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욱과 최성은의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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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지만 아이인 미스터리한 마술사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가 만나면 어떤 꿈이 피어날까? 뭉클한 이야기로 여운을 남긴 하일권 작가의 웹툰이 10여 년 만에 판타지 뮤직 드라마로 되살아났다. 넷플릭스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의 지창욱과 신예 최성은이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화를 시작한다. 

지창욱이 입은 재킷과 팬츠는 쿠시코크 by 아데쿠베, 셔츠와 넥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최성은이 입은 셔츠와 재킷은 디올 제품.

최성은이 입은 빨강 로고 니트는 로샤스 제품.

지창욱이 입은 푸른색 가죽 재킷은 벨루티, 여러겹의 칼라가 돋보이는 셔츠는 우영미 제품.

지창욱이 입은 검정 슬리브리스 톱은 렉토, 로고 네크리스는 펜디 제품. 최성은이 입은 검정 후드 재킷은 알라이아제 품.

너희들… 그 마술사 얘기 들어봤어···? 우리 동네 언덕에 작은 유원지 하나 있잖아··· 암튼 거기에 유원지를 배회하는 마술사가 있대··· 그런데 그 마술사가 진짜 마술을 부린다며···? 절단 마술 할 때는 진짜 사람을 잘랐다 붙이고, 사람이 사라지는 마술을 하면 그 사람이 실종된대··· 그렇게 사람을 만나면 마술을 보여주기 전에 상대방 눈을 보면서 항상 이렇게 묻는다는 거야··· 당신···마술을 믿습니까? -네이버 웹툰 <안나라수마나라> 1화 ‘쫓아간다’ 중 

“대본을 읽으면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이랬어. 이건, 내 이야기다··· 성은이가 연기한 고등학생 ‘윤아이’의 가난과 고민. 인엽이가 연기한 ‘나일등’의 성적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내 10대 시절이 떠올랐어. 나도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든. 우리 집이 어려워서 버겁다고 느낀 시기도 있고. 윤아이가 가난에 허덕이면서 아등바등하는 모습이 어떤 기억을 건드렸어. 두 사람을 생각하면 아프고 슬퍼서 응원해주고 싶었어. 그게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야.”

“저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웹툰을 먼저 봤어요. 그 아름답고 서정적인 이야기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가 닿을 수 있을까 싶었죠. 그런데 대본을 읽다 보니 대사 하나하나에 쿡 찔리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윤아이라는 인물에게 동질감이 들기도 했고··· 안타까움이 가장 컸어요. 마술사 ‘리을’이 윤아이에게 해주는 말들에서 저도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특히 이런 말.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라는 게 아니야. 하기 싫은 걸 하는 것만큼 하고 싶은 것도 하라는 거야.’”

“맞아, 나도 그 대사를 제일 좋아해. 누구나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살아야 하잖아. 정작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그저 속으로 생각만 해. ‘언젠가는 해야지’ 하면서. 그냥 해버리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

“저는 살면서 ‘이게 지금 정말 필요한가? 효율적인가?’ 이런 질문을 자주 하는 사람이거든요.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면 조금 죄짓는 기분이 들어요. 그런 저에게 리을이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 그래도 전혀 잘못된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위안이 됐어요. 그 대사를 자꾸 곱씹게 되더라고요.”

“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나는 명확히 봤어. 꿈과 약간의 동심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주는 것. 감상이란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드라마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정서적으로 충만해지는 가치가 있지 않을까? 특히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했잖아. 음악극의 느낌으로. 리을이라는 인물에겐 판타지 성격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톤앤매너를 잡느라 고민이 많았어. 나는 연기할 때 의심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 내가 맡은 인물이 왜 이런 행동과 말을 하는지 속으로 끊임없이 물어. 그런데 리을에 대해서는 결국 그런 의심 없이, 이렇게 생각했어. ‘리을이니까.’ 연기하면서 느낀 건 성은이의 표현에는 진한 데가 있더라.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감정 폭이 더 크고 깊었어. 그 진함과 깊음 때문에 윤아이라는 인물이 나한테 더 잘 다가온 것 같아. 그리고 너, 촬영장에서 늘 이렇게 웅크리고 있었잖아···(웃음). 괜히 추나요법 해주고 싶다고 말한 게 아니야. 윤아이, 얼마나 안쓰럽던지.”

