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본 2022년의 이슈들 Vol 1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아본 2022년의 이슈들 Vol 1

2022-12-09T00:19:20+00:002022.12.07|FEATURE, 컬처|

2022년이 열렸고 과연 떠들썩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니 올해에 말하고픈 것들이 물음의 형식으로 남는다. 분야를 가로질러 지금 궁금한 이야기가 여기 있다.

Z세대에게 한자어는 외계어일까?

2020년에 ‘사흘’, 2021년에 ‘금일’과 ‘무운’이 도마에 올랐다면 올해는 ‘심심’이 문해력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이들을 종합선물처럼 모은 “금일 심심한 사과를 드리며 사흘간 무운을 빕니다”라는 문장이 유행처럼 만들어졌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여기에 세대 갈등도 더해지며 말의 잔치가 열렸다. ‘그러니까 왜 굳이 어려운 단어를 골라 쓰냐’는 젊은 세대와 그런 세대에 ‘상식적인 단어조차 모르냐’고 회초리를 들고 싶어 하는 기성 세대. 미디어 환경이 영상 중심으로 변화하고 긴 글의 내용을 ‘3줄 요약’으로 친절히 떠먹여준 결과, 올해 심심한 사과는 지루한 사과로 둔갑했다. 몇 해 동안 꾸준히 이어진 문해력 논란을 보면 그 중심에 한자어가 자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 한자어는 공공기관에서나 쓰는 낡은 단어, 혹은 현학을 자랑하려고 부러 골라 쓰는 말일지 몰라도 표준국어대사전의 어종별 현황상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55.6%나 된다. 문제가 된 ‘심심’과 ‘금일’만 한자어가 아니라 ‘물론’도 ‘어차피’도 한자어다. 알게 모르게, 평상시 우리가 쓰는 말의 상당수는 한자어로 이뤄져 있다. 한자 교육의 부재가 남긴 자리에 어쩌면 오늘날의 문해력 논란이 피어난 것은 아닐지. 한편 전문가들은 단순히 특정 어휘를 알고 모르는 것이 문해력 논란의 핵심은 아니라고도 꼬집는다. 오히려 문해력이란 한 꺼풀의 장막 너머, 자신이 모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적개심을 갖는 반지성적 문화, 소통에 대한 마음을 닫고 있는 한국 사회의 갈등이 있다고 바라본다. 어쩌면 지금의 소란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해력 부족을 뜻하는 건 아닐까?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극장 티켓값 상승이 여름 극장가에 끼친 영향은?

관객의 저항은 생각보다 컸다. 2020년 10월부터 단계적으로 인상된 월 평균 극장 관람 가격은 올해 5월, 1만355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만원을 넘어섰다. 멀티플렉스 3사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경영난을 돌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티켓값을 여러 차례 올린 결과다. 영화진흥위원회가 9월에 발표한 이슈 페이퍼 ‘스크린 가격 지수로 알아본 최근 영화관람권 가격 적정성 논란 점검’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극장 티켓값인 ‘1만355원’은 GDP 상위 20개국 중에선 9위에 해당하고,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극장 관람 가격인 ‘1만8000원 이상’ 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그럼에도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지난해 평균 관람 가격 상승률은 14.4%인데, 이 수치는 GDP 상위 20개국 중에서 18.8%인 캐나다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 점을 감안하면 한국 관객으로선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급격히 인상된 영화 관람료가 체감상 더 크게 다가온 것이다. 더군다나 예전처럼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만 가는 시대는 지났다. OTT 스트리밍 서비스를 적어도 하나 이상 구독하고 있는 현재 관객의 콘텐츠 관람 패턴에서 극장 티켓값 상승은 관객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극장 티켓값이 정말로 비싸든, 그렇지 않든 분명한 건 티켓값 상승이 극장 산업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 한재민 감독의 <비상선언>, 이정재 감독의 <헌트> 등 한국 영화 네 편이 한 주 간격으로 맞붙은 올여름 시장을 떠올려보자. 5월 개봉한 <범죄도시2>가 팬데믹 시기에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나비 효과처럼 여름 극장가에 숨통을 불어넣어줄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 팬데믹 이전이었다면 제 살을 깎아먹는 출혈 경쟁을 감수하더라도 관객의 중복 관람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만, 티켓값이 상승한 지금은 극장을 찾은 관객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냉정하다. 총 관객수 각각 435만여 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과 726만여 명을 동원한 <헌트>와 <한산: 용의 출현> 두 편만 겨우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달라진 관객의 관람 패턴을 비롯해 영화 티켓값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늘 하는 얘기지만 손익분기점이 흥행 지표의 기준은 결코 아니다. 영화 투자배급사의 진짜 손익분기점은 더 많은 관객을 불러모아 더 많은 수익을 남기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장 상황에서 한국 영화 네 편이 한 주 간격으로 연이어 개봉하며 배급 경쟁을 펼친 탓에 1년 중 시장 사이즈가 가장 큰 여름 극장가에서 누구도 활짝 웃지 못한 건 올해 한국 영화 산업의 뼈아픈 실책이라 할 만하다. – 김성훈(<씨네21> 기자)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히토 슈타이얼 ‘소셜심’. ANDREAS GURSKY, AMAZON, 2016, © ANDREAS GURSKY, SPRÜTH MAGERS. TOM SACHS, MARY’S SUIT, 2019, CONED BARRIER, PLYWOOD, STEEL HARDWARE, MIXED MEDIA, 142.5H×70W×70DINCHES. 히토 슈타이얼, 소셜심, 2020, 단채널 HD 비디오, 컬러, 사운드, 18분 19초, 라이브 컴퓨터 시뮬레이션 댄싱 마니아, 가변 시간. 작가, 앤드류 크랩스 갤러리, 뉴욕 및 에스더 쉬퍼, 베를린제 공. 사진: © ACHIM KUKULIES, DÜSSELDORF

