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구 역사상 여섯 번째 고등학생 신분의 국가대표, 여준석은 올해 누구보다 바쁜 여름을 보냈다. 아시안컵 예선과 도쿄 올림픽 최종 예선에 성인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U19 농구 월드컵에서는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필리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로 이어진 강행군이었다. 2m3cm의 큰 키로 고교 무대를 초토화하고, 국가대표로서 코트를 질주해 덩크슛을 꽂아 넣는 여준석의 모습에 온 농구계가 들썩였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한국 농구의 미래이기에 앞서, 오늘의 여준석이 여기 있다.
고등학교 졸업이 얼마 안 남았다. 지금 기분이 어떤가?
호주 유학에서 돌아와 고등학교를 1년 다시 다닌 셈인데, 상당히 새로웠다. 낯을 가리는 편이라 처음엔 동기가 된 1년 후배들과 친해지지 못하다 이제 막 가까워졌는데 아쉽다. 이제는 후배가 아니라 친구 같다.
인스타그램에 ‘Last Dance’라는 설명을 곁들인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우승 시즌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의 제목과도 같은. 각오 같은 거였나?
체전이 하나 남았다. 거의 끝까지 왔고, 즐거운 맘으로 마무리하자는 의미에서 그렇게 썼다.
여준석이 있으면 어차피 우승 아닌가?
그래도 약간 기분을 내고 싶었다(웃음).
얼마 전 KBL 신인 드래프트 불참을 선언했다. 대학에 간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한국 대학에 진학하는 건가?
일단 한국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있다. 자기소개서 쓰면서.
자기소개서도 써야 하나?
쉽지 않았다(웃음). 담임 선생님이 도와줘서 열심히 쓰고 있다.
대학에 가면 가장 하고 싶은 건 뭔가?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은 없다. 3년간 지낸 팀과 다른 환경이니까 빨리 적응해서 녹아드는 게 첫 목표다.
미국 진출을 위한 대학 진학이라 밝혔다. 기회가 나면 바로 도전하는 건가?
KBL 드래프트에 참여해 프로에 가면, 그 팀에서 어쨌든 나를 쓰려고 데려간 거니 해외 진출 기회가 와도 여의치 않을 수 있다. 5년이 지나 자유계약선수가 된다고 해도 나이가 애매하고. 대학에 있어야 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것 같았다. U19 농구 월드컵 나가기 전엔 프로에 입단하려 했는데, 다녀와서 생각이 변했다.
프로라 함은 KBL을 말하는 건가, 해외 프로 리그를 말하는 건가?
당시는 해외 진출 기회가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고, 왠지 대학 가면 딴 길로 빠질 것 같아 프로를 원했다. 그런데 U19 월드컵 이후 해외 팀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대학 다니는 동안 한 번쯤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 맘이 바뀌었다. 대회 참가 덕분에 시야가 넓어진 셈이다. 미국 대학 재학 중인 (이)현중이 형도 꾸준히 얘기를 해주고.
오리온스 이종현 선수가 비슷한 도전을 한 적이 있다. NBA서머리그를 위해 미국에 갔고, 서머리그 참가 불발 이후 몇몇 구단에서 G리그(당시 D리그) 출전을 권했지만, 대학에 다시 돌아왔다. 만약 같은 제안을 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
거기 더 머무를 것 같다. 부모님은 안정적인 진로를 원하시지만, 나는 경험과 커리어가 더 중요하다. 성공 확률이 낮더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호주 프로팀에서 관심을 표하고 있다는 소식도 나왔다. 지난 시즌 NBA 신인왕 라멜로 볼도 호주 리그를 거쳐 NBA에 입성했는데, 그런 방식은 어떤가?
라멜로 볼은 이미 세계에서 알아주는 선수였다. 그 상태에서 호주에 간 거고. 나는 아직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선수가 아니다. 케이스가 다르다.
기회가 아예 열리지 않는다 해도 계속 도전할 건가? 예컨대 제안을 받는 게 아닌, 본인이 나서서 문을 두드려야 한다거나.
음… 그렇다면 안정적인 쪽을 택하지 않을까 싶다.
해외 진출에 대한 단서로 기회, 확률이라는 표현을 여러 번 쓰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다.
일단 지금은 기회가 오겠지, 하고 막연히 원하며 기다려보는 거다.
여준석의 NBA 진출에 대한 농구 팬들의 기대가 상당하다.
시선이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해외에 도전한다고 말하면서, 국내 대학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까지 인터뷰가 내가 원하는 대로 나간 경우가 드물다. 간다, 안 간다 두 가지만 있고 중간이 없었다. 나는 항상 오늘과 비슷한 뉘앙스로 말했지만, 대부분 강하게 기사화되곤 했다. 꼭 팬들이나 주변에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도전이 가능할 수도,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덧붙이자면, 큰 부담을 느끼진 않는다. 예전엔 그랬는데, 이제는 주어진 상황을 즐기려 한다.
U19 월드컵 이후 생각이 바뀐 건, 전 세계 동년배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통한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인가? 팀으로는 아쉬웠지만, 훌륭한 개인 성적을 거뒀다. 경기당 25.6득점, 10.6리바운드, 2.1스틸 등등.
대회 끝나고는 어느 정도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돌아와서 출전한 경기 영상을 전부 다시 돌려봤더니 또 다른 게 보였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굳이 나처럼 오래 뛸 필요가 없었다. 돌아가면서 출전하니까. 나는 팀 사정상 출전 시간이 워낙 길었기에 그런 기록이 나온 거다.