“하하. 저는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내가 어떻게 해도, 몇 번을 시도해도 선배님은 받아줄 거라고. 워낙 감정 신이 많다 보니 원하는 만큼 감정 컨트롤이 안 될 때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마음에 들 때까지 해보고 싶었어요. 그럴 때마다 제 연기를 잘 받아주셨죠. 그래서 저는 촬영장에 갈 때면 ‘이 부분에서 선배님은 어떻게 연기할까?’보다는 ‘선배님은 오늘도 다 받아줄 테니 내가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그런 게 ‘믿음’인 것 같아. 상대 배우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현장의 모든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와. 다른 작품을 할 때보다 내가 좀 더 배려하려고 한 점은 있었어. 윤아이의 캐릭터는 워낙 감정 폭이 크기 때문에 당연히 한 번에 마음에 드는 연기가 나오기 힘들어. 성은이가 편안해야 더 좋은 연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배려하는 게 리을의 역할이기도 하잖아. ‘더 하고 싶으면 더 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하는 것.”

“그런데, 어릴 때 마술을 믿었어요?”

“과학적으로 생각하거나 막 믿었던 거 같진 않고. 다만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던 기억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본격적인 마술 공연을 보러 간 경험은 없어도 미스터리한 느낌과 장면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겠지. 나에게도 사람을 신기하게 절단하거나 숟가락 구부러지는 장면 등등이 잔상처럼 떠올라.”

“저는 마술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였어요. 저기서 어떤 트릭을 썼을까···(웃음). 저한테 동심이라는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해요. 내가 산타클로스 같은 걸 믿은 적이 있나? 잘 기억이 안 나요.”

“동심을 정말 잃어버린 거 아니야? 나는 이런 걸 기억해. 주말을 앞둔 하굣길이면 너무 기분이 좋아서 손에 들고 있는 아무거나 친구들에게 막 나눠줬어. 마치 졸업하는 사람마냥 교과서도 나눠주고(웃음). 그러고선 월요일에 교과서 없어서 후회하고···.”

“어머, 뭐야? 왜지? 독특하다(웃음).”

“진짜 개구쟁이였어. 하도 밖에 나가 놀아서 어머니한테 잡혀 끌려 들어온 적도 많고. 어머니가 미역국에 밥 말아서 놀이터로 들고 나오신 적도 있어. 놀다가 한 입 먹고, 다시 뛰어가서 놀고 그랬어. 비 오는 날이면 우산도 없이 축구공을 차거나 바닥의 물을 첨벙거리면서 돌아다니고. 그때의 느낌과 정서가 가슴속에 아주 조금은 남아 있어. 이렇게 얘기하면서 꺼내 볼 때면 기분 좋아.”

지창욱이 입은 검정 슬리브리스 톱은 렉토, 로고 네크리스는 펜디 제품.

최성은이 입은 실크 드레스는 프라다 제품.

지창욱이 입은 큼직한 재킷은 쿨티엠 by 무이, 시스루 셔츠는 김서룡, 로고 엠보싱 장식 데님 팬츠는 디젤, 넥타이는 생로랑, 벨트는 아미, 슈즈는 돌체앤가바나 제품.

최성은이 입은 레몬색 실크 드레스는 프라다 제품.

어렸을 때 봤던 그 유원지는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의 성처럼 항상 화려한 불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마치 내가 동화 속 공주님이 되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마법이 아니라 가난한 저주에 걸릴 운명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네이버 웹툰 <안나라수마나라> 4화 ‘저주에 걸린 아이’ 중

“내가 너무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어머니와 둘이서 어렵게 지내던 시기가 있어. 그때는 창피했어. 생각해보니 나는 힘든 상황이 닥치면 홀로 숨는 사람이야. 위축되어서 그런지, 멘탈이 견디지 못해서 그런지. 대신 숨어서 고통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려고 최면 걸 듯이 마음 정리를 해. ‘이건 내 인생 전체에서 그리 큰 사건이 아니다’, ‘이것만 잘 넘기면 훨씬 좋아질 거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 사람들과 술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느 순간 알게 된 거야. 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아니었구나. 와, 저 사람은 정말 힘들었겠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는 걸 느끼면서 차츰 극복이 됐어. 스스로 내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됐지. 만약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됐을 거야. 하지만 어릴 적 내 우울감과 혼자 숨어 보낸 시간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킨 것 같아. 이제는 그렇게 불행한 기억도 아니야.”

