믓찌다 울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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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댄서 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화제다. 댄스 경연은 물론이고 음악과 패션, 심지어 크루들의 ‘쎈케’ 메이크업까지 덩달아 인기. 불구경보다 더 재미있는 게 동네 싸움이라지만, 춤추는 언니들의 기싸움에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화요일 밤의 ‘존멋’

금요일도, 토요일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매주 화요일을 기다려본 적이 있었나.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던 것처럼 매주 화요일 밤 10시 20분이 되면 TV 앞 소파에 착석한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가 시작한 지난 8월 24일부터 앓고 있는 증상이다. 나만 앓는 건 아닌 듯하다. SNS상에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보이는 ‘Hey Mama’ 춤을 보면 우리나라 국가와 국민체조가 언제 바뀌었나 싶을 정도다. 장담하건대 <스우파>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우파>에 치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엠넷도 몰랐을 거다. 상금 한 푼 없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가 부랴부랴 5천만원을 뒤늦게 책정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렇게 뜨거운 화요일 밤의 열기가 될 줄은 1도 모른 게 확실하다.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인지도 높은 스타 연예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업계 밖에서는 낯선 댄서들이 나와서 춤 대결을 펼치는 것 정도로 대단한 관심을 부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파이터’에 방점을 찍어 어그로를 끌고 관심을 환기하자는, 지극히 엠넷 같은 관성으로 만들었겠지.

사실 댄서들도 예상치 못했을 거다. 자신들에게 이렇게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는. 그런데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저마다 ‘쎈캐’ 같은 낯선 댄서들이 하나씩 모여들며 전운이 감돌던 댄스 플로어에서 본격적인 댄스 배틀이 시작되자 예상 밖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물론 라치카의 가비가 바지를 벗을 때만 해도 훅의 아이키만큼 눈동자가 흔들리는 기분이었지만 결국 실전의 기세를 보는 재미에 압도당했다. 그 와중에 사연 많은 홀리뱅의 허니제이와 코카N버터 리헤이의 살벌할 것 같던 배틀 무대가 예상 밖으로 마음 훈훈한 디즈니급 해피엔딩으로 끝나면서 마음이 녹았다. 다 녹여서 죽여버리겠다던 제트썬의 공약은 너무 대반전이었던 것. 그러니까 다들 너무 멋진것 아닌가. 춤을 추지 않아도 멋있고, 춤을 추면 더 멋있다. 저마다 걸출한 댄스 신공을 발휘하며 지지 않기위해 경쟁하지만 찾아오는 승패 결과에는 기꺼이 승복한다. 나름의 기싸움도 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한다는 것 역시 느껴진다. 무례하고 유치하게 센 척하는 유사 ‘쇼미 디스 배틀’ 같은 허세 쇼를 연출하지않는다. 게다가 시선 강탈하는 메이크업과 세상 힙한스트리트 패션으로 무장한 댄서들은 무대에 오르기전부터 이미 쌈박한 존재다. 열광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언프리티 댄스 스타’가 아니라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스타일도, 메이크업도, 스피릿도, ‘존멋’ 그 자체랄까.  – 민용준(칼럼니스트)

쎈캐들의 쎈메

좋은 메이크업을 결정짓는 첫 번째 조건은 ‘조화’다. 작은 캔버스라 할 수 있는 얼굴 위 눈, 코, 입의 조화, 헤어스타일과의 조화 그리고 그날 입은 ‘옷’과의 조화 등등. 대중이 <스트릿 우먼 파이터>, 그중에서도 그들의 메이크업에 열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모든 것이 조화롭기 때문이다. 메이크업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아마추어지만, ‘춤’에 있어서는 어떤 헤어, 애티튜드, 패션 그리고 메이크업이 더해져야 그 무대가 더욱 돋보일지를 정확하게 캐치하는 영민한 아티스트다. 그리하여 그 많은 크루들 가운데 절세미인 하나 없을지라도 스테이지 위에서는 하나 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바야흐로 스타 탄생이다.

사실 이게 바로 메이크업의 순기능이다. 누구나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연출’하는 것. <스우파> 크루들이 좋은 예다. ‘벗겨놓고 보니’ 딱히 나보다 나은 얼굴도 아닌데, 메이크업이 더해지자 세상 카리스마 넘치고 심지어 예쁘다! 나도 저렇게 화장하면, 달라질 수있을 것만 같은 기대 심리가 댄스 배틀 프로그램인<스우파>의 관전 포인트를 ‘춤’을 넘어 ‘메이크업’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사실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런 ‘성형’ 수준의 화장은 매우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질 샌더, 헬무트 랭 같은 디자이너들을 필두로 한 미니멀패션이 강세를 이루면서 메이크업에도 덩달아 ‘내추럴’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최근 20년간 이런 테크닉적인 메이크업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지금 <스우파>에 진심인 20~30대 여성 대부분은 뷰티 유튜버에 열광하는 일부를 제외한다면, 제대로 메이크업이라는 것을 배워본 경험이 없다. 고작 틴트 좀 바르고, 물광 메이크업이나 하는 게 그간 ‘화장’의 전부였으니까. 간신히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생존 메이크업으로 평생을 연명하다, <스우파>를 통해 드디어 화장하나로 ‘새로 태어나는 경지’의 변화를 목도하게 됐으니 어찌 매료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박태윤(메이크업 아티스트)

