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 에디션 관람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파리에 예술이 내릴 때, 아트바젤

2022-11-27T11:48:40+00:002022.11.27|ART + JEWELRY|

세계적 아트페어 ‘아트바젤’이 드디어 파리까지 점령했다. 지난 10월 19일부터 5일 동안 파리를 다시금 ‘예술의 도시’로서 세계에 입증시킨 첫 번째 ‘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 (Paris + par Art Basel)’ 에디션 관람기.

파리를 점령한 아트바젤

그야말로 아트페어로 채워진 가을이었다. 9월 초 서울을 들었다 놓은 제1회 ‘프리즈 서울’, 그리고 10월 12일 ‘프리즈 런던’의 뒤를 이어 일주일 텀을 두고 개최한 ‘파리 플러스 파 아트바젤(Paris+ par Art Basel)’까지. 페어장이라고 하면 이제 좀 질릴 것 같았지만, 아트바젤의 ‘파리 플러스’만큼은 반드시 봐야 했다. 지난해 풍문처럼 들려오기 시작한, 아트바젤이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 새로운 아트페어를 개최할 것이라는 소문이 기정 사실로 공식 발표된 후 미술계는 크게 술렁였고, 그 첫 번째 에디션이 올해 공개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수년간 프랑스의 유서 깊은 아트 박람회로 군림해온 ‘피악’(FIAC)의 10월 슬롯과 자리를 따냈(빼앗았)다는 사실은 궁금증과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드디어 지난 10월 19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대망의 파리 플러스 첫 페어가 시작됐다. 인기가 높은 아트페어는 이제 퍼블릭 데이보다 VIP 프리뷰 데이에 인파가 더 몰린다. 파리도 마찬가지였다. 아트바젤의 시스템 그대로 ‘퍼스트 초이스’ 인증을 받은 VIP들만 입장할 수 있는 오전 시간부터 리노베이션 중인 ‘그랑팔레’를 대신하는 임시 공간인 에펠탑 앞 ‘그랑팔레 에피메레’ 돔으로 수많은 컬렉터와 아트계 관계자들이 몰려들면서 파리 플러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오롯이 보여주었다.
파리 플러스는 아트바젤의 저력만큼 국제적인 아트페어로서의 위용을 자랑했다. 올해 첫 에디션에 세계 156개 갤러리가 참가했고 5일 동안 4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국내외 아트 인사들로부터는 다양한 시각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이는 이제 스위스 바젤까지 비행기를 갈아타거나 기차를 타고 갈 필요 없이 직항으로 파리에 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바젤 에디션을 앞지를 것이라는 예측을 했고, 또 어떤 이는 프랑스의 소규모 갤러리까지 한데 모여 아방가르드하고 자유로운 예술 작품을 선보이던 피악을 대체한 점을 다소 아쉬운 표정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보리스 미하일로프 전시 전경.

런던 vs 파리

아트 시장에서 런던과 파리 두 도시의 위치는 상당하다. 런던에서는 금융 억만장자들이 주도하는 예술 경매가 이뤄지고, 파리에는 예술적 혈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말하자면 런던은 최신 첨단 현대미술의 도시, 파리는 고전 현대미술의 도시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6년 전 발동된 브렉시트는 런던의 미술 시장에도 영향을 끼쳤다. 브렉시트로 인한 세금과 시스템의 변경, 운송 비용 등에 부담을 느낀 갤러리들은 그 대안으로 파리를 찾았고, 가고시안, 데이비드 즈워너, 마리안느 이브라함, 갤러리 콘티누아, 화이트큐브 등이 그사이 파리에 새로운 지점을 냈다. 하우저 앤 워스는 파리 8구에 위치한 4층 규모의 유서 깊은 호텔 파티큘리에를 매입하고 현재 리노베이션 중으로 내년에 파리 지점을 열 예정이다. 이런 배경에서 개막한 파리 플러스로 인해, 두 도시 간의 은근한 경쟁에 기류가 바뀌는 듯도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또한 파리 플러스 페어장을 직접 찾았으며 200여 명의 딜러와 예술가를 엘리제 궁전 리셉션에 초대해 파리를 ‘예술계의 중추’로 만든 데 대해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파리 플러스 프리뷰 현장에서 만난 한 갤러리스트는 바로 일주일 전 열린 프리즈 런던과 분위기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털어놓았다. 리젠트 공원의 화이트 텐트 안의 프리즈에서도 런던의 상류층과 컬렉터들의 분위기는 비슷했지만 동시에 미술 작품을 관람하러 온 일반 관람객도 많았다면, 파리 플러스가 그보다 더 국제적인 컬렉터들이 대거 모였으며 그로 인해 활기찬 미술 거래 시장 분위기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파리 플러스의 세일즈 기록 역시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과 파리 두 도시 모두 풍부한 예술 인프라와 전통을 가진 도시라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파리 플러스로 인해 앞으로 두 도시가 아트 마켓의 관점에서 사회 경제적 가치와 이점을 어떻게 키워 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파리를 수놓은 야외 설치작

