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향수에 대한 모든 것

W

향긋한 내음이 공기를 지배하는 5월, 향을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더블유>가 준비한 향수 스페셜. 

다홍빛 튤 드레스는 Molly Goddard by Mue 제품.

Beauty Note 샤넬 ‘바움 에쌍씨엘 글로우 스틱(펄리센트)’을 손에 묻혀 광대와 콧등, 이마 그리고 턱 끝에 얇게 펴 발라 은은한 펄감과 광택을 살리고, 힌스 ‘트루 디멘션 래디언스 밤’을 한 번 더 터치해 핑크빛으로 빛나는 피부로 표현했다. 입술은 에르메스 ‘루즈 에르메스 매트 립스틱(루즈 아쉬)’을 입술 중앙에만 러프하게 스머지해 발랐다. 

드디어 도래한 후각의 시대 

“당신에게 닿는 순간, 그 귀중한 방울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대의 귓불이나 가슴 사이의 그늘진 계곡을 향수로 적시고 실험해보라. 모든 것을 다 주어도 그 향수의 이름만은 가르쳐주지 않을 때, 그들의 시선과 표정이 어떤지!”

현대인의 잃어버린 감각을 전달하는 데 천재적 재능을 보였던 소설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20세기 유럽의 여성 작가로보기 드문 사회적 성취까지 이룬 그녀는 문학만큼이나 향수에도 진심이었다. 1932년 파리에 ‘소시에테 콜레트’라는 부티크를 열고 자기 이름이 새겨진 향수를 팔기도 했던 그녀는, 감각 중에서도 후각이 우리의 정서에 미치는 강력한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로선 이런 사실까지는 몰랐겠지만, 후각은 실제로 ‘필터’를 거치지 않는 인간의 가장 직접적인 감각으로 다른 감각과는 다른 경로로 우리에게 다다른다. 시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이 뇌의 시상하부를 거쳐 호르몬 조절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데 반해, 후각은 매우 이상하고 유일하게도 감정의 중추인 대뇌 변연계에 곧장 도달해 우리를 행복하거나 불쾌하거나 그리운 어떤 상태로 단숨에 내던져버린다.

그리고 후각의 이런 놀랍고도 강렬한 영향력은 이제 뷰티 산업 지형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향수 시장의 성장세는 뷰티 업계에 종사하는 모두가 놀랄 정도.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6년 5,400억원대였던 국내 향수 시장은 지난해 7,300억원대에 이르렀고, 2025년에는 9,800억원대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5,000억원대에서 6,000억원대로 진입하기까지 4년이나 걸렸던 것에 비하면 매우 가파른 성장세다. 바이레도, 딥티크, 산타마리아 노벨라, 에르메스 퍼퓸 등 고급 수입 향수의 판권을 보유하며 향수 왕국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향수 부문에서 계속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바이레도는 2021년 전년 대비 향수 카테고리에서만 매출이 54% 확대됐을 정도. 신세계인터내셔날 딥티크 홍보팀 권지은 대리는 계속해서 품절 대란이 일어나는 걸 보며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플레르 드 뽀 오 드 퍼퓸’이나 ‘오르페옹 오 드 퍼퓸’과 같은 향수는 재입고 후 10분 내에 전량 품절될 때가 빈번해요. 온/오프라인의 고객 후기나 커뮤니티를 보면 전보다 소비자의 관심이 훨씬 뜨겁다는 걸 느낄 수 있죠.”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메종 프란시스 커정 등 니치 퍼퓸을 전개하고 있는 BMK의 홍보팀 박나연 부장에 따르면 BMK 니치 퍼퓸군 역시 2021년에만 무려 200% 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매출을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코로나 시국에 이렇게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한 걸 보면, 국내 향수 마켓의 파이 자체가 크게 확대된 것 같아요.” 에스티 로더 마케팅팀 최윤영 PM은 이런 추세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덧붙인다. “글로벌 향수 마켓은 지난 2년간 꾸준히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어요. 불과 2년 전만 해도 전체 뷰티 카테고리 중 향수는 약 10% 차지했지만 이제는 그 두 배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일 정도죠.” 이는 비단 수치로만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수향의 김수향 대표는 예전에 국내에서 사람이 많은 거리를 다니면 향수 냄새가 나는 사람이나 향이 나는 가게를 찾기 어려웠지만, 최근엔 좋은 향이 나는 사람과 다양한 향을 연출한 숍으로 가득하다고 전한다. “마치 좋은 향의 역할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 같아요!”

