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팝 사운드를, 하나의 명쾌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요즘 가장 흥미로운 스타들은 장르와 장르 사이에서 무엇 하나로 손쉽게 정의되지 않는다. 그들은 틱톡 바람을 타고서 온종일 귓가에 맴도는 음악을 남기거나, 사색적이면서 자아를 성찰하는 랩을 하며, 새로운 스타일의 R&B와 인디팝 등등에 걸쳐 존재를 드러낸다. 올해 우리를 놀라게 한 뮤지션들을 두루 만나봤다.
Olivia Rodrigo
18세의 차세대 팝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를 음악에 도전하는 TV 스타라기보다 ‘어쩌다 보니 TV 출연하게 된 싱어송라이터’라고 여겼다.
기이한 해의 기이한 달의 기이한 날이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두 번째 싱글 ‘데자뷔(Déjà Vu)’ 발표를 앞두고 <더블유>와 만난 자리에서 그녀가 말했다. “정말 이상해요.” 그녀는 범상치 않은 일들이 폭풍처럼 밀려온 순간들을 돌아보며 반은 진심, 반은 조소를 담아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싱글 ‘드라이버스 라이선스(Driver’s License)’는 올리비아 로드리고를 고작 18세의 나이에 디즈니 스타에서 팝 초신성으로 만들어준, 8주간 차트를 석권하고 스트리밍 기록을 세운 이별의 성가로 등극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마무리하며 집중하기 불가능했던 고단한 일정을 소화한 그녀가 스튜디오에서 부지런히 작업한 첫 앨범을 최종적으로 손볼 시간은 딱 하루가 남아 있었다. 폭풍 같은 지난 시간도, 그녀의 큰 인기도, 새 앨범 발매를 앞둔 시점에 하나씩 떠올려보자면 이상하리만치 놀라운 일이다. “지난 한 달이 살면서 가장 바빴던 시간이었어요. 열여덟 살이 되었고, 독립을 했고,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이 앨범을 마무리했죠. 성인이 되기 위한 한 달 집중 단기 코스를 듣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5월, ‘데자뷔’를 비롯해 그간 발표한 싱글곡까지 모은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첫 스튜디오 앨범 <사우어(Sour)>가 세상에 나왔다.
싱글 ‘데자뷔’ 작업은 그녀가 예민하게 신경 쓴 프로젝트다. 빈티지한 커트 코베인 티셔츠를 입고 인터뷰하던 로드리고는, 평생 곡을 써왔지만 이렇게 별난 상황에서 작업하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우선 올 초 발표한 ‘드라이버스 라이선스’가 2021년 최초로 10억 회 이상 스트리밍된 노래가 되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녀가 ‘원 히트 원더’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우상인 테일러 스위프트나 로드의 차세대 화신이 될지를 열렬히 궁금해하고 있었다. “솔직히 정말 겁이 나요! 결국엔 제 음악을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 항상 기억하고 싶어요. 차트 순위를 위해, 대중이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 곡을 쓰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데뷔곡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온갖 기록을 세우는 건 정말 기이한 일이죠. 이 다음에 대체 뭘 보여줘야 하죠?” ‘드라이버스 라이선스’처럼 ‘데자뷔’ 역시 이별에 대한 이야기지만, 첫 번째 싱글이 가감 없는 고뇌를 드러냈다면 두 번째 싱글은 은밀하게 불타는 듯한 분위기를 띤다. “기존 곡과 비슷한 애절한 발라드는 내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이별을 노래하는 발라드를 정말 좋아하지만, 슬픈 소녀의 노래만 쓰는 가수로 분류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실제로 만나봐도, 그리고 대화를 나눌 때도, 로드리고를 보고 있으면 그녀의 음악이 그렇듯 10대의 천진한 모습과 동시에 청소년기를 회고하는 성숙한 면모도 보인다. 묘하고 넓은 범주의 느낌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생기발랄한 이 소녀는 흥분하면(웬만하면 늘 그런 상태지만) 눈이 반짝이는 촉촉한 갈색을 띠는데, 한편으로는 연약하면서도 침착한 모습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프로지만, 스튜디오에서 태어나 잘 포장된, 사이보그 같은 그것과는 다르다. 10대 팬덤의 귀엽고 감상적인 세계에서 팝 뮤직으로 떠나온 디즈니 스타들(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마일리 사이러스와 셀레나 고메즈)처럼, 로드리고 역시 그 계보를 잇는다. 디즈니를 떠났다기보다는 ‘전복했다’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저는 ‘디즈니 스타’를 사랑해요. 제가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제 아이돌로 삼았으니까요. 하지만 디즈니 스타에서 팝 스타가 되는 특정한 전형이라는 게 있다면, 그걸 따르고 싶지는 않았어요.” 로드리고는 항상 스스로를 음악에 도전하는 TV 스타라기보다 ‘어쩌다 보니 TV 출연하게 된 싱어송라이터’라고 여겼다. 여전히 디즈니의 모큐멘터리 장르인 <하이 스쿨 뮤지컬: 더 뮤지컬: 더 시리즈>의 주연이기는 하지만, 욕설도 자유롭게 내뱉을 수 있는 게펀(데이비드 게펀이 대표로 있는 매니지먼트)에서 음악을 발매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 그렇다고 유년기의 페르소나에서 애써 거리를 두는 것 같지는 않다. “계산된 것은 아니었어요(웃음). 하지만 싱어송라이터로 보다 자유롭게 작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디즈니 스타의 전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좋은 일이죠.”
