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스미스가 펼치는 이상한 중력의 나라

전여울

예술가가 바라본 예술가. 미술 작가 장파가 오는 3월 1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키키 스미스의 개인전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를 들여다봤다.

ⓒ Kiki Smith. Photograph by Nina Subin

하늘, 2012, 면 자카드 타피스트리, 287 × 190.5 cm. 매그놀리아에디션 직조.

라스 아니마스, 1997, 종이에 포토그라비어, 152.7 × 125.1 cm. 작가 및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무제(머리카락), 1990, 석판, 91.5 × 91.5 cm. 작가 및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tif

인간의 신체는 단순히 외부와 ‘나’를 경계 짓는 육체적 몸을 넘어서 각자의 경험과 삶의 역사를 담은 상징체다. 미술에서도 캐롤리 슈나먼Carollee Schneemann),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와 같이 예술의 대상으로서 신체를 포착하거나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신체를 적극 활용했던 수많은 예술가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신체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사실 오래된 생각이 아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이성과 사유의 힘을 중심화하던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에 대항하며 퍼포먼스와 신체 예술을 중심으로 신체에 대한 문명화된 관념들을 해체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1980년대는 에이즈를 비롯해 젠더 및 정체성을 둘러싼 논의들이 사회적으로 가시화되면서 몸을 재인식하는 작업이 두드러졌으며, 신체는 20세기 예술에 있어 주요 화두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키키 스미스(Kiki Smith) 역시 신체의 해체적 표현 및 노골적인 드러냄을 통해 현대미술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작가다. 독일 출생의 미국 여성 작가로 조각, 판화, 설치, 태피스트리, 드로잉, 사진, 필름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하는 키키 스미스는 여성성에 대한 기존의 심미적 관점을 전복시키며 아름다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그녀의 예술 세계를 생각한다면 ‘여성’, ‘신체’, ‘아브젝트 아트’(Abject Art) 등을 곧바로 떠올릴 것이다. 그녀의 작품을 설명하는 개념인 ‘아브젝트’(Abject)는 본래 ‘비천하다’라는 관용어지만, 1980년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저서 <공포의 권력(Powers of Horror: An Essay on Abjection)>(1980)에서 다루어졌던 철학적 개념이다. 여기서 아브젝트란 주체와 객체의 경계에서 주체도 객체도 아닌 모호하고 복합적인 것으로, 크리스테바는 타자로 쫓겨나 주체나 사회에서 배제된 대상을 ‘아브젝트’로 명명하며 버려진 존재에 대한 사유를 펼쳐나갔다. 그렇기에 아브젝트 아트는 사회적 규범, 정체성, 체계 등을 뒤흔드는 역할을 하며 경계를 허무는 아브젝트의 가공할 만한 힘에 관심을 두고 타자를 사유하는 예술을 칭한다. 예를 들면 오줌, 똥, 생리혈 등 신체의 배설물, 파편화된 신체, 동물의 사체와 같이 공포와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을 작품의 소재로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기존의 이분법적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다. 가부장적 남성 사회가 단지 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려 했던 여성의 신체를 아름다움이 아닌 불쾌함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은 많은 여성 작가들의 전략이었다. 키키 스미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배설물과 분비물로 이루어진 신체를 보여주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억압을 드러내고 여성의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한, 거부감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의 실존적 주체인 여성의 몸을 통해 본질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그녀는 이를 통해 페미니스트 예술가로 정체성을 공고히 하였다.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전시전경 ⓒ김윤재.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전시전경 ⓒ김윤재.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전시전경 ⓒ김윤재.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그녀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인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는 그녀의 초기 신체 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작가가 작업을 구축해나가는 방식에서 보이는 시적 운율, 함축성에 주목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시를 위해 조향된 향이 전시 공간 곳곳을 채우고 있는데, 이는 관람객이 다른 방식으로 전시를 느낄 수 있는 후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시각 외 다양한 감각을 활성화하며, 기존의 예술적 표현에 내포된 감각의 위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예로부터 시각은 오감 중 탁월한 지위에 있었다. 시각은 객관적인 감각으로 간주되며 지성 및 합리성을 상징한다. 이에 비해 후각, 미각, 촉각은 상대적으로 저급한 감각으로 치부되었다. 예를 들어 후각은 나와 타인을 구별하는 것을 바탕으로 차별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냄새는 특정 집단이나 인종, 계급, 성, 민족 등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됐는데,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 속 빈부격차를 ‘냄새’로 풀어내며 혐오와 차별의 연쇄 고리를 파고든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지성이 신체보다 우월하다는 오래된 믿음은 감각의 위계를 나누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는 데 이바지했다. 앞서 말했듯이 서구의 이성 중심적 세계관은 이성적 사고에 방해가 되는 감각, 정신에 방해가 되는 육체, 예측하기 힘든 자연을 여성적 특성으로 연결 짓고 열등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인지 키키 스미스의 작업에서는 머리와 같은 사유 기관이 아닌 인간의 하체에 관한 관심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그녀는 정신과 육체를 나누고, 정신을 육체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기는 전통과 위계적 이분법에 비판적 질문을 던진다.

