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11 ' 알티 화보 & 인터뷰 공개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프로듀서 알티의 ‘진심’을 걸어

2023-01-26T15:51:44+00:002023.01.21|FEATURE, 피플|

K팝 팬이라면 프로듀서 알티를 모르긴 쉽지 않다. 블랙핑크의 ‘불장난’, 빅뱅의 ‘에라 모르겠다’, 태양의 ‘Wake Me Up’ 등 그가 작곡한 곡들은 지난 몇 해간 세계에 울렸다. 이미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그가 2022년 Mnet <쇼미더머니 11>에 출연하며 또다시 증명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가 <쇼미더머니 11>로 보낸 특별했던 한 해와 모든 것이 ‘진심’으로 통하는 알티만의 방정식에 대해 말했다.

<W Korea> 2022년은 <쇼미더머니 11>에 바친 한 해였겠다. 작년 8월 첫 촬영에 들어가 12월 30일 생방송 경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알티 맞다. 정말 목숨 걸고 한 것 같다. 모든 걸 베팅했다 싶을 정도로.

 

방송이 끝난 12월 31일은 그 누구보다 즐기며 보냈을 것 같다.

몇 개월 만에 일상으로 돌아오니까 그 소중함이 새삼 느껴질 정도였다. 잠이란 정말 맛있는 거군, 깨닫기도 하고. 31일엔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을 만나 마시기만 했다. 마시고, 자고, 마시고, 자고.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소맥 천재’라는 별명이 있던데….

도대체 누가 그런 얘기를 퍼뜨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웃음). 사실 소맥 제조에서 중요한 건 비율보다 진동이다. 술과 술이 섞였을 때 최적의 진동이 있다.술잔끼리 ‘톡’ 부딪쳤을 때 느껴지는 진동. 아, 근데 이건 철저히 손맛이라 레시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웃음).

 

하하. 최종화가 끝나고 SNS에 이런 글을 남겼더라. “총 12곡을 작업하며 넉 달 동안 거의 하루에 2시간만 잤다.” 초인적인 에너지를 발휘해야 하는 스케줄이었을 듯하다.

주변에 <쇼미더머니>에 출연했던 프로듀서 지인이 많아서 그 악명은 익히 알고 있었다. 내가 속한 더블랙레이블에서만 해도 자이언티, 쿠시가 이전 시즌에 참가한 적 있으니까. 힘들 걸 대비해서 촬영 전 미리 40~50곡을 작업해놨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 부질없었다(웃음). 막상 방송이 시작되고 참가자 래퍼들의 얘기를 들으니 그들에게 맞춰 새로 곡을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일주일의 싸움이었다. 매주 즉각적으로 새로운 음원을 작업하느라.

 

우승 래퍼는 비록 다른 팀에서 나왔지만 이번 시즌의 진정한 승자는 당신과 저스디스 팀인 ‘알젓팀’이 아닐까 싶다. 던말릭, 허성현까지 2명이나 생방송 파이널 무대에 진출시켰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목표가 ‘우리 팀원을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알린다’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는 돼 있었
다. 결론적으로 파이널 무대에 제일 많은 팀원을 보냈는데, 솔직히 뿌듯했다. 특히 허성현은 첫 심사 때 내가 했던 말이 있다. “오늘 (심사)본 사람 중 제일 잘했다.” 물론 더 잘한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봤을 때 그 친구는 이미 스타였다. 경연을 거치면서 보란 듯이 진짜 스타가 되어주어서, 다른 한편으론 내 느낌이 맞았다는 걸 증명해줘서고마웠다.

생방송 당시 팀원을 바라보는 당신의 모습이 마치 자녀를 서울대에 합격시킨 엄마 같았달까…(웃음).

하하. 실제 그런 밈이 인터넷에 떠돈다. 허성현을 보며 내가 흐뭇하게 미소를 띠고 있고,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아들 수능 어땠어?’(웃음) 팀원들 생각만 하면 자기 전에도 웃음이 돋는다.

 

블랙핑크의 ‘불장난’, 빅뱅의 ‘에라 모르겠다’ 등 어쩌면 당신은 이미 여러 히트곡을 통해 자신을 증명한 프로듀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미더머니 11>에 출연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었나?

우선 아까도 말했듯 이번 출연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었다. 〈쇼미더머니 11>에서 이것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던 게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내가 잘한다 생각하는 친구들의 이름을 알리는 거였다.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는데 대중이 좋아해준 덕분에 어느 정도 이룬 것도 같다. 한편으론 내 스펙트럼이 넓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최대한 다양한 걸 보여주고 싶어서 경연 12곡마다 매번 새로운 시도를 했다. 같은 걸 반복하는 걸 내가 잘 못하기도 한다. 잘하고 멋있는 걸 계속 보여주기보단 다양한 주사위를 던지는 걸 좋아한다.