전 세계적인 팬데믹은 로드리고를 인스타 스타덤의 용암 같은 핵에서, 또 그로 인한 화상 같은 여파에서 그녀를 어느 정도 보호해주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지난 한 해를 거의 집에서 보냈다. 음악은 스트리밍됐지만, 그녀의 모습은 공개석상에서 볼 수 없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팝계를 휩쓰는 동안, 그녀의 첫 방송 무대인 <더 투나잇 쇼> 외에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라이브 공연이 없었다. “제 노래가 차트에서 1위를 하고 있을 때 저는 집에서 새벽 2시까지 통계 숙제를 하고 있었어요(웃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홈스쿨링을 하고 있거든요. 컴퓨터 화면에 ‘전 세계 1위’라고 적혀 있지만 그건 스크린 안의 글자일 뿐, 제 노래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르겠죠.” 어떻게 보면 이런 분석도 가능하다. 팬데믹은 청소년기가 지난 지 오래된 성인까지도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그 점이 어느 어린 가수가 급작스럽게 발매한 노래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켜준 것일 수도 있다.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전해준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슬픔을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꼭 이별에 대한 공감 때문이 아니어도 마음을 움직이고 심장을 울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무엇이 아니었을까요?”
갑작스러운 인기의 부담 속에서 길을 찾는 중 피가 끓어오르는 순간도 물론 있었다. “저는 쉽게 감정에 휩싸여요. 격렬하리만큼 예민한 순간이 있죠. 많은 일이 일어날 때, 여러 의견과 감정이 오갈 때, 저는 그냥 멈춰버려요.” 그녀는 우리가 인터뷰를 하기 일주일 전에 작업하다 말고 약간의 정신적인 혼란을 겪었다고, 그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고 했다. “진행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프로듀서는 며칠 쉬며 숨을 돌리고 전열을 가다듬자고 했다지만, 그런 건 포기란 걸 모르고 전력으로 질주해온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마감일이 정해져 있을 때 창의력을 발휘하긴 정말 어려운 법이에요. 진이 빠지고, 평소처럼 곡을 잘 쓰지 못하죠. ‘75%가 일, 25%가 자기관리’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러라지 뭐’ 하고 말았죠. 이제는 자기관리 하는 법을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됐어요.”
앨범 <Sour>의 수록곡은 대부분 변해버린 사랑에 대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파고드는 노래들이다. 로드리고는 이 앨범에 ‘찢어진 마음을 음향으로 부검하는 듯한 느낌’을 담고 싶었다. “다른 주제로 곡을 써보려 했지만 공감할 수 없었어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제 노래는 제가 꼭 해야 할 말 같은 것이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듣고 춤을 추게 하는 음악보다 개인적으로 다가가게 하는 노래가 저는 더 좋아요.” 이 모든 과정은 지금의 로드리고를 더 대담하게 만들어주었다. 일례로 그녀는 ‘드라이버스 라이선스’를 쓰는 6~8개월 동안 자신이 인생에서 뭘 원하는지, 자신에게 뭐가 중요한지를 보는 관점과 명료함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너무 어릴 때 이별을 겪으면 세상이 끝난 것만 같잖아요. 살면서 다른 일들이 무수히 일어날 것임을 알기에는 인생 경험이 부족하니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들도, 그들이 열일곱 때 썼던 곡과 스물다섯 때 썼던 이별 노래를 비교해 들어보면 어렸을 때 썼던 곡들이 확실히 처절하고, 세상이 끝난 듯한 느낌이죠. 그런 게 멋져요.” 로드리고가 웃는다. “아이러니하죠. ‘드라이버스 라이선스’ 는 너무 슬프고 지나치게 자기비하적인데, 그걸 작업할 때는 솔직히 제 인생에서 가장 힘이 나던 순간이었거든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로드리고는 사막에 위치한 에어비앤비 숙소 예약이 확정되는 것을 기다렸다. ‘데자뷔’ 발매를 기념하러, 또 그녀의 균형을 헤집을 수 있는 ‘LA-뉴욕 분위기’와 거리를 두기 위해 그녀는 떠날 예정이다. ”디즈니 같은 환경에서는 매일 내가 뭘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뭘 입어야 할지 지시를 받죠. 그러다가 새하얀 캔버스를 앞에 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에요. 생각보다 제가 더 보호받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과잉보호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외동이거든요. 평범하지 않은 아역 배우로 성장해왔어요. 이제 더 독립적일 수 있어 기뻐요.” 그녀는 잠시 멈추고 저 멀리 보이는 것들을 설명하기에 알맞은 표현을 고민했다. “즐겁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예인들이 점점 인기가 많아지면서, 점점 더 안 좋은 앨범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인생을 덜 즐겁게 살기 때문이죠. 기이한 할리우드 산업에 소진되어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는 것.” 로드리고는 그녀가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인생을 상상이라도 하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침내 역시 음악 이야기로 돌아온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매일매일 스튜디오에서 보낸다면 도대체 무엇에 대한 음악을 쓸 수 있겠어요?”
