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세상, 패션쇼와 불가분의 관계가 된 예술의 영역.
생로랑의 2023 S/S 남성복 쇼는 마라케시 외곽에서 30km 떨어진 아가페이 사막 한가운데서 열렸다. 하우스의 설립자 이브 생 로랑이 파리의 일과 생활로부터 벗어나 휴식과 영감을 얻기 위해 찾던 도시, 마라케시에 헌정하는 쇼이기도 했다. 폴 볼스의 1949년 소설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에서 영감을 받은 안토니 바카렐로는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고리 형태의 빛나는 오아시스를 세웠다. 이 기이하게 빛나는 무대는 런던 기반의 예술가이자 세계적인 무대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Es Devlin)과 협업해 완성했다. 서사시적이고 잊히지 않는 강렬한 원형의 조명 설치물이 신기루 같은 연못에서 솟아오르는 런웨이. 게스트들은 멀리 첨탑이 보이는 사막을 마주 보고 앉았고, 공연이 시작되자 모래 언덕의 전망은 무대 가운데 설치된 오아시스 주변으로 번지는 인공 안개 덕에 흐려졌다. 쇼가 끝나갈 무렵, 구멍이 뚫린 빛나는 금속 링이 둥근 연못에서 솟아올라 천천히 회전하면서 인공 안개를 내뿜었다. 광활하고 메마른 미지의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를 연상시키는 런웨이는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의 흥미로운 이중성과 복합성의 매력을 담아냈다.
이번 생로랑의 무대를 연출한 주인공 에스 데블린은 상상력이 어떻게 의심을 멈추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녀의 첨단 디자인은 1995년 이후 발레, 오페라, 연극 무대를 놀랍게 변모시켰고, 팝스타들을 위한 무대 디자인은 거의 전설과도 같다. 카니예 웨스트는 4개의 큐브 형태로 연주되는 록밴드 와이어 멤버들의 사진을 보고 데블린에게 첫 공연을 불과 10일 앞두고 2005년 《Touch the Sky》 투어 무대를 재설계해달라고 요청했으며(이후 그녀는 카니예의 여러 야심 찬 투어에 참여했다), 이후 비욘세, 아델, 레이디 가가, U2, 더 위켄드의 무대 디자인을 맡았다. 데블린은 그래미, 브릿 어워드, 루이 비통 런웨이 쇼 같은 대규모 작업을 ‘효과적인 조각’ 또는 극단적인 목적과 임팩트를 가진 예술에 비유한다. 그녀는 작년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재활용되고 빌린 침실을 차지하기 위해 필요한 상상에 대한 설치작업 ‘룸 2022’ 같은 작업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설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루이 비통이 루브르 박물관의 쿠르 카레에 조성한 거대한 어린이 장난감 경주장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버질 아블로 생전에 파이렉스 시절부터 10년이 넘도록 작업을 함께하며 루이 비통 남성복의 예술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LA 베이스의 아트 스튜디오 플레이랩(PlayLab Inc)의 작업으로, 근 몇 년간, 사고 방식을 치환해 주변의 오브젝트를 거대하게 초현실화하는 루이 비통 남성복의 무대는 모두 플레이랩의 작업이었다. 이번 무대 설치에 대해 루이 비통은 “거대한 어린이 장난감 경주장은 상상력을 위한 노란 벽돌 길이 되고, 어린이 같은 환상이 살아나는 마음을 위한 진화의 길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버질 아블로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루이 비통의 런웨이에는 그가 일임한 동안 만들어진 시그너처 코드가 쇼 내내 분명하게 존재했다. 마지막에 루이 비통의 LV 로고가 장식된 거대한 빨간 풍선들이 자갈 바닥 위 안뜰을 가로질러 놓여 있었는데, 이것은 어린아이의 동심을 다룬 쇼 주제를 선명하게 각인했다. 플레이랩의 일원 중 한 명인 제프 프랭클린은 “버질은 럭셔리 패션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그가 럭셔리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어떤 아이디어를 가져와야 할지 명확히 알고 움직인 사람이다. 그리하여 어린애 같은 탐구적인 면을 반영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아이디어다. 왜냐하면 그것은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았던 영역과 새로운 생각의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버질이 사람들에게 늘 기회를 줬듯, 재밌고 새로운 장을 위한 기회가 열려 있었다. 패션이라는 놀이터 안에서 상업뿐만 아니라 예술을 동시에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라며 버질과의 작업을 회고했다.
