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로에베재단 공예상’ 전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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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공예야말로 박제된 아름다움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아름다움이라는 것. 지난 7월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개막한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를 관람하며 새삼 느꼈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개최된 <2022 로베에 재단 공예상>의 전시 풍경.

꽤 오래전부터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뭐랄까, 수 세기 전을 살아가는 과거의 인물처럼 보이다가도 누구보다 ‘모더니티’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의 SNS는 일종의 ‘앤더슨의 취향 박물관’이었는데 거기엔 16세기를 살았던 로마 화가 시피오네 풀초네의 초상화, 고대 이집트의 집기를 연상시키는 막달레나 오둔도의 조각, 폴 안글라다의 퀴어적 페인팅 등이 무작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방대한 관심사는 고스란히 로에베의 컬렉션으로 이식되었다. 19세기 후반 미술공예운동의 주도자였던 건축가이자 공예가, 시인인 윌리엄 모리스에게 바치는 헌정과 다름없었던 2017년 ‘윌리엄 모리스 캡슐 컬렉션’, 1980년대 에이즈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도전적 작품을 펼친 행위 예술가이자 인권활동가 데이비드 워나로비츠스의 유산을 기리기 위해 펼친 2018년 한정판 컬렉션 등. 패션 디자이너로서 단순히 ‘잘 팔리는’ 옷을 만들지 않고 옷이라는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 안에 자신만의 안목과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 무브먼트를 형성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나에게 언제나 ‘대환영’의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의 모든 행보 가운데 가장 환영할 만한 것은 2016년 시작되었다. 바로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설립이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은 어쩌면 로에베의 본질을 가장 오롯이 담은 프로젝트다. 로에베가 1846년 스페인의 가죽 공방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공예’는 이들의 정체성을 담지하는 뿌리인 셈이다. 매해 세계 각 지역의 공예가로부터 작품을 출품받고, 심사위원단이 최종 후보 30명을 선정해, 이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피지컬 전시를 가진 후, 최종 우승자를 선정하는 것이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골조다. 그리고 로에베 공예상은 5회를 넘기며 더욱 큰 규모로 발전해갔다. “2016년 처음 출범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원자 수가 굉장히 늘었어요. 수상자가 저희의 공예상을 기점으로 커리어에서 큰 변화를 맞는 것도 자주 목격했죠. 공예에 대한 저의 관심은 굉장히 오래되었어요. 어린 시절 뭔가를 만드는 일에 거의 집착하는 정도였죠. 그 당시 여자들이 바느질로 한땀 한땀 스웨터를 짜는 걸 보고 공예에 매혹됐어요. 그래서 1846년 시작된 로에베만의 크래프트맨 정신을 꼭 되살리고 싶었죠. 공예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라 생각해요. 더욱이 팬데믹 이후 삶의 방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이런 시기야말로 공예가 일종의 해독제가 되어줄 수 있죠.” 조나단 앤더슨의 말이다. 그리고 지난 5년간 전 세계를 순회하며 전시를 연 로에베 공예상은 마침내 올해 그 5회째 전시를 서울에서 개최했다. 올해는 116개 지역에서 3,100명이 넘는 공예가가 작품을 출품했다. 그중 한국인 공예가 7명을 포함해 30명의 파이널리스트가 최종 선정됐고, 이들이 다루는 소재는 도자기부터 목재, 텍스타일, 가죽, 유리, 금속 등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블라스트 스튜디오의 ‘Blue Tree’(2021). 버려진 커피 컵을 재활용해 푸른 나무를 형상화했다.

엘레노어 레이클린의 ‘The Landscape of Memory’(2021). 계절별로 서로 다른 밀도를 보이는 세쿼이아 나무를 소재로 만든 작품으로, 구불구불하게 일렁이는 듯한 표면이 매력적이다.

안딜레 다알반의 ‘Cornish Wall’(2019). 점토를 재료로 남아프리카 코사 부족의 역사와 기억을 표현한 작품이다.

동시대 공예의 현주소라 부를 수 있는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 대한 첫인상은 공예야말로 화이트큐브에 박제된 아름다움이 아닌, 우리 일상 근처에서 살아 숨 쉬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다. 전시는 시간이 흐를수록 공예와 예술의 영역이 흐릿해지는 시대에 그럼에도 공예만이 갖는 고유성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전달한다. 말총을 섬세하게 엮어 기하학전 패턴의 바구니를 완성한 정다혜의 ‘A Time of Sincerity’, 점토를 길게 말아 포개는 코일링 기법으로 자신의 뿌리인 남아프리카 코사 부족의 역사와 기억을 표현한 안딜레 다알반의 ‘Cornish Wall’ 등 다양한 전시 공예품을 보면 작품이 만드는 이의 신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아주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순수예술 또한 필연적으로 신체가 개입돼 작품이 만들어지며 나아가 신체성을 주제로 작업 세계를 펼치는 미술가도 다수 있다. 하지만 공예에서는 그 신체성이 더욱 투명하게 전달된다. 손으로, 노동집약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위한 물건을 발명한다는 것이 공예의 본질이니까. “애플이 생산한 작품을 보면 너무 정교하게 만들어져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아요. 즉 생명력이 없는 것이죠.” 언젠가 미국 출신의 예술가 톰 삭스가 말한, 요즘 시대 멸종해가는 것만 같은 가치인 ‘생명성’은 공예품에서 화르르 피어난다. 가장 생동하는 무언가를 보고자 한다면, 지금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전시장으로 향하라 권하고 싶다.

올해 수상자 정다혜.

조선시대 전통 말총 공예 기법으로 제작한 정다혜의 ‘A Time of Sincerity’(2021).

올해의 수상자, 정다혜
약 500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의 말총 공예 기법은 정다혜의 오랜 관심사였다. 말총 모자 ‘사방관’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바구니 ‘A Time of Sincerity’는 우리나라 말총 공예의 역사성을 담은 작품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말총을 활용해 다종다양한 모자를 만들었다는 것에서 옛 조상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또한 말총이라는 자연 소재이자 아주 얇은 소재로 ‘입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죠. 말총이야말로 자주적인 소재라 느껴요. 그래서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 빗살무늬토기에서 형태적 힌트를 얻어, 이를 기반으로 말총 바구니를 만든 것이 ‘A Time of Sincerity’입니다.” 정다혜의 말이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사진
COURTESY OF LOE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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