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 김민경을 만났다

권은경

김민경은 힘이 세다. 처음 해보는 스포츠를 몸으로 금세 익히는 감각과 근육의 힘. 연기하고 싶어서 코미디 연기의 길을 택한 이후 시간을 이겨내고 버틴 힘.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하게 만드는 건 누군가의 칭찬이다. 예능을 통해 숨겨진 운동 재능을 발굴하고, 태극 문양이 있는 유니폼을 입고서 사격 대회에 참가한 슈퍼우먼을 만났다.

퍼 드레스는 성주, 플랫슈즈는 레페토, 리본 선글라스는 김해김 제품, 유니폼은 김민경 소장품.

버클 장식 퍼 코트는 록, 리본 장식 플랫슈즈는 김해김, 레더 스카프 햇은 코스 제품.

<W Korea> 태국에서 꽤 오래 머물렀나 봐요?

김민경 열흘 정도 있었어요. 감독님과 다른 한국 선수들은 먼저 가 있었는데, 저는 스케줄 때문에 대회 시작 전날에야 도착했어요.

2022년 11월 중순부터 파타야에서 열린 ‘2022 IPSC 핸드건 월드슛 대회’를 치르고 온 한국 국가대표 김민경!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매니저가 스케줄 조정하느라 애먹었어요. 그래도 피디님들이 세계적인 대회에 나간다니까 잘하고 오라고 격려하면서 사정을 많이 봐주셨어요.

제가 그 대회 웹사이트에 들어가봤거든요. 대회 전체 소요 기간도 꽤 여러 날이고, 스케줄을 보니 워낙 암호 같은 전문 용어가 많더라고요. 73개국에서 모인 1345명 선수가 경기를 했다고요.

실용사격 대회에도 레벨이 있는데 이번 대회는 레벨 5에 속하는, 가장 큰 규모의 대회라고 들었어요. 이 대회 내에서도 사격 분야에 따라 참가자가 나뉘어요. 제가 속했던 분야 선수는 341명 정도였고요. 하루에 6개 스테이지씩, 5일간 총 30개 스테이지를 뛰었어요.

와, 그렇게 많이요? IPSC(국제실용사격연맹)가 실탄 사격을 스포츠화한 단체라면서요. 올림픽 종목인 사격과는 어떻게 다른 거예요? 사격이라고 하면 저는 우선 진종오 선수가 떠오르거든요.

올림픽 사격은 가만히 선 상태에서 조준하며 사격하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스포츠예요. 실용사격 스포츠에서는 어떤 상황이 주어지고 움직이다가 멈춰서 총을 쏘는 식이고요. 예를 들어 이번에는 개최지인 태국 콘셉트에 맞춰 마사지를 받는 침대에 엎드려 누워 있다가 ‘삐’ 소리가 나면 바로 총을 조립하고 쏴야 하는 식의 스테이지도 있었어요. 각각의 소요 시간과 정확도에 따른 통계로 그 선수의 최종 점수를 내는 식이죠.

정확도를 발휘하기 전에 순발력부터 있어야겠네요. 경기에서 상황별로 대응하려면 공간을 지각하는 감도 있어야겠고. 어떤 스테이지를 치를지 사전에 정보를 좀 주던가요?

공식 팸플릿에 도면이 나와요. 굵직한 개요 정도를 미리 받고서, ‘여기서는 어떤 동선과 움직임으로 가다가 어디서부터 쏜다, 여기서는 몇 발을 쏜다’ 등등을 기억하고 계산하면서 감독님과 작전을 짜는데, 막상 현장에 나가면 조금 바뀐 부분도 있고 낯설어요. 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잖아요. 같은 조에 있는 다른 선수들이 먼저 출발하면 조금이라도 보면서 감을 잡으려고 했는데, 첫날 ‘민경’ 하고 제 이름이 제일 먼저 불렸어요. 큰일 났다 싶었죠.