샤넬 쿠튀르 쇼에서 만날 수 있는 아티스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구성주의 작가 자비에 베이앙(Xavier Veilhan)이다. 그는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베르사유 궁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한 동시대 가장 현대적인 조각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최근 샤넬 쿠튀르 쇼의 무대 디자인을 두 번 연속 도맡았는데, 그래픽 패턴과 아치, 돌아가는 과녁, 모빌, 재활용 플라스틱 같은 일련의 구조물을 통해 독일식 구성주의 세트 연작을 선보였다.
반면 디올은 무대에 심오한 의미를 담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계시처럼 미술관에서 우크라이나 예술가 올레시아 트로피멘코(Olesia Trofymenko)의 작품을 마주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그 작업을 쿠튀르의 모티프로 삼았고, 우크라이나 민속 요소이자 생명, 재탄생, 기쁨을 상징하는 ‘생명의 나무’를 수놓은 대형 자수 작업으로 쿠튀르 무대를 장식했다. 이는 상징적 의미에 대한 찬양뿐만 아니라 공예 장인의 전통, 손기술에 대한 찬미이자 경탄, 경의였다. 올레시아 트로피멘코의 예술적 실천은 예술과 공예품을 즐겁게 결합시킨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우리는 공예, 장인정신과 현시점에 이루어져야 할 대화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라며 패션의 책임감과 경각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장 최근 의상에 직접적으로 예술가의 아트워크를 적용한 것은 셀린느의 에디 슬리먼이다. 디올 옴므 쇼를 통해 진보적인 남성 의상을 선보인 바 있는 에디 슬리먼은 그가 디올 옴므 쇼를 열었던 팔레 드 도쿄로 20년 만에 복귀함과 동시에, 그가 파리에서 베를린으로 이주한 2000년대 초를 회고하며 2023 S/S 쇼 타이틀을 ‘Dysfuntional Bauhaus’라고 명명했다. 남성복에 앤드로지니 필터를 씌운 개혁의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그는 세 명의 아티스트를 기용했다.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피슐리/웨이스 그룹의 데이비드 웨이스(David Weiss)와 신예 작가 앨리스 에스테이(Alyss Estay), 레나타 피터슨(Renata Petersen)이다. 특히 레나타는 티셔츠 레터링을 도맡아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예술에 조예가 깊은 에디 슬리먼의 후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며, 지난해 작고한 데이비드 웨이스는 내년 바젤 쿤스트 미술관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예술은 무대로, 패션으로 다양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고 있다. 사람들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주는 것을 단순히 상업의 영역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패션쇼를 통해 드러나는 예술 자체가 여느 미술관에 걸린 작업 못지않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어떤 미술관에서 사막에 인공으로 만든 오아시스 설치물을 만날 수 있겠는가). 패션쇼를 통해 전 세계에 닿는 미디어의 힘을 간과할 수 없는 예술은 패션과 더욱 긴밀하게 더욱 폭넓게 교류하며 대중에 지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거대 패션 자본과 대형 아티스트의 만남을 통해 탄생하는 세기의 무대와 작품은 계속해서 대중의 오감을 깨우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사진
- GETTYIMAGES KOREA, COURTESY OF CELINE HOMME, CHANEL, DIOR, LAURA SCIACOVELLI, ES DEVLIN, LOUIS VUITTON, RENATA PETERSEN SAINT LAU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