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한가운데서, 산문을 넘기며 보낸 날들.
1.<잊지 않음 –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 박민정 지음, 작가정신
소설 <아내들의 학교>, <미스 플라이트> 등 여성을 둘러싼 혐오의 지형도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극우주의를 탐구해온 작가 박민정의 첫 산문집. 작가가 보여온 날카로운 시선의 연장선에서 생생히 기록한 글들의 모음이다. 어린 시절부터 여성 작가가 된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겪은 차별과 혐오를 담은 1부 ‘개인의 역사’,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깊게 뿌리내린 혐오의 단면을 돌아보는 2부 ‘세계의 역사’, 작가 본인의 글쓰기 세계가 어떻게 구축돼왔는지를 기록한 3부 ‘소설가로서의 역사’로 구성됐다.
2.<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배순탁 지음, 세미콜론
세미콜론에서 론칭한 음식 에세이 ‘띵’ 시리즈의 10번째 책.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작가 배순탁이 냉면을 경유해 유쾌한 농담을 건넨다. 배순탁이 펼치는 냉면 예찬론은 물론, 오랜 시간 음악 평론가로서 활동해온 만큼 음악과 평양냉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를테면 특정 평양냉면 식당만 ‘진짜’라고 강요하는 일부 냉면 애호가들을 몇 년 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대한민국을 강타한 ‘퀸’ 열풍과 연결 짓는 식. 책의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작가가 책에서 언급한 평양냉면 가게 정보를 정리해 수록했다.
3.<행성표류기> 김희준 지음, 난다
작년 시집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을 펴내고 세상을 떠난 시인 김희준의 유고 산문이다. 한 편의 장시 같기도, 소설 같기도 한 책은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지구별 여행기’를 그린다. 타인의 꿈에서 알을 낳는 오네이로이상제나비, 강아지와 고양이의 말캉한 ‘젤리’가 열리는 발바닥나무 등 신화와 동화, 전설과 환상에 얽힌 이야기를 넘나들며 독자를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4.<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바다출판사
2018년 영화 <어느 가족>으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로운 산문집이다. 2017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통해 ‘세상을 영화에 담는다’는 문제를 솔직 담백하게 풀어낸 그가 이번 산문집에선 창작자로서 세상과 사람을 잇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한 다짐과 노력을 말한다.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의무는 세상에 다양한 ‘작은 이야기’를 내놓는 것이라 말하는 그가 30년 가까이 영화를 만들며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봤는지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 피처 에디터
- 전여울
- 포토그래퍼
- 김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