그것 또한 드라마 같은데요? 김민경 슈터는 341명 중 333위를 했어요. 다 치르고 나니까 기분이 어때요?

끝낸 직후에는 후련한 마음이 컸어요. 실격당하지 않고 마라톤 완주하듯이 끝까지 완주했다는 후련함.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더니 그때부터는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거기서 조금만 더 빨리 움직일걸’, ‘그때 다르게 했으면 정확도가 더 높았을 텐데’ 싶은 장면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괴로웠어요.

개그우먼을 만나서 이런 대화부터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무래도 궁금함이 많았어요. 태릉이나 진천 선수촌에서 합숙하는 국가대표 운동선수와는 다른 경우지만, 김민경이 상당한 규모의 국제대회에 한국을 대표해서 나간 선수 일원이 된 거잖아요.

우리는 감독님까지 총 10명 내외 선수가 갔어요. 그중에서 여자는 저와 다른 선수 두 명이었고요. 횡성에 있는 사격장에서 자격 테스트를 했는데, 여러 종목을 두루 통과해야 했어요. 웬만큼 훈련해서 하나를 통과하면 다음 단계에서 막히고, 그걸 통과하면 또 다음 단계에서 막히고….

결국 해냈죠. ‘김민경 비긴즈’에 대해 정리 좀 해볼까요? iHQ 예능 <맛있는 녀석들> 출연진 중에서 벌칙자를 정해 운동 배우기에 도전하는 스핀오프 프로그램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을 론칭한 게 이 사건의 발단이에요. 사격을 처음 경험한 건 2021년 초여름인데 하다 보니 김민경의 재능이 심상치 않았고요. 자, 알려진 이 정도 사실 외에 뭔가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전부예요. 그냥 시작했어요. 아니, 누가 시켰죠(웃음).

그게 다예요? 정말로요?

<오늘부터 운동뚱>을 하면서 온갖 것을 다 배워봤어요. 피디님이 이제 실용사격 한번 해보자고 할 때는 그저 무서웠어요. 총을 쏜다는 게 그렇잖아요. 그런데 해보니까 묘한 매력이 있었어요. ‘다들 좀 쏘다 보면 이렇게 맞추나 보지?’ 싶었는데 주변에서 ‘이걸 맞춘다고?’ 식으로 나오더라고요. 점점 ‘아닌가? 나, 잘하는 건가?’ 하게 됐죠.

유니폼과 고글, 총, 헤드폰은 모두 김민경이 이번 대회에서 사용한 소장품.

유니폼과 고글, 총, 헤드폰은 모두 김민경이 이번 대회에서 사용한 소장품.

유니폼과 고글, 총, 헤드폰은 모두 김민경이 이번 대회에서 사용한 소장품.

체육계가 놓친 인재, 생태계 파괴자, 기억을 잃어버린 특수요원… 이런 표현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킥복싱을 하든 주짓수를 하든 ‘빠른 속도로 실력을 쌓아가는 게 아니라 잃어버린 실력을 되찾아가는 느낌’이라는 댓글에 저도 공감해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좋은 말 들려주려고 그러는 줄 알았어요. 사실 지금도 좀 헷갈려요. ‘아, 김민경 얘는 칭찬해줘야 잘하는구나’를 알고 저를 북돋워주시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제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습득력이 빠른 편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냉철하고 진득하게 보자면 실력에 관해 제 깊이는 잘 모르겠어요.

제작진이 예상한 그림은, 운동 같은 건 안 해봤다는 김민경이 어려운 운동에 도전하면서 고생하는 거였겠죠.

그렇죠. 포기하고, 힘들다고 질질 짜고(웃음).

승부욕은 원래 좀 있는 편인가요?

