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계절

W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멈춰도 패션의 시곗바늘은 부지런히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2022년의 희망을 담아, 새로운 계절을 노래하는 브랜드들의 봄 시즌 리조트/크루즈 룩 열전. 

Louis Vuitton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유토피아적인 비전을 담아 텔아비브 출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대니 카라반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인 ‘악스 마주’에서 펼친 루이 비통 크루즈 쇼. 니콜라는 파리 근교에 위치한 이 거대한 기하학적 구조물을 배경으로 우주와 일상을 혼합한 이미지의 프린트, 하이브리드 자카드로 만든 패브릭, 매혹적인 시각적 효과를 내는 자수 패턴을 응용해 완성한 대단히 실험적인 룩을 선보였다. 눈길을 끄는 색감과 신비로운 패턴, 본 적 없는 신소재가 이 특별한 공간과 어우러지며 디자이너의 미래적인 희망의 시선을 환상적으로 드러냈다. 

Balenciaga

가상 쇼장을 통해 복제된 듯 검은 옷으로 중무장한 관객들 사이로, 엘리자 더글라스가 컬렉션의 모든 룩을 입은 채 런웨이를 장식한 발렌시아가의 2022 봄 ‘클론(Clones)’ 컬렉션. 더 이상 오리지널과 변형된 것, 진품과 가품, 진실과 허구가 구분되지 않는 디지털 세계를 이야기한 발렌시아가는 구찌와 함께 두 하우스의 시그너처를 융합한 ‘해커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패션업계의 모방과 도용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소매가 짧아진 시그너처 파카와 푸퍼, 해체적이면서도 공학적인 테일러링 기술을 통해 완성된 드레이핑과 주름 드레스, 꽃무늬 그래픽 프린트의 코쿤 실루엣 아이템 등은 브랜드 특유의 아방가르드한 미학을 멋지게 드러냈다. AI 음성으로 낭송된 ‘라 비앙 로즈’ 가사와 미래적인 사운드트랙도 이러한 컬렉션의 무드를 배가했다.

Chloe

끌로에의 2022 봄 컬렉션은 오늘날 인류가 처한 기후 위기와 디지털 혁명을 위한 브랜드의 긍정적인 노력을 조망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오가닉 실크와 재활용 캐시미어 등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치는 소재로 컬렉션의 반 이상을 구성했다. 또 컬렉션의 일부는 국제 공정 무역 기구가 인증한 아칸조와 마노스 델 우루과이에서 생산했으며, 유엔난민기구의 ‘Made51’ 플랜에 참여해 전통 자수 공예 기술을 보유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여성들이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슈즈와 백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가죽은 ‘레더 워킹 그룹’의 인증을 받은 가죽 공방에서 조달되었으며, 데님 소재를 활용한 백은 이전 컬렉션에서 남은 재고 옷감을 활용하기도. 

Valentino

생동감과 활력이 넘치는 파리 마레 지구의 ‘르 프로그레 카페’에서 리조트 시즌 캠페인 촬영을 진행한 발렌티노. 다채로운 인물들의 무수한 관계가 맺어지는 이곳에서 독특하고 다양한 개개인의 정체성과 조우한 패션은 특별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아틀리에 장인의 노하우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미적 감각을 창조하는 개개인의 정체성과 다양성의 미학에 집중해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의 가치관을 반영했다. 또 선명한 아크릴 컬러에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 반짝이는 이브닝 드레스와 후드가 달린 스웨트셔츠, 트라우저 위에 겹쳐 입은 튜닉, 레이스나 남성적인 셔츠와 섞인 데님 등 쿨함과 로맨티시즘이 공존하는 발렌티노 특유의 미학을 집대성했다.

Stella McCartney

2022 봄 컬렉션을 맞이하는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시선은 사이버 펑크 코드를 향했다. 브랜드의 20주년을 맞이해 발표한 ‘A to Z 성명서(A to Z Manifesto)’ 중에서 ‘Youth’를 키워드로 Y2K 시대의 서브 컬처를 오늘날의 디지털 세대와 연결했으며, 레이버와 클럽 키즈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더했다. 친환경 메시지를 강하게 설파하는 그녀는 혁신적인 소재에 고도의 테크닉을 결합한 디테일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했다. 비건 소재 팔라벨라 토트백을 새롭게 재해석했으며, 구조적인 아우터 웨어와 드레스는 생동감 있고 가벼운 재활용 폴리에스테르 파유로 제작되기도. 또 조형적인 관점을 불어넣은 스쿠버 코르셋 등을 통해 2022년 봄의 사이버 펑크 비전을 신선하게 어필했다.

Dior

1951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배경으로 무슈 디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촬영한 다양한 사진 작품은 2022 디올 크루즈 컬렉션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전쟁과 지혜, 각종 기술의 여신 아테나를 열렬히 숭배했던 도시, 그리스 아테네의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 한가운데에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디올의 디자인 코드를 재해석하며 고대의 대리석 조각품을 연상시키는 그녀만의 튜닉을 공개했다. 무엇보다 현지 아틀리에 및 장인들과 교류하며 공동 창작 과정을 거쳐 핸드메이드 플리츠 등으로 완성된 룩은 모던한 아테네 여신을 연상시켰다. 한편 코즈모폴리탄 갤러리에 자리한, 서로 얽혀 있는 레슬링 선수의 몸을 형상화한 듯한 꽃병에서 영감을 받은 실루엣은 올림픽의 기원인 아테네의 스포츠 정신을 되새기며 젠더 구분을 초월하는 디자이너의 정신을 설파했다.