Photographer MAX FARAGO 글ㅣKyle Munzenrieder
스타일리스트 | Jasmine Hassett 헤어 | Lauren Palmer-Smith for Oribe(@ Forward Artists) 메이크업 | John McKay for Tom Ford Beauty(@ Frank Reps) 매니큐어 | Vanessa Sanchez McCullough(@ Forward Artists for OPI) 프로듀서 | HELENA MARTEL SEWARD 포토 어시스턴트 | DEREC PATRIC, LILI PEPER 패션 어시스턴트 | CLARE WICKSER 테일러 | HASMIK KOURINIAN AT SUSIE’S CUSTOM DESIGN, INC.
St. Vincent
2017년 은밀한 관능미가 엿보인 앨범 <Masseduction> 이후 4년 만에 발표한 앨범 <Daddy’s Home>. 동시대 가장 창의적인 얼터너티브 록 뮤지션이라 불리는 세인트 빈센트는 주가 조작 사건으로 10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2019년 석방된 아버지 이야기를 앨범에 담아냈다. 데뷔 이후 어쩌면 가장 내밀하고도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앨범이다.
2007년 데뷔 이후 거의 쉬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작년에는 LA에 머물며 90분 분량의 오디오 프로젝트 ‘St. Vincent: Words + Music’도 선보이며 바쁘게 지냈다. 요즘 당신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은 무엇인가?
요즘 집 여기저기를 손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게 명상에 좋더라고. 꽤 쓸 만한 공구 상자도 마련했고, 수도관이나 전기 작업하는 것도 배웠다. 아주 두꺼운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명상도 자주 하는 편인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쉬기만 하는 건 아니다. 며칠 동안 연주나 작곡을 하지 않으면 압력솥처럼 가슴이 뭔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도 최근 알게 됐다.
펜데믹이 불러온, 소위 ‘뉴노멀’이라 부르는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계속 투어를 다녔다. 한 곳에서 2주 이상 있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작년에야 내가 적응력도 좋고 한 곳에 오래 머물러도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보통 음악 작업을 하면 매일 곡을 쓴다. 과거엔 그런 나날을 보내다 일순 멈추고 기계처럼 홍보하고 다른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중에 멈추지 않고 곡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 흐름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지난 5월 발표한 앨범 <Daddy’s Home>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인가?
여태 작업한 음악 중 가장 친절한 음악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1971년에서 1976년 사이 뉴욕 다운타운에 꽂혀 작업한 음악이다. 히피와 게이 디스코, 펑크 사이의 느낌을 내려고 했다. 또 남성적인 것, 여성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족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또 방황하는 모습을 그렸다. ‘우린 이 미친 구석에서 한배를 탄 거야’란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신규 앨범에서는 당신의 아버지가 투옥을 겪은 일을 담담히 그린다. 그런 자전적 이야기를 지금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유는 아티스트와 아티스트의 의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특정 인물과 그 경험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투옥 이야기가 알려지는 걸 원치 않기도 했고.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래, 내 입장에서 디즈니같이 마냥 아름다운 이야기 말고 유머와 연민이 담긴 이야기를 써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요즘 같은 때에 특히나 되새기고 싶은 메시지이기도 했다. 동정심을 얻기 위해 자전적 이야기를 한 게 아니다. 그저 있는 사실을 얘기했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잘 통제해왔나?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내 자신을 잘 알고 있다. 확실히 따분한 사람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변한다. 사람이니까. 하지만 미디어나 SNS를 통해 보이는 내 모습이 내 안의 이 부분은 건들지 못한다.
