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발길이 향하는 영감의 도시, 과달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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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중서부, 이곳에는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과달라하라가 자리한다. 예술, 공예, 건축 분야의 문화유산이 풍부한 과달라하라로 지금 전 세계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발길이 향하고 있다. 창의적 에너지가 샘솟는 도시, 과달라하라를 형형색색 다채롭게 물들이고 있는 얼굴들을 만났다.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이 디자인한 혁명 공원의 분수.

세라미카 수로 공장에서 작업 중인 레나타 모랄레스.

피오나 배너의 작품 앞에 선 호세 노에 수로

세라미카 수로에 전시된 작품들.

비영리 전시 공간 ‘에어’의 설립자 하비에르 M. 로드리게스.

자신의 스튜디오 옥상에서 포즈를 취한 알레한드로 가르시아 콘트레라스.

“미국에 뉴욕과 LA가 있다면, 멕시코엔 멕시코시티와 과달라하라(Guadalajara)가 있죠. 할리우드가 없으니 조금 덜 번쩍거릴지도 모르지만요.” 호세 노에 수로(José Noé Suro)의 유쾌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LA처럼, 과달라하라는 멕시코에서 멕시코시티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별다른 눈길을 받지 못했던 이전과 달리 최근 유명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이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창조적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주목받는 추세다. 매력적인 돔 건물에 자리한 세라미카 수로(Cerámica Suro)의 은은한 조명을 즐기며 수로와 이야기를 나눴다. 세라미카 수로는 도시 외곽의 산업 지역에서 수로가 운영하는 타일 공장이지만, 이곳을 ‘공장’이라 부르는 건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David Adjaye)부터 셰프 엔리케 올베라(Enrique Olvera), 아티스트 세라 크라우너(Sarah Crowner)와 호르헤 파르도(Jorge Pardo)까지 많은 이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영향력 있는 예술 중심지를, 그저 ‘공장’이라 해도 괜찮은 걸까. 훤칠한 키와 신사적인 태도, 환한 미소를 겸비한 수로는 지난 20년간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협업을 진행하며 세계 곳곳의 아티스트들을 과달라하라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현지 인재들을 잔류하도록 설득하고, 도시의 예술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다.

세라미카 수로를 방문한 날, 이곳에서 예술가 레나타 모랄레스(Renata Morales)와 마주쳤다. 모랄레스는 록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 뮤지션 그라임스,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즈 등의 의상 디자인으로 유명한 혼합매체 아티스트로, 현재 몬트리올, 멕시코시티 및 과달라하라를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든 채 왈츠를 추듯 역동적이고 우아하게 피사체를 담아내는, LA 기반의 사진가 겸 혼합매체 아티스트 월리드 베시티(Walead Beshty)도 만났다. 최근 LA에서 과달라하라로 이주한 그는 수로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과달라하라에 창의적 에너지가 샘솟고 있다는 소문은 세계 각지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지금 이 도시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장 먼저 들려준 이는 가구 디자이너 파비앵 카펠로(Fabien Cappello). 언젠가 그로부터 소위 ‘뜨고 있는 장소’가 있다는 연락이 오더니, 바로 이어서 가구 디자인 회사 틱스처(Txt.ure)의 설립자인 레히나 포소(Regina Pozo)에게서도 음성 메모가 날아왔다. 그가 수화기 너머로 “제가 구경시켜드릴게요”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편 현대 팝 문화와 민속학을 탐구하는 도예가 겸 조각가 알레한드로 가르시아 콘트레라스(Alejandro Garcia Contreras)도 이같이 말한다. “멕시코시티의 예술 현장은 건강하지 못할 때가 있죠. 반면 이곳 과달라하라 사람들은 뭐든 함께하려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어요.” 콘트레라스는 팬데믹 기간에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과달라하라로 거주지를 옮겼다.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직업적으로도 훨씬 좋을 거라 말한 친구의 조언을 따른 결정이었다. 그는 이후 아티스트 하비에르 M. 로드리게스(Javier M. Rodríguez)가 설립한 비영리 전시 공간 에어(Ayer)가 위치한 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뉴욕과 과달라하라를 오가며 지내고 있는 프랑스 출신 비주얼 아티스트 겸 조각가 기욤 레블롱(Guillaume Leblon)도 새로운 정착자다. 프랑스에서 수많은 숙련된 제작자와 일해온 레블롱은 파리와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전시를 위해 함께 작업해온 금속 세공사와 목수들이 과달라하라에 밀집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꾸준히 도시를 찾고 있다 말한다.