Moschino

모스키노의 2022 리조트 컬렉션은 역시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러미 스콧의 전매 특허, 바로 일상적인 소재를 통해 유머러스한 동시에 더없이 대담하고 파격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메시지 자체였다. 그는 카렌 엘슨을 주인공으로 한 모스키노 미니 뮤지컬 형식의 영상을 제작했는데, 그의 손길이 닿은 영상은 흥미로운 스토리와 배경으로 눈길을 끌었다. 형형색색의 단추가 달린 무지개색 일상복을 입은 그녀가 일하고 있는 레스토랑,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은 등에 모스키노라는 글자가 새겨진 대학교 스포츠팀 재킷을 입고 그녀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그뿐 아니라 밀크 아이스크림과 핫도그 등의 대중적인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위트 넘치는 룩은 화려한 컬러 팔레트와 함께 그가 이끄는 모스키노적인 요소를 모두 뒤섞어 보여주기도. 미니 뮤지컬 형태로 구성된 이번 리조트 컬렉션은 노래와 춤이 전부라고 외치는 스콧의 말처럼 오래된 할리우드 뮤지컬이 지닌 화려함과 흥분이 가득한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Max Mara

1950년대 이후 유럽 상류사회의 놀이터로 여겨진 이탈리아 남부 이스키아섬에서 막스마라의 2022 리조트 컬렉션이 열렸다. 그곳에서 펼쳐진 우아하고 화려한 여행의 황금기를 되새긴 막스마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안 그리피스는 트루먼 커포티의 책 <로컬 컬러(Local Color)>에 담긴 여행의 미학을 리조트 컬렉션에 풀어놓았다. 즉 과거 여행의 황금기처럼 한곳에 길게 머물며 그 장소와 진정으로 교감하는 여행을 재해석하며, 이 긴 여정을 함께하는 룩을 제안한 것. 화려한 젯셋(Jet set) 무드를 바탕으로 20세기 중반의 전형적인 실루엣에 스포츠웨어 요소를 더해 현대적이고 우아하면서도 실용적인 아이템들로 구성했다. 허리 라인 바로 아래에서 주름을 잡은 스커트, 산뜻한 슈트, 그리고 스포티한 코트 등이 브랜드 고유의 캐멀 컬러뿐 아니라 눈길을 끄는 핑크 컬러 팔레트와 함께 등장했다.

Givenchy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튜 M. 윌리엄스와 그래픽 아티스트 치토가 만나 ‘자유와 개성’에 대한 독창적인 스토리를 풀어낸 지방시의 2022 프리 스프링 컬렉션. 그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파리에서의 새로운 삶, 두 가지를 함께 보여주기 위해 파리 기차역 한가운데 철로 위에서 런웨이를 펼쳤다. 익숙한 것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고자 한 쇼, 그 중심엔 시애틀에서 태어난 멕시코계 미국인 아티스트 치토의 유쾌하고 대담한 터치가 고루 스며들었다. 특히 지방시 하우스의 상징적인 요소들과 함께 치토의 감성이 더해진 티셔츠와 재킷, 액세서리 등은 에센셜 아이템으로 디자이너의 섬세한 테일러링과 그래픽적인 미학을 선사하기도. 다양한 텍스처의 조합, 하드웨어와 체인과 메탈 비즈, 반다나 장식을 활용한 룩들은 쿨한 젠더리스 무드와 어우러지며 신선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주입했다.

Chanel

남프랑스 레 보-드-프로방스 마을에 위치한 빛의 채석장에서 펼쳐진 샤넬의 2022 크루즈 쇼.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는 가브리엘 샤넬의 친구이자 시인, 극작가, 나아가 영화감독이었던 장 콕토의 1959년 작품 <오르페우스의 유언>을 떠올렸다. 아방가르드하고 판타스틱한 콕토의 유작인 이 영화 속 분위기에서 영감을 받은 버지니는 1960년대 스타일의 모노크롬 컬러 대비를 활용했다. 프린지 장식의 스커트와 모델 롤라 니콘의 이미지를 넣은 프린트 톱, 리틀 블랙 스트랩리스 드레스와 주얼 스트랩 장식의 캐시미어 피쉬넷 톱으로 록과 펑크의 반항적인 분위기를 강렬하게 담은 것. 한편 크로셰 브레이드 장식을 넣은 핑크와 블랙 슈트에서는 샤넬의 상징적인 트위드를 모던하게 표현하며 대담하고 열정적이지만 동시에 우아함을 갖춘 모던 샤넬 레이디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패션 에디터
박연경
사진
COURTESY OF BALENCIAGA, CHANEL, CHLOE, DIOR, GIVENCHY, LOUIS VUITTON, MAX MARA, MOSCHINO, VALENTINO, STELLA McCARTNEY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