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 옥션이라는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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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반짝이고 희귀한 ‘돌’을 손에 넣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강렬했다. 희소한 돌, 그러니까 주얼리에 대한 이 같은 염원 때문일까? 세계 각지에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주얼리 옥션이 성행 중이다. 하지만 국내 옥션 시장에서 주얼리는 그다지 환호받지 못하는 카테고리로 여겨진다. 아득하기만 한 주얼리 옥션, 이를 둘러싼 이야기가 여기 있다.

컬렉터들의 주얼리로 꼽히는 ‘팬더 드 까르띠에’.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던 1791년 1월, 마리 앙투아네트는 튀일리 궁전에 수감 중이었다. 자신의 삶이 곧 단두대에서 비극적으로 마감될 것이라는 예감을 지울 수 없던 앙투아네트는 왕비가 되고 2년이 흐른 1779년 구입한 다이아몬드 팔찌를 면화에 감싸 비밀리에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보냈다. 이후 시간이 흘러, 그녀가 죽음의 문턱에서도 지키고자 했던 다이아몬드가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총 112개의 다이아몬드가 영롱하게 빛나는 앙투아네트의 팔찌가 245년 만에 공개됐다. 팔찌의 최종 낙찰가는 745만9,000CHF, 한화로 약 96억원에 달했다. 애초 추정가는 25억에서 50억 사이였지만, 격동의 세월 속에 손상되지 않은 채 2세기를 훌쩍 넘겨 버틴 팔찌는 추청가의 2배를 훨씬 웃도는 금액에 낙찰되는 기록을 세웠다. 전염병이 창궐했던 지난해 역대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얼리 중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을 기록하며 옥션 시장을 들썩이게 했던 이 사건은, 당시 국내에서는 다소 미미한 반응을 얻었을 뿐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품 옥션 시장의 매출 규모는 1,400억원대. 최근 몇 년간 한국의 미술 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고 있다. 옥션의 꽃이 제아무리 미술품이라지만, 오랜 시간 옥션 역사와 함께해온 ‘주얼리’는 다만 국내에서 여전히 아득하기만 한 카테고리로 여겨진다. 국내에서도 주얼리 옥션을 본격적으로 전개해보려는 움직임이 있긴 했다. 대표적 옥션하우스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각각 2016년과 2019년 주얼리 옥션을 론칭했지만 출품 품목이나 매출 규모가 소더비, 크리스티 같은 해외 옥션하우스에 비해 걸음마 수준에 불과했다. 여기에 주얼리에 대한 대중의 인식 부족이라는 높다란 벽에 부딪히며 이들은 결국 사업을 철수해야만 했다. 한편 같은 아시아권이지만 홍콩에서는 1990년 초부터 주얼리 옥션 거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가 홍콩에 주얼리 옥션을 론칭한 시점도 1993년이다. 작년 5월 크리스티가 홍콩에서 진행한 스프링 세일을 통해 거둬들인 수익만 약 735억원. 홍콩은 뉴욕, 제네바 등 경매 사무소가 있는 여러 도시 중에서도 아주 견고한 시장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주얼리 옥션이 고전을 치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얼리 옥션 활성화의 핵심은 정보의 공개와 투명성이에요. 하지만 국내에서 주얼리는 오랫동안 일부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인식되어 폐쇄적이고 불투명하게 거래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즉 사고팔 때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말이죠. 해외에선 주얼리를 예술품으로 인식하고 투자 대상으로 삼지만 주얼리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는 음성 시장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쓰고 있지요. 주얼리 옥션에서는 누군가가 사용하던 제품, 즉 ‘에스테이트 주얼리’ 가 주로 거래되는데, 국내에선 음성적 거래 문화 때문에 주얼리 위탁자가 구매 근거 자료를 갖고 있는 경우도 거의 없어요. ‘Provenance(소장 이력)’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윤성원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교수는 국내 주얼리 시장의 특수성이 옥션 대중화 실패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주얼리의 정보, 역사 등을 연구하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와 같은 전문 인력의 부족, 공신력 있는 가치평가 체계가 미흡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2019년 공개된 사프디 형제가 감독한 영화 <언컷 젬스>는 빚더미에 앉은 뉴욕의 보석상 ‘하워드’가 300캐럿에 달하는 최상급 오팔을 손에 쥐며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다. 영화의 제목인 ‘언컷 젬스’는 가공되지 않은 보석이라는 뜻, 즉 훗날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지 모르는 미완의 보석을 의미한다. 어쩌면 아직 생소한 주얼리 옥션의 세계야말로 언컷 젬스일지 모른다. 세계 옥션하우스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매년 20~30회 주얼리 옥션을 진행하는데, 특히 주목해야 하는 세일은 최고가 경신 기록이 숱하게 쏟아지는 경매 ‘매그니피선트 주얼스’다. 상반기와 하반기 각 1회씩 열리는 이 경매에선 주로 왕실이나 역사적 인물의 컬렉션, 벨에포크나 아르누보, 아르데코 등 특정 시기의 예술 사조를 반영한 시대 주얼리(Period Jewelry), 희소한 소재로 만들어 예술품에 비견할 수 있는 주얼리 등 일반 시장에서 보기 어려운 피스가 대거 출품된다. 위탁자와 내정가, 젬 리포트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경매 전 작품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프리뷰 전시가 열린다는 점에서 주얼리에 대한 지식과 날카로운 촉만 있다면 옥션은 투자 가치가 높은 주얼리를 손에 넣기에 최적의 플랫폼인 셈이다. 게다가 팬데믹 이후 대부분의 옥션하우스는 온라인 옥션을 진행하며 진입 장벽도 낮췄다. “2019년에서 2021년 사이 온라인상 주얼리 판매가 101% 증가했어요. 또 밀레니얼 세대 컬렉터가 전체 고객의 20%를 차지했죠. 이런 추세를 반영해 온라인 경매 비중을 날로 늘려가고 있습니다. 옥션을 생중계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셜미디어 ‘위챗’ 등에 입찰 기능을 추가해 보다 쉽게 경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크리스티 아시아 부사장 및 주얼리 부서 시니어 스페셜리스트 펑치앙(Fung Chiang)의 말이다.