1.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국립현대미술관 4월 29일~9월 18일

누군가에게는 철학자 혹은 미디어 이론가, 누군가에겐 컨템퍼러리 아트의 최전선에 선 아티스트인 히토 슈타이얼의 개인전을 2022년에야 서울에서 만나게 된 건 좀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싶었던 게 사실이다. 미술 전문지 <아트리뷰>가 매년 발표하는 ‘파워 100’ 명단에서 히토 슈타이얼이 영향력 1위를 차지한 것이 이미 2017년이니, 대대적인 이번 전시가 뒷북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서울에서의 개인전이 아시아 국가에서는 처음 열린 개인전이었고, 앞으로 당분간은 서울에서와 같은 대규모 개인전을 만날 기회가 흔치 않으리라는 것이다. 사실, 이번 전시는 2018년부터 논의가 시작되었고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로는 드물게 3년여에 걸친 연구와 준비를 진행했다. 이것이 말해주는 슬픈 사실도 있다. 비판적 예술을 구사하는 히토 슈타이얼과 같은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치를 수 있는 아시아 국가가 지금으로선 한국뿐일지도 모른다는. 물론,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더욱 날을 세운 슈타이얼의 미디어 아트 작업 역시 한국 관람객의 열정적 미술관 셀카 공세는 이기지 못했다. – 박재용(독립 큐레이터)

안드레아스 거스키 ‘Amazon’.

2. <안드레아스 거스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3월 31일~9월 4일

고요하게 그러나 웅장하게 울림이 컸던 전시.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전시는 그랬다. 떠들썩한 이벤트도 홍보도 없었지만, 주변의 많은 문화예술계 지인들이 모두 이 전시를 다녀왔고 거스키의 대형 사진 작품 앞에서 할 말을 잃을 정도로 큰 감흥을 받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이런 평을 받는 전시는 정말 드물다!). 1980년대 중반 초기작부터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된 신작 2점까지 총 46점 디아섹 프린트 대형 사진 작품을 운송하는 것부터 어마어마한 규모의 프로젝트였으며, 여전히 코로나19의 규제 속에서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 중 가장 많은 관객을 기록했다는 이야기를 큐레이터로부터 들었다. 한국에서 제대로 심도 있게 소개된 적 없던 사진 거장의 전시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다려왔는지, 현대사회를 직시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고찰하게 만드는 사진 작품이 얼마나 오랜 시간 치밀한 계획과 촬영으로 완성됐는지, 머릿속으로만 상상할 수 있던 웅장한 풍경을 거장은 어떠한 호흡으로 기어코 만들어냈는지를 체감한 전시였다. 여러 면에서 기록될 만한 전시가 아닌가. – 강보라(프리랜스 에디터)

톰 삭스 ‘Mary’s Suit’.