가장 동시대적인 메이크오버

코로나로 집콕의 나날이 길어질수록 모바일 콘텐츠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뷰(view)’와 ‘팔로워’ 수가 절대권력인 폰 안의 세상에서는 짧고 자극적일수록 힘이 생긴다. 뷰티도 마찬가지. 블로그에서 유튜브로, 다시 틱톡과 릴스로 넘어간 뷰티 콘텐츠들은 짧아진 길이만큼 더 확실한 ‘메이크오버’를 보여줄 수 있어야만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니 엄마나 언니들의 화장을 어깨너머로, 혹은 잡지를 보며 글로 배우던 세대가 아닌 ‘폰으로 화장을 배운’ 요즘의 10~20대들은 ‘새로 태어나는 수준’의 메이크업에 되려 익숙하다. 기성세대가 ‘쎈 언니 메이크업’이 돌아왔다며 호들갑을 떠는 <스우파> 크루들의 룩은, 오히려 밀레니얼에게는 모바일 속 화장의 현실판인 것.

폰으로 하나 되는 시대에는 국경이나 인종도 무색해진다. <스우파> 크루들의 메이크업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SNS에서 유행하는 소위 ‘요즘 스타일’의 과감한 컬러 메이크업과 2000년대 LA걸 스타일이다. 음영을 살리기보다는 아이라인을 강조해 선적인 요소를 살리고, 입술을 볼드하게 칠한 글램 룩을 보여주는 노제가 전자라면, 서양 여성들이 주로 쓸 것 같은 과감한 오버사이즈 속눈썹과 컨투어링의 향연을 선보이는 가비는 후자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메가 크루 미션 때는 그들의 댄스 배틀뿐 아니라 화보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의 콘셉추얼한 메이크업을 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했다.

‘돌고 돈다’는 패션의 큰 흐름에서 본다면 지금의 <스우파> 열풍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처럼 여겨진다. ‘템테이션 김혜수’로 대변되는 90년대 메이크업, ‘한’의무대에서 선보인 (당시로는 파격에 가까웠던) 샤크라의 볼드한 속눈썹,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기하학적인아이라인, 스파이스 걸스와 TLC의 자유분방한 캘리포니아 스타일 메이크업까지. <스우파>의 룩은 분명 ‘무대 메이크업’이지만 이질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기묘하게 동시대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 이 영(메이크업 아티스트)

무대 화장의 고수들

대중에게 자신들의 매력을 소구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는 걸그룹의 특성상 그 메이크업에도 정형화된 몇 가지 패턴이 있다. 핑크나 오렌지 같은 말랑말랑한 컬러, 완벽하게 깨끗한 피부, 인형의 그것처럼 크고 동그랗게 보이는 아이 메이크업, 과즙미 넘치는 블러셔까지… ’청순’, ‘발랄’, ‘화사’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는 것은 ‘걸그룹 메이크업’의 기본 덕목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긴 흐름으로 보면 오히려 그 ‘패턴’을 깨고 파격을 시도할 때 되려 대중의 열광이 뒤따랐다는 사실이다. 투애니원이 그랬고, 씨스타, 마마무 그리고 현재의 블랙핑크도 여느 아이돌의 메이크업과는 사뭇 그 결이 다르다.

음악과 뮤지션, 그리고 메이크업을 사랑하는 1인이자블랙핑크의 담당 아티스트인 나 역시 이른바 ‘걸크러시’가 묻어나는 ‘쎈’ 메이크업에 매력을 느낀다. 무대를위한 메이크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쎈캐’와 ‘쎈메’가 난무하는 <스우파>에 빠져든 것은 당연지사.그중에서도 원탑을 꼽자면 홀리뱅 허니제이다. 특히제시 미션으로 크루 대결을 할 때 보여준 컬러를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속눈썹과 컨투어링으로 포인트를준 힙합 스타일의 메이크업은 고백하건대 방송 내내연신 감탄했을 만큼 완벽했다. 코카N버터 크루들의아이 메이크업은 또 어떤가. 번짐 없이 깔끔하고, 동시에 선명한 캐츠아이 라인은 무대 메이크업 전문가인 나조차 그 노하우를 배우고 싶을 정도. 사실 무대메이크업은 당일 조명의 톤과 밝기, 방향, 스모그 같은 장치들에 따라 워낙 변수가 크기 때문에 ‘화장 좀한다’는 아티스트들조차 어려움을 느끼는 분야다. 그런데 테크닉적으로나 예술&감각적으로나 전문가의도움 없이 셀프로 이 정도 수준급의 메이크업을 연출하다니, 새삼 크루들의 오랜 무대 경험과 그를 통한내공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제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댄서라도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것은 3분 남짓이다. 댄스 리얼리티 서바이벌인<스우파>가 춤뿐 아니라 그들의 패션, 애티튜드, 그리고 메이크업까지 모든 것이 화제인 건 고작 180초의파이널을 위해 그들이 보낸 가늠하기 어려운 노력의시간과 땀,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 이명선(메이크업 아티스트 · 우선 원장)

