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나 가족이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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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시작이 운명이 되어 평생 가족으로 살아가는 이들. 서로가 서로의 행복이 되어주는 네 발 달린 친구들과의 해피 , 메리 홀리데이! 

배윤영 & 배윤지(모델) 

세 자매의 우당탕탕 일상 

어딜 가든 샴쌍둥이처럼 꼭 붙어 다니며 우애를 드러내는 자매 모델 배윤영과 배윤지. 자매가 사는 집 앞 골목길에 있는 배연식당에서 처음 만나 이름 지은 유기묘 연이가 배 자매의 일원이 된 지 곧 2년이 되어간다. 동생 윤지가 식당 앞에서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해 병원으로 직행했고, 탈수와 영양실조, 기생충 감염 등 온갖 병에 걸려 3일도 못 산다는 말을 들었지만 일단 집으로 데려왔다. 다음 날 다시 수액 맞고, 배불리 먹기를 2주간 반복. 회복 속도가 눈에 띄었고 그 시기를 넘기자 이후 건강하다 못해 건장한 체구가 됐다. 연이가 처음부터 살갑게 대했던 건 아니다. 동거한 지 석 달이 지나서야 외출 후 돌아온 자매에게 코 찡긋으로 반겨주고 슬금슬금 침대로 와 같이 잠을 자며 서서히 곁을 내줬다. 연이를 구조했을 당시 윤지를 따라 병원으로 온 어떤 동네 주민이 몰래 검사비를 내주고 가셨다는 훈훈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자기는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데려갈 순 없지만 이렇게라도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이렇게 연이는 자양동 주민들이 함께 살린 고양이가 되어 배 자매의 집에서 무럭무럭 크고 있다. 

이선영(헤어 스타일리스트) 

대모로 불리는 여자 

이선영은 패션계에서는 잘 알려진 동물 보호가다. 네 발 달린 친구들만 그녀의 다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동물들은 특별 대우를 받는다. 이선영의 집에는 고양이 네 마리가 산다. 어시스턴트 생활을 끝내고 처음 독립하던 28세에 죠스를 만났고, 보호소에 있던 콩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이들이 두 살이 됐을 무렵, 친구와 통영 여행을 갔다가 지금의 코야와 순신을 만났다. 녀석들의 이름은 아코야 진주 박물관에서 이순신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발견되어 붙인 이름이다. 여행도 내팽개치고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집으로 들인 후 지금까지 같이 자고 지낸다. 그러다 콩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남은 세 남매에게는 최근 쿵쾅(발이 커서)이가 자리를 채우며 다시 네 마리 고양이가 사는 집이 됐다. 구조했던 친구들 중 기억나는 스토리를 들려달라자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끝도 없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포에서 구출한 포미랑 바람이, 파주에서 만난 진이, SNS를 통해 발견한 흰둥이와 파랑이, 하반신 마비가 와서 요도길을 열어줘야 오줌을 쌀 수 있었던 산이, 교통사고로 척주가 망가져 움직이지 못했던 살구 등등… 그리고 힘겹게 새 삶을 찾은 아이들은 수많은 패션지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메이크업 아티스트, 셀러브리티, 매니저 등등의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눈에 띈 것부터가 살려고 했던 애들이었던 것 같아.” 살아갈 길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큰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이쯤 되면 금이야 옥이야 키울것 같은 아이들의 생일을 어떻게 챙겨주나 궁금해졌다. “언제 태어난지도 모르는 녀석들이 무슨 생일이야. 해마다 건강검진이나 해주면 되지.” 