과달라하라의 유산과 같은 도자기, 유리, 레진, 직조 기술도 이 아름다운 도시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도자기로 유명한 인근 마을 토날라(Tonalá)와 새로 생긴 지하철역 덕분에 방문이 수월해진 유리 공예 기술의 중심지 틀라케파케(Tlaquepa que)에서 풍부한 역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많은 여행객이 두 마을을 목적지로 당일 여행을 떠난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많은 제작 시설이 모여 있는 곳은 없을 겁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디자인부터 대단히 정교한 현대적 작품까지 한자리에서 관찰할 수 있어요.” 다채로운 무지갯빛 오브제가 가득한 밝고 넓은 스튜디오에서 가구 디자이너 파비앵 카펠로가 말했다. 카펠로는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인 ‘에스타시온 머테리얼’(Estación Material)과 손잡고 가구, 공용 공간, 레스토랑을 디자인했으며, 2020년 멕시코시티에서 과달라하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러나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이렇게 재능 넘치고 작품과 수련을 향한 열린 마음, 관대한 태도를 경험해본 것은 정말 이번이 처음입니다.”

비영리 전시 공간 ‘에어’의 설립자 하비에르 M. 로드리게스.

자신의 스튜디오 옥상에서 포즈를 취한 알레한드로 가르시아 콘트레라스.

신티아 구티에레스와 그녀의 작업실

모렐로스 공원의 조각품.

알록달록한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는 가구 디자이너 파비앵 카펠로의 스튜디오.

전통 멕시코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코말라 바라 데 카페’의 간판.

모렐로스 공원에 있는 동물 조각.

루이스 플로레스와 그가 설립한 갤러리 ‘루이스’.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한 파비앵 카펠로.

새로운 세대가 이곳에서 창조 활동에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간 이들이 수십 년에 걸쳐 형성한 이곳 특유의 정서 때문이라고 카펠로는 말한다. 과달라하라 전역에 있는 공원과 건물에서는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án), 이그나시오 디아스 모랄레스(Ignacio Díaz Morales), 라파엘 우르수아(Rafael Urzúa), 페드로 카스테야노스(Pedro Castellanos) 같은 빼어난 건축가들이 남긴 유산을 살펴볼 수 있다. 바라간이 설계한 혁명 공원(Parque Revolución)은 도시에서 가장 사랑받는 공간으로 직장인, 아이들, 연인 등 붉은색 시멘트 벤치에서 각자의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바라간이 디자인한 주택에 자리한 트라베시아 콰트로(Travesía Cuatro) 갤러리는 오랜 세월을 간직한 오리지널 타일과 창문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더불어 과달라하라는 호세 다빌라(Jose Dávila), 가브리엘 리코(Gabriel Rico), 호르헤 멘데스 블라케(Jorge Méndez Blake), 신티아 구티에레스(Cynthia Gutiérrez)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가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감마 갤러리아(Gamma Galería), 과달라하라90210(Guadala jara90210), 트라베시아 콰트로(Travesía Cuatro) 등 도시엔 굵직한 상업 갤러리가 자리하지만, 이들이 예술계 전체를 주도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아티스트들은 종종 자기들끼리 어울리면서 스튜디오 공간을 나눠 생활하다가, 다시 똘똘 뭉쳐 하나의 예술가 단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2018년에 설립된 창고형 공유 스튜디오 에스튜디오 호스피털(Estudio Hospital)에서는 아티스트들이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곤 한다. “제가 드릴 쓰는 법을 모른다 해도 약간 안심되는 게 있어요. 누군가 한 명은 꼭 알고 있더라고요.” 2018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과달라하라 출신 아티스트 레나타 페테르센(Renata Petersen)의 말이다.

020년 루이스 무뇨스(Luis Muñoz)는 자신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루이스 플로레스(Luis Flores)와 함께 갤러리 루이스(Luis)를 오픈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3년 전 과달라하라에 자리를 잡은 무뇨스가 말을 잇는다. “이곳에 왔을 때, 제가 어릴 때 보았던 멕시코시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척 흥분됐죠.” 두 사람은 매달 다양한 워크숍과 토론회를 진행하는데, 토크쇼를 앞둔 어느 화요일 저녁 이곳에 도착하니 각종 타투와 피어싱으로 힙한 분위기를 두른 청년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루이스 갤러리가 위치한 발라르타 산호르헤(Vallarta San Jorge) 근처에는 과달라하라에서 가장 호화로운 레스토랑인 알칼데(Alcalde)가 있지만, 자유롭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를 풍긴다고 말한다. “알칼데는 예술계에도 많은 영향을 준 곳이죠.” 샌디에이고에서 이주한 설치미술가이자 조각가인 하비에르 프레스네다(Javier Fresneda)는 최근 LA에 있는 건축 걸작 홀리호크 저택(Hollyhock House)에서 채취한 암석을 사용한 작업물을 루이스에서 전시했다. 이 혁신적인 개념미술에 젊은 관람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들과의 협업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함께’의 영역이 넓어지고, 작업에는 생기와 희망이 넘쳐나기 때문이죠.” 프레스네다의 말이다.

