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가 가을 22 프레젠테이션 <잃어버린 테이프>.
90년대의 패션을 상상해보자. 해체주의, 미니멀리즘, 언더그라운드에서의 서브 컬처 등 기발하고도 다양한 아이디어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고개를 들던 시절이었다. 각자의 개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디지털 세상에서 90년대 패션과 문화가 다시 각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발렌시아가 가을 22 컬렉션은 한 VCR 테이프를 보내며 우리를 그 시절로 초대한다. 오랫동안 잊혀 있던, 먼지 쌓인 서랍 속에서 찾은 듯한 이 테이프의 이름은 <The Lost Tape>.
비디오 테이프를 재생하자마자 등장하는 나오미 캠벨, 이자벨 위페르 등 90년대를 풍미한 셀럽들은 완벽하게 90년대를 추억하게 한다. 룩에서 볼 수 있는 그런지 실루엣, 해체주의적 수트, 바지 위로 드러난 속옷 밴드도 ‘그 때 그 시절’을 회상시킨다. 좁은 백스테이지와 런웨이, 빽빽하게 채워진 객석들 역시 그렇다. 지금으로선 볼 수 없는 광경이기도 하다. (이 영상은 실제 쇼가 아닌, 하모니 코린의 감독 하에 의도적으로 촬영된 장면이다.)
그런가 하면, 분해 후 재조립한 빈티지 슬립 드레스, 쿠튀르에서 착안해 뒷면의 리본을 떼어내 스카프로도 연출할 수 있게 한 코트 등에서는 뎀나의 실험적 정신이 여전히 돋보인다. 수트는 앞뒤가 바뀌어 있고, 트위드 소재의 드레스 여밈 위치도 독특하다. 90년대 지갑에서 영감을 받은 버클 디테일의 린제이 백, 중앙을 벨트로 맨 듯한 웨이스트 백, 거대한 금속 체인이 눈길을 끄는 메트로 백 등 다양한 가방들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다. 동시에 이번 컬렉션에서도 지속가능한 패브릭, 업사이클링 가죽을 사용하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 편, 뎀나는 이번 컬렉션을 기점으로 자신의 퍼스트 이름인 ‘뎀나’만 사용하여 아티스트명과 본명을 구분해 개인적 생활과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구분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 콘텐츠 에디터
- 장진영
- 사진, 영상
- Courtesy of Balencia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