조미연(헤어 스타일리스트) 

양주댁의 달달한 하루 

최근 조미연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입양 문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고등어, 베이지, 그레이, 졸리, 브레드로 이름 붙인 새끼 고양이들의 구조 당시 상태와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날이 좋아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한다. 집 차고에서 지내던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고양이가 낳은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들 세 마리가 발견된 게 시작이었다. 많이 아픈 아이는 하늘나라로 가기도 하고, 입양처를 찾는 사이 또 임신하는 바람에 보살펴야 하는 아이가 계속 늘어났다. SNS를 통해 도움의 손길을 보냈고, 다행히 모두 주변 사람들에게 입양을 보내 춥지 않은 겨울을 나고 있다. 유기견 센터에 물품을 보내거나 하는 일은 했지만 구조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건 아니었다. 그러다 2년 전 스튜디오 앞 폐건물에서 발견한 새끼 고양이를 치료하면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얘네들도 따뜻한 집에서 잘 쉬고 먹을 수 있는데…. 추워지는 날씨를 대비해 길냥이를 위한 집 짓는 일도 마쳤다. 그렇게 가족이 된 첫째 달이와 둘째 콤이는 뒷마당이 있는 양주의 집에서 끼니때마다 오는 다섯 마리 냥이들과 지내고 있다. 

이경은(스타일리스트), 최용준(건축 사진가) 

네 식구가 사는 법 

이경은과 최용준은 대학생 때 만나 한지붕 아래 같이 사는 사이가 되었다. 30대로 접어드는 지난한 시간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통과하는 동안 이를 지켜본 아이가 있다. 10년 전 압구정 로데오 술집 앞 쓰레기더미에서 울고 있던 탐이를 발견해 자취방에 데려오면서 새로운 생명과의 작은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녀석을 보고는 내가 미쳤구나 생각했단다) 탐이가 오고 나서야 고양이 알러지가 있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4년 뒤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선영이 구조한 고양이, 제리를 입양하면서 지금의 4인 가족 체제가 되었다. 성격적으로 정반대인 둘의 합사가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낯가림이 심하고 예민한 탐이와 행복지수가 높고 감정에 충실한 제리를 보면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들은 가족에 대한 개념도 바꿔주었다. 혈연관계나 혼인을 떠나 이루어진 공동체적인 삶. 아이들이 길에서보다 행복한 삶을 산다고 믿는 그들은 더 큰 범위의 입양에 대해 열린 생각도 갖는다. 요즘 부쩍 드는 걱정은 두 자릿수 나이가 된 탐이 생각이다. 충동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도 생명과 관련된 일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술김에 데려온 탐이와 둘째 제리는 오늘도 그들 곁에서 잠이 든다. 

이예진(W 패션 에디터), 신기오(그래픽 디자이너) 

갑자기 개 엄마가 된 사연 코로나 자가 격리 해제 날 처음 만난 로로. 포토그래퍼 김신애와 헤어 스타일리스트 조미연, 메이크업 아티스트 황희정은 우리 집으로 양주 벌꿀과 메론, 강아지 방석과 사료, 소변 패드 등을 한보따리 짊어지고 왔다.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일단 임시로 보호 하기로 한 이 아이는 더블유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경은이 로로 피아나 브랜드 화보(그래서 로로가 됐다) 촬영을 떠난 화천 딴산 유원지에서 구조됐다. 몇 주 전부터 혼자 돌아다닌다는 주변 상점 아주머니들의 얘기에 캠핑장에서 버려진 것으로 추정했고, 반려동물의 엄마 아빠로 구성된 촬영 스태프팀이 서울로 데리고 올라온 것이다. 각종 예방주사 미접종, 미중성화, 내장된 칩이나 어떤 정보도 없는 걸 보건대 주인이 잃어버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한 번도 생각지 않았던 반려견과의 생활이 시작됐다. 얘 때문에 마음대로 놀러 가지 못할까, 여행 가는 게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나는 이제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는 식당을 먼저 알아본다. 매일 보는 아이도 출근하면 뭐 하는지 궁금해졌다. 새로운 생명이 집 안에 불어넣는 오묘한 기운과 감정적 교류가 위대하게 다가왔다. 입양을 결심한 후에도 촬영 구조단은 여전히 장난감과 옷을 보내며 필요한 게 없는지 살핀다. 우리 집에서 지내지만 모두의 따스한 손길로 로로는 매일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있다. 