네. 제가 1남 3녀 중 셋째라 알게 모르게 눈치를 보면서 자랐나 봐요. 관심받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심리가 어릴 때부터 컸던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작은 대결을 해도 지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이겨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있었달까. 그런 면이 <오늘부터 운동뚱>을 하면서 점점 커졌어요. ‘이 정도로는 안 돼, 더 잘해야 돼’ 하면서.

사격장을 처음 찾았을 때 내용을 보면, 이번 대회에도 참가한 김준기 감독이 앞으로 태국과 러시아에서 국제대회가 열린다고 김민경 씨 들으라는 듯이 알리더라고요. 그때부터 제작진과 감독님 사이에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닐까요?

다들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어요. 티격태격하다가 피디님 결론은 이랬죠. ‘우선 대회 나갈 자격을 갖추는 일에나 도전해보자.’ 그렇게 자격증을 딴 이후에는 ‘이왕 땄으니까 대회 나가야지?’…. 지금껏 여러 운동에 도전할 때마다 한계를 느끼긴 했는데, 제 모든 힘은 칭찬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매번 ‘아니, 이걸 대체 어떻게 해? 나는 못해’라고 말하면서 시작해요. 그런데 어찌 되든 과정을 거쳐 뭔가를 해냈다는 건, 내가 온전히 스스로 해냈다기보다 칭찬을 통해 그렇게 굴러간 듯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

칭찬은 김민경이 힘쓰게 한다!

‘잘한다’ 칭찬을 들으면 힘이 나서 더 잘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조금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오기가 생겨야 더 힘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죠. 김민경은 전자 쪽인가 봐요.

확실히요. 저는 ‘왜 이 정도밖에 못해’ 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주눅 들고 한없이 작아져요. 그런데 칭찬을 들으면 의심하면서도 자신감이 생기고 더 열심히 하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이번 대회에 나갈 때는 주변 기대감이 커지니까 저도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새로운 뭔가를 할 때면 옆에서 누가 해보자고 부추겨야 더 움직이는 스타일인데, 그러다 재미를 느끼고 빠져드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낯선 것을 시작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있는 편이지만, <오늘부터 운동뚱>을 하면서 ‘한번 해보자.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식의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김준기 감독이 그랬죠. 실용사격도 스포츠이니 멘탈 트레이닝이 필요하다고. 뭔가에 도전했다는 의미를 찾는 것 외에 그 도전에 임하는 태도나 심리의 중요성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한 스테이지에서 어떤 순서로 움직이면 좋을지 미리 짜놓은 작전대로 움직였는데, 저 외의 모든 선수가 저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거예요. ‘나는 전문 슈터도 아니고 이 중에서 내가 제일 못하는 사람일 텐데… 모두 같은 길을 가고 나만 다른 선택을 했다. 이게 과연 맞나?’ 싶잖아요. 그런데 그 스테이지에서 제 점수가 제일 높았대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요.

세상에. 놀라운 도전뿐 아니라 도전하는 과정 중의 그런 에피소드마저 귀감이 될 만합니다.

내 길을, 나에 집중해서 가는 게 맞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퍼 코트는 록 제품.

머리까지 쓴 셔츠는 돌체앤가바나, 풍성한 실루엣의 스커트는 꼼데가르송, 허리에 찬 건 벨트와 총은 김민경 소장품.

무명 생활이 길었다고 했죠. 그럼 개그우먼의 길을 택한 이후로는 그 시간을 무슨 마음으로 집중하며 버텼어요?

‘이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저는 엄마가 말리는데도 대구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서울에 왔거든요. 아무 결과도 없이 다시 고향으로 갈 수는 없었어요. 좀 가슴 아픈 얘긴데, 어릴 때부터 제 목표에는 항상 엄마가 있었어요. 엄마가 사람들한테 내세울 만한 자식이 되고 싶었죠. 어떻게 보면 엄마를 등지고 서울로 올라온 거예요. 그때 큰언니가 ‘잠깐 불효하고 성공해서 효도하면 되지 않겠냐’ 하면서 기차표 값을 쥐여줬어요.