Photographer ZACKERY MICHAEL 글ㅣSydney Gore
스타일리스트ㅣAvigail Collins헤어ㅣPamela Neal메이크업ㅣHinako Nishiguchi
Bad Bunny
작년 한 해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가수, 배드 버니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올해 3월에 열린 제63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을 하루 앞둔 날, 배드 버니는 할리우드의 한 스튜디오에서 <더블유>와 화보 촬영을 하고 있었다. 올해로 만 27세를 맞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슈퍼스타는 이날 셀린느의 테일러드 슈트를 입고 촬영장에 등장했다. 매끈한 옷차림에 어울릴 법한 정장 구두 대신 눈에 띄는 털 부츠를 신은 그는 마치 ‘설인’을 연상케 했다. <한여름 밤의 꿈>을 초현대적 하이패션 버전으로 공연한다면 숲속 동물로 캐스팅되었을 법한 비주얼이랄까? 요즘 시대에 아무리 장르를 뛰어넘는 음악이 흔해졌다고 해도 배드 버니만큼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아티스트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초기 레게톤과 라틴 트랩을 부활시켰는데, 이러한 음악적 성취에서 한 발 더 나가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채 무대에 서거나 페미니스트적 가사를 쓰는 등 기존의 남성적인 요소를 뒤집으며 빠르게 유명세를 탔다. 몇 년 새 배드 버니는 글로벌 팝 열풍의 중심이자 거대한 상업적 존재감을 구축했다. 또한 푸에르토리코의 부패한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에 일조한 저항 가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선 여전히 보드 반바지에 쪼리를 신고 파티에 가는, 푸에르토리코 북쪽 해변의 자유로운 남자아이의 모습이 스친다. 그리고 프로레슬링의 오랜 팬인 그는 레슬링 스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가 WWE의 간판 스타인 더 미즈의 우락부락한 등을 기타로 가격하고 링 위에서 거친 말싸움을 벌이리라고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최근 몇 년은 배드 버니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갈루와 트랩이 섞인 ‘I Like It’은 래퍼 카디비와 제이 발빈과 협업한 곡으로 2019년 북미 라디오와 팝 차트를 점령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2020년엔 1년 동안 스포티파이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아티스트로 호명됐고, 작년 11월 발표한 앨범 <엘 울티모 투르 델 문도(El Ultimo Tour del Mundo)>는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오른 역사상 최초의 스페인어 앨범으로 기록됐다. 또한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세 번째 정규 앨범 <YHLQMDLG>로 베스트 라틴 팝, 어번 앨범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미국인들의 그래미’라고 이야기하지만 뮤지션들에게 그래미 수상은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수상 당시 소감의 일부를 스페인어로 이야기했다. “단순히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해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일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상을 준다니 ‘좋아요, 주세요’ 한 거죠.”
그래미 시상식이 막을 내린 몇 주 뒤 그와 통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매주 출연하고 있는 WWE의 TV 프로그램 <Monday Night Raw> 촬영으로 플로리다 올랜도 근처에 있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그래미 수상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제 경력 중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어요. 그 앨범이 인정받았다는 건 저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죠. 최근 라틴과 레게톤 장르에서 나온 앨범 중 최고라고 생각하거든요.” 스페인어로 소감을 이야기한 것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는지 묻자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냥 저답게 행동한 거예요. 음악이 세계의 공통 언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는 스페인어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관심을 얻자고 영어로 노래 부를 필요는 없죠.”
배드 버니는 푸에르토리코의 수도 산후안에서 서쪽으로 약 48km 떨어진 시골 해변 도시 베가 바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트럭 기사,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이셨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어린이 합창단을 했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프리 스타일 랩을 시작했다. 배드 버니가 여러 음악 장르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다. “아버지는 트로피컬과 살사 음악을 듣곤 했어요. 어머니는 메렝게와 발라드를 좋아하셨죠. 친구들과는 레게톤 음악을 많이 들었고요. 록 음악을 듣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음악을 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늘 제 주위에 있었죠. 그래서 다양한 음악 취향을 접하며 자랐어요. 그런데 확실히 레게톤에 더 마음이 가요. 내 나라, 어릴 적 기억, 그리고 우리 세대에게 가장 대중화된 음악이니까요. 레게톤은 언제나 저의 토대가 되어 그 자리에 있죠. 그렇다고 제가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니에요. 수많은 리듬이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거든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낮에는 아레시보에 위치한 푸에르토리코 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밤에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업과 아르바이트 사이사이 사운드클라우드에 배드 버니라는 이름으로 자작곡을 게시했다(배드 버니라는 이름은 어렸을 적 부활절 전날 토끼 옷을 입고 등교하며 찍은 사진에서 비롯되었다). 그중 ‘Diles’라는 곡은 트랩 곡으로 침대에서 여성을 만족시키는 내용을 다뤘는데 2016년에야 화제가 되었다. 그 후 라틴 어번 음악의 대표 주자 아르칸헬과 대디 양키, 그리고 카디비, 드레이크와 컬래버레이션을 하기에 이른다. 배드 버니의 데뷔 앨범 <X 100 PRE>는 2018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발매되어 빌보드 라틴 앨범 차트에서 1위를 거머쥔다.
