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한 전통

W

단순한 장식의 목적을 넘어 예술적 표현으로 영역을 확장해온 현대 장신구의 세계에는 친숙함과 낯섦이 공존한다. 노리개와 가락지, 비녀 등의 전통 장신구를 21세기 버전으로 재해석한 공예가들을 만났다. 

지난 12월 10일부터 23일까지, 통의동에 있는 아름지기에서 열린 '연리지 : 둘이서 하나이 되어' 전시 풍경. 노리개를 결혼식날 입을 만한 한복에, 또 노리개나 그것에서 분리한 브로치를 현대 의상에 매치해 전시했다.

지난 12월 10일부터 23일까지, 통의동에 있는 아름지기에서 열린 '연리지 : 둘이서 하나이 되어' 전시 풍경. 노리개를 결혼식날 입을 만한 한복에, 또 노리개나 그것에서 분리한 브로치를 현대 의상에 매치해 전시했다.

지금 우리가 몸에 취하는 ‘블링블링’한 것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슴 의 뼈로 만든 머리 장식, 조개로 만든 팔찌, 흙을 구워 만든 귀고리, 청동이나 옥류를 활용한 목걸이 등이 있다. 인류의 유구한 장식 욕구를 드러내는 증거물이 있는 셈이다. 오랜 세월 장신구는 신분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기 위해 쓰이기도 했으니, 그 작은 조형물에 얽힌 문화 역사적 함의는 과거에 더 복잡다단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최근, 국내 장신구 작가들이 굴지의 국제 공모전과 해외 공예 갤러리 등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예와 디자인, 순수미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흐름 속에서 공예를 말할 때 ‘쓰임새’와 ‘오브제로서의 가치’가 동시에 오르내리는 모습도 봐왔다. 그 속에서 단순한 장식의 목적을 넘어 예술적 표현으로 영역을 확장해온 현대 장신구의 세계에는 친숙함과 낯섦이 공존한다. 12월, 그 세계의 한 면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전통 장신구를 재해석해 새로운 장신구를 선보인 <연리지連理枝 : 둘이서 하나이 되어>(12월 10일부터 23일까지, 아름지기 재단 사옥)이다.

지난 12월 10일부터 23일까지, 통의동에 있는 아름지기에서 열린 '연리지 : 둘이서 하나이 되어' 전시 풍경. 노리개를 결혼식날 입을 만한 한복에, 또 노리개나 그것에서 분리한 브로치를 현대 의상에 매치해 전시했다.

지난 12월 10일부터 23일까지, 통의동에 있는 아름지기에서 열린 '연리지 : 둘이서 하나이 되어' 전시 풍경. 노리개를 결혼식날 입을 만한 한복에, 또 노리개나 그것에서 분리한 브로치를 현대 의상에 매치해 전시했다.

한국의 현대 예술 장신구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매년 공예전을 기획 및 후원해온 푸른문화재단은 ‘상반된 두 요소의 만남’을 실마리 삼아 전시와 작업을 풀었다. 전통과 현대, 남자와 여자, 특별한 날과 일상적인 날의 어우러짐. 전시는 ‘노리개, 예식과 일상’ 그리고 ‘커플링, 약속의 증표’라는 테마로 구성되었고, ‘연리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사랑’을 뿌리 삼아 새로 자라난 가지와 잎처럼 새로운 장신구들을 펼쳐놓았다. 한복 저고리의 고름이나 허리춤에 차던 패물, 또 예물이었던 노리개가 21세기에 착륙하면 어떤 모습일까? 전통 혼례 문화의 가락지로부터 이어진 커플링이 백화점마다 자리한 주얼리 브랜드 매장이 아니라 금속공예가의 손에서 태어난다면, 세상에 단 하나뿐일 그것은 어떤 의미와 모양을 지니고 있을까? 전시의 메인이 된 노리개를 네 점씩 작업한 작가들은 한복용 노리개와 양장용 장신구(브로치와 목걸이 등)로 호환 가능한 것을 창작하는 미션을 받아들었다. 전통 한옥과 현대 건축이 조화를 이룬 아름지기에는 우리가 알던 노리개와는 다른 노리개가 벽면을 따라 액자 속에, 혹은 디자이너의 의상에 어우러진 채 자리 잡고 있었다. 총 34명의 작가가 참여한 <연리지連理枝 : 둘이서 하나이 되어>에는 전시의 결에 맞는 비녀와 시계, 도자 작품 등도 함께 전시됐다. 이 중 7명의 작가를 만났다. 그들은 공예가라는 공통의 이름으로도 불리지만, 그 작업 세계에는 손과 몸의 노동이, 재료에 대한 애정과 천착하는 자세가, 아이디어와 스토리텔링이 각자의 색대로 깃들어 있다. 패션 매거진에서는 ‘액세서리’ 내지 ‘주얼리’라고만 부르던 것을 ‘장신구’라고 호명하니 그 언어의 기운부터 사뭇 색다르다.