3. <스페이스 프로그램: 인독트리네이션> 아트선재센터 6월 22일~8월 7일

명품 가방에 이어 포켓몬 빵, 반값 치킨을 사기 위해 오픈런하는 시대라지만, 사람들이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오픈런을 마다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올해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톰 삭스 개인전은 ‘화제성’으로 보아선 단연 올해의 전시라 할 만했다. 비슷한 시기 아트선재센터에서 불과 몇 발짝 떨어진 모 갤러리에서 한국 추상미술 거장의 ‘파인’한 페인팅을 걸고 있을 때, 서울의 힙스터들은 값싼 합판과 덕트 테이프로 만든 톰 삭스의 우주선을 보기 위해 아트선재센터 앞으로 줄을 섰다. 7만원을 웃도는 전시 기념 티셔츠는 금세 동났고, GD도 발급받았다는 ID 카드를 손에 넣기 위해 사람들은 지갑에서 1만원을 기꺼이 꺼냈다. 1990년대 ‘마스셀 뒤샹과 앤디 워홀의 뒤를 이을 가장 합당한 후계자’라는 수식을 등에 업고 뉴욕 아트 신에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톰 삭스답게, 서울에서의 첫 개인전 역시 제대로 관중몰이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작품가의 사정은 몰라도, 그가 직접 디자인했고 서울에 머문 내내 광고하듯 신고 다닌 나이키 마스 야드의 리세일가는 우주 저 멀리까지 치솟지 않았을까?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NFT의 미래는 장밋빛일까?

지난해 말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로부터 NFT 아트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NFT 신은 그야말로 불장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프로젝트가 론칭을 알렸다. NFT는 기본적으로 크립토 커런시(암호화폐)를 기반으로 거래되니 원화를 이더리움, 클레이튼 등의 크립토로 바꾸는 방법도 배웠고, 몇몇 흥미로운 프로젝트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화이트리스트(우선구입권)도 따냈으며, 전망이 밝아 보이는 NFT는 오픈씨라는 2차 거래 플랫폼에서 원가격보다도 훨씬 더 많은 웃돈을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물론 투자라기보다 SNS 프로필 이미지로 활용하기 좋아 보이고 작가가 마음에 드는 등 마치 피지컬 아트와 비슷한 로직으로 구입하는 프로젝트도 있었다. 그사이 구찌, 돌체앤가바나 등 패션 하우스들도 NFT를 발행하고 여타의 기업들도 너도나도 NFT를 마케팅 툴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기존 아트계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가 NFT 아트 작품을 발표했고, 국내 메이저 갤러리 중 하나인 갤러리현대는 오랜 준비 끝에 NFT 아트 시장에 진출하며 ‘에트나’라는 벤처회사를 설립하고 첫 번째 프로젝트로 이건용 작가와 ‘Digital Bodyscape’를 발행했다. 아트뿐이 아니다. NFT를 알려준 친구의 회사에서는 자신들의 AI 기반 기술을 활용해 음악 NFT를 론칭했다. NFT는 아트를 넘어 세계적인 뮤직 페스티벌 티켓을 대신하고, 레스토랑 혹은 파티의 멤버십이 되기도 했다. 세계는 이미 메타버스로 옮겨온 듯했고 NFT의 미래는 밝아 보이기만 했다. 피지컬 아트와 생리가 비슷해 보이면서도 또 전혀 다른 생태계를 지닌 NFT는 그렇게 삶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전쟁이 발발하고 암호화폐 시장이 위축되고 위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격이 오르던 프로젝트들이 마치 주식 가격처럼 폭락했다. NFT 신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으로 꼽히는 탈중앙성에서 오는 부작용 (사기성 프로젝트, 전문 경영 관리 부재 등)으로 인해 망하다시피 한 프로젝트들도 나왔다. 오픈씨의 NFT 거래량이 70%까지 하락했다는 뉴스도 들려왔다. ‘메타버스는 망했다’라고 자조 섞인 비판도 나왔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11월 현재, 크립토 커런시 신은 다시 한번 폭락했고 NFT 신 또한 그야말로 대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절망과 회한과 침울의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물론 이 순간에도 순수한 작품으로서의 NFT 아트를 발행하는 작가들이 있고, 이들은 판매가 아닌 에어드랍의 형태로 커뮤니티를 빌드업해가며 소통하고 소규모이지만 오프라인 전시와 파티도 열고 있다. NFT 신 친구들에게 물었다. NFT의 미래는 희망적일까? 누군가 답했다. “NFT가 희망적이어도 누군가에겐 절망이 될 것이고, 절망적이어도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것이다.” 무릎을 탁 쳤다. – 강보라(프리랜스 에디터)

 

COURTESY OF LISA MARIE MAZZUCCO, THE CLIBURN

임윤찬은 얼마나 특별한가?

