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가 쏘아올린 코레오그래피 열풍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스우파’가 쏘아올린 코레오그래피 열풍

2022-06-23T16:54:10+00:002022.04.10|FEATURE, 컬처|

작년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방영되며 그 이름부터 낯선 ‘코레오그래피’가 유행어처럼 회자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코레오그래피는 어디서 왔으며,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돌이키면 이름부터 생소한 ‘코레오그래피’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때는 2012년이었다. 샤이니가 3년여 만의 공백을 깨고 ‘셜록’이란 곡으로 컴백했을 즈음이다. 당시 멤버 태민이 가슴께까지 길게 늘어뜨린 헤어스타일보다 더 화제를 모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터넷에서 왕왕 돌던 이 소문이다. “그 안무에 자그마치 1억원을 들였다더라.” 첨언하자면, 그때 당시 한국의 최저 시급은 4,580원이었다. 확실히 ‘돈 냄새’가 풍기는 안무이긴 했다. 범죄 사건을 다루는 탐정이라는 곡의 서사를 안무에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안무 대형을 다각형으로 짜낸,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무대였다. 당시 댄스 칼럼니스트들이 말하길 ‘셜록’ 이후로 K팝 안무는 “비유하자면 2D에서 3D로” 전환하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셜록’의 안무에는 미국 출신 코레오그래퍼 토니 테스타가 참여했다. 그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자넷 잭슨 등의 코레오그래퍼로 활동하며 일찍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훗날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불린 ‘셜록’이 발매되던 2012년 그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면 홈비디오와도 같은, 조악한 화질의 안무 영상이 몇 편 있었는데 그때 화면 너머로 보았던 생경함을 잊지 못한다. 스포츠웨어를 입은 건강한 안무가들과 그들의 춤을 보며 크게 환호성을 터트리는 강습생들, 무엇보다 음악의 멜로디, 리듬, 질감에 맞춰 톱니바퀴 맞물리듯 들어맞는 ‘짱짱한’ 안무. 이후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카소네 리노, 이안 이스트우드, 숀 에바리스토, 브라이언 푸스포스 등의 안무가 채널로 길을 인도했고 거기엔 하나같이 ‘코레오그래피’라는 낯선 단어가 있었다.

확실히 당시만 해도 코레오그래피는 아는 사람만 아는, 어디 가서 입에 올리며 젠체할 수 있는 단어였다. 물론 이러한 시절이 한국에서 막을 내리게 된 것은 지난해 엠넷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방송계를 뒤흔들며 한국에서 때아닌 춤바람이 불던 때. K팝 뮤지션의 백업 댄서에 머물던 이들이 방송을 통해 주인공으로 당당히 주목받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들이 창작한 안무를 일컫는 코레오그래피라는 단어가 유행어로 떠돌기 시작했다. 사실 코레오그래피는 광범위한 범주를 포괄하는 단어다. 그 기반이 되는 춤의 장르를 불문하고 코레오그래피는 모두 ‘안무’라 바꿔 부를 수 있는데 코레오그래피의 비평적 개론서라 불리는 안드레 레페키의 저서 <코레오그래피란 무엇인가>를 펼치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들이 춤이라기보다는 ‘안무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안무적인 것이란 미리 짜인 스텝들이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편집광적으로 실행됨으로써 드러나는 것이다.” 즉 코레오그래피에 있어 핵심은 음악에 맞는 춤을 짜임새 있게 만드는 일, 다시 말해 ‘안무’라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코레오그래피를 말할 때는 주로 그 개념이 비보잉, 팝핑, 락킹 등 스트리트 댄스 기반에 국한된다. 그렇다면 스트리트 댄스와 코레오그래피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선 2014년 댄스 스튜디오 ‘원밀리언’을 설립하며 국내외 코레오그래피 문화를 주도해온 안무가 리아킴이 입을 열었다. “사실 처음 코레오그래피란 용어는 한국에서 댄서들을 구분하는 목적으로 쓰였어요. 배틀과 프리스타일을 중심으로 왁킹 등 정해진 장르를 추는 이들을 스트리트 댄서라 불렀고, 가수들의 안무를 짜고 방송 무대에 서는 이들을 방송 댄서라 불렀죠. 그 둘의 중간쯤 어딘가에 코레오그래피라고 부르는 신이 있었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스트리트 댄스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안무가 자기만의 스타일로 곡에 안무를 짜서 ‘쿠킹’하는 이들을 코레오그래퍼라 했죠.” 리아킴은 그가 ‘원밀리언’을 설립하던 2~3년 전부터 국내에서 코레오그래피란 단어가 댄서들 사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는 국내에서 스트리트 댄스가 강세이던 시기였고, 멀리 해외에서 바다 건너 수입된 이 장르는 초창기 ‘어반 댄스’라고 잘못 불리기도 했다. “당시 ‘어반 댄스 캠프’라는 세계적인 댄스 기관이 있었거든요. 그곳에서 키오니 앤 마리, 카일 하나가미, 코하루 스가와라 등 스타 안무가가 부지기수로 나왔어요. 그 사람들의 독창적인 안무에 한국의 안무가들이 큰 영향을 받았는데 ‘어반 댄스 캠프’를 통해 본 안무이다 보니 이를 ‘어반 댄스’라 부르기 시작한 거죠.”