배준민 + 노리개

브로치를 위주로 목걸이나 귀고리 등을 선보이는 배준민의 작업은 대개 한 손에 쥐어지는 작은 조각들이 장신구로 발전한 형태다. 그 작은 조각들의 표면은 일일이 붙인 1mm의 점들로 채워진다. 미시 세계에 관심이 많은 작가의 손에서 정돈되거나 자유롭게 흩어진 점을 통해 하나의 작은 우주가 탄생한다. 

매듭 장인이 작업한 매듭과 술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다. ‘낙지발’ 술이 달린 노리개. 배준민은 오브제에 작은 필름들을 붙여 ‘점’을 만든다.

매듭 장인이 작업한 매듭과 술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다. ‘낙지발’ 술이 달린 노리개. 배준민은 오브제에 작은 필름들을 붙여 ‘점’을 만든다.

<W Korea> 당신의 작품이 장신구라는 걸 알지 못한 채 접하면, 동글동글한 형태의 작은 오브제들처럼 보인다. 백혈구나 적혈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봤을 때의 생김새가 이럴까 싶기도 한데, 어떤 모티프에서 시작된 작업인가?
배준민 미시 세계의 이미지에 관심이 많다. 모든 사물에는 현미경을 통해 작은 부분을 다시 확대해야만 눈에 보이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즉흥적이고 추상적인 내 조형 작업은 미시 세계의 시각적 데이터들이 머리에서 재조합된 결과다. 평소 과학 잡지나 현미경으로 관찰된 세계에서 많은 소스를 얻는다. 곤충 무늬의 미시 세계 이미지는 우리가 아는 그 무늬라고는 상상할 수 없이 다른 형태일 때가 많다. 바이러스나 세포처럼 우리가 육안으로 모양을 알 수 없는 것들에도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배열된 섬세한 구조가 있고. 그런 것들을 패턴화해서 시각적으로 구조화하는 작업을 한다.

작업들에서 일관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점’이다. 점은 어떤 의미인가?
내가 구현하고 싶은 시각적인 패턴화의 도구로 점이라는 표현 방식을 썼다. 그저 매끈한 상태의 무엇을 보면 미완성 같고, 그 표면을 채우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조각들에 점을 붙이면 점들이 형태를 감싸면서 매끈한 공간을 채워가는데 그 과정에서 희열을 느낀다. ‘여백의 미’ 같은 건 내 성향이 아닌가 보다(웃음).

<연리지 : 둘이서 하나이 되어> 전시를 위해 ‘전통과 현대’를 하나의 작품에 어우러지게 구현해야 했다. 노리개 작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노리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노리개와 브로치를 분리해 브로치 단독으로도 착용할 수 있게끔 작업하기.’ 이것이 주어진 미션이었다. 그런 노리개가 세상에 없기 때문에 재밌는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작업에 사용하는 주재료가 폴리머 클레이라는 플라스틱의 일종인데, 공예에서 보편적으로 쓰이진 않는다. 이 현대적 재료와 전통적인 장신구를 잘 결합해볼 만했다.

폴리머 클레이는 어떤 특성을 가진 재료인가?
보통은 아이들의 교구 재료로 많이 쓰인다. 가공하기 전의 재료는 지우개처럼 생겼고, 아주 다양한 색으로 존재해서 그것들을 섞어 원하는 색을 만들기도 한다. 자유롭게 반죽해 형태를 만든 후 오븐에 구워야 플라스틱처럼 단단해진다. 문제는 굽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은 타거나 덜 익는 식으로 변수가 생긴다는 점이다. 재료를 공급하는 회사에 문의해도 명쾌한 답을 얻을 수가 없어서, 아예 이 재료 연구를 논문 주제로 삼았다. 반죽의 두께별, 크기별로 알맞은 굽기 온도와 시간을 실험해 나만의 데이터를 만든 후로는 형태를 보다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 말랑말랑한 상태의 반죽을 원하는 형태로 잡아내기 위해 실리콘 몰드를 이용한다. 조각 하나하나의 부피가 있어 보이지만, 밥그릇처럼 속은 비워진 상태다. 장신구는 무게가 가벼워야 하기 때문이다.

