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럭셔리 쓰레기 드레스

명수진

오트 쿠튀르에서도 핫한 업사이클링

드레스 한 벌 한 벌이 예술이고 작품인 오트 쿠튀르는 기본적으로 ‘선주문 후생산’ 시스템이다. ‘고급 맞춤복’이라는 의미에서 ‘고급’이란 수식어를 떼고 보면 오트 쿠튀르는 쓰레기가 가장 적게 나오는, 지속 가능한 패션이라 볼 수 있다. 몇몇 디자이너들은 부호들의 전유물만 같았던 오트 쿠튀르의 의미를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오트 쿠튀르에서 혁신적인 컬렉션을 선보여온 네덜란드의 아이리스 반 헤르펜. 이번 2022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아이리스 반 헤르펜은 바나나 잎으로 만든 드레스로 오프닝을 열었다. 드레이핑이 근사한 드레스는 바나나 잎을 활용한 소재로 만들어서 땅이 묻히면 흔적도 없이 생분해되어 사라진다! 뒤이어 등장한 구리빛 드레스는 초콜릿을 만들고 남은 카카오 껍질 쓰레기를 고분자 소재로 변형하고 이를 3D 프린트에 넣어서 ‘찍어내는’ 기법으로 만든 것. 함께 사용한 오간자 역시 업사이클링 소재였다.

역시 네덜란드 출신인 로날드 반 데르 켐프도 오트 쿠튀르 무대에서 업사이클링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는 지역의 니트웨어 브랜드에서 찾아낸 재고 원단을 공급받는 한편 자신이 예전에 선보였던 컬렉션 – 나오미 캠벨이 입었던 드레스 등 – 을 다시 재가공해서 런웨이에 올렸다. 그는 ‘매 시즌 새로운 트렌치 코트를 만들 필요는 없다’며 ‘이런 성장은 세상을 파괴하고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업사이클링 오트 쿠튀르에 방점을 찍은 것은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던 발렌시아가. 전체 컬렉션의 1/4을 업사이클링으로 완성하며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이 새로운 아방가르드임을 증명해보였다. 런웨이에 올린 트렌치 코트는 업사이클링한 것이며, 빈티지 손목 시계를 주얼리로 재탄생시키는 어린 아이 같은 위트를 발휘하기도! 오트 쿠튀르를 통해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것은 더욱 트렌디 해졌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희소성과 상품 가치를 위해 멀쩡한 옷을 소각하며 연간 120억톤의 탄소를 뿜어냈던 패션업계의 놀라운 변화가 아닐런지?

프리랜스 에디터
명수진
사진
COURTESY OF Iris Van Herpen, Ronald van der Kemp, Balenciaga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