배드 버니의 상승세는 푸에르토리코의 격동 시기와 맞물렸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배드 버니의 의지는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허리케인 마리아가 섬을 강타한 1년 후 ‘에스타모스 비엔(Estamos Bien)’을 발표해 폭풍이 남긴 끔찍한 후유증의 회복을 노래했다. 이 노래를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에서 선보이며 무대 위에서 공개적으로 백악관을 비판했다. “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여름, 그 당시 푸에르토리코 주지사 리카르도 로셀로가 막말 스캔들과 정국 위기에 휘말리자 배드 버니는 투어를 멈추고 산후안 시위에 참여했다. 또한 레네 페레스, 일레이나 카브라와 함께 저항 음악 ‘아필란도 로스 쿠치요스(Afilando los Cuchillos)’를 만들었다. 작년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 무대에 다시 한번 선 배드 버니는 산후안에서 살해당한 노숙자 트랜스젠더 여성을 추모하는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섰다. 티셔츠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들은 알렉사를 살해했다. 그녀는 치마를 입은 남성이 아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배드 버니는 3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첫 번째 앨범 <YHLQMDLG>는 초창기 레게톤에 대한 그의 애정을 그려냈다. 오프닝 트랙 ‘시 베오 아 투 마마(Si Veo a Tu Mama)’는 이별 후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던 중 전 연인의 어머니를 마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808 베이스 기반에 더해진 빈티지한 키보드 사운드가 매력적인 이 곡은 아타리 게임의 사운드트랙이나 식료품점의 무자크(상점·식당·공항 등에서 트는 배경 음악)가 연상되는 중독성을 자랑한다. 앨범의 또 다른 히트곡 ‘Safaera’는 미시 엘리엇의 ‘Get Ur Freak On’의 툼비 샘플과 밥 말리의 ‘Could You Be Loved’의 베이스 라인을 접목했다. 2020년 5월에 발표한 미발매 음원이 담긴 두 번째 앨범 <라스 케 노 이반 아 살리르(Las Que No Iban a Salir)> 역시 비슷한 형태를 띤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제외하고 획기적인 영향력만 따져봐도 세 번째 앨범만 한 앨범이 없다. <El Ultimo Tour del Mundo>는 스페인 가수 로살리아와 함께 부른 ‘La Noche de Anoche’를 포함해 순수한 레게톤 트랙을 담고 있다. ‘Dakiti’에는 레게톤과 신스 사운드를 교묘히 섞었으며, 다른 트랙에는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요소와 트랩 비트를 담았다. 혹은 뉴웨이브와 스페인어 록을 섞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앨범을 닫는 마지막 곡 ‘Cantares de Navidad’는 배드 버니의 고향 출신 그룹인 트리오 베가바제노가 녹음한 크리스마스 노래다. 또 다른 트랙은 푸에르토리코의 전설적인 점성가 월터 메르카도를 샘플링하였다. 배드 버니는 “언제나 희망과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메르카도의 노력에 공감했어요. 그는 3월 9일, 저는 3월 10일에 태어났거든요. 우리 둘 다 물고기자리예요. 감정적이고, 감성적이고 또 가끔 사람들은 우리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죠.”
배드 버니는 내년부터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들고 활동할 계획이라 말한다. 역대 가장 큰 규모의 투어가 될 북미 투어 계획도 최근 발표했다. 또한 그는 연기에도 도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브래드 피트가 출연하는 액션 영화 <Bullet Train>의 촬영을 마쳤다. “아주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은 소년에 대한 이야기예요. 거리에서 살인마가 되기 위해 평생을 바치죠. 풍파를 많이 겪은 공격적인 남자예요.” 그는 드라마 <나르코스: 멕시코> 편에도 특별 출연할 예정이다. 극에서 유머 감각이 뛰어난 캐릭터를 맡았다. “농담을 밥 먹듯 하는 친구예요. 인생을 즐기고 싶어 하죠.” 올해 말에는 케빈 하트가 제작하는 코미디 <아메리칸 솔>에 코미디언 피트 데이비슨과 래퍼 겸 작곡가 오프셋과 함께 출연할 예정이다. 그런가 하면 아디다스 스니커즈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했던 야광 크록스처럼 스니커즈 역시 빠르게 완판되었다.
하지만 배드 버니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늘 음악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음악 작업 시 제가 ‘메카니코(Mecánico)’라고 부르는 기계적인 과정이 있는데, 저는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보다 더 진짜인 과정이 있죠. 기대하지 않았던 때에 갑자기 떠오른 뮤즈와 창조성 같은 거요. 잠재된 의식이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죠. 특히 밤에 혼자 있을 때 자주 그러는 것 같아요. 슬픈 곡은 밤에 작업해요. 밝은 곡은 낮에 운동한 후 아니면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 써요. 그래야 곡 작업에 적응할 수 있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정이에요. 제가 느끼는 그 순간에 자연스럽게 곡이 나오는 거죠. 가사가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모르는 채. 하지만 가사는 결국 제게 오게 되어 있죠.”