또 하나 인상 깊은 점은 과달라하라는 예술가가 아닌 이들에게도 친절한 도시라는 사실이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은 왓츠앱을 통해 여러 사람의 연락처를 전해주었고, 자기 친구의 친구까지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이곳에 방문하자마자 수로뿐 아니라 수로의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었고, 카펠로와 그의 파트너, 반려견과는 여유로운 일요일 아침 브런치를 즐겼다. 어느 날 저녁에는 바에서 로드리게스를 우연히 만났고, 그 만남을 계기로 그의 친구들과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또 다른 저녁에는 레네타 모랄레스와 어두운 길거리를 산책했다. 그리고 교회가 드리운 그림자 아래서 멕시코의 전통 음식인 타말레와 솜사탕을 파는 판매상이 가득한, 활기찬 광장의 풍경이 나타날 때까지 함께 걸었다. 광장에 있던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한 남자의 주변에 서서 그를 구경하고 있었다. 남자는 리듬에 맞춰 춤을 추던 한 구경꾼에게 손을 내밀더니 그녀의 몸을 한 바퀴 휙 돌렸고, 또 다른 구경꾼 두 명은 음악에 맞춰 자기들끼리 몸을 흔들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사랑에 빠지는 것 같아요.” 모랄레스가 덧붙였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에요.”

지금 과달라하라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기

EAT & DRINK

살룬 델 보스케(Saloon del Bosque) 선명한 노란빛을 띤 건물에 자리한 복고풍 술집. 럼을 넣은 페퍼민트 워터 등 클래식 칵테일을 맛보기 위해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코말라 바라 데 카페(Comala Barra de Café) 초록빛 식물이 가득한 여유로운 분위기의 카페로, 최상의 플랫 화이트와 전통 멕시코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일본과 호주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여러 장식이 돋보인다.

알칼데(Alcalde) 화려한 수상 경력을 지닌 셰프 파코 루아노가 진두지휘를 맡은 레스토랑 알칼데는 고급스러운 전통 멕시코 요리를 선보인다. 호세 노에 수로는 “이 도시의 분위기를 바꾼 레스토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소콜(Xokol) 스타일리시한 젊은 커플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엘로테와 타말 같은 멕시코 전통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선보이고 있다.

SEE

콜로니아 아메리카나(Colonia Americana) 콜로니아 아메리카나 지역은 올데이 브렉퍼스트 카페, 바, 클럽을 가득 메운 트렌디한 현지 주민들로 넘쳐나는 곳이다. 막 내린 신선한 커피와 형형색색의 케이크를 즐기고 싶다면 주목할 것.

호스피시오 카바냐스(Hospicio Cabañas)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병원 단지인 호스피시오 카바냐스는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랜드마크가 있는 곳이다. 특히 상징적인 벽화가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José Clemente Orozco)가 20세기 초에 그린 정교한 벽화를 감상할 수 있어 주말이면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모렐로스 파크(Parque Morelos) 루이스 바라간이 설계한 모렐로스 파크는 무엇보다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1960년대 후반의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이 즐비하며, 토요일 오후가 되면 크고 넓은 루프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STAY

벨워트 호텔(Bellwort Hotel) 2021년 초 문을 연 벨워트 호텔은 매력적인 브루탈리스트 스타일 건물에 자리한 곳으로, 널찍한 발코니가 돋보이는 호텔이다.

카사 하비타(Casa Habita)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텔로 꼽히는 곳. 세련된 화이트 톤 객실에 통유리창을 갖추고 있으며, 로비의 대리석 벽난로와 산뜻한 그린색 바가 유명하다.

SHOP

줄리아 이 레나타(Julia y Renata) 1993년 자매가 설립한 브랜드로, 데메트리아 호텔에 위치한 세련된 부티크를 통해 미니멀리즘 미학을 더한 클래식 의상을 선보이고 있다.

엠파시 스토어(Empathy Store)엠파시 스토어는 가정용품을 판매하는 곳이지만 리조트웨어, 주얼리, 액세서리도 함께 구입할 수 있다.

토날라(Tonalá),
틀라케파케(Tlaquepaque)
도시 외곽에 자리한 역사적인 마을 토날라와 틀라케파케는 수십 년간 공예품 애호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야외 시장을 방문해 현지 도자기, 자수 타일, 유리 제품을 살펴볼 수 있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RYAN LOWRY
MARY HOL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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