향수 시장이 이렇게 급속하게 성장한 원인이 무엇일까?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접어들면서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것이 단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향기에 관심이 커진 측면이 있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야 사람들은 좋은 향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니까요. 그 와중에 코로나가 닥쳤고, 이로 인한 제한된 상황과 고립감에 처했을 때 향이 위안이 되면서 소확행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지앤퍼퓸 정미순 조향사의 분석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잃은 것을 만회하려는 보상 심리, 일종의 보복 소비 경향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조 말론 런던의 홍보팀 이혜승 과장은 향수가 여행의 대체재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여행 지출 비용이 쇼핑 비용으로 대체되면서 향수 소비가 늘어난 거죠. 향으로나마 기분을 전환하고 이국적인 느낌을 누리고 싶은 니즈가 반영된 거 아닐까요?” 방역을 위한 마스크 착용으로 색조 제품 소비가 줄어든 대신 향수를 소비하는 추세도 눈에 띈다. 크리스챤 디올 퍼퓸 마케팅팀 윤주현 과장은 “향수 신규 고객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코로나 시기 전부터 향수를 쓰던 고객은 새로운 향수를 시도하거나, 홈 프레이그런스 제품으로 관심사를 확장하기 시작했죠”라고 말한다. 과거 향수를 룩의 파이널 터치 개념으로 바라본 것과 달리, 이제는 샤워젤, 헤어 미스트, 핸드크림, 나아가 공간의 향기를 즐기는 것으로까지 리추얼이 확대되었다는 것. 실제로 조 말론 런던의 배스&보디 카테고리는 전년 동기간 대비 20% 이상 성장했다. 단일 향수를 넘은 이런 카테고리의 확장은 향수 마켓 성장의 또 다른 동력으로 작용했다. 아틀리에 코롱 커뮤니케이션팀 매니저 안효진은 소비자 문의가 끊이지 않던 향초를 지난해 출시해 좋은 반응을 거두고 이제 디퓨저 론칭까지 앞두고 있다. “과거에 캔들은 주로 선물용으로 인식됐는데, 요즘 들어서는 본인이 직접 사용하기 위해 구입하는 고객의 비중이 커졌어요.”

그렇다면 이것은 그저 ‘코로나 특수’일까? 대답은 ‘아니오’다. 향기에 대한 사랑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우리가 다시 여행을 다니고 마스크를 벗고 화장을 하게 되더라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번 향에 노출되면 지속적으로 향수를 사용하게 될 뿐 아니라 공간을 향으로 채우고 싶은 욕구가 증가하기 마련이죠.” 가르니르 김용진 조향사의 말처럼, 향을 아예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쓰는 사람은 결코 없기 때문. 콜레트는 이미 수십 년 전 그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어떤 향에 반하게 하고 그 향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다시는맡을 수 없다면, 정말이지 애가 타지 않겠는가!

1. Gucci Beauty 알케미스트 가든 글로밍 나이트 오 드 퍼퓸 하루 중 가장 황홀한 매직 아워의 느낌을 담은 우디 스파이시 노트의 향수. 시나몬과 베티베르, 파촐리의 조화가 황혼의 찬란한 하늘처럼 붉은 보틀에 담겼다. 100ml, 44만원. 