 

남다른 ‘케미’를 보여준 저스디스와는 어떻게 팀을 이루게 됐나?

내가 팬이었다.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마음속에 분노가 있는 사람은 서로의 불씨를 알아본다. 이번 기회로 처음 알게 됐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참 순조로웠다.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죽이 잘 맞았다. 내가 보기에 저스디스는 자기 장르에서 끝까지 가본 친구다. 나도 죽을 만큼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내가 하는 음악에서 끝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그래서 얘기가 잘 통했다. 이번 방송의 최고 수확은 저스디스란 친구를 얻은 거다.

 

어쩌면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보통 평소 알고 지내던 프로듀서와 팀을 이루기 마련인데.

인간관계는 커피집에서 한 번, 두 번 갈 때마다 도장 찍어주는 쿠폰이 아니다. 물론 많이 보고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통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저스디스와도 처음 만난 날 8~9시간을 떠들었다. 서로 관심사가 똑같고 주파수가 비슷했다. 아마 서로가 동시에 느꼈을 거다.

 

경연 당시 팀원이었던 언오피셜보이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기술은 사람의 마음을 못 흔들어.” 어떤 의미가 담긴 말이었나?

음악은 무식해야 한다. 원초적인 힘이 사람을 울릴 수 있는 거지, 거기에 치장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하루 10~12시간씩 매일 작업실에 있어야만 그 원초적인 무언가가 ‘톡’ 튀어나오는 거지만. 혼자 음악을 시작하고 몇 해가 지났을 무렵 벽에 부딪친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 만족이 안 됐다. 남들은 다 박수 쳐주는데 속으론 ‘왜 이렇게 마음에 안 들지?’ 생각했다. 당시 회사도 없을 때라 해외 레이블에 음원을 유통하려고 직접 연락하면 다들 음악 좋다는 피드백만 줬다. 그런데도 곡을 내기가 싫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내가 음악을 기술로 접근하고 있더라고. 그때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걸 깨닫고 만든 노래가 2016년 블랙핑크의 ‘불장난’이다.

‘불장난’은 처음으로 대중에게 당신의 존재를 인식시킨 곡이었다.

2016년 그해 어느 날 자다 일어나서 20분 만에 만든 곡이다. 그런데 정확히 그때를 기점으로 음악을 만들 때 엄청난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더 창조적이고 소리가 미니멀하게 변화했다. 이전까진 ‘여기에 더 담을 소리 없나?’ 하면서 채우고 또 채웠다면 ‘불장난’ 이후론 기술적인 멋 부림이 부질없다는 걸 알고 소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어쩌면 2016년은 나의 음악 인생에서 새로운 챕터가 열린 해였다.

 

그해 ‘불장난’으로 현재 소속 레이블인 더블랙레이블의 프로듀서 테디도 만났다.

맞다. 과거 음악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여러 음악 프로모션을 기획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혼자 재미있는 걸 되게 많이 했다. 직접 5톤 트럭을 사서 무대처럼 꾸미고 페스티벌을 연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이름을 빨리 알릴 수 있었는데, 그때 지금 레이블의 쿠시 형이 내 음악을 좋아해주셨다. 쿠시 형을 통해 테디 형을 소개받았는데, 그 당시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존경하던 프로듀서 가 바로 테디 형이었다.

 

2016년을 시작으로 7년째 테디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는 어떤 동료인가?

생각의 깊이가 남들과 다르다. 사실 음악 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음악 얘기만 하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장르는 무엇이며, 누가 잘나가고…. 그런데 테디 형과는 사람 사는 얘기만 나눈 것 같다. 요즘 어떤 걸 느꼈고, 그것에 대해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런 시간으로 지난 7년을 채워왔던 것 같다.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고등학교, 대학교에선 모두 한국화를 전공했다 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결심했다. 진짜 단순한 이유였다. 나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후배 프로듀서들에게도 말한다. “내가 너보다 음악을 사랑해. 그건 안 져.” 그리고 미대는 그냥 스치고 싶었다. 아버지, 누나가 모두 화가다. 어린 시절 예술 안에서 자랐다. 특히 아버지는 모든 예술 장르에 통달하신, 정말 천재적인 분이셨다. 미술이면 미술, 음악이면 음악. 아버지 덕에 여섯 살 때 서태지와 아이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마이클 잭슨을 들었다. 여러모로 참 복 받으며 자랐다고 생각한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로 입시 미술 강사를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맞다. 자부심 있다. 내가 가르친 7명 학생 모두 ‘인서울’에 성공했다. 한 명은 이대 수석으로 합격시키기도 했다(웃음).

