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 조니 스팀슨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사랑의 노래, 조니 스팀슨

2022-06-28T16:04:22+00:002022.06.23|FEATURE, 피플|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조니 스팀슨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문득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 ‘낙천주의자의 러브 송’. 그의 음악은 줄곧 사랑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구김 없는 희망을 전한다. 2022 서울재즈페스티벌의 무대를 앞둔 어느 날, 서울에서 조니 스팀슨과 함께 초여름 오후를 보냈다. 

셔츠와 니트 베스트는 아디다스X구찌 제품.

<W Korea> 2019년 첫 내한 쇼케이스 이후 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서울에 온 지 4일이 됐다 들었는데 입국 후 어떤 시간을 보냈나?

조니 스팀슨 러닝을 워낙 좋아한다. 지금 머무는 호텔이 삼성역 근처라 아침마다 강남 일대 곳곳을 달리느라 바빴다. 러닝 겸 도시 탐험이랄까.

 

평일 아침의 삼성역이라면 굳은 표정의 직장인들로 그야말로 삭막할 텐데?(웃음)

그래서인지 다들 나를 외계인처럼 쳐다보더라고(웃음). 모두가 정장 차림인데 나 혼자 운동복을 입고 헉헉거리면서 달리니까. 그리고 신기했던 게, 뉴욕에선 다들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서울 사람들은 신호를 참 잘 지키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빨간 불인 땐 얌전히 신호를 기다렸다(웃음).

 

오늘 촬영장에 점심거리로 K-핫도그를 준비했다. 당신의 매니지먼트가 귀띔하길, 요즘 당신이 명랑핫도그에 푹 빠졌다던데.

정말! 고향 텍사스 댈러스에 점포를 하나 낼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웃음). 이렇게 온갖 재료가 섞인 핫도그는 처음이다. 핫도그 위에 프렌치프라이를 뒤덮고, 거기에 설탕까지 뿌리니까. 내가 원했던 모든 게 K-핫도그 하나에 담겨 있다.

 

새로운 한국 음식에 도전하는 걸 즐긴다고.

맞다. 며칠 전에도 한식당에 갔는데 반찬만 열댓 가지가 나왔다. 원래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인데 한국 음식은 질감도 맛도 각양각색이라 먹는 즐거움이 있다. 이틀 전에는 한국 매니지먼트 사람들과 깐부치킨에도 갔다. 식당에 들어섰는데 손님들로 가득하고, 하여간 엄청나게 시끄러웠다. 다들 퇴근하고 한잔하러 오는 분위기 같던데, 왠지 나도 여기에 살았다면 이들처럼 일 마치고 들러 한잔 기울이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되더라고.

 

어제는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하지 않았나? 오늘 아침 당신의 SNS에 배철수와 함께 찍은 인증샷이 올라왔다.

그는 레전드다. 30년 이상 음악 활동을 해왔다 들었다. 그가 말하길 오래전 댈러스에도 투어차 방문한 적이 있다더라고. 미쳤지. 방송국으로 가는 차 안에서 1991년 송골매의 ‘모여라’ 무대를 유튜브로 봤는데 한마디로 너무 ‘쿨’했다. 키보디스트가 DX7 신시사이저를 쓰는 걸 보면서 엄청난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비록 국적도 다르고 30년 전 무대지만, 아마 그때 그들과 지금의 나는 뮤지션으로서 똑같은 고민을 안고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더라. 정말 신기하지.

 

2022 서울재즈페스티벌 참가로 오랜만에 한국을 찾았다. 3년 전 처음 내한했을 당시 한국 관객의 인상은 어땠나?

한국은 생애 첫 해외 대규모 무대였다. 그때를 돌이키면, 내 인생이 마치 한 편의 모험극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 꿈 중 하나가 세계를 돌며 여행하고 싶다는 거였는데, 그게 한국을 통해 시작되고 이뤄진 듯한 느낌이다. 한국은 내가 자란 곳과 환경이며 문화가 다르지만, 그때 무대에 서며 느낀 건 서로 멀리 떨어져 지구 어딘가에 살고 있더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오히려 똑같다는 거였다. 너무나 초현실적인 경험이었지.

 

재작년 팬데믹으로 내한 공연이 취소된 터라,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가 더욱 기다려졌을 것 같다.

물론이지. 팬데믹으로 많은 이들이 커리어를 포기하거나 삶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걸 봐왔기 때문에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은 올해 공식 초청을 받기도 훨씬 전부터 알고 있던 페스티벌이라, 무대에 서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너무 흥분됐다. 또 모처럼 부모님도 함께 오셔서 내가 무대에 서는 걸 백스테이지에서 직접 보실 예정이다. 아버지는 몇 번인가 해외 공연을 따라오신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늘 전화로만 안부를 물으시다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하시게 됐다.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번 공연에서도 엔딩 곡은 ‘Honeymoon’인가? 2017년 실제 당신의 결혼식에서 틀기 위해 발매한 곡인데, 이후 그 곡이 여러 페스티벌에서 단골로 엔딩을 장식했다.