2. Estee Lauder 럭셔리 프래그런스 컬렉션 데저트 에덴 새벽녘 사막의 모래 위로 태양이 비치는 순간의 매혹! 샌들우드와 터키시 로즈, 유향이 신비롭고 따뜻한 무드를 선사한다. 100ml, 245천원대. 

3. Burberry 시그니처 컬렉션 미드나잇 저니 여행자의 설렘, 꿈같은 장소에서의 어지럽고 들뜬 마음을 향으로 나타낸다면? 강렬한 아로마의 블랙 페퍼와 타임, 럼주의 향에 부드러운 로즈와 생기 넘치는 진저 향이 가미됐다. 100ml, 32만원. 

4. Atelier Cologne 컬렉션 레어 가이악 이터널 스모키 우디 계열의 깊고 우아한 향. 파라과이산 가이악 우드의 순수한 에센스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베르가모트, 인도의 파피루스까지, 진귀한 향료가 섬세하고 지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100ml, 317천원대. 

5. Guerlain 라르 & 라 마티에르 컬렉션 네롤리 우트르누아르 오 드 퍼퓸 눈부시게 빛나는 네룰리 에센스가 진한 스모키 티에 녹아들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끌어낸 피에르 술라주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향수. 100ml, 49만원대. 

더 다양하고, 더 비싼 향수들 

배스&보디, 홈 프레이그런스로 향수 라인의 확장이 양적 성장에 기여했다면, 다양한 향조를 비싼 가격에도 선뜻 사는 니치&하이엔드 향수의 인기는 질적 성장을 이루게 했다. “디자이너 향수가 트렌드이던 때는 한 가지 정도의 향조나 특정 제품으로 나만의 향을 강조하길 원했죠. 그러나 몇 년 사이 니치 향수 시장이 성장하고 브랜드와 향기의 선택 폭이 넓어지면서 취향도 다양화, 세분화되었습니다. 이제 향기는 패션의 마무리가 아니라 패션의 일부로, 기분이나 날씨, 상황, 옷차림에 따라 스타일링되죠. 그 결과 한 사람이 여러 개 향수를 지니고, 소용량의 제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도드라지고 있어요.” 바이레도 서하연 차장의 설명이다. ‘오늘 뭐 입지’는 이제 향수에도 적용된다는 것. 딥티크 권지은 대리 역시 이에 동의한다. “저만 해도 메인 향수 2~3개를 구비해두고 쓰거든요. 매일 다른 향수를 뿌릴 뿐 아니라, 같은 날 두 가지 향수를 레이어링해서 남들과는 다른, 뻔하지 않은 향을 직접 구성하는 트렌드도 볼 수 있죠.” 최근 브랜드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향을 체험해볼 수 있는 디스커버리 세트를 출시해 좋은 반응을 거두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의 향수 마켓 성장의 주역인 MZ세대의 소비 성향은 기존 향수 업계의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예전에는 대형 패션 하우스에서 발매하는 중저가 향수가 대세였지만, 이제는 하이엔드(네임드, 럭셔리)와 부티크(니치) 퍼퓸의 비중이 커지고 있어요. 현재 향수를 소비하는 주요 계층인 젊은 세대는 엄마나 할머니가 쓰는 브랜드 말고, 내가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사용하거나 나만의 표식을 만들 수 있는 개성 있는 브랜드를 선호하죠.” 김수향 대표의 설명이다. 덕분에 국내 퍼퓸 업계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정미순 조향사에 따르면 ‘자기 만족’이 기준인 요즘 세대는 유명 브랜드의 향수가 아니더라도 본인의 취향에만 맞으면 구매한다는 것. 최근 한섬에서 새롭게 론칭한 향수 편집숍 ‘리퀴드 퍼퓸바’의 론칭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니치 향수에 대한 국내 고객들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어요. ‘조딥바(조 말론 런던, 딥티크, 바이레도)’를 넘어서는 레어템을 찾아 직구까지 나서죠. 그래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브랜드, 더 다양한 향조를 들여오는 데 심혈을 기울였어요.” 한섬 향수사업팀 리퀴드 퍼퓸바 김지애 팀장의 설명이다. 씨이오 인터내셔널 메종 마르지엘라 홍보 담당 박민지도 향수 시장이 포화를 이루면서 흔하고 뻔한 향에 대한 싫증이 엿보인다고 말한다. “잘 되는 향수 브랜드는 추구하는 콘셉트와 스토리가 명확해요. 소비자들은 향과 함께 그걸 사는 거죠.”