 

미술 전공 이력이 음악 하는 데 도움 되는 지점이 있나?

도움이라기보다 서로 맞닿는 지점이 있는 듯하다. 그림 그리던 시절 이런 말을 들었다. ‘좋은 그림은 그 안에 작은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 무언가로 가득 찬 그림보단 관객이 자신의 생각을 투영할 수 있는 여백이 있어야 좋은 그림이라는 뜻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비워져 있을수록 듣는 사람이 곡에 자기만의 상상을 채울 수 있다.

 

음악인에게 명함은 곧 그가 만든 음악이다. 당신에게 명함 같은 곡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만든 모든 곡을 통틀어 딱 두 곡이 떠오른다. 우선 2020년 작곡한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이 곡이 곧 나다. 곡의 분위기, 연출, 힘, 진행, 그게 김중구다(웃음). 다른 하나는 예기치 못하게 〈쇼미더머니 11>에서 탄생했다. 던말릭의 ‘눈(Eye)’인데 작곡은 물론 가사에도 참여했고 제목도 직접 지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눈의 기원을 담은 <아이 오리진스>에서 착안한 곡이다. ‘눈(Eye)’에도 내가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 표현해내고 싶었던 사운드 모든 게 담겨 있다.

 

‘이런 것에서도 영감을 받네?’ 싶으며 작업한 곡이 있다면?

너무 많은데? 심지어 H&M에 티셔츠 사러 가는 길이 너무 좋아서 떠오른 곡도 있다(웃음). 내 영감은 죄다 이런 식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작고 소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결코 어떤 공식을 갖고 곡 작업을 하지 않는다. 만약 공식이란 게 존재하려면 음악의 트렌드는 한결같아야 한다. 또 애초 공식이 있었다면 모두가 성공했을 거다. 만약 어떤 곡으로 사랑받았다고 ‘다음에도 이럴 것이야’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대다수의 프로듀서는 특정 뮤지션을 떠올리며 곡을 쓴다고 들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곡을 줄지 정해지면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쓰는데, 대부분은 시작도 끝도 나다. 내가 마음에 들어 미쳐야 한다. 음원 차트에서 1위 하는 건 하나도 안 기쁘다. 딱 내 마음에 드는 게 창조되는 순간은 기뻐서 죽을 것 같은데.

 

프로듀서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진심. 예술은 감동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진심 말곤 답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프로듀서라면 음‘학’의 공부가 아닌 사람을 공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2014년 ‘We Got the World’, 2019년 ‘뭘 기다리고 있어’까지 솔로 2곡을 발매했다. 당신의 솔로 앨범을 기다리고 있는 팬도 많을 듯하다.

안 그래도 작업 중이다. 사실 몇 곡 만들어놨는데 뭔가 계속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묶어뒀다. 신기하고 낯선 소리로 처음 듣는 사람들을 반갑게 만들 수 있는 곡들이다. 올해 2~3곡으로 찾아뵙지 않을까 싶다.

 

올해 솔로곡을 발매하는 것 외에 계획은 뭔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보는 것. 작년 한 해 <쇼미더머니 11>로 만난 팀원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온전히 전해줄 수 있어서 기뻤다. 뒤풀이 당시 던말릭과 허성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여태 저마다 계산하며 자신들을 대해왔지, 나처럼 진심으로 다가온 사람이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처음엔 낯설었지만 나중에 느꼈다고 했다. “아, 이 형 개진심이구나.”(웃음) 결국 사랑이, 진심이 최고인 것 같다.

 

프로듀서 알티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많지만 인간 김중구는 베일에 가려 있다. 인간 김중구의 비밀 세 가지를 알려달라.

일단 엄청 게으르다. 사람들은 항상 내 바쁜 모습만 보기 때문에 계획적인 인간인 줄로 알겠지만 스위치를 끄면 한없이 게을러진다. 둘째로, 난 인류애가 있는 사람이다(웃음). 좀 낯간지럽지만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그렇기 때문에 적은 수의 사람을 곁에 두고 마음을 주려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매일매일 죽는 상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팔에 ‘The End’란 타투도 새겼다. 항상 죽음을 상상하기 때문에 지금 사랑하는 게 있다면 더 진심이 되고, 내가 해야 하는 행동과 표현에 더 명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