아쉽게도 ‘Flower’다. 그런데 당신이 ‘Honeymoon’을 엔딩으로 부르길 바란다면 세트리스트를 바꿔보겠다(웃음).

 

어휴, 아니다(웃음). 그나저나 3년 전 서울 공연 인상이 좋았던 것 같다. 이후 ‘Zombies’나 ‘Princess Peach’ MV에 한국어를 짧게나마 꼭 삽입하더라.

한국 팬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한구석에 있었다. 마침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친구도 있겠다 MV에 한국어를 삽입하면 한국 팬들이 음악을 이해하는 데 훨씬 좋을 것 같아서 몇 번인가 넣었다. 2020년 ‘Zombies’를 발매했을 당시엔 직접 그린 삽화를 새겨 디자인한 티셔츠를 머천다이즈로 판매했는데, 가슴팍에 ‘좀비를 조심하세요’란 한국어를 직접 써서 새기기도 했다. ‘Watch out for zombies’를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친구에게 맞게 번역됐나 물어보고 엄청나게 글씨 연습을 해서 완성했다(웃음).

컬러 조합이 인상적인 캡은 폴로 랄프 로렌, 올리브색 재킷과 트랙팬츠, 링은 모두 보테가 베네타 제품. 목걸이와 팔찌는 아티스트 소장품.

3년 사이 스타일도 많이 변한 것 같다. 2015년 데뷔 이후 포마드를 발라 깔끔하게 넘긴 헤어스타일을 고수해왔는데, 올해 긴 머리에 턱수염도 덥수룩한 스타일로 변신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항상 짧은 머리로 살아왔다. 이렇게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길러본 건처음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새 앨범을 위해 룩을 바꿔봤다. 올 초 ‘The Way It Was Before’와 ‘All I Want Is You’ 두 곡을 앨범의 싱글컷으로 발매했는데, 전반적으로 앨범이 1970년대 <세서미 스트리트>와 <더 머펫 쇼> 등의 인형극을 지휘한 프로듀서 짐 헨슨에게 영감을 받아 꾸려질 예정이다. 그래서 짐 헨슨 하면 떠오르는 긴 머리칼, 턱수염을 연출해보자 싶었다. 갑자기 스타일을 바꿔서인지 나도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볼 때마다 놀란다(웃음).

개인적으로 바뀐 스타일이 요즘 당신이 하는 음악과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데뷔 초엔 ‘Flower’, ‘Honeymoon’ 등 로맨틱한 러브 송이 다수였는데, 시간이 흐르며 좀비물에서 영감을 받은 ‘Zombies’나 닌텐도 DS 게임 ‘슈퍼 프린세스 피치’를 연상시키는 ‘Princess Peach’와 같은 캐주얼하고 유머러스한 곡을 발매했다.

데뷔 초 러브 송이 많았던 이유는 아내와 사랑에 빠진 후로 사랑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아서였다(웃음). 물론 여태 음악을 통해 주로 로맨틱한 감정을 말해왔지만, 당신 말처럼 쾌활하고 살짝 까불거리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너무 좋아한다. 실제 ‘Zombies’ 도 어느 날 핼러윈을 맞아 TV 쇼에서 방영한 좀비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재미 삼아 만든 곡이고, ‘Princess Peach’도 닌텐도를 플레이하다 즉흥적으로 떠오른 멜로디를 발전시킨 곡이다. 심각하고 슬픈 사랑을 말하는 곡도 물론 좋지만, 거기에 유머가 가미됐을 때 더 흥미를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가 폴 매카트니인데, 비틀스가 해산 후 1970년 폴 매카트니가 결성한 그룹 윙스의 ‘Silly Love Songs’란 곡을 통해서도 말하지 않았나.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을 그 바보 같은 사랑 노래로 채우고 싶어 한답니다.”

 

당신의 음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낙천주의자의 러브 송’일 것 같다. 사랑 노래가 많은데, 대부분 이별의 슬픔을 말하기보다 사랑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표현한다.

맞다. 나란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가 ‘Lighthearted’(쾌활한)다. 사랑의 어두운 이면을 말하는 곡에서도 꼭 3번째 벌스에 가서는 그럼에도 희망이 있을 거라고 말해왔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나올 앨범은 좀 다를 거다. 팬데믹 기간을 통과하며 많은 친구를 잃었고, 그 상실감을 말하는 곡을 썼다. 곡을 쓸 때도 괴로웠지만, 녹음하며 부르면서도 굉장히 슬펐다. 늘 곡에서 긴 터널의 끝에는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왔지만, 이번 앨범엔 슬픔 그 자체를 말하는 트랙도 담으려 한다. 때로 사람들에겐 슬픔으로 점철된 곡이 위로로 다가갈 때가 있으니까.