Photographer MARTINE SYMS 글ㅣAbby Aguirre
스타일리스트 | Storm Pable 헤어&메이크업 | Carola Gonzalez(@ Forward Artists) 세트 스타일리스트 | Spencer Vrooman 시팅 에디터 | ALLIA ALLIATA DI MONTEREALE 프로듀서 | ALICIA ZUMBACK AT CAMP PRODUCTIONS 프로덕션 매니저 | CHRIS NULL 포토그래퍼 프로듀서 | ROCKET CALESHU 포토 어시스턴트 | LYDON FRANK LETTUCE, JAKE NADRICH 조명 어시스턴트 | TYLER ADAMS 리처팅 | STUDIO PRIVATE 패션 어시스턴트 | LUCY GASTON 세트 스타일링 어시스턴트 | ANDREW BOND 프로덕션 어시스턴트 | RUS LAICH 테일러 | RINA TSHARTARYAN AT SUSIE’S CUSTOM DESIGN, INC. 안전 사무관 | LUKE LOVELL
Seventeen
2017년 발표한 곡 ‘울고 싶지 않아’로 스포티파이 1억 스트리밍을 달성한 케이팝 그룹, 세븐틴. 2015 데뷔한 세븐틴은 힙합, 보컬, 퍼포먼스까지 총 3개 유닛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멋진 철학을 담고 있는 이 그룹은 3개의 유닛이 모여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
2015년 세븐틴의 데뷔 앨범 <17 Carat>이 발매됐다. 데뷔까지의 과정을 어떻게 기억하나?
버논 중학생 시절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탔는데 캐스팅 담당자가 다가와 혹시 가수를 해볼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진로를 두고 고민이 많던 시기에 맞닥뜨린 일이었다. 평범한 학생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 훨씬 즐거울 것 같았고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3년의 연습생 시절을 거쳐 세븐틴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조슈아 LA에서 나고 자랐다. 어느 날 친구와 코리아타운에서 열리는 한인 축제에 갔는데 우연히 케이팝 관계자의 눈에 띄었다. 그가 날 붙잡더니 한국에 가서 트레이닝을 받아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 후로 바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세븐틴은 ‘힙합’, ‘보컬’, ‘퍼포먼스’ 총 3개의 유닛으로 구성된 그룹이다. 한 유닛에 속한 멤버가 다른 유닛으로 옮겨가 활동하기도 하나?
조슈아 세 유닛으로 나뉘지만 다양한 조합의 유닛을 선보인다. 나도 보컬 유닛에 속해 있지만 연습생 때는 랩 무대에 서기도 했다.
버논 나는 힙합 유닛에 속해 있지만 샤워할 때만큼은 보컬 유닛이다(웃음). 샤워할 때면 늘 노래를 부르거든.
하하. 주로 어떤 노래를 부르나?
버논 찰리 XCX의 노래! 아메리칸 팝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팬들을 보석 질량 단위를 뜻하는 ‘캐럿’이라 부른다. 어떻게 짓게 된 이름인가?
조슈아 활동 초창기 온라인 투표로 결정한 펜 네임이다. 공식 데뷔 전 ‘샤이닝 다이아몬드’라는 곡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캐럿보다 절묘한 펜 네임이 없었던 것 같다.
작년 공개한 앨범 <세미콜론>은 발매 첫 주 만에 판매량 93만 장을 기록했다. 동시에 38개국 아이튠즈의 톱 10에도 진입했다. 초판에는 실과 바늘로 구성된 위빙 키트를 동봉했다 들었는데, 당시 팬데믹을 보내던 팬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놀거리였을 것 같다. 당신들도 직접 위빙을 해봤나?
조슈아 시도는 해봤지만 너무 어려워서 결국 포기했다 (웃음).
버논 시도할 엄두조차 못 냈지만 캐럿들은 해냈을 거다. 검은색, 흰색의 실을 세븐틴의 공식 색상으로 염색해 위빙을 완성한 팬도 있다고 들었다.
세븐틴의 공식 색상은 무슨 색인가?
조슈아 로즈쿼츠와 세레니티. 각각 분홍색, 하늘색과 비슷하다. 콘서트를 열면 팬들이 공식 색상으로 물든 응원봉을 들고 관객석을 가득 채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답고 가슴 벅찬 풍경이다.
Photographer YEONHOO AHN 글 | Lynn Hirschberg
스타일리스트 | 최영회, 강민지 헤어 | 임중호, 우은혜 메이크업 | 고진아, 김시진, 정유정, 손가영 패션 어시스턴트 | 염다연, 이지유, 박하연, 이사랑
Vince Staples
빈스 스테이플스는 2011년 음악 신에 등장한 이후 줄곧 캘리포니아 롱비치 특유의 감성이 담긴 음악을 선보여왔다. 그는 최근에 낸 신보에서 자신이 걸어온 지난 10년을 묵묵히 돌아보았다.