장신구란 스타일링상의 플러스 요소인데, 작가의 예술품과 ‘멋’을 위한 상품은 어떻게 다를까?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사실 작업할 때는 작품을 만든다거나 전시에 출품한다는 생각을 하지, 상품이나 판매 개념을 크게 생각하진 못한다. 그래서 아예 상품 판매를 목적으로 한 기획전에 참여할 때가 있다. 놀라운 건 그런 기획전을 할 때면 예상보다 많이 판매된다는 점이다(웃음). 특히 20대 고객이 많은데, 획일화되지 않고 희소성 있는 무엇을 찾는 듯하다. 나 역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종종 구입한다.

아름지기에서의 이번 전시 전, 가장 최근에 스웨덴 예테보리의 Four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했다. 어떤 인연으로 이뤄진 전시인가?
2020년에 독일의 바이에른 공예협회상(BKV-Prize)이나 미국의 아트 주얼리 포럼(AJF Young Artist Award)에서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되는 등 유독 상복이 있었다. 수상자 전시를 할 때 나는 가보지 못하고 작품만 보냈는데, 그런 자리에서 각 나라의 갤러리스트가 자기 갤러리에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가져가면서 여러 도시로 알려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국의 장신구 작가들이 유럽에서 꽤 뜨거운 주목을 받는다고 들었다.

장신구 디자인의 다채로움이나 문화에 있어서 한국과 해외의 차이를 느끼기도 하나?
얼마 전 공예트렌드페어에 갔을 때 커플링 부스를 기획한 작가와 잠시 얘기를 나눴다. 독일에서 오래 활동한 작가인데, 유럽에서는 결혼을 앞둔 커플이 자연스럽게 공방에 가서 원하는 디자인의 커플링이나 주얼리를 맞춤 제작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결혼이라는 특별한 이벤트를 앞두고 둘러보는 코스가 거의 정해져 있는 면이 안타까워서 공예페어 내에 그런 기획 부스를 마련했다고 들었다. 해외에서는 공예 작업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재료를 이용한 장신구도 자주 눈에 띄는데, 그건 만드는 사람이나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 재료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기에 가능할 것이다.

공예 작품으로서 장신구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장신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건 장신구가 기능을 떠나 작은 조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각 예술작품의 축소판 같달까?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전 세계 장신구 작가들 사이에서 과감한 스타일이 유행했다. 몸을 휘감을 정도로 엄청나게 큰 장신구가 등장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예술의 성격이 강하고 누군가 실생활에서 착용할 수는 없는지라 점점 사라진 거로 안다. 여느 예술품과 달리 장신구는 소유하고 착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착용함으로써 내 취향을 드러내고, 누군가 그걸 쳐다보고 물어보면서 대화가 시작될 수도 있다.

김희주 + 노리개

김희주는 현대의 금속공예 기법인 전해주조와 전통 기법인 칠보를 엮어 새롭고 독특한 미감의 장신구와 식기를 만든다. 과거와 현대가 만나고, 도금과 장인 정신이 결합하면, 일반적으로 금속이라는 것에 기대할 수 있는 물성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와 질감이 탄생한다. 

매듭 장인이 나비 매듭과 술로 마무리한 노리개에 김희주의 노란색 은방울꽃이 피었다. 세로 형태로 달려 있는 꽃은 떼내어 목걸이로 착용할 수 있다. (은방울꽃 노리개 DREAM CAME TRUE, A LILY OF THE VALLEY, 동, 은, 칠보, 견사.)

<W Korea> 이번 전시를 위해 어떤 상상력을 펼쳤나?
김희주 서로 피부처럼 친밀해진 사랑을 연상했다.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구분할 수 없었던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말이다. 네 점 중 메인 작품에는 꿈속에서 꽃이 가득한 정원을 함께 날던 두 마리의 나비는 하나였고, 꿈에서 깬 후에도 결국 하나였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노리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영감의 실마리는 어디서부터 풀었나?
노리개는 섬세하고 호화로운 장신구이기도 했지만 예부터 부귀다남이나 불로장생, 백사여의(百事如意) 등 기복과 염원을 상징했다. 시대마다 다른 여인의 행복관을 엿보는 점도 재미난 부분이다. 각각 금슬 좋은 부부와 순결한 사랑, 지고지순한 사랑을 뜻하는 나비 한 쌍, 은방울꽃, 금낭화를 주체로 작업해 탈착하는 브로치나 목걸이형태로 결합했다. 전통 매듭 장인과 협업해 주제에 어울리는 나비 매듭과 술로 마무리하는 과정도 신선했다.