 

그런데 ‘나쁜 사랑’을 말하는 곡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좀 놀랍다. 여태 좋은 여자만 만났나 싶기도 한데(웃음).

하하. 고등학생 때 첫사랑을 했는데 그 친구와 굉장히 오래 만났다. 그때만 해도 그 친구와 결혼할 거라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친구에게 차여서 헤어지긴 했지만(웃음). 그때 결별이 내가 인생에서 겪은 가장 힘든 연애 감정이었던 것 같다. 주변을 보면 상대가 바람을 피우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난 운이 좋은 건지 그런 경험이 없다. 여태 사귄 여자친구들은 모두 ‘어메이징’한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의 아내가 더 ‘어메이징’해 아쉽게 그들과 잘 되진 못했지만 (웃음). 지금의 아내를 만나 어떻게 사랑이 작동하는지 깨닫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알게 됐달까.

 

당신의 사랑 노래가 단순히 연인 사이의 것에 국한하지 않고, 가족으로 확장한다고 느낀 게2021년 발매한 ‘Blueberry’를 통해서다. 당시 곧 태어날 조카를 생각하며 쓴 곡이지?

맞다. 어느 날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여동생이 “깜짝 놀랄 만한 뉴스가 있어요”라고 말하더니 핸드폰을 꺼내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더라고. 그러면서 “오늘은 아기가 딱 블루베리 크기만 하네요”라고 말했는데 집으로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서 그 한마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면서 “Now you’re ’bout the size of a blueberry~”란 가사와 멜로디가 즉흥적으로 떠올랐다. 아주 빠르게 쓴 곡이다. 일종의 축하곡이지. 그리고 사진 속 블루베리만 하던 조카는 이제 두 살이 돼서 아장아장 걸어 다닌다.

 

일상적 단어를 사용한 비유법을 가사에 즐겨 쓰는 것 같다. ‘Blueberry’에선 아기를 블루베리에 빗대고 ‘Pink Lemonade’에선 인생을 레몬에 빗댄 것처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음악을 만드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어디서 흥미로운 걸 발견하면 바로 휴대폰 메모 앱을 켜서 기록해둔다. 매일 3~4개씩은 꾸준히 써서 메모 앱을 켜면 스크롤이 끝도 없이 내려간다. 최근 적은 걸 보자면 ‘슈퍼 파워’, ‘레이니 데이’, ‘콰이어트 플레이스’, ‘퍼피 러브’ 같은 게 있다. 이 리스트를 보면 나 요즘 슬프네, 혹은 행복하네 따위의 패턴이 보이면서 그걸 한 편의 가사로 발전시키는 편이다. 멜로디는 언제나 쉽게 떠오르는데 가사는 그러지 않으니까, 평소 쓴 메모를 골똘히 살피며 어떻게 가사를 크래프트할지 고민하는 편이다.

 

송 라이팅의 시작은 바로 그 휴대폰인 셈이다. 아내 다음으로 휴대폰이 절대 잃어버려선 안 될 보물 2호겠다.

에이,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휴대폰에 메모를 쓰면 클라우드로 자동으로 PC에 백업되지(웃음).

 

하하. 당신 음악의 사운드적 특징을 꼽자면 고전 8비트 게임 속 칩튠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 같다. 특히 ‘Twin sister’, ‘Princess Peach’ 등에서 그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어린 시절 완전 게임 보이였다. 초등학생 시절엔 한창 닌텐도 슈퍼마리오에 빠져 있었고. 마리오가 아이템을 먹으면서 파워업할 때 나는 게임 사운드는 그때나 지금이나 참 매력적이라 느껴진다. 유년기 하면 게임에 빠져 살던 시절이 떠오르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게임 사운드를 들으면 노스탤지어에 빠지곤 한다.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진달까. 그래서 송 라이팅을 할 때 게임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쓰고, MV에도 아날로그한 감성의 픽셀 아트워크를 즐겨 사용한다.

 

어린 시절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아버지 때문이라 들었다.

맞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 통틀어 가장 훌륭한 ‘귀’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대학 시절 음악을 2년 정도 전공했지만 지금의 어머니를 만나고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회계학으로 전과하셨다. 지금은 수완 좋은 비즈니스맨이시지. 그런데 원래 꿈은 밴드 디렉터셨고 색소폰이며 기타, 피아노 등 못 다루는 악기가 없다. 내가 어렸을 때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면 나를 피아노에 나란히 앉혀두고 코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연주해주시곤 하셨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지. ‘우리 아빠 혹시 천재인가?’(웃음) 아버지와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는데 그중 비틀스는 우리의 넘버원 뮤지션이었다.