그와 같은 맥락에서 ‘가심비’를 중요하게 여겨 고가 향수에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경향을 보인다. 2012년 조 말론 런던이 국내에 처음 론칭했을 때만 해도 20만원이 넘는 가격은 시장에 충격이었다. 지금은? 4~50만원이 넘는 향수가 흔해졌다. 샤넬에서 1920년대 샤넬 패션 부티크를 위해 만들었던 향수에서 영감 받은 하이엔드 라인 ‘레 젝스클루시브 드 샤넬’을 선보인 이후,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프리미엄 라인의 출시가 줄을 이었다. 디올 플라워 가든의 정수를 담은 ‘라 콜렉시옹 프리베’ , 프랭크 게리가 보틀 디자인에 참여한 루이 비통의 ‘레 젝스트 레 콜렉시옹’, 12가지의 컬러 조합이 가능한 퍼스널라이제이션 보틀을 선보인 겔랑 ‘라르&라 마티에르 컬렉션’, 최상급 이탈리아 가죽 리본에 버버리 트렌치 소재를 활용한 버버리 ‘시그니처 컬렉션’, 진귀하고 이국적인 원료만 담아 선보이는 아틀리에 코롱의 ‘컬렉션 레어’, 한 번 분사하면 향이 최대 12시간 지속되도록 고안된 에스티 로더의 ‘럭셔리 프래그런스’ 라인 등 그 면면이 화려하다. 저마다 다른 매력으로 선보이지만 엄선된 향료, 브랜드의 철학과 스토리를 뚜렷하게 담은 콘셉트, 고급스러운 패키지 디자인만큼은 공통적이다. 20만원대를 훌쩍 넘어 70만원대를 호가하는 값비싼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향수들이 선전하는 이유는 뭘까. 디올 마케팅팀 윤주현 과장은 경기 침체 및 팬데믹 상황에서 스몰 럭셔리에 대한 선호를 꼽았다. 불경기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으니, 명품 브랜드 내에서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은 제품으로 명품의 만족감을 대신 느끼려 한다는 것. 수백만원짜리 백에 비하면 향수는 상대적으로 살 만한 가격이니 말이다. 최근 줄이은 가격 인상에도 한국은 가격 저항이 크지 않은 편. 열렬한 향수 애호가, ‘향덕’이 늘어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향수의 원료나 원산지에 호기심을 보이며, 브랜드가 신뢰할 만한지, 조향사가 누구인지, 톱노트부터 베이스노트의 잔향까지 많은 요소를 두고 신중히 선택합니다.” 크리스챤 디올 퍼퓸 트레이닝팀 김은영 차장의 설명처럼, 자기 만족과 나만의 아이덴티티 표현을 1순위로 꼽기에 꼭 소비하고 싶은 품목에는 투자한다는 것.

하늘색 튤 드레스는 H&M Innovation Collection 제품.

Beauty Note 샤넬 ‘바움 에쌍씨엘 글로우 스틱(펄리센트)’과 힌스 ‘트루 디멘션 래디언스 밤’을 사용해 반짝반짝 투명한 윤기가 흐르는 피부로 완성했다. 눈두덩 전체에는 바비 브라운 ‘크리스탈 립글로스’를 브러시로 넓게 펴 발라 글로시한 윤기를 더했다. 