처음 시도한 노리개 작업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노리개는 띠돈과 주체, 매듭, 술이라는 요소로 나뉜다. 귀금속과 보석으로 화려한 포인트가 되는 중심부의 주체와 갖가지 매듭과 술을 조합해 오브제가 완성된다. 독특하고 영리한 장신구다. 서양의 경우 장신구 뒤판에 핀을 연결해 잠그는 브로치 형태로 발전했다면, 노리개는 고리의 띠돈으로 저고리나 허리 치마에 걸어 매단다. 착용법이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두 번째 개인전 <UniverShell>과 작업이 이어지는, 전해주조와 칠보를 켜켜이 쌓아 장신구를 표현하는 독특한 기법이 인상적이다.
일명 ‘도금’이라 불리는 기법이 전해주조다. 대량 생산되는 저가의 주얼리에 귀금속을 덧입히는 데 주로 쓰인다. 현대 도금 기법인 전해주조를 활용해 금속 겹을 쌓아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전통 기법인 칠보와 옻칠을 겹겹이 쌓아 색을 올린 뒤, 표면을 갈아내 색을 찾아 장신구를 완성한다. 푸른 황산 용액이 든 수조 안에서 전기 분해된 금속 입자들이 새로운 몸에 쌓여 피막을 형성하는 전해주조 과정에서, 탄생과 죽음이 순환하는 흐름을 발견하곤 한다. 마치 푸른 대양에서 자라나는 진주나 산호 같은 자연 현상처럼 말이다.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HEEJOO KIM’의 영상이 흥미롭다. 그 영상들이 작품의 에스키스 노트인 셈인가?
팬데믹 시대다 보니, 작품을 해외에 소개할 땐 주로 화상회의를 연다. 그때 작품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만든 짧은 필름이다. 수집한 영감과 제작 과정,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엮었다. 작품을 텍스트로 규정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소개하고 싶었다.

당신의 흥미를 끄는 장신구의 가장 빛나는 가치를 꼽는다면 무엇일까?
촉각성이야말로 공예의 근간이다. 조형 예술의 성격을 띠지만 결국 직접 만지는 게 장신구다. 제한적인 크기와 무게, 착용을 위한 메카닉적인 고민이 더해져 종합적인 예술이 된다. 영리하고 기민하게 생각해야 예술적 표현과 기술적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공예 작가로서 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은 언제인가?
매 순간 보고 느끼는 것을 추상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작가로서 제일 즐겁다. 가치관과 미의식은 시시때때로 변하지만, 그것을 예민하게 캐치하고 드러내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다음 계획이 있는가?
지금 연구 중인 기법으로 세 번째 개인전을 준비 중이고, 매년 참가한 뮌헨 주얼리 위크에 작품을 보낼 계획이다. 식기류도 주작업 중 하나다. 암스테르담의 크리에이티브 콜렉티브인 ‘스테인베이서르(Steinbeisser)’에서 주최하는 ‘특별한 식문화(The Experimental Gastronomy)’에 그릇을 출품하려 준비 중이다. 유명 셰프의 음식과 아티스트의 독특한 그릇이 만나는 이 흥미로운 이벤트에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순간을 기대한다.

박주형 + 노리개

차가운 금속과 따스한 나무. 공예가 박주형의 조형 언어 속에선 서로 반대되는 금속과 나무의 물성이 만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녀는 나뭇결과 금속의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독특한 형태의 노리개를 선보였다. 

전시 주제에 따라 정자와 난자를 떠올렸다는 박주형은 여기에 ‘일심동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나무라는 소재도 노리개가 된다. (일심동체 ONENESS, 호두나무, 참죽나무, 편백나무, 옻칠, 정은.)

<W Korea> 금속과 나무, 서로 반대되는 성질의 재료를 과감하게 결합한 계기가 있나?
박주형 금속을 전공하고 국내에 들어와 우연히 나무 조각을 손에 쥔 적이 있다. 금속은 같은 형태로 얼마든지 복제가 가능한 반면, 같은 나무의 조각이라 할지라도 평생 쌓아온 저마다의 결을 보여주는 나무가 색다르게 다가왔다. 처음 구상한 디자인이 있어도 나뭇결이 주는 느낌에 따라 작품도 변한다. 이런 온기도 매력적이다. 요즘은 나무와 빈티지 커틀러리가 결합된 식기 도구와 오브제 ‘Moment, Pleasure’ 시리즈와 나무를 조각하고 태우는 기법으로 장신구 작업을 하고 있다.

<연리지 : 둘이서 하나이 되어>전에서도 원형의 나무에 뾰족한 형태의 금속을 더한 노리개를 선보였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같은 꿈을 꾸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난다면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하지만 만났다 한들 하루아침에 한마음이 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성질의 두 사람이 만나 짝을 맞추어 살다 보면 불편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싸우고, 마음 상하고, 이해하고, 노력하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은 필수 불가결하다. 시작은 서로 달랐을 두 나무가 끝에는 한 몸이 되어 서로에게 기대는 연리지목처럼 일심동체의 험난했을 과정을 상상하며 정자와 난자를 표현했다.