작년 11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6억원에 낙찰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팔찌.

작년 퍼플 핑크 다이어몬드 부문 세계 경매 기록을 경신한 ‘사쿠라’

작년 필립스 경매에서 낙찰된 56.87캐럿의 콜롬비아산 에메랄드 목걸이.

그렇다면 지금 주얼리 옥션 시장의 ‘큰손’들이 주목하는 주얼리는 무엇일까? “최근 2년 사이 낙찰된 피스를 살펴보면 공통된 흐름이 있습니다. 우선 여러 젬스톤 중에서도 특히 옐로, 핑크, 블루 색상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 카슈미르와 버마 원산지의 사파이어, 인위적인 오일링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콜롬비아산 ‘노 오일’ 에메랄드 등을 소재로 한 주얼리가 강세였죠. 또 현대적인 브릴리언트 컷보다 과거의 올드 컷 다이아몬드가 인기였습니다. 올드 컷 형태는 100년 이상 된 앤티크 주얼리에서 자주 발견되는 만큼, 보석이 가진 역사와 스토리에 열광하는 컬렉터가 많음을 의미하죠.” 필립스 주얼리 부문 월드와이드 헤드 베누아 르플랭(Benoît Repellin)의 말이다. 실제 지난해 선명한 분홍빛을 띤 15.81캐럿의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 ‘사쿠라(The Sakura)’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330억원에 낙찰되며 ‘퍼플 핑크 다이아몬드’ 부문 세계 경매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시대 주얼리에서는 아르데코 주얼리가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어요. 특히 까르띠에의 아르데코 피스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해리 윈스턴, 반클리프 아펠, 티파니 등의 빈티지 주얼리(최소 20년 이상 된 주얼리)도 인기가 높죠. 또한 요즘 사람들은 ‘누가 소유했었는가?’에도 유독 주목합니다. 주얼리에 깃든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그들의 뛰어난 안목까지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스토리가 담긴 유명인의 소장품에 열광하는 듯해요. 지난해 앙투아네트의 다이아몬드 팔찌가 약 96억원에 낙찰된 것을 보세요. 18세기 말 다이아몬드의 러프한 커팅과 당시 유행하던 세팅을 보는 재미도 있고, 대혁명이라는 격변 속에 주얼리의 주인은 계속 바뀌었지만 고유의 광채와 아름다움을 지켜온 스토리가 관전 포인트죠. 팬데믹 시기에는 이런 왕족의 소장품이 잘 팔렸네요.” 윤성원의 말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주얼리 수집가다. 결혼, 생일, 기념일 등 인생에서 소중한 순간을 빛내주던 것은 늘 보석이었으니까. 누구나 손가락 위, 혹은 서랍의 가장 은밀한 구석에 보석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주얼리를 ‘컬렉팅’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로 옥션이다. 아직 주얼리 옥션의 문을 두드리기에 늦지 않았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신뢰할 만한 옥션하우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월별 세일을 확인하고, 무엇보다 주얼리와 친해지는 것. 추정가가 100만원대로 측정된 주얼리도 많으니 겁내지 말자. “주얼리 옥션은 젬스톤이라는 특수한 소재가 큰 비중을 차지하므로, 젬스톤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으로 시작해야 해요. 또 옥션하우스가 든든한 조력자인 것은 맞지만 이들은 거래를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 감정서의 내용까지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감정서와 감별서를 살피며 소재가 천연인지 합성인지 여부, 처리 여부, 수리 흔적 등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예요. 앤티크로 보이지만 사실상 ‘앤티크 스타일’일 수도, 사인드 피스가 모조품일 위험도, 때로는 소장 이력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또 해외에서 낙찰받은 후 국내로 받입할 때 각종 세금이 부가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죠.” 윤성원은 이같이 조언한다. 어쩌면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품이라 바꿔 부를 수 있는 주얼리, 이를 수집하며 더욱 빛날 시간이 곧 찾아올지 모른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도움말
윤성원(주얼리 전문가,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교수)
사진
COURTESY OF ALAMY STOCK, CHRISTIE’S, PHILL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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