양지바른 스트리트 시크

2021년 늦여름, 엠넷은 한중일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걸스플래닛999>와 여성 댄스 크루 경연 프로그램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몇 주 간격으로 론칭했다. 후사를 도모하고 비즈니스를 확장하기 위해 터져줘야 할 프로는 전자였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올가을 무대의 주인공은 화요일에 편성된 언더독이었다. 무대 위의 역할이 바뀌자 스트리트 우먼들의 스타일 역시 주류가 됐다. 인스타 감성 충만한 MLBB와 번지듯 블러되는 메이크업, 즉 강아지 같은 눈매에 여린 컬러감으로 연출한 어린 룩 대신 명확한 선들로 셰이프를 드러내는 ‘쎈 언니’ 화장이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이다.

2021 F/W 맥의 백스테이지 트렌드 리포트의 포문을 연 것은 ‘90’s 나우’! 힙합과 그런지, 레이브가 하위문화를 지배한 90년대가 월드와이드로 다시 돌아왔다는 그들의 선언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강하게 아웃라인된 펑키한 블랙 아이라이너, 입술 윤곽이 돋보이는 볼드한 입술이 그 시대, 아니 지금의 키 포인트이며 눈두덩과 뺨에는 토프 컬러부터 초콜릿, 멍든 자두색으로 깊이감을 더한다. 정교하지 않아도 괜찮다. 90년대 메이크업은 인상만으로 공간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으니까. 맥의 메이크업 전문가들은 이를 ‘스트리트 시크’라고 명명했고 우리는 지금 그걸 화면 속 스트리트 댄서들의 얼굴에서 확인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이런 ‘쎈 언니 메이크업’을 처음 본 건 아니다. <언프리티 랩스타>의 기세를 체험한 적이 있고,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들에게는 꽤 흔한 패턴이기도 하다. 올가을 대한민국이 특히 <스우파> 댄서들의 얼굴에 열광하는 건 솔직히 트렌드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건 그 룩에서 묻어나는 ‘애티튜드’다. <스우파> 언니들의 진한 메이크업이 음침하거나 무서워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들의 태도가 양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목이 곧고 어깨가 바르며, 무엇보다 아주 열심이다.

새침한 고양이 같던 노제는 누구보다 강한 골반 무브를 보여줬고, ‘죽이는 거에 더 죽이는 것을 더해 모두 녹여버리겠다’고 말하는 제트썬은 ‘마음이 이상해’라며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들은 적의를 쉽게 드러내지만 동시에 승복도 깔끔하다. 이길 것 같은 상대를 지목하는 대신 이기고 싶은 상대를 지목해 배틀한 후 상대에게 손 키스를 날리기도 한다. 관자놀이까지 찢어진 아이라인을 하고도 리더의 말을 참 잘 듣고, 쥐 잡아먹은 듯한 입술로 ‘네가 제일 잘했다’는 응원을 아끼지 않으며, 상하의 실종 상태로 어떤 격렬한 동작을 소화할 때도 잔발을 짚는 법이 없다. 그 강한 코어의 힘이 화면 너머로 전달될 때, 댄서들 한 명 한 명에게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입니까?’를 묻게 된다. 무엇보다 ‘강강강’의 메이크업을 하고 있어도 화장에 잡아먹히지 않는 개성! 한 댓글을 그대로 빌리자면 ‘외모와 상관없이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난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90년대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문화가 싹을 틔우던 시기였다. 이영애가 갈매기 눈썹에 브라운 입술을 하고 보디가드 역할로 산소 같은 여자 화장품 CF를 찍던 시대. 온 세계가 어려 보이는 것보다는 멋있는 것을 추구했다. 이제 곧 위드 코로나가 시작된다. 억지로라도 일상이 회복되어야 하는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불굴의 긍정이다. 모나카, 힙제이, 어른키… 필요하다면 부캐를 마련해도 좋다. 원래 메이크업은 없던 나를 만들어주는 가장 편리한 도구이니 마음껏 활용하자. 다시 시작될 하루하루는 당분간 ‘멋있는’ 코드로 가자. 꽤 재밌을 거다. – 백지수(뷰티 콘텐츠 디렉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희진
아트워크
허정은
사진
스우파 개인)본인 제공, (스우파 단체)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제공, (스파이스 걸스, TLC, 에이미 와인하우스)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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