노리개는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물이 아닌데, 작업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엄마의 혼수인 폐물 노리개를 빌려와 살펴보고, 한복과 노리개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며 전통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예전부터 규방 공예인 매듭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 작업 때 매듭 디자인을 급히 변경하면서 매듭 장인과의 협업이 아닌, 직접 작은 매듭에 도전하게 됐는데 그 과정도 흥미로웠다. 앞으로도 찬찬히 매듭 분야를 들여다보고 싶다.

공예의 저변 확대를 위해 소리 내고 싶은 부분이 있는가?
해외에서는 공예 작품을 작가의 생각과 노력, 공들인 시간으로 가치를 인정해주는 반면, 국내에서는 재료로 값을 매기려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종이나 나무가 왜 이리 비싸냐는 물음처럼 말이다. 하지만 같은 작품을 해외에서 전시하면 ‘한국의 공예품은 가치에 비해 저렴하다’는 반응을 얻곤 한다. 이런 간극이 줄어드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향후 계획을 소개한다면.
세계의 저명한 요리사와 예술가가 협업하는 프로젝트 ‘특별한 식문화(The Experimental Gastronomy)’에 참여한다. 최고급 채식 요리법과 개념적 식기 디자인을 접목해 음식을 새롭게 경험하는 실험적 이벤트로, 70여 만원 하는 디너 코스 티켓은 금세 매진될 정도로 인기다. 이 행사가 열리는 암스테르담으로 나무 수저 수십 개를 보내기로 했는데, 팬데믹으로 행사가 연기된 상태다. 김희주 작가를 비롯해 한국의 공예 작가들과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이 참여할 예정이다. 무사히 재개되길 바라고 있다.

이영임 + 노리개

이영임은 집요하게 조탁한 견고함을 바탕으로 외려 동적이며 유연한 장신구를 만들어내는 장신구 작가다. 그녀는 옛것과 현대적인 것,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가며, 투각 기법을 이용한 조형적인 작업과 움직임을 주는 작업을 겸하려고 한다. 

5개 구가 달린, 이영임의 노리개 겸 목걸이. 현대 장신구와 전통 매듭이 만나 의외성을 연출한 아이디어. (공존 N COEXISTENCE N, 정은, 옥, 아세테이트, 견사.)

<W Korea> 이번 전시를 위해 노리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때 어떤 부분에 초점을 뒀나?
이영임 노리개는 장신구 작가에게도 익숙지 않은 전통 장신구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보다 현대 장신구를 노리개로 만들었을 때 어색함 없이 전통미와 조형미를 아우를 수 있는 디자인을 떠올리기가 쉬웠다. 요즘은 노리개를 한복을 입는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 볼 수 있다. ‘원’과 ‘구’는 좋은 날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착용하는 장신구에 ‘하나가 된다’라는 의미까지 담기에 제격이었다.

노리개 작품명에 모두 ‘공존(Coexistence)’이라는 단어를 담은 게 인상적이다.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일단 전통 장신구인 노리개와 현대 장신구의 공존을 의미한다. 또 장신구는 보통 외형만을 강조하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내부까지 공유할 수 있게 해 ‘안과 밖이 공존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재료를 완전히 뚫거나 도려내 표현하는 ‘투각(openwork)’ 기법을 적용했다. 평면은 레이저 커팅이 가능한데, 구는 수작업만 가능하다. 무려 5개의 구가 있는 노리개 겸 목걸이를 만들면서 2주 가까이 파스로 등을 도배하고 밥 대신 근육통 약을 먹을 정도였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기계로는 불가능한 수공예만의 맛을 낼 수 있어 행복했다.

금속 자체가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다. 금속에 대한 애착이 엿보인다.
금속은 정확한 값으로 도출해낸 특유의 견고함에 오묘하고 은은한 빛깔이 담겨 있다. 특히 정은(sterling silver)은 순은, 백금, 알루미늄과 비슷한 색을 띠지만, 엄연히 다르다. 단단하고 강하면서도 한없이 부드럽고 연약한 느낌이 있다. 계속 색다른 영감을 떠올리게 하는 재료다. 한때는 나무, 플라스틱, 패브릭 등 여러 재료를 다뤄야 하나 고민에 빠진 적도 있다. 하지만 금속만 오롯이 다루는 작가도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결국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건이었다. 금속을 더 깊게 파고들어서 물성을 도드라지게 할 수 있는 작업 방식을 찾았다.