파리 플러스는 예술을 페어장에만 가두지 않았다. 피악에 장외 전시 ‘오르 레 뮈르(Hors-les-murs)’가 있었다면, 파리 플러스엔 ‘파리 플러스 사이츠(Paris Plus Sites)’가 있었다. 여러 야외 설치 작품 중에서도 방돔 광장에 설치된 독일-폴란드 아티스트 알리차 크바데의 작품 ‘세상의 흐름 속에서(Au cours des Mondes)’는 특히 규모와 작품성 면에서 독보적인 화제를 모았다. 자연석 구체와 끝이 없는 콘크리트 계단을 결합한 대형 설치는 지식, 우주, 권력 메커니즘 속에서 존재와 관계들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 설치는 세계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 행성에서 위치를 찾고 권력의 규칙을 찾고 게임을 하고 계층 구조를 개발하고 이 모든 것을 수행합니다. 쓸모없는 것들이지만 결국 우리는 회전하는 구체, 구체에 함께 배치되고 공허를 날아다니는 부조리와 직면해야 합니다.” 이번 설치에 대한 작가의 코멘트는 홀로 고고한 예술이 아닌 세계와 사회 속에서의 예술의 존재를 새롭게 물었다.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가을 대기 속에서 튀일리 정원에는 20여 개의 조각 및 설치작품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파리 플러스 사이츠의 큐레이팅을 맡은 애나벨 테네즈는 ‘역사의 연속(La Suite de l’Histoire)’이라는 테마 아래 루브르와 들라크루아 등 파리의 명성 높은 뮤지엄과 맞닿아 있는 튀일리 정원에서 전통적인 기념비 설치물의 개념에서 벗어난 작품들로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찰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튀일리의 육각형 분수 옆 전화기에 몰두하고 있는 콘크리트 소재 조각상을 만든 주디스 호프의 ‘Phone User 4’부터 유리섬유, 수지, 스테인드글라스, 거울 유리 및 강철 뼈대로 만든 조각가 니키 드 생팔의 거대한 남근 모양 오벨리스크, 1992년 카셀 도큐멘타에서 처음으로 전시된 바 있는 프란츠 웨스트의 조각 ‘Lemurenköpfe(Lemure Heads)’ 등… 파리의 가장 대표적인 풍경 중 하나인 공원 철제 의자에 앉아 가을 정취를 즐기는 사람들 속 한시적인 설치작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낯설면서 동시에 신선했다.

깊어가는 패션과 예술의 애착 관계

파리의 예술 신을 한 차원 더 깊게 만드는 것은 패션계와 맺은 애착이다. 파리에는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 수장이자 메가 컬렉터 양대 산맥 베르나드 아르노, 프랑수아 피노 회장이 각각 설립한 사립 박물관이 있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과 부르스 드 코메르스가 그것. 세계적인 명성의 이 두 뮤지엄은 파리 플러스 주간에도 활약이 뛰어났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는 클로드 모네와 조안 미첼 두 예술가의 작품 사이의 교차점과 대비를 보여준 <모네 & 미첼> 전시를 열었는데 독창적인 기획과 더불어 두 작가의 대표 작품을 대거 전시하며 기나긴 전시 방문 행렬을 기록했다. 한편 루이 비통은 파리 플러스 페어장 내부에 유일하게 부스를 만든 패션 하우스였다. 1909년에 만들어진 마티스와 프란시스 피카비아의 뷔통 트렁크, 쿠사마 야요이의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밀랍 자화상 등이 눈길을 끌었고, 특히 루이 비통과 현대미술가가 협업해 제품을 선보이는 ‘아티카퓌신’의 박서보 컬렉션이 최초 공개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는 사진가 보리스 미하일로프의 작품을 공개했다. 1990년대 하르키우 시내에서 촬영한 모노크롬 파노라마 사진은 사실주의에 기반한 무거운 분위기가 특징이다. 전쟁과 기근 그리고 인간의 불행을 묘사한 사진가를 통해 근래의 러시아 전쟁에 대한 고찰과 시사를 던지는 듯한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