지금처럼 코레오그래피가 뜨겁게 떠오를 수 있던 배경에는 유튜브 등 영상 매체의 발달이 자리한다. 어쩌면 유명 국제 대회에서의 입상과 배틀 참가, 즉 ‘현장성’에 많은 것이 달린 스트리트 댄스와 달리 창작자 개인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만든 독창적 안무를 뽐내기만 하면 되는 코레오그래피는 영상 매체에 보여주기 적합한 장르였다. “원밀리언도 유튜브 플랫폼 중심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설립 이듬해인 2015년 채널을 개설했는데,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100만 구독자를 돌파했죠. 유튜브가 코레오그래피 붐의 시작이었다면 틱톡, 릴스의 등장은 이를 대중화한, 나아가 그 누구든 코레오그래퍼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사건이었죠.” 지금의 코레오그래피 유행이 두 바퀴가 열심히 굴러가 만들어진 결과라면, 그중 하나는 단연 방금 리아킴이 말한 다양한 영상 기반 플랫폼의 등장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바퀴는 다름 아닌 사람, 즉 이 장르를 안착시키려 노력해온 코레오그래퍼들이다. “지금이야 스타 안무가가 탄생하고 그들의 활동 범위가 TV, 광고, 매거진 등으로 넓어지면서 팬층이 생기고 수입 기반이 탄탄해졌지만 제가 처음 안무가로 활동했을 당시만 해도 사람들의 인식이나 코레오 신의 시스템이 굉장히 후진적이었어요. 가장 시급한 건 체질 개선이었어요. ‘춤추는 사람=양아치’라는 등식을 깨고 싶어서 저희 스튜디오 안무가들에게 옷차림, 메이크업의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줬고 대중적인 선곡을 통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안무를 선보이고자 했어요. 쉽게 말해 저희 스튜디오가 맥도날드같이 문턱이 낮은 곳이었으면 했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코레오그래피를 알리고자 했죠.”

그는 또 하나 큰 변화의 계기로 계약서 기반의 에이전시 시스템 도입을 꼽는다. “예전에는 ‘친목’, ‘콜라보’를 명목으로 안무비를 지급하지 않는 문화가 만연했거든요.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면 “친하니까 그냥 해줘”란 답을 들어야 했고, 그 제안을 거절하면 “돈 밝히는 년”으로 낙인 찍혔죠. 사실 안무가 대 클라이언트 관계를 떠나 안무가들 사이에서도 서로 안무 창작을 돕는 과정에서 따로 페이를 요구하지 않았어요. 정당한 페이를 주고받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다른 비즈니스 업계에선 당연한 건데 정작 이 신에선 그게 없었던 거죠. 이런 에이전시 시스템을 처음엔 안무가들조차 엇갈린 시선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정착돼서 안무가 중심의 연예기획사도 생겨나고 있잖아요. 이는 무엇보다 안무가들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예요. 안정적으로 수입이 보장되어야 그들이 좋아하는 안무를 계속할 수 있고, 그래야 신이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모든 연결고리의 끝에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있다. 한때 트로트가 그랬듯 잘 만든 방송 하나가 코레오그래피의 붐 업에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방송에 출연했던 안무가들이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것은 물론, 앞서 말했듯 안무가 중심의 연예기획사 생겨났고 안무가를 직업으로 꿈꾸는 ‘코레오 키즈’들이 생겨나며 코레오그래피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워크숍이 개설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붐 업의 순기능 중 또 하나는, 바로 이 신을 둘러싼 낡은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생기고 그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는 점이다. 안무에 대한 저작권을 보호받기 어려운 사각지대를 어떻게 해결할 건가? 일부 연예기획사에서 음원 창작자로서의 권리라는 명목으로 안무가 크레딧을 삭제하고 외부에 자신의 안무임을 발설하지 못하도록 하는 블라인드 정책이 과연 정당한가? 등등. 아직도 코레오그래피가 가야 할 길은 멀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만든 엠넷은 올해 여름 그 후속 프로그램 <스트릿 맨 파이터>를 방영할 계획이다. 전작이 코레오그래피 열풍을 만들었다면, 후속작은 그 열풍을 순풍으로 바꿔 코레오그래피를 보다 건강하게 항해하게 만드는 조각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