황희정(메이크업 아티스트) 

아픈 만큼 성숙해진 아이 

몇 번의 촬영 경험 때문인지, 모델이 체질인지 가장 의젓하게 포즈를 취하고 즐겼던 우리 구월이. 6년 전, 유기견 사이트를 보고 찾아간 곳에서 9월에 만나 구월이가 된 아이는 처음에 열댓 마리가 뭉쳐 있는 사료 박스 속에 들어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첫눈에 반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빠져버린다는게 이런뜻일까. 작고 마른 하얀 몸, 땡그란 눈망울에 그대로 사로잡혀 버렸다. 데려오고 이틀 뒤부터가 전쟁이었다. 강아지에게 치명적인 파보 장염과 홍역, 폐렴, 피부병 등등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로 병이 많았으니까. 많이 속상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할 때도 있고, 워낙 약한 몸이라 합병증이 염려되어 병원에서는 안락사를 권할 정도였다. 같이 사는 동안이라도 최선을 다해 보살피자 했는데 1년이 지나서야 몸에 올라오는 반점과 붉은 기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건강을 되찾았다. 생각해보면 식탐이 많아서 잔병치레에도 살아남은 거 같다. 아플 때도 힘겹게 배변판 위에 올라가 볼일을 보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기특하기도 하고 짠하다. 그저 지금까지 함께여서 다행이라고. 촬영이 길어져 자리를 오래 비울 때는 동네에 사는 모델 최아라가 와서 밥도 주고 산책도 시켜준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폼폼 모자가 달린 케이프를 입혀볼까. 아라도 놀러 오라고 해야지.” 

정수연(메이크업 아티스트) 

참을 수 없는 코카의 매력 

“애들이 잠시 외출한 사이에 견과류 8봉지를 뜯어 먹었어요. 거기에 강아지한테 치명적인 건포도와 마카다미아가 들어 있어 일단 구토시키고 응급실에 입원시켰어요. 촬영을 못할 것 같아요.” 촬영 이틀 전, 사고를 쳤다는 아이들의 문자를 받고 걱정이 앞선 때, 다행히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파리에서 사 온 감기약을 앞발로 이용해 뜯어버리고, 폴리백에 넣어둔 음식도 가뿐히 먹는 바람에 이제는 아이들을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는 게 다반사다. 치대고, 엉기는 활동량이 엄청난 코카 스패니얼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진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늘 에너지가 넘친다. “코카 키우는 엄마들이 유별나요.” 서로의 에너지는 서로만 감당하는 존재가 된 이들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첫째 곰돌이는 10년 전 이대 앞 ‘유기견 이야기’라는 비영리 단체 블로그를 통해 처음 봤다. 한눈에 반해 부산까지 내려가 데리고 왔고, 광주의 유기견 센터에서 둘째 얼루기를 만났다. 자신의 생활이 없어질까 봐 아이들을 반기지 않던 남편은 집 나가도 애들은 두고 가란 소리를 할 정도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입양 과정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은 더 끈끈한 커뮤니티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태원에 있는 동물보호단체, ‘유행사’에서 진행한 대전 유기견 캠페인에 동참하고, 거제도 촬영 갔다가 1미터도 안 되는 목줄에 채워진 말라뮤트를 서울로 데려와 좋은 주인에게 보내기도 했다. 샤넬 화보 촬영으로 충주에 갔을 때 만난 네리로 불리는 강아지는 현재 뷰티 에디터의 품에 살고 있는데, 곧 1년이 되는 기념으로 파티에 초대받았다고 멋쩍게 웃었다. 코카 엄마다운 왕성한 에너지와 활동력으로 살뜰하게 아이들을 챙기는 그녀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두 아이들과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간다. 올해 네 번이나 함께 제주도를 갔지만 이제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을 가자고 다짐하며 곰돌이와 얼루기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려 한다.

패션 에디터
이예진
포토그래퍼
김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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