또한, 그녀의 작품에서 우리는 시각적 경험을 넘어 촉각을 자극하는 경험을 하곤 하는데, 이 역시 시각과 촉각의 전달 체계를 더욱 새롭게 하며 시각 중심주의에서 비롯된 관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촉각성 등 공감각적 감각을 강조하며 시각 중심주의를 허물고 거기에 신체성과 물질성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스미스의 작업에서는 다양한 매체와 물성의 작품을 접할 수 있으며, 특히 이번 전시에서 종이의 다채로운 질감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구김이 있는 듯한 독특한 질감의 네팔 종이, 일본 종이 위에 각인처럼 날카롭게 그려진 드로잉은 촉각을 자극한다. 그녀는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비주류 매체로 인식되던 종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취약성을 품은 유리나 테라코타 등 미술의 영역에서 도외시되는 공예와 장식적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이는 미술과 공예를 구별하며 미술을 우위에 놓고자 하는 모더니즘 미학 내에 자리 잡은 ‘순수성’에 대한 맹목적 추구를 벗어나고자 한 작가의 의도 살펴볼 수 있다.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이라는 미술의 위계, 나아가 그 저변에 깔린 뿌리 깊은 (남성중심적인) 아름다움과 취향의 감각적 위계를 연결 짓는 사유 패턴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키키 스미스의 이러한 탐구는 지성에 대한 부정이거나 남성적 가치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녀의 신체 표현은 나르시시즘과 거리가 있다. 그녀에게 신체와 감각은 인간의 생명 활동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넘어서서, 타인에게 감응하는 공감의 감각까지 아우르며 에코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여성적 가치’를 회복하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 스미스의 작품은 과감하고 도발적이던 이전 시기와는 달리 정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인간과 동물, 자연과의 관계를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다루며 작업을 확장해가고 있으며, 다양한 배경의 종교, 신화, 문학에서 도상을 취하여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렇듯 키키 스미스는 남성에 의해 타자로 밀려난 여성에 대한 사유를 넘어 인간 주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 인간 중심주의의 해체 등 주체와 타자의 고정적 이분법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끊임없이 모색한다.

자유낙하, 1994, 일본산 종이에 포토그라비어, 에칭, 사포질(표지 판지), 69 × 90.2 cm. 작가 및 유니버설 리미티드 아트 에디션 제공.

어느 날 오랜 활동을 해온 동료 예술가들에게 존경심을 느끼며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만든 ‘자유낙하’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듯한 여성의 모습을 판화로 찍어낸 작품으로, 이번 개인전의 제목으로도 쓰였다. 중력의 간섭 없이 화면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듯한 키키 스미스의 모습을 그려낸 이 작업은 사실 거꾸로 떨어져 파멸하더라도 낙하의 자유로움을 즐기며 기존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실험적 삶을 은유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사회의 인습과 전통에서 벗어나 자유와 자아 추구를 시도하는 삶의 태도가 바로 ‘자유낙하’인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예술가의 삶이란 자유낙하를 감행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 자신이 그랬듯이 말이다. 예술을 인간의 미적 감성과 상상력 그리고 숭고한 이상을 드러내는 행위로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타인의 존재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활동임을 키키 스미스의 예술 세계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전여울
장파 (미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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