치열하게 고민했을 작업 방식이 궁금하다.
일단 단단한 덩어리 느낌을 살렸고, 구, 큐브 등 기하학 형태를 장신구라는 작은 공간에 밀도 있게 재배열했다. 열을 가하지 않고 금속을 결합하는 ‘리베팅(riveting)’ 기법은 움직임이 가능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 색감과 형태 변이가 가능해 착용하는 사람에게 재미를 준다. 이로써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까지 유도하는 능동적인 장신구로 거듭났다. 2018년에는 보이지 않는 형태까지 드러내자는 생각을 했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투각 기법을 적용했다.

공예가인 당신을 매료시킨 공예 작품만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쓰임’이 있다는 것이다. 회화나 조형물보다 뚜렷한 기능과 역할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이 좋은 주인을 만날 때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사람과 만나 그 가치를 더하기를 바란다.

작품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대표적인 과정이 판매다. ‘작품’과 ‘상품’ 사이의 딜레마가 생기진 않는가?
예전에는 그 둘을 구분했는데, 점점 그 경계가 허물어졌다. 특히 요즘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가 달라진 것을 체감하고 있다. 마음에 들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소장한다. 며칠 전, 해외의 공예 숍에서 스웨덴의 한 컬렉터가 나의 예전 작품 여러 개를 구매했다고 연락이 왔다. 만든 시기나 스타일에 상관없이 작품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게 신기하고 기뻤다. 다만 이것도 공예 숍이라는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가들이 꾸준히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과 기회가 필요하다.

민준석 + 비녀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유희를 찾아내는 금속공예가 민준석. 그의 작품은 감상자가 직접 작품을 움직여 새로운 시청각과 촉각적 자극을 발견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 움직임은 무용가인 아내를 위해 만든 비녀에도 적용됐다. 그는 비녀를 착용한 아내가 공연을 함으로써 작품이 발현하는 움직임의 세계가 더 넓어지길 기대하며, 금속공예와 무용의 협업을 꾀하는 중이다. 

민준석이 부인을 위해 만든, 쿨한 인상의 매끈한 비녀. 장난감 가지고 놀 듯이 비녀를 움직이면 구슬이 움직인다. (롤링 시리즈 머리 장식, ROLLING SERIES HAIR ORNAMENT NO.03, 정은, 합성루비.)

<W Korea>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비녀가 무용가인 부인을 위한 작품이라 들었다.
민준석 내 경우 기획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 것은 아니다. 기획이 진행되던 와중에 이전에 만든 ‘비녀 1, 2’를 본 기획자가 연락을 해왔고, 마침 ‘비녀 3’을 완성했던 터라 시기가 맞았다. 전통 장신구를 현대적으로 접근한 점과 무용가인 아내를 위해 만든 장신구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도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비녀를 현대적으로 푸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틀어 올린 머리를 풀어지지 않게 고정하면서 장신구 역할을 하는 것이 비녀다. 비녀는 착용 시 기능적인 부분이 머리카락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장식적인 디자인에 집중했다. 오브제에 설계된 길을 따라 작은 구슬이 구르고 하강하며 심상을 자극하는 ‘롤링 시리즈’ 의 연작으로 완성한 비녀다. 비녀는 실생활에서 쓰는 비녀와 관례용 비녀가 있는데, 직접 착용해야 하는 아내의 조언을 적극 수용하다가 관례용 사이즈로 커졌다. 역동적인 무대를 위해 가볍고 슬림한 사이즈로 고려했지만, 실제로 무대에서 돋보이려면 더 과감하고 화려해져야 하더라.

비녀 내부에 붉은 루비들이 있어서 비녀를 움직일 때마다 루비 구슬도 움직이는 게 특징적이다. 움직임의 메커니즘에 매료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주변을 돌아보면 세상은 움직임을 지닌 수많은 사물에 둘러싸여 있다. 빌딩의 회전문, 접이식 의자, 폴더블 노트북 등 형태는 다양하다.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움직이는 사물과 장난감에 흥미를 느꼈다. 작품을 구상할 땐 수학적인 도면을 그리고, 구조를 계속 변형시키며 속에 배치한 구슬의 운동에 주목한다.