2004년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임윤찬. 6월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인 그는 60년 역사를 지닌 이 콩쿠르의 역대 최연소 우승자다. 임윤찬이 그저 우승자가 아니라 스타라는 점은 콩쿠르 공식 유튜브 채널의 조회수로도 알 수 있다. ‘The Cliburn’에 업로드된 임윤찬의 여러 연주 영상 중, 결선 경연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 영상 조회수는 11월 중순 기준 868만 회다 (음질 상태가 아쉬운 영상이라, 9월 중 리마스터링 버전 영상이 새로 공개됐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측에서 ‘우리 채널이 실버 버튼을 얻게 된 건 임윤찬의 바이럴 비디오 덕분!’이라며 임윤찬 인증샷을 인스타그램 계정에 소개했을 정도다. 임윤찬이 결선용으로 택한 두 협주곡 중 특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테크닉, 지구력, 감수성, 통찰력 등에 있어서 초인적인 수준의 역량이 필요한 거대 작품이다. 임윤찬 버전 ‘라흐 3번’의 큰 인상은 재미와 패기였다. 다른 연주자들이 종종 감정을 더 실어 표현하는 구간에서 그는 폭풍의 눈처럼 고요함에 가깝게 힘을 뺄 줄 알았고, 그래서 휘몰아칠 때면 드라마의 효과는 배가되곤 했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듯 자기만의 페이스와 리듬으로 총 3악장, 40분 이상의 협주곡을 능란하게 경영한 것이다. 1악장의 어느 부분에서는 왼손으로 ‘쿵’하고 짚는 한 음을 악보보다 한 옥타브 낮게 치며 깊고 웅장한 소리를 내기도 했는데, 아직 어린 그의 이러한 해석과 에너지는 클래식 애호가들을 흥분시킬 만했다. 심사위원장이자 협주곡 지휘자였던 마린 알솝이 연주가 끝난 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빠른 손짓으로 눈물을 훔친 것을 언론이 놓칠 리도 없었다. 콩쿠르가 열리기 얼마 전이었던 올봄, 국제음악콩쿠르 세계연맹에서 폴란드의 쇼팽 콩쿠르,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흔히 세계 3대 콩쿠르로 불리는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퇴출한다고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였다. 이번 반 클라이번 콩쿠르 폐막식에서 2013년 우승자인 우크라이나 출신의 바딤 콜로덴코가 축하 공연을 하며 우크라이나 국가를 연주한 사실은 국내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임윤찬이라는 스타 탄생은, 혼란한 소식이 클래식 음악계를 한바탕 휩쓴 직후 이루어졌다. 정치 이슈가 콩쿠르에까지 영향을 끼친 숙연한 상황 속에 나타난 새로운 발견. 일곱 살 때 친구들처럼 태권도든 미술이든 뭐든 배우러 다니고 싶어서 그냥 피아노 학원을 택했다는, 아직 유학 경험 없는 연주자. 음악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진짜라고 생각하기에 인간에게 음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10대. 현재 공개된 그의 공연 일정은 내년 4월까지 차 있는 상태지만, 주요 국제 콩쿠르 우승자의 특전 투어 기회는 대개 2년에 걸쳐 지속된다. 이미 빛나는 영 피아니스트가 무르익으면 어떤 거장이 될까?

 

올해 가장 영리한 전략을 펼친 K팝계 인물은?

