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이탈리아 풀리아 지방의 중세 시대 성 ‘카스텔 델 몬테’에서 열린 구찌 2023 리조트 컬렉션 ‘코스모고니(Cosmogonie)’.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현재와 과거를 관통하는 코스모고니(우주기원론)를 통해 패션의 현재적 의미를 찾는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2023 리조트 쇼를 위해 낙점한 장소는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주의 주도 바리 근교에 위치한 카스텔 델 몬테(Castel del Monte) 성이다. 인천에서 바리 공항까지 비행기로 최소 18시간, 바리 공항에서도 차로 1시간을 더 들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곳. 뜨겁고 건조한 지중해 기후가 전 세계에서 온 게스트들을 맞이했다. 미켈레가 먼 이탈리아 남부로까지 게스트를 불러 모은 배경이 된 카스텔 델 몬테 성은 확실히 이전까지의 설정을 능가한다(그는 아를의 네크로폴리스,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같은 고고학적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을 베뉴로 선택하곤 했다). 난해하고 불안한 매력이 잔재하는 곳이랄까. 풀리아 시골 언덕에 왕관을 씌운 것처럼 보이는 팔각형 모양의 장엄한 요새는 1240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건립되었다. 이 성의 건축에서 숫자 8은 강박적으로 반복되는데, 팔각형의 보루, 팔각형 모양의 안뜰, 탑 8개, 사다리꼴의 방 8개 등 여러모로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건축물이다. 미켈레가 비범한 환경에 끌렸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의 컬렉션은 결코 직선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었다. 시각적으로 다양하고 쉽게 해독할 수 없는 중층적 의미가 담긴 그의 컬렉션은 역사에 애정이 깊은 그가 기억과 사물의 수집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함을 보여주는 방식의 하나다.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그는 이번 컬렉션을 ‘코스모고니(Cosmogonie)’라 칭했다. 그는 “신화에 은총을 주는 곳을 찾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장소는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치수와 비율이 교차하는 사이트입니다. 칼라와 재킷의 치수에 따라 어떻게든 마법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미켈레에게 카스텔 델 몬테의 신비는 ‘별자리와 상징이 조합되어 작동하는 것처럼’ 그가 가진 천재적인 창의성의 기원과 공명했다. 그리고 이 모든 복잡하지만 매력적인 스토리는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독일의 문학평론가이자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에 대해 회고한 20세기 가장 뛰어난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에세이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되었다. 유대인인 두 사람은 1930년대 나치 체제를 피해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자주 교류했다. 아렌트의 에세이는 1960년 10월 12일 <뉴요커>에 게재한 발터 벤야민의 전기적-사상적 소묘인데, 아렌트는 ‘위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벤야민의 불우한 삶, 그로부터 비롯된 그의 사유를 꿰어 나가며, 시인이 아니면서도 시적으로 생각했던 벤야민의 사유방식을 글로 보여준다. 그녀가 어두운 시대를 밝힌 한 줄기 빛으로 그린 벤야민은 ‘별자리식 사유(Constellation)’의 대표적인 인물로 미켈레는 역사 속 서적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인용문을 수집해 원고에 활용하고, 이를 통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연결해 빛나는 별자리와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시키는 벤야민의 사유에 깊은 경외를 보냈다.
미켈레는 종종 과거의 유산을 바탕으로 현재에 대한 자신만의 비전을 쌓아 올렸다. 이것은 벤야민이 풍부한 인용과 상호 참조를 이용해 마치 바다 깊은 곳에서 귀중한 진주를 캐내듯 세계의 파편들을 연결하는 점과 공통점을 갖는다. 그는 “옷은 매개체, 언어 지층입니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패션을 만든다는 건 단순히 재단사가 되거나, 1차원 내레이션을 나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컬렉션을 만드는 것은 세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패션은 삶과 인류에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패션은 엘리트들만 이해할 수 있는 상형문자가 아닙니다. 삶에 관한 것이고, 그것은 많은 관용구를 말하고, 아무도 배제될 필요가 없는 거대한 합창단과 같습니다.” 그의 연극적인 의상들은 장소적 특수성에 의해 더욱 빛났다. “저는 성이 침묵에 싸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이 지어졌을 때처럼 살아서 기념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캘리포니아, 당시의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 아니었을까요.” 우연히 뜬 보름달 아래, 별자리로 치장한 그의 모델들은 반짝이는 별과 은하수가 투사된 성채 주위를 행진했다. 우주론의 개념은 실루엣과 장식으로만 번역되었지만, 일부 드레스(몸이 되고 몸이 드레스가 되는 드레스)를 통해 암시되었고, 또한 거침없이 흐르는 다양성에 의해 암시되었다.
샤틀랭 부인과 고고 소녀, 얌전한 부르주아 여성과 화려한 야행성 생명체, 허벅지 높이까지 올라오는 스틸레토 부츠를 신은 여인, 벨벳으로 덮인 낭만적인 헤로인들까지, 그것은 역사적인 레퍼런스(초상 칼라, 십자군의 망토, 중세의 페티코트 등)로 묶인 일관성 있는 불일치의 잔치였다. 반짝이는 질감과 장식들에 의해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은하수가 흘렀다. “여성들은 종종 별자리를 몸에 착용해왔죠”라고 미켈레는 말한다. “마릴린 먼로의 유명한 마지막 드레스에 크리스털이 박혀 있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그녀는 손댈 수 없는 혜성의 아름다운 꼬리처럼 보였습니다.” 모든 것은 돌고 돌지만, 미켈레처럼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마법을 부리는 사람은 없다.
GUCCI 2023 RESORT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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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에디터
- 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