회전판을 이용해 관람자가 직접 비녀의 움직임을 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자칫 위험 요소가 있지 않나?
움직이는 작품을 관람객이 손으로 직접 조작하도록 하면서 시각적인 자극과 촉각적인 만족감을 동시에 주고자 함이다. 작품을 구상할 때도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이번 전시의 ‘비녀 1, 2’처럼 돌아가는 물레 위에 설치하거나, 다른 전시에서는 오브제에 미세한 각도를 주고 설치해 작용과 반작용을 느낄 수 있도록 배치한다. 움직이는 작품과 그것을 움직이는 관람자가 만나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에 망가질지 모를 불상사까지 감안한다.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 졸업 이후 현지에서 교직과 작가 생활을 병행하다 국내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던가?  
미국에서는 너른 땅에서 작가가 점조직으로 활동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외국인이어서 제한된 지점도 분명 있었겠지만, 직접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소통할 작가와 관객의 밀집도가 약하다고 느꼈다. 그때보다 지금 한국에서의 작가 생활이 훨씬 더 역동적이라 느낀다. 상대적으로 활동 속도와 반응이 빠르고, 소통 통로도 다채롭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현광훈 작가와 젊은 공예가 그룹 ‘크래프토이(Craftoy)’의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젊은 금속공예 작가를 발굴하고, 금속공예 분야의 콘텐츠 다양화를 꿈꾸며 시작했다. 열댓 명의 작가가 저마다 개성을 담아 장난감을 베이스 삼은 작품을 선보인다. 미니어처, 키네틱, 게임 등 요소가 다양하다. 주제가 친숙하다 보니, 작가와 관객 간의 적극적인 소통 통로가 되곤 한다. 새로운 작가를 찾기 위해 대학교 졸업 전시회는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수고까지 꽤 즐겁다.

서예슬 + 커플링

장신구 작가 서예슬은 살아 있는 것이 오롯한 생명으로서 존재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구상한다. 그녀의 장신구에는 타자를 배려하는 다정한 마음이 깔려 있다. 주로 부드러운 펠트 소재를 이용해 작업하는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오랜만에 딱딱한 금속 본연의 물성에 집중했다. 

서예슬의 커플링 두 점. 6가지 사랑의 방식을 6개의 빛나는 모서리에 담거나, 몽글몽글하게 맺은 사랑을 금속으로 표현했다. (여섯 가지를 지닌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I THINK ABOUT LOVE WITH SIX FACES, 정은. 굳지 않는 마음 HEART THAT DOESN'T HARDEN, 정은.)

<W Korea> 펠트로 묘사한 동물과 나무, 천, 금속이 어우러진 브로치가 액자 안에 담긴 오브제 연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작품으로 건네고픈 이야기가 뭔가?
서예슬
동물과 인간이 이상적으로 공존하는 연결된 삶을 꿈꾼다. 작업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자극적 표현에 취약해 ‘고통의 시각화’ 에 피로를 느낀다는 점이다. 동물과 환경 보호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지만 ‘동물 복지’나 ‘동물성 먹거리’, ‘동물 실험과 학대’ 등 이 단어들이 가진 무게 때문에 이를 외면하고 싶은 이도 많을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거부감 없는 다정한 언어로, 부드럽게 에둘러 말하고자 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어울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상상할 수 있는 장을 열고 싶다.

<연리지 : 둘이서 하나이 되어>전이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김현주 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 <어울림의 정원>을 진행했다. 어떤 작품을 선보였나?
추구했던 ‘연결된 삶’이 동물에서 식물까지, 더 넓은 생태계로 확장됐다. 조형적으로 의미를 풀어내는 데 집착하지 않고 내가 만나고 싶은 풍경을 담아내다 보니, 초록이 우거진 숲과 어우러진 동물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연리지 : 둘이서 하나이 되어>전을 제안받고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렸나?
‘약속의 증표’로서 의미가 있는 반지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아끼는 법을 알려주고, 민감함에 공감하며, 잘 다듬어진 둥근 언어를 사용하고, 때에 맞추어 울고 웃으며, 어제와는 다른 익숙하지 않은 풍경으로 이끌어, 사랑의 뜻을 매일 경신하는 것. 커플링 두 점을 냈는데, 첫 번째 커플링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방식을 여섯 가지로 정리해 균형 잡힌 다이어그램 형태로 완성했다. 빛나는 작은 모서리 각각의 모양으로 사랑을 설명한다. ‘굳지 않는 마음’이라 이름 붙인 커플링에서는 몽글몽글하게 맺은 사랑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이번 전시작에서 힘을 준 부분이 있다면?
사랑에는 정성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알기에, 금속판을 두들기고 불을 써서 잇고, 검게 산화된 표면을 깨끗이 닦아내 꼼꼼하게 마감해야만 하는 까다로운 작업을 일부러 택했다. 이러한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이 참된 사랑을 위한 길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당신의 창의성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출발하는 편인가?
나는 느닷없이 아이디어가 뿅뿅 터지는 창의적인 사람은 아니다. 다만 호기심이 많아 주변을 두루두루 살피는 편이다. 주위에서 다양한 자극을 흡수해 상상하는 걸 즐긴다.