늘 엄마한테 인정받고 싶었던 딸치고는 과감한 선택을 했네요.

저는 끼가 별로 없는 편이에요. 부끄럼 많은 아이였고요. 개그우먼이 되고 싶었다기보다 연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다른 이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서. 나도 소심함은 털어버리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그걸 못하니까. 대신 카메라 앞에 있으면 연기로는 그 어떤 짓을 해도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개그우먼들의 비애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요. 내가 가진 조건이나 외모를 꾸준히 개그 소재로 쓰는 일에 대해서요. 캐릭터를 위한 무기를 갖춘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 비하를 반복하다 보면 씁쓸할 때가 있다고요.

음. 그건 내가 가진 조건으로 하나의 장점을 장착한 셈이에요. 확실한 장점이죠. 그런 장착 거리가 없는 사람은 ‘난 아무리 해도 너만큼은 못 웃기는데, 너는 무대에 등장하기만 해도 웃기네’ 하면서 부러워해요. 중요한 건 우리가 하는 게 인격 모독이 아니라 콩트라는 점이에요. 내 삶을 비난하고 비하하는 거라면 싫어요. 하지만 콩트 안에서는 우리가 재밌게 만든 이야기를 연기하는 거고, 연기자는 콩트에 충실할 뿐이에요. 저는 오히려 예능에 나갔을 때도 누가 먼저 저를 좀 건드려주면 좋아요. 그러면 받아치는 스타일이 저한텐 더 맞거든요.

<맛있는 녀석들>은 마니아층이 두터운 프로그램이에요. 문세윤, 유민상, 그리고 지금은 하차한 김준현 씨와 일찍이 고도의 ‘먹방’을 보여줬어요. 딱밤 때리기나 대결을 하면서 김민경의 ‘힘’이 빛나기 시작했죠?

사실 조금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다들 맛있게 잘 먹는데 김민경은 그렇게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뭔가’ 식의 안 좋은 소리를 좀 접했을 때. 제가 팀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먼저 말을 꺼냈죠. 그때 김준현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김민경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그런 이들이 하는 말은 놔두고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신경 쓰냐고.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안 하냐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어요. 그 이후 좀 더 파이팅이 생기고, 달리 생각하게 됐어요.

이야기를 쭉 들어보면 주변 사람과 환경의 영향을 꽤 받는 편인 듯합니다.

네.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요. 저는 사람을 좋아해요. 인간 냄새, 사람 사는 냄새 나는 따뜻한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요. 애정도 결국 사람들끼리 만들어가는 관계에서 비롯되잖아요. 따뜻하게 사는 게 제 목표이기도 해요.

<오늘부터 운동뚱>이 처음엔 10주 프로젝트로 출발했는데, 약 3년 동안 많은 경험을 했어요. 축구, 야구, 주짓수, 킥복싱, 필라테스, 스포츠 댄스, 스턴트 액션, 철인경기… 아직 더 도전해볼 분야가 있나요?

없…. 글쎄요. 제가 물을 무서워하는데 수영에도 도전해봤거든요. 굳이 따져보니까 아직 하늘에서 뭘 한 건 없더라고요. ‘이제 하늘로 가자’라는 발언이 어디선가 나오긴 했는데요. 안 됩니다. 못해요, 저는.

이런 드라마 대사가 있죠. “엄마가, 엄마 꺼야?” 이제 김민경은 김민경만의 것이 아닌 느낌입니다. 제작진한테는 다 계획이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제 입장은 이래요. ‘어떡해. 국제대회까지 나갔어. 이런 큰 관심을 받으면서 내가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을 달았어. 이 이상 뭘 더 해볼 수 있겠어? 우리 여기서 멈추자.’ 그런데 저는 피디가 이끄는 대로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저한테 ‘누나, 일단 잠시 쉬세요’ 하더니 연락이 없어요…. 대체 무슨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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