1. 민희진

‘어도어’ 대표 ‘대중은 싫증을 금방 느낀다’고, ‘(트렌드는) 정반합의 3단계로 전개된다’고, 그녀가 지난해 어느 TV프로그램에서 말했다. 정반합이라…. 동방신기의 <O-正.反.合.>이 나온 게 어언 16년 전인데….(후략) 일견 그 자체로 시대착오적으로 들렸던 저 단어 ‘정반합’에 이렇게 뒤통수를 얻어맞다 못해 심장을 온통 휘둘린 뒤에야 반성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보자. ‘Attention’이 , ‘Hype Boy’가 어디 그렇게 음악 그 자체로 경천동지할 만한 곡인가. 스포티파이의 ‘Are & Be’나 ‘New Jams’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면 수십 곡씩 굴러다닐 만한 곡, 훅이나 전개가 놀랍다거나 완전 세다고는 결코 말 못할 곡. 그러나 K팝 걸 그룹에서는 또 찾기 힘들었던 곡…. 민희진이 일군 뉴진스 신드롬은 음악이 거들었지, 음악이 다 하지는 않았다. 피처 폰, PC 통신 감성으로 빚어낸 소통 앱 ‘포닝’. 서태지와 아이들도 아니고 ‘민희진의 아이들’이라는 간판을 만든, 자신이 곧 브랜드인 못 흉내 낼 커리어. ‘화제성 높이기, 티저 뿌리기, 밑 작업’ 따위 없이 뚝, MV부터 공개한 패기. 더현대 서울 팝업스토어로 일궈낸 온오프라인 화제…. 돌아보면, 대중성이 부족한 곡으로 이만한 ‘Hype’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바로 민희진과 뉴진스의 진짜 힘인지도 모르겠다. 시대착오 비슷한 것들로 새로운 시대에 도착한 그녀에게, 그녀들에게. 거부 못할 ‘Attention~’. – 임희윤(음악전문기자)

2. 그룹 르세라핌

위기는 기회다. 어디든 투자 좀 해봤다는 사람들 사이 잠언처럼 떠도는 이 말은 그러나 K팝 시장에서는 별 효과가 없다. 아주 작은 흠이나 예상치 못한 사건 하나가 때로는 팀의 존폐를 좌우하는 이곳에서, 위기는 그대로 위기다. 2022년 5월, 하이브 첫 걸 그룹이라는 주목과 부담을 동시에 업고 데뷔한 르세라핌 앞은 온통 위기였다. 데뷔 전 공개된 티저 이미지와 안무의 불필요하게 높은 선정성과 데뷔조 멤버의 사생활과 관련된 논란이 연이어 터졌다. 이제 막 데뷔한 그룹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뜨거운 설왕설래 속, 르세라핌이 택한 건 자신들이 택한 메시지와 실력을 바탕으로 한 정면 승부였다. 빠른 안무 수정과 문제가 된 멤버 탈퇴로 팀을 재정비한 이들은, 데뷔한 지 5개월 만에 두 번째 미니앨범 <Antifragile>을 발표했다. 충격 혹은 변화로 인해 강해지는 속성을 뜻하는 앨범명. 각종 논란이 일어나기 이전 이미 정해진 서사였다고는 하지만 절묘해도 너무 절묘한 전략이자 타이밍이었다. 앨범 발매 전 공개한 다큐멘터리 <The World Is My Oyster>는 그런 이들의 직구에 진정성과 무게를 실었다. 몸 쪽 꽉 찬 직구다. 피할 겨를이 없다. –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3. 솔로 이찬혁

<서울체크인>에서 ‘너는 뭐에 필을 받니?’라는 이효리의 질문에 이찬혁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재밌는 거면 다 해요.’ 10월 17일 첫 솔로앨범 <Error>를 발표한 이찬혁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보자. 그는 무대에서 하나의 짧은 뮤지컬을 선보이듯 머리 깎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게릴라 쇼케이스를 하듯 거리에 세워둔 유리 쇼케이스 안에서 노래 부른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키치한 비디오 아트로 승화시킨 일상을 보여주더니, <딩동댕 유치원>에 출연하거나 <전국노래자랑>에 관객으로 나타난다. 그 모든 행보가 이찬혁에겐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게 좋다. 재미를 아는 사람은 기존 질서의 탈피를 꿈꿀 수밖에 없고, 예술가에게 탈피나 분출이란 극히 자연스러운 욕구다. 여기서 악뮤가 지금껏 다른 무엇보다 음악 그 자체의 힘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팀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 ‘기행 그 잡채’로 통하며 밈의 발원지가 된 듯한 이찬혁에게 신선한 포착과 발견의 즐거움, 좋은 멜로디란 늘 디폴트로 장착되어 있었다. 솔로 이찬혁은 ‘죽음’이라는 상상과 가정을 통해 11개의 스토리텔링(11개 트랙)을 풀었다. 자기 철학의 토대 위에 상상력으로 펼쳐간 음악을, 결혼식의 ‘스드메’ 문화처럼 뻔한 프로모션 공식을 탈피해 선보일 줄 아는 대중문화 예술인.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는 말은 K팝 시장의 모든 가수에게 돌아가야 한다. ‘너희들 하고 싶은 거 다 해.’ – 권은경(<더블유>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