 

과거 당신의 인터뷰를 보면 비틀스를 가장 많이 영향 받은 뮤지션으로 꼽더라.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은 건가?

일단 멜로디가 캐치하다는 것. 나는 음악에서 멜로디를 가장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번 들으면 바로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야말로 가장 좋은 멜로디라 생각한다. 마치 비틀스의 ‘Yesterday’ 후렴은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내가 처음 비틀스를 들었을 때가 14살쯤이니, 인생에서 가치관이나 취향이 막 발달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에 비틀스를 만난 셈이다. 또 아버지와의 추억도 담겨 있으니 비틀스의 음악은 내게 굉장히 복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유년기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뮤지션이 비틀스라면, 당신이 막 뮤지션으로 활동했을 무렵 영향을 준 이는 엘튼 존일 것 같다. 2015년 엘튼 존의 눈에 띄며 그가 운영하는 음악 레이블 ‘로켓 레코드’와 계약하지 않았나.

너무 맞는 말이다. 엘튼 존을 만난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크레이지’한 순간이었다. 인디펜던트 뮤지션이던 무렵 런던에 아주 작은 공연을 하러 갔는데, 거기서 공연을 본 누군가가 엘튼 존에게 나의 라이브 영상을 보냈고 바로 다음 날 모르는 번호로 엘튼 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계약을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한동안 그의 레이블에 있으며 정말이지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의 집에 놀러 가거나 스튜디오를 구경하러 가기도 하고, 그와 50년 넘게 협업해온 작사가 버니 토핀으로부터 어느 날 새 앨범에 실릴 곡의 가사라며 이메일을 받는 ‘미친’ 경험까지. 엘튼 존은 나의 영웅 중 한 명이다.

 

그때 경험 때문에라도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꼭 받을 것 같다(웃음).

어느 정도?(웃음) 그런데 내 기억으로 엘튼 존은 휴대폰이 없었다. 그때 당시에도 다른 누군가가 내게 전화해서 “안녕? 엘튼 바꿔줄게” 하고 전화를 건 거니까. 그래서 언젠가 엘튼에게 왜 휴대폰이 없는 거냐고 물어봤는데 아이패드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고 하더라고. 사실 휴대폰이 있을 필요가 없는 거지. 통화가 필요하면 누군가가 대신 전화를 걸어주니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엘튼 존은 내가 인생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스위트한 사람이라는 거다. 그렇게 남을 도와주는 일에 열성적인 사람을 못 봤다.

셔츠, 니트 베스트, 그래픽 패턴의 반바지는 아디다스X구찌, 금장 장식의 로퍼는 토즈 제품. 팔찌는 아티스트 소장품.

로켓 레코드와 계약하기 전까진 오랜 시간 인디펜던트 뮤지션으로 활동해왔다. 그때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나?

글쎄, 우선 생계를 위해 이것저것 많이 해봤지. 텍사스 놀이공원에서 캐리커처를 그려주기도 했는데, 물론 전혀 프로페셔널하진 않았다. 용돈벌이 정도였달까. 그리고 뮤지션을 제외하고 내가 인생에서 가져본 유일한 직업이라면, 애플 스토어 직원? 아이폰이 막 세상에 나온 그 역사적 순간에 애플 스토어에서 일했다(웃음).

 

그랬던 당신은 이제 블랙 부가티를 몬다. ‘Pink Lemonade’에 이런 가사가 있지. “내 블랙 부가티를 타고 달리면 모든 게 다 괜찮아져(Rollin’ in my black Bugatti, Everything is a-okay).”

아니다. 2004년 식 인피니티를 몬다(웃음). 그 노래에선 핑크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시면 왠지 윌리 웡카가 된 것처럼 세상이 매지컬해지고, 왠지 블랙 부가티를 몰 것만 같아서 그런 가사를 쓴 것뿐이다. 내가 지금 모는 차는 완전 올드카다.

 

음악을 통해 당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신이 나를 노래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러한 감사함을 내 모든 곡에 담아 표현하고 싶다. 세상엔 비극을 담아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는 마음속 깊은 한구석에 늘 희망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게 있는 것 같다.

뮤지션으로서 먼 훗날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

언젠가 전 세계의 아레나에서 공연을 펼쳐보고 싶다. 그리고 그게 이뤄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하는 건 언제나 겸손함을 가질 거라는 것. 왜냐하면 불과 몇 년 전까진 50명 안팎의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펼쳤으니까. 최선을 다하되, 꿈은 크게 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