“저도 어릴 때 사건이랄까 타격이라고 할 만한 일이 있었어요. 그만한 일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그 후폭풍이 성인이 되어 온 것 같아요. 제 성격 형성에 그 일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다 커서야 든 거죠. 저는 앞을 보고 나아가기만 하는 성격이거든요.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스스로를 돌보거나 일을 돌아보는 대신 ‘됐다, 모르겠고, 난 이제 뭘 해야 하지?’라고 해버려요. 그저 앞으로 나아가고 달리려고만 하는 성향이 어릴 때 그 시간들로 인해 만들어진 바가 크다면, 이제 그걸 알았으면, 앞으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제는 다른 방향성을 찾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내가 아는 최성은은 누군가의 조언이 과연 필요할까 싶게 자신에게 알맞은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사람 같거든. 생각이 많은 사람 같지만,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도 못 받았어. 그러니까 하던 대로 해 나가면··· 무엇보다 어떤 문제를 이제 충분히 인지했다는 거잖아. 그런 과정은 필요한 걸지도 몰라. ‘괜찮을 거야, 너무 힘들어하지 마’ 같은 말은 나는 별로야. 힘들면 힘들어야지 무슨 수로 안 힘들어? 그냥 잘 견디는 거지.”

“제가 한 인간으로서 변화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연기에 있어서 개선해야 할 방향이 일치한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타인에게 쉽게 저를 내보이지 못해요. 소통하는 걸 힘들어할 때도 있고요. 그렇게 성격적으로 개선하면 좋을 지점들이 연기할 때도 확실히 방해 요소로 작용하곤 해요. 그러니까 나를 조금씩 바꿔 간다면, 내 연기 면에서도 해소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혹은 좋은 연기를 위해 노력하다 보면 나 역시 좋은 인간으로 변화하고 더 행복해질 거다···. 그런 생각이 요즘 크게 자리 잡고 있어요.”

“와, 내가 예전에 하던 고민과 아주 비슷하다. 나를 보는 것 같아. 나도 내성적이어서 그런 생각 많이 했거든. 좀 더 마음을 열고 다가갈 줄 아는 사람이라면 연기 표현도 훨씬 잘될 것 같아서. 연기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기도 했어. 일단, 현장에서 내가 편하기 위해서라도 나를 바꿀 필요가 있었어. 지금은 ‘배우 지창욱’보다 그냥 나, ‘사람 지창욱’이 먼저야. 연기는 직업일 뿐이고, 다만 나는 이 직업이 너무 좋고 재밌고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좋은 대사를 만나면 속에서 뭔가 훅 올라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휴머니즘이 담긴 대사들에서 저는 조금 울컥해요. 위로해주는 말 같거든요.”

“너, 우리 마지막 촬영날 안 울었나? 울었지?”

“울었죠. 마지막 신 끝내고, 엉엉엉.”

“하하, 기억난다. 그건 어떤 의미의 눈물이었어? 고생을 많이 해서 울음이 나왔어? 아니면 만감이 교차해서?”

“만감이 교차했고. 그 모든 사람과 ‘이젠 안녕’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나는 사실 너무 잘 울어. 바로 얼마 전에는 늦은 밤 운동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왠지 모르게 서러워져서 울었어. 땀 뻘뻘 흘리면서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나’ 싶었는지 (웃음). 하지만 마지막 촬영까지 다 마치고서 다른 사람들이 아쉬워서 울 때는 또 혼자 눈물이 안 나오네. <안나라수마나라>의 이야기가 끝난 후, 앞으로 살아갈 리을을 상상하면··· 리을은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잖아. 순수하면 쓸데없이 다치기도 쉬워. 나는 리을이 그런 쓸데없는 상처는 안 받으면서 살면 좋겠어.”

“저의 윤아이에게 리을은 고마운 존재 이상이죠. 그 이상으로 많은 걸 깨닫게 해줬어요. 저는 이 아이가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갔으면 해요. 어쨌든 살면서 고난은 계속 닥칠 거예요. 그때마다 현실에 굴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지창욱이 입은 펀칭 장식 니트 베스트는 발렌티노 by 육스, 회색 팬츠는 베트멍 by 무이, 롱 벨트는 프라다 제품. 최성은이 입은 보라색 실크 셔츠와 청록색 쇼츠는 발렌티노 제품 .

지창욱이 입은 펀칭 장식 니트 베스트는 발렌티노 by 육스, 회색 팬츠는 베트멍 by 무이, 롱 벨트는 프라다 제품. 최성은이 입은 보라색 실크 셔츠와 청록색 쇼츠는 발렌티노 제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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