 통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그거, 안 되더라고요. 내 진심이 받아들여지는 여부는 타인의 역량에 달렸잖아요. 타인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내 진심은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진심은 통한다’라고 굳게 믿는 건 오만이고 안일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슬프지만 어쩔 수 없죠.

사람은 주로 자기가 경험하고 이해한 토대 안에서 상대를 받아들여요. 그 경험치가 쌓이거나 소통 능력이 뛰어나면 인간관계에서 편리해지는 부분도 있겠죠. 그런 게 바로 기술이겠네요. 사랑에 대해 제가 생각했던 환상과는 다른… 그런 생각을 하면 저도 좀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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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작품이나 말 중 특별히 아끼는 게 있나요?

드라마 종영 날 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어서 생각해둔 문구예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마지막에 나오는 말.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소설의 모든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인데, <사랑의 이해>를 찍는 동안에도 그 오묘한 말을 종종 떠올렸어요.

밀란 쿤데라를 워낙 좋아하시죠?

네. 올해의 목표 중 하나가 쿤데라 전집 읽기예요. 지금까지 쿤데라의 책은 다섯 권 봤네요. 드라마 촬영을 마친후 정말 오랜만에 휴가를 얻고서 한 달 동안 일곱권을 읽었어요. 촬영 기간에는 독서 욕망을 겨우 억누르다가 그 욕망이 확…(웃음).

문가영에겐 첫사랑이 있나요?

그럼요, 있죠.

첫사랑은 어떤 느낌으로 남아 있나요?

제 첫사랑은 갱신됩니다(웃음). 첫사랑의 기준이 사람마다 좀 다르잖아요. 저에게 첫사랑이란 ‘내가 제일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에요. 앞으로 만날 누군가가 다시 제 첫사랑이 될 수도 있죠. 열린 결말이랄까요. 그러다 보니 아련하고 풋풋한 느낌보다는 아픈 감정이 훨씬 강해요. 누군가를 많이 좋아한다는 게 꼭 행복한 감정으로만 채워지는 건 아니니까.

작년에 만난 어느 여배우가 이런 말을 했어요. 연애가 그립지만, 연애라는 불안정한 상태에 나를 또다시 밀어넣기는 두렵고 귀찮다고요. 보편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경향이 생겨요.

그 말에 공감해요. 저도 안정적인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연애나 사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그럼 괜찮을까요? 자신을 뜯어보면 안전하고 안정적이기만 한 사람이 어딨겠어요.

사랑에 빠졌을 때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능력을 잃어버릴까 봐 두렵지는 않나요?

그런 계산은 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저는 자가 치유에 자신이 있으니까요(웃음). 어떤 일이 생겨도, 누가 아무리
내게 상처를 줘도 그걸 상처라고 받아들이지 않거나 상처를 금방 회복시킬 수 있다는 자신, 자부심이 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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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드라마 <링크: 먹고 사랑하라, 죽이게>를 앞두고 여진구 배우와 함께한 인터뷰에서도 그 점을 언급했죠. 엑스맨 같은 문가영의 그 특출난 능력, 자가 치유 부심!(웃음)

사실 자가 치유 능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봐요. 발휘되는 속도가 다를 뿐이지. 스스로 주문처럼 외우는 걸수도 있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해요. ‘나는 빨리 치유되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배우라는 직업의 큰 장점이 가슴 아프고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그걸 경험치라고 여길 수 있다는 점이에요. ‘연기 할 때 써먹어야지’라고, 좋게 합리화할 수 있죠.

사랑을 주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 어느 쪽에서 더 행복감을 느끼는 편인가요?

주는 것에 더 익숙한 사람으로 지금껏 살아온 듯해요. 일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주려고 할 때 더 마음이 편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저는 그냥 늘 진심을 다하려고 하거든요.

작년 봄 우리가 만났을 때,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한 탓에 늘 주변을 신경 쓰느라 정작 스스로에 대해선 잘 모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죠. 받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대요.

가끔은 나도 받아보고만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받는게 어색해요. 받으면 배로 돌려주고 싶고요. 그렇네요, 정말 연습이 필요하겠어요. 저는 요즘 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제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랄까요. 그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나한테만 집중하는 게 너무 신이 나요.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 대해 대단한 발견을 한 건 아니지만요. 저를 돌아보니, 사실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창고를 겹겹이 붙이며 괜찮은 척하는 데 익숙해진 거 같기도 해요.

문가영은 어리광 부리지 않는 데 단련됐군요. 안수영도 참고 억누르는 법을 단련했죠. 상처받았지만, 시종일관 담담한 표면을 유지하는 그런여자니까.

네. 그 인물에 제가 꽤 투영됐어요. 저도 그렇게 표현을 안 하는 편이어서. 저는 잘 몰라요, 푸는 방법을. 빗속에서 우는 수영에게 상수가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는 그때도 소리 없이 울었어요. 어느 날은 수영의 눈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어요. 눈물이 차오르기만 한 상태로 끝내고 싶어서, 그 장면을 다시 찍었어요. 참는 사람들은 항상 참고 살 줄 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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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용기를 내고 상대방의 세계에서 사라지는 선택을 해도 자꾸 마주치는 인연이 있어요. 드라마의 마지막, 몇 년이 흘러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남자와 여자는 예전에 같이 먹지 못했던 돈가스를 먹으러 가죠. 그래서, 그 돈가스 먹었습니까? 사랑과 행복은 찾아올까요?

그제야서로 솔직한 대화를 하면서 돈가스를 먹으러 향했으니, 제법 해피한 결말일 수 있죠. 돈가스만 먹고서 헤어졌을지도 모르고요(웃음). 수영이가 그저 하루치의 불행을 견디며 살아가기보다는 나의 행복과 내일의 행복에 대한 길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지금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인 것처럼, 수영이도 무언가를 찾고 조금 더 행복해지길바라는 마음이에요.

지금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남겨주고 싶어요?

꼭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만나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남들이 정해놓은 시선에 맞춘 해답 아닐까요?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지 않아도 어떤 형태로든 해결의 방향은 생겨요. 대상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죠, 뭐.

세상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문가영의 일상템 엿보기

부산에서 만난 문가영이 먹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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