그렇다기엔 플레이 효율성을 따지는 EFF 수치도 엄청나게 높았다. 전체 선수 중 1위다.
긴 출전 시간이 보장되고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선수면 그 정도는 다 할 거다. 그보다 팀을 더 잘 이끌지 못한 게 아쉽다. 늦게 합류해서 주장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 같다. 계속 동료들을 다독이면서 끌고 갔어야 하는데. 막판에는 어떻게든 해보자 하고 나 혼자 들어갔다. 이기고 싶었다.
앞으로 리더 역할을 맡을 상황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성격 자체가 약간 혼자 하는 편이다. 내 할 거 열심히 하자는 스타일. 성인 국가대표팀 가서 형들한테 리더 역할을 많이 배웠다. U19 월드컵 때 어설프게 따라는 해봤는데 역시 쉽지 않았다. 계속 연습하고 있다.
특히 U19 월드컵 우승팀인 미국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남다른 각오가 있었나?
특별히 더 신경 쓰고 들어갔다. 목표로 삼은 나라의 선수들이고, 어느 시점에서 붙어야 할 상대가 될 수 있는 거니까. 경기 전에 긴장도 꽤 했다. 몸 푸는 거 보니까 확실히 달라서.
몸 푸는 것만 봐도 보이나?
점프 높이부터 다르니까. 오늘 큰일 났구나, 싶었다. 그러다 경기 중에 몸이 조금씩 풀리면서 괜찮아졌고.
승부욕이 생기면 뜨거워지는 편인가, 냉정해지는 쪽인가?
많이 뜨거워진다. 가끔 조절을 못할 정도로. 평상시엔 장난기 많고 차분한 편인데, 경기장 들어가기만 하면 화가 많아진다. 동료들한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왜 이게 안 되나’에 대한 화.
고쳐야 하는 단점이라 생각하나?
어느 정도는. 농구는 심리 싸움이니 내가 흥분한 걸 드러내서 좋을 게 없다. 상대가 쫄면 다행인데, 프로에 그런 선수는 없을 거다. 살살 화를 돋워 이용하려 들지.
U19 월드컵에서는 보조 리딩을 맡기도 하고, 속공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여준석은 스몰 포워드다, 파워 포워드다 의견이 갈리는 추세인데 어느 쪽이 더 편한가?
성인 국가대표팀에서는 일단 감독님이 나를 파워 포워드로 쓰신 것 같다. 스몰 포워드를 선호하는 편이라 고민해봤는데, 내 능력 부족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직 스몰 포워드로 경기에 믿고 투입할 만한 선수가 아닌 거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NBA에 간다면 어떤 유형의 선수가 될 수 있을까?
냉정하게 본다면 식스맨, 세븐맨. 당장 팀의 2옵션, 3옵션을 말하는 건 너무 욕심부리는 거고, 현실적 목표는 벤치에 앉아서 가장 먼저 출전을 준비할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거다. 공격이든 수비든 나가면 매번 임팩트 있게 활약하고 들어오는.
자신의 능력 중 현재 가장 자신 있는 건 뭔가?
최근에 익힌 건데, 오리온스 (이)대성이 형이랑 성인 대표팀에서 밤마다 턴어라운드 페이드 어웨이를 연습했다. 꾸준히 던지다 보니 어느 순간 몸에 배어 있었다. 확실한 내 무기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슛에 자신이 있나?
현대 농구에서 스몰 포워드의 슈팅 능력은 거의 필수 역량에 가깝다. 어느 정도 넣을 자신은 있다. 좋은 편이라 생각하고. 연습하면 충분히 더 나아질 수도 있다.
데이비슨 대학 재학 중인 이현중의 경우 내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예측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친분이 있는 사이인데, 자극이 되기도 하나?
제일 친한 사이지만, 친구이자 적이다. 상대로 만나면 친하다고 해서 봐줘야 하는 사이는 아니니까. 현중이 형도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 경기에서는 아직 한 번도 붙어본 적이 없다.
올해 성인 농구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성인 대표팀에서의 경험은 어땠나?
이전에 대학 형들이랑 할 때는 크게 밀린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프로, 특히 국가대표 선수들은 확실히 달랐다. 훈련하면서 나를 그냥 갖고 놀았다. 힘으로도 기술로도. 확실한 갭을 느꼈다. 수비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중학교 때부터 키가 크니까 블록슛 외의 수비는 다소 소홀히 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한번 경험해봤으니 다음에 선발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롤모델이 있나?
NBA에서는 LA 클리퍼스의 카와이 레너드. 한국 선수 중엔 많다. 송교창, 양홍석… 이승현 형도 이번 대표팀에서 보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보고 배울 수 있는 선수라면 모두 롤모델이다.
카와이 레너드는 뜨거운 여준석과 달리 무척 냉정한 선수인데.
내가 그게 문제다. 그렇게 하고 싶은데 못한다.
만약 그를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난 너 이길 거야. 롤모델로 끝이 아니라, 그 선수를 이겨야 나도 누군가가 닮고 싶은 선수가 될 수 있으니까.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편인가?
한국에 계속 남을 거면 그럴 수도 있을 텐데, NBA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니까 앞이 뿌옇다. 진출한다 해도 성공 여부는 더더욱 알 수 없고. 그래도 도전하고자 하는 맘이 크기 때문에 기회가 열리길 바라는 거다.
5년 뒤, 전성기에 접어들 여준석은 어느 팀에서 뛰고 있을까?
어느 팀이든 내가 갈 수 있는 곳.
- 컨트리뷰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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