7월 발매한 앨범 <Vince Staples>에서는 절친인 뮤지션 케니 비츠와 협업했다. 어떻게 작업한 음반인가?
한창 녹음 중인 곡에 케니가 비트를 찍어 보내준 것이 출발점이었다. 우리 둘 다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걸 모두 쏟아붓겠다는 심정으로 접근하진 않았던 것 같다. 추수감사절부터 작년 크리스마스까지 한 달간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 느슨히 작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몇 주에 걸친 녹음과 수정 끝에 좋은 결과물을 얻게 됐다.
음악을 구상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나?
이 일의 대부분이 관점을 구체화하고, 그 관점을 따라가는 것과 다름없다. 그저 내 안에는 나를 뒷받침해주는 강인하고 단단한 힘이 있다고 믿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이 믿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프로젝트든 멋지게 끝맺을 수 있다. 그 외에는 스튜디오에서 꾸준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려나. 10분, 아니 5분 만에 한 곡이 탄생할 수도 있으니까. 1시간 동안 스튜디오에 나가 5곡을 완성하고 집으로 퇴근하는 거지. 실제로 작업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Vince Staples>를 작업하는 동안 들었던 음악 중 영감을 준 노래를 꼽는다면?
사실 음악을 많이 듣지 않는 편이다. 심지어 어릴 적에도 즐겨 듣지 않았던 것 같다. 내겐 작업 과정 그 자체가 영감의 대상이다. 물론 음악은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악을 따라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고, 또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주니까.
조만간 정규 앨범 <Ramona Park Broke My Heart>도 공개할 예정이라 들었다.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글쎄, 그냥 근사하지 않나? 다양한 일에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 대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음악은 무척 주관적이어서, 나 또한 이런 특성을 따라 당시 내 안에 머물러 있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어떤 상징적 요소를 활용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이건 무슨 뜻일까?’, ‘이건 어떤 식으로 들릴까?’와 같은 생각들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은 현실주의자 같다. 현현(Manifestation)의 힘을 믿는가? 실제 삶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 큰 소리로 희망과 꿈을 외치고 표현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우리 앞에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너무도 많다.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몇몇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고 들었지만,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는 편이다. 이런 자세가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태도라는 생각도 들고.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를 잘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에 고집스럽게 접근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온 것을 잘 흘려보내려 할 뿐.
Photographer QUIL LEMONS 글ㅣMaxine Wally
스타일리스트 | Corey T. Stokes 헤어&메이크업 | Nai’vasha(@ Boy de Chanel at the Wall Group) 포토 어시스턴트 | ALEXANDER CODY NGUYEN
Willow
‘누구의 딸이 아닌 윌로우’로 성장하고 있는 그녀는 음악적으로 이미 여러 변신을 시도했고, 7월에 낸 앨범 <Lately I Feel Everything>에서 또 한 번 과감한 도전을 했다. 인터뷰는 그 앨범을 내기 전에 이루어졌다.
당신은 진정한 ‘멀티테이너’다. 아버지 윌 스미스와 함께 연기를 하고, 어머니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할머니와는 <레드 테이블 토크(Red Table Talk)>를 공동 진행한다. 음악적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고. 히트곡 ‘Whip My Hair’ 이후 소울풀하고 실험적인 얼터너티브 R&B, 슈게이징 장르를 시도했고, 최근 팝-펑크 록 앨범에 도전했다. 어떻게 이런 새로운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됐나?
어릴 적부터 엄마는 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메탈 앨범을 꼭 만들어보고 싶었다. 일곱 살인가 여덟 살쯤, 엄마의 밴드인 위키드 위즈덤이 오즈페스트(Ozzfest)에서 공연할 때 투어를 함께 다녔다. 강인한 흑인 여성이 무대에서 록을 부르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흑인 여성을 보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불친절한 태도를 보이는데도 엄마는 품위를 지키며 자신의 일을 했다. 무척 강하게 그 상황에 대처한 거다. 엄마가 이런 말을 들려준 기억이 난다. ‘어떤 이들의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가 거기에 신경 쓰면 안 돼. 우리는 우리의 최고를 보여주는 일, 흔들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해내는 데 집중해야 해.’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여덟 살부터 R&B를 부르는 트레이닝을 받아왔기 때문에 내가 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긴 하다. 하지만 갑자기 ‘뭐 어때?’ 싶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 이것저것 해봤다. 격리 기간 동안 정말 많은 데모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할 일이 없었으니까. 이 음악적인 비전을 내가 실현할 수 있을지 어떨지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더라.