핑크 오프숄더 톱은 Rokh 제품.

Beauty Note 메이크업 포에버 ‘리부트 파운데이션’을 얇게 펴 발라 피부 톤을 고르게 정돈했다. 화사하고 강렬한 핑크 포인트를 주기 위해 디올 ‘루즈 블러쉬(오제)’를 볼 앞쪽에 과감하게 터치하고 콧등과 이마, 턱 끝에도 살짝 물들였다. 선명한 마젠타 컬러의 나스 ‘블러쉬(꾀흐바땅)’를 나이프로 긁어 곱게 가루 낸 다음, 브러시로 입술 위에 러프하게 얹어서 마무리하면 환상적인 무드의 벚꽃 메이크업 완성! 

누구나 좋아하는 향기 말고 

일명 ‘꽃집 향’이라고 불리는, 가벼운 그린 플로럴과 로즈 계열의 인기는 여전하다. “장미야말로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거대 향료 회사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브랜드에서 특히 많이 볼 수 있어요. 국내에서 요즘 가장 선호도가 높은 향조는 싱그러운 단일 노트로 이뤄진 그린 플로럴이에요. 이 향조는 마스크를 쓰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공기를 가볍고 산뜻하게 환기시켜주죠.” 살롱 드 느바에의 조향사 느바에의 설명이다. 사실 향 트렌드는 패션처럼 다이내믹하게 변하지 않지만, 그래도 최근 몇 년간 한국의 향수 시장은 놀라운 변화의 물결에 출렁이고 있다. 숲을 떠올리게 하는 우디 향조의 강세를 필두로, 특정 성별 구분 없이 보다 다양한 향조가 전방위적인 사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BMK 박나연 부장도 이런 변화는 뜻밖이라고 말한다. “저도 정말 놀랐던 부분이에요. 2~3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향은 너무 무겁지 않은 시트러스 향이나 부드러운 플로럴, 장미 향이 다였죠.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을 예로 들면, 라일락 향이 주를 이룬 ‘엉 빠썽’ 과 장미로 이루어진 ‘윈 로즈’가 줄곧 베스트셀러였어요. 그러나 최근엔 터키시 로즈와 파촐리, 앰버가 주를 이루는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가 부동의 1위로 떠올랐고, 과거 소비자들에게 어렵다는 얘기를 줄곧 들어온, 피멘토, 갈바넘, 파촐리로 이루어진 그린 우디 계열의 ‘프렌치 러버’ 판매가 늘고 있죠.” 바이레도 역시 여전히 코튼 리넨 계열의 머스크 향이나 라이트 플로럴 계열의 향기가 베스트셀러이지만 점차 ‘모하비 고스트’같은 우디한 향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딥티크의 베스트셀러 톱5 안에도 플로럴, 우디, 시트러스 등 다양한 향조가 자리하고 있으며, 에스티 로더에서 가장 인기 있는 향수는 플로럴 마린 계열의 ‘드림 더스크’지만, 최근 플로럴 우디 계열의 ‘래디언트 미라지’ 향이 비슷한 매출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조향사 김용진은 과거에는 좀 더 직관적으로 맡기 좋은 예쁜 향취, 즉 플로럴이나 프루티, 시트러스 계열을 선호했지만, 최근엔 인공적인 향취보다는 자연이 느껴지는 조금은 독특하고 강한, 그러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린, 우드 계열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김수향 대표 역시 ‘수향 퍼퓸 클럽’에서 최근 블라인드 시향을 했을 때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것이 우디 계열의 안식 향이었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5~6년 전에 국내 매장에서 손님들에게 권하면, 대부분 본인 취향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거든요. 반면 같은 해 뉴욕에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했을 때는 가장 호감도가 높았던 향이었죠. 우디 향조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호감도가 상승한 건 몇 년 사이 많이 유입된 니치 퍼퓸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향을 접해보면서 향수 취향이나 소비 패턴이 성숙해졌고, 이런 브랜드에서 자주 활약하는 우디나 앰버 계열의 향을 자연스럽게 학습하면서 취향을 새롭게 발견한 거 아닐까요?”