작가로서 공예 장신구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무엇이라 보는가?
인체에 착용하는 작은 조형물이 바로 장신구다. 꾸민다는 개념을 넘어, 소재나 만듦새, 착용했을 때의 무게, 편의, 미적 조합을 고려해 작가 저마다 세계관을 녹인 조형 언어를 창작한다. 이것만큼 집약된 흥미로운 예술 세계가 또 있을까 싶다.

현광훈 + 시계

기계적인 메커니즘으로 움직임을 연구하고, 금속으로 정교하게 설계한 시계와 카메라를 만드는 공예가. 현광훈은 개인이자 예술가로서 시계를 만들어내는 국내 유일의 인물이다. 그는 절대적인 질서와 규칙에 따라움직이는 시계 안의 세상은 완전함에 가깝다고 말하며, 반복되는 톱니들 사이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탐구한다.

국내 유일의 워치메이커, 현광훈이 만든 시계 두 점은 친구 부부를 위한 예물이다. (칼리버33 스켈레톤2 CAL.33 SKELETON II.)

<W Korea> 국내 유일의 ‘워치메이커’로 그동안 여러 미디어에서 당신의 작업을 조명했다. 어떤 작업을 하는지 소개를 부탁한다.
현광훈 워치메이커는 두께 1~2mm의 초침 하나, 나사 하나까지 직접 설계하고 디자인해서 하나의 시계를 온전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시계를 제작하는 도구까지 직접 만든다. 내 시계는 오로지 나에 의해 만들어진, 내가 꿈꾸는 완벽한 세상을 투영한다.

전 세계적으로 시계를 직접 만드는 장인이 모인 ‘독립 시계 제작협회(AHCI)’에 가입자가 서른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어떻게 해서 이 외로운 길을 걷게 됐나?
학부 시절 사진 관련 교양 수업을 들었다. 핀홀카메라를 만드는 과제를 보통 종이로 제작하는데, 나는 전공을 살려 금속으로 만든 것이 현 작업의 토대가 됐다. 핀홀카메라는 셔터를 수동으로 오래 열어 빛을 모은 다음 촬영하는 방식이라 주변의 공기와 시간의 흐름마저 필름에 몽환적으로 기록된다. 간혹 셔터 닫는 걸 잊으면 한 컷을 버리고 만다. 전자식으로 해결하면 쉽지만, 원시적이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살릴 보완법을 찾다가 우연히 스위스 시계 제작사의 다큐멘터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계의 메커니즘을 결합해 셔터를 자동화한 핀홀카메라를 만들기까지 2년 걸렸고, 그때의 관심이 자연스레 시계로 이어졌다.

남들이 걷지 않은 길을 가려면 정보가 절실할 텐데, 그 방법은 어떻게 찾았나?
국내에서는 시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없어 독학을 결심했다. 시계 제작자들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고, 그들의 작업대 위 장비와 도구를 기억했다가 이베이에서 찾아내곤 했다. 대부분 1900년대 중후반대의 물건을 고치고 분해하며 연구했다. 시계와 카메라를 제작하며 하나씩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성공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얻는다.

힘들게 익힌 기술을 SNS에 공개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서 놀랍다.
작업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겨도 어디 하나 물어볼 곳이 없었다. 나처럼 어딘가에서 워치메이커를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유한다. 작업을 공개하면 전 세계에서 피드백이 오는데, 왜 한글로 공개하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웃음). 유럽의 시계 학교 학생이 인턴십으로 내 공방에 찾아온 적도 있다.

<연리지 : 둘이서 하나이 되어> 전에서는 커플 시계를 선보였다. 실제 커플을 위해 제작한 결혼 예물이라고 들었다.
결혼을 앞둔 친구가 신부 측 부모님이 주신다는 명품 시계를 마다하고 직접 의뢰했다. 완성작에 이름과 결혼 날짜를 새겨 보냈다. 친구가 흔쾌히 양해해주어 그 시계를 이번에 전시하게 됐다.

순수미술에서 ‘아트 테크’란 용어가 익숙해진 지 오래다. 작품의 상용화에 대해 고민도 하는가?
한편에서는 공예 대중화를 위해 상품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또 좋은 공예 작품을 실생활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고 퀄리티를 높이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여론이 오히려 높은 퀄리티의 작업을 방해하는 건 아닐지 염려스럽다.

공예 작가로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산을 정복한 등산가가 다음에 오를 산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만큼 허탈한 일은 없을 것이다. 꾸준한 자기 계발과 연구를 한 자만이 지금 오른 산을 즐기고, 다음 정복할 산을 만날 수 있다. 스스로 숙제를 내고 그걸 풀어가는 과정이 즐겁다. 작가로서 참 다행이라 여긴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프리랜스 에디터
박소현
포토그래퍼
박종원, 최영모, 전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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