최근 앨범과 싱글을 위해 협업한 아티스트들을 소개해준다면?
팝-펑크를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연락한 대상은 트래비스 바커(Travis Barker)다. ‘이거 당신이 해주면 정말 끝내줄 것 같아’라고 하면서.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Transparent Soul’을 들려줬고, 이 곡을 정말 좋아해줬다. 사실 혹시나 그가 별로라고 생각할까봐 걱정했다. ‘Grow’라는 곡은, 키즈와 패밀리용 라디오 채널인 ‘라디오 디즈니’에서 2007년에 흘러나왔을 법한 노래처럼 들리기를 원했다. 그래서 에이브릴 라빈에게 연락했지. 그 시기 에이브릴 라빈만의 고뇌가 느껴졌으면 해서. 내가 보낸 곡을 그녀가 어떻게 바 꾸어놨는지 들었을 때, 마치 10대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차에서 에이브릴의 노래를 소리 지르며 불렀다. “I don’t have to try to make you realize!” 상상 이상의 즐거움이었다.
지난 앨범 활동 때 그랬듯이 이번에도 퍼포먼스 아트를 도입할 계획인가?
퍼포먼스 아트를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음악과는 크게 관련 없어도 바로 지금 해보고 싶은, 멋지고 창의적인 것들이 굉장히 많을 예정이다.
Photographer LEA WINKLER 글ㅣMaxine Wally
스타일리스트ㅣWillow 헤어 | VERNON FRANÇOIS FOR REDKEN AT THE VISIONARIES AGENCY 메이크업 | RAOUL ALEJANDRE AT OPUS BEAUTY조명 디렉터 | ROBERT KOZEK 조명 테크니션 | KENNY CASTRO 사진 디렉터 | JIMMY NYEANGO 패션 어시스턴트 | JENSEN EDMONDSON 프로덕션 어시스턴트 | KURT LAVASTIDAPHOTO ASSISTANT: ALEXANDER CODY NGUYEN.
Lil Uzi Vert
래퍼 릴 우지 버트의 행동 하나 하나가 기사 거리다. 그가 ‘아름다움은 고통’이라며 이마에 다이아몬드를 이식하는 모습이나, 외계 행성의 소유권을 취득하는 중이라는 소식이 금세 알려지는 것처럼.
작년에 낸 정규 앨범 <이터널 어테이크(Eternal Atake)>가 발매된 지 1년이 더 넘었는데도 여전히 차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 소식이 그다지 기쁘지 않다고?
앨범에 수록된 곡이 전부 사전에 노출되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했다. 결국 앨범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내가 정말로 원하던 사운드가 아니란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터널 어테이크>는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에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예술성의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 나는 내 진짜 팬들에게 더 친밀하고 ‘릴 우지 버트’다운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원래는 좀 더 컬트적인 요소를 더하고 싶었달까.
당신은 음악을 계속해서 수정하는 작업에 집중하느라 스튜디오 밖으로 잘 나오질 않는다고 들었다. 요즘도 그렇게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내나?
아니. 완벽한 노래를 만들려고 애쓰는 대신 흘러가는 대로 두는 편이다. 지금까진 주변의 의견에 너무 기대어 있었지만.
누구의 의견을 따랐나?
음악 시장에 있는 모든 뮤지션의 노래를 듣고 형식을 살펴봤는데, 이들이 넘버원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도리어 당혹스러웠다. 그러한 음악 속에는 진정한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다는 걸, 최고의 자리 또한 빠르게 교체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다들 잡고 잡히는 형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한다. 대부분 나보다 어려서 시간적 여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는 어린 후배들을 볼 때마다 멋지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래퍼 듀오 ‘시티 걸즈’의 멤버인 여자친구 JT(자타비아 ‘JT’ 존슨)와 함께한 시간이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데 영감을 줬는지?
그녀는 내가 차분함을 유지하고 밸런스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앨범과 관련해서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편이다.
즐겨 입는 디자이너의 옷이 있다면?
트루 릴리전. 릭 오웬스의 옷도 즐겨 입는다. 지금도 릭 오웬스의 부츠를 신고 있는데, 사실 스타일링은 여자친구에게 맞추곤 한다. 얼마 전 에르메스 버킨백을 선물했더니 좋아하는 모습에 나도 기뻤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지게 된 새 취미가 있다면?
필라델피아에서 ATV와 산악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완전 불법이긴 한데, 무진장 재밌다. 가장 좋아하는 바이크는 야마하 반시 350이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2006년에 생산 중지된 바이크다. 뒷바퀴를 든 채 앞바퀴만 들고 타는 휠리 기술에 가장 적합하고, 도전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딱 내 취향이지.
Photographer A.J. GREENE 글ㅣMaxine Wally
스타일리스트 | Lil Uzi Vert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 IAN CONNOR 패션 어시스턴트 | MISO DAM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전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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