Chanel 레 조 드 샤넬 파리-파리 125ml, 20만3천원.

여행하는 향기 

후각은 그 무엇보다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다이앤 애커만은 <감각의 박물학>에서 냄새에 관한 한 단기적 기억은 없다고 말한다. 어떤 인상적인 향을 맡으면 우리는 당시의 상황을 몸에 새긴 것처럼 영원히 기억한다고. 이런 후각과 기억의 밀접한 연관성 때문인지 우리는 종종 향으로 여행을 기억한다. 바람에 실려오던 짠 바다 냄새, 어지러운 시장의 골목에서 풍겨온 톡 쏘는 향신료 냄새, 이른 아침 산책길의 젖은 나무 냄새…. 그 공간에서 맡았던 향기만큼 우리를 순식간에 그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없다. 많은 향수들이 여행을 콘셉트로 하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여행과 향이 사이좋은 단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행이 꿈에만 머무는 요즘 같은 때, 샤넬의 ‘레 조 드 샤넬 컬렉션’은 우리에게 여행의 설렘과 즐거움,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마치 도시의 매력을 향으로 써 내려간 특별한 여행기라고 할까? 가브리엘 샤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도시에서 영감 받아 2018년 처음 탄생한 이 컬렉션은 더없이 생생한 여행의 순간을 상상할 수 있도록 출발-도착의 여정으로 이름 지어져 있다. 남프랑스의 바닷가에서 보내는 휴가를 연상시키는 ‘파리-비아리츠’를 시작으로, 초록빛 노르망디 해안가를 산책하는 듯한 ‘파리-도빌’,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따뜻한 바로크풍 도시로 향하는 ‘파리-베니스’에 이어, 코트다쥐르의 찬란한 태양과 플로럴 향을 담은 ‘파리-리비에라’, 스코틀랜드의 푸른 대자연으로 떠나는 모험을 연상시키는 ‘파리-에든버러’까지. 이 향들을 맡고 있으면 가브리엘 샤넬을 여행 가이드 삼아 유럽 일주를 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2022년 새로운 여정이 추가되었으니, 우리가 끊어야 할 티켓은 바로 파리행! 모던하면서도 우아한 감성이 살아 있는 도시, 샤넬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파리는 과연 어떤 향일까. “파리지앵의 꾸미지 않은 듯한 우아한 매력에서 영감을 받아 반짝이는 플로럴 향을 담았죠.” 조향사 올리비에 뽈쥬의 말처럼 ‘파리-파리’의 향은 꾸미지 않아도 매력적인 파리지앵이 테라스에 앉아 맞이하는 화창하고 여유로운 파리의 아침을 떠오르게 한다. 장미의 가장 싱그러운 느낌만 담았다고나 할까? 자연스럽고 우아한 매력을 지닌 다마스크 로즈는 상쾌한 시트러스 악센트와 어우러지고, 스파이시한 핑크 페퍼콘과 파촐리 베이스와 만나 신선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을 전달한다. 기존에 장미 향 특유의 화려함이나 지나친 로맨틱함이 부담스러운 사람조차 기분 좋게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첫 향은 심플하고 가볍고,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하고 부드러운 잔향에 행복해진다. 파리가 그립거나 파리를 꿈꾸거나, 어느 쪽이든 간에 당신이 있는 지금 그곳을 화창하게 빛나는 파리의 아침으로 바꿔보고 싶다면, ‘레 조 드 샤넬 파리-파리’를 스프레이해보길!

뷰티 에디터
이현정
포토그래퍼
고원태
모델
루루
스타일리스트
김석원
헤어
배경화
메이크업
정수연
플로리스트
임진희
어시스턴트
신지연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