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와 ‘애프터 양’의 감독,코고나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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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상실, 정체성 등을 이야기하는 드라마 <파친코>와 영화 <애프터 양>의 감독, 코고나다(Kogonada)의 세계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애프터 양' 스틸 컷

'애프터 양' 스틸 컷

Apple TV+ 시리즈 <파친코>를 통해 부쩍 가까워진 인물, 한국계 미국인 감독 코고나다(Kogonada). 일제강점기 고국을 떠난 자이니치의 굴곡진 삶을 세밀하게 그려낸 그가 영화 <애프터 양>을 통해 다시 한번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이방인의 삶에 접속했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의 단 편 소설 <Saying Goodbye to Yang>(양과의 안녕)을 영화 화한 이 작품은 안드로이드 로봇 ‘양’의 기억을 통해 인간을 성찰하는 독특한 SF 영화다. 영화가 한국 관객에게 공개된 첫날인 6월 1일, LA에 있는 코고나다와 화상으로 만났다.

<W Korea>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알려졌는데 정확히 언제인가. 서울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나?

Kogonada 세 살 때 건너왔으니 자세한 기억은 없다. 그런데 내가 4형제 중 막내다. 자라면서 가족들에게 서울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종종 착각한다. 가족이 이야기해준 게 내가 겪은 기억이라고 말이다(웃음).

설정된 기억을 자신의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애프터 양>의 양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웃음). “아시아인의 조건은 뭘까” 라고 묻는 양의 혼란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겪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스토리텔링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미국 내 아시아인으로서 지니는 아이덴티티뿐 아니라, 세계 안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에 대해 조금 더 큰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고국에 대한 기억이 없는 이민자 2~3세가 어떤 정체성을 가져가야 하는지를 늘 고민해왔기에, 양을 통해 생각해보고 싶기도 했다. 중국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경험하지 않은 양을 통해 고국과의 진정한 연결성을 염원한 것도 같다.

당신도 그렇고, 양 역할의 배우 저스틴 H. 민도 한국계이기에 각색 과정에서 양의 중국인 설정을 한국인으로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혹은 양을 중국계 배우로 캐스팅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건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일까?

양을 캐스팅하면서 특정 국가 배우로 한정하지 않았다. 한국계이든 중국계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양 자체가 진짜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인 역할을 하도록 프로그래밍된 인위적인 안드로이드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인이 아시아인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의 반영일 수도 있다. 대개 미국에서 아시아인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음에도, 같은 무리로 묶여서 분류된다. 미국 내 스테레오타입에 시달리는 아시안 입장을 드러내고 싶었다.

양은 제이크(콜린 파렐)가 입양한 중국인 딸 미카에게 중국에 대해 알려주고 동양인 정체성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당신에게도 양 같은 존재가 있었나?

나에게 양 같은 존재는 ‘아시아 시네마’였다. 영화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아시아 영화를 특히 탐독했다. 한국·중국·일본 영화를 통해 나의 뿌리는 물론 우리 부모님의 세계관과 삶의 자세를 이해하고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의 예명인 코고나다도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단짝 시나리오 작가인 ‘노다 고고’에서 따온 것이다.

존재론적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오즈 감독의 영화를 만났다. 큰 영향을 받았다. 두 분에 대한 존경을 이름에 담은 셈이다.

“양이 사람이 되고 싶어 했냐?”라는 제이크의 질문을 통해 인간 중심적 사고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이것을 인종 차별에 대한 거대한 은유로 읽어도 될까?

그렇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비단 인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나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을 멀리하고 소외하려는 경향이 컸다. 그런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데뷔작 <콜럼버스> <애프터 양>을 보면, ‘가족’과 ‘상실’은 당신 인생의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맞다. 가족과 가족 내에서의 상실은 내가 크게 관심 갖는 부분이다. <콜럼버스>의 진(존 조)은 아버지를 잃고 나서야 그가 가치 있게 생각한 것들을 진심으로 애도하게 된다. 고장 난 양을 수리해야 하는 존재로만 여겼던 제이크 역시 양의 기억을 통해 자신이 잃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돌아본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나에게 큰 상실감을 준 대상은 내가 크게 사랑했던 존재임을 뒤늦게 느꼈던 듯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존재에 대한 부재 혹은 존재감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파친코>에서 ‘쌀밥’은 선자(윤여정)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다. 반면 <애프터 양>에서 양은 ‘차(茶)’를 마시며 “차가 그냥 지식이 아니라 장소와 시간에 관한 진짜 기억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쌀밥’과 ‘차’ 모두 주인공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증거물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연출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나?

대단히 흥미로운 질문이다. 이 질문은 비평과도 연결된다. 나는 영화에 음식을 많이 활용한다. 음식이 지식적인 차원 이상의 것을 전달하기 때문인데, 가령 음식 속에 깃든 맛은 어떤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추상적이지 않은, 손에 잡힐 듯한 느낌을 전달해주기도 하고. 음식은 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어딘가로 돌아간 것 같은 추억을 안겨준다. 그런 요소들이 내가 말하고 싶은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데 있어 언어 이상의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고 믿는다.

<파친코> 시즌 1이 모두 공개됐는데, 이 작품이 당신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조국에서 온 이들과의 작업이었기에 그 의미를 말로 모두 설명하기는 힘들다. <파친코>는 굉장히 한국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디아스포라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파친코>를 만드는 시간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감독 데뷔 전 영화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 등을 통해 비평 활동을 했다. 비평하던 입장에서 비평받는 입장이 됐는데 느낌이 어떤가?

진짜 겸손해진 것 같다(웃음). 동시에 ‘아, 나는 정말 작은 사람에 불과하구나’를 깨닫게 됐다. 말로만 비평하는 건 쉽다. 이론을 들이대면서 분석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실제 영화 현장에는 정말 많은 도전 과제와 선택이 놓여 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성취’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비평할 당시 별로 좋아하지 않던 영화들도, 그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는가를 깨닫게 되니 달리 보이더라. 시네마를 만드는 모든 분을 존경하게 됐다.

한국 창작자와 창작물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부쩍 커졌는데, 이러한 분위기를 체감하나?

100% 실감하고 있다. 한국 문화의 인기와 파급력은 실로 대단하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롤모델로 삼을 만한 한국 뮤지션이나 배우가 없었는데 지금은 진짜 많다. 몇 주 전에 아이들과 트와이스 콘서트도 다녀왔는데, K팝뿐 아니라 <기생충>, <오징어 게임>도 참 재미있게 즐겼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고, 좋아해준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민자 사회에 사는 한국인에게 큰 영감을 주는 고무적인 일이다.

정시우(영화 칼럼니스트)
피처 에디터
권은경
사진
GETTYIMAGES, COURTESY OF (주)왓챠, (주)영화특별시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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