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게 낯선 [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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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음악을 직접 만들고, 무대 위에 올라 춤을 추며, 자신이 가장 예쁜 모습일 때 주목받을 수 있는 이 직업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신인 가수. 유하의 날개가 펼쳐졌다.

유하는 물에서 태어난 아이다. 가수로 데뷔한 지 이제 1년이 채 안 된 그녀가 ‘바로 그 아이’라는 걸 알았을 때, 20년도 더 지난 기억이 몇 년 전의 일처럼 금세 되살아났다. 지구 멸망설이 돌던 흉흉한 세기말을 지나 밀레니엄의 새 시대가 열린 2000년 1월 초. SBS에서 방영한 신년 특집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생명의 기적>이었다. 그때 뮤지컬 배우 최정원이 국내 최초로 수중분만을 시도하는 과정을 지켜본 시청자라면, 충격과 감동이 뒤엉킨 공감각적인 장면을 잊기란 힘들 것이다. 그 방송은 유튜브라는 것이 생긴 이후 나름의 장르를 형성한 ‘출산 브이로그’ 의 어머니쯤 되겠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작년 가을 유하가 데뷔한 직후, 유튜브 채널 <Youha>에는 ‘Youha : The Beginning’이란 제목의 재밌는 영상이 올라왔다. 유하의 목소리로 이런 내레이션이 흐른다. ‘1999년 9월 21일 오전 11시 32분. 무궁화 3호 발사, 엘리자베스 2세 방문, 거장 스탠리 큐브릭 별세, 한화가 롯데를 꺾고 우승하는 등 전설적인 일들이 펼쳐지던 해에 서울의 한 병원에선 조금 특별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자고로 영웅은 저마다의 탄생 설화를 가지고 있다.’ 문장으로 써놓고 보니 대서사시의 도입부 같은 뉘앙스가 풍기지만, 유하가 주인공인 이 2분 30초짜리 영상은 미셸 공드리가 만든 광고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니까 아직 낯선 이 인물에게는 태생적인 드라마가 있다. 과거의 방송을 기억하는 내게 유하는 말했다. “와, 기억이 나세요? 그걸 기억하는 분과 제가 세월이 흘러서 이렇게 마주 앉아 있으니 신기한 인연이네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했다는 유하는 열두 살 무렵, 지금은 글로벌 스타가 된 또래들과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K-Pop의 산실인 그 시스템 속에서 약 10년을 자랐다. 솔로 뮤지션 유하의 챕터를 열게 된 것은 작년 초 유니버설 뮤직이 주최한 오디션을 통해서다. 그리고 9월, 맑은 목소리에 몽환적이지만 밝은 에너지를 담은 싱글 ‘아일랜드’가 나왔다. 유하가 엄격히 통제되는 매니지먼트에 속한 몸이었다면, 솔로가 아닌 그룹의 일원이었다면, 데뷔곡의 작사 작곡에 참여하는 일이 가능했을까? “제가 처음 가수 준비를 시작할 무렵에 비욘세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리한나가 막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팝 음악을 많이 들으면서 연습생 생활을 했거든요. 곡을 쓸 때면 노래의 포인트나 감각적인 면에서 팝의 좋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느껴요.” 유하는 올 초 레트로풍의 신스팝 ‘오늘 조금 취해서 그래(Abittipsy)’, 이후 반려견 밀키를 떠나보낸 감정을 담은 ‘품’을 발표했다. 이 몇 걸음을 통해 유하가 내비치고 있는 것은 여느 걸 그룹에게서 보던 상큼함과 ‘영’한 여자 싱어송라이터의 출현을 동시에 충족하는 솔로 가수로서의 가능성이다.

보디슈트와 투박한 부츠는 릭 오웬스, 헤드피스는 키미 제이 제품.

매거진이 본격적으로 가을을 담느라 분주한 이 시점에 휴대폰에서는 매일 폭염주의보 알림 문자가 울렸고, 유하는 여름의 마지막을 한껏 여름답게 보낼 채비를 했다. 8월 10일 선공개된 싱글 ‘체리 온 탑’에 이어 또 다른 싱글 ‘ICE T’가 공개되면, 유하의 한 계절이 <스위트-티(Sweet-Tea)>라는 앨범으로 완성된다. “선공개 싱글은 보사노바를 기반으로 한 곡인데, 사랑을 ‘맛’으로 표현해봤어요. 후속 싱글은 기본적으로 댄스곡이지만 좀 더 복합적인 장르의 요소가 있고요. 두 곡 모두에서 명랑한 에너지와 밝은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유하는 말할 때 작고 차분한 목소리를 낸다. 노래할 때는 불순물 한 점 없는 청량한 톤으로 플루트의 가녀린 떨림 같은 소리를 내곤 한다. 그런 소녀성과 더불어 퍼포먼스에 유리한 긴 팔다리 등의 ‘피지컬’을 가졌으니 이질적인 조합이기도 한데, 쉽게 예상할 수 없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를 배반하기도 하는 면은 유하를 알쏭달쏭한 캐릭터로 만들어준다. “제 노래들은 제 인스타그램이나 사진에서 짐작되는 이미지와 꽤 달라요. 어쩌면 자극이 덜해서 재미도 덜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지금 보여드리는 것들은 저의 극히 일부라고 생각해요. 한창 성장 중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잘 표현하는 가수가 될지는 저도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유하는 빅톤, 이달의 소녀 등 아이돌 그룹에게 자신이 발표한 것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곡을 써주면서 보다 다양한 음악 작업의 재미를 누리기도 했다. 조만간 무대와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보여줄 모습을 굳이 고려하지 않은 콘셉트의 <더블유> 촬영을 할 때도 유하는 그 ‘어긋남’을 새롭고 신나게 받아들였다. 솔로 가수, 특히 자기 음악을 직접 쓰며 안무까지 소화하는 솔로 가수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귀하다. 어엿한 유하의 등장은 그를 처음 보는 이들에겐 새로운 발견으로, 오래전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작은 반가움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노래하고 춤추면 사람들에게 주목받는다’라고 인지했던 먼 과거의 기억이 있다면?

‘태어날 때부터.’ 아주 어릴 적 사진들을 보면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춤추고 있는 모습이 많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계기라는 게 따로 없이,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던 것 같다. 모창을 하거나 춤을 따라 추면서 나름 진지하게 가수 놀이를 하는 게 재미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별 망설임 없이 그러길 즐기던 어린 날에 비하면 ‘보여주고 싶다’, ‘주목받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은 성인이 되면서 오히려 가려진 부분이 있는 듯하다.

쿠튀르적인 스팽글 레이스 장식 티셔츠와 팬츠, 이어커프는 모두 알렉산더 맥퀸 제품.

태어난 순간을 담은 모습이 TV로 방송되었다는 걸 언제 알았나?

중학생 때, 그러니까 어느 정도 사고가 성립됐을 때 부모님이 보여주셨다. ‘나는 좀 남다르구나’ 하는 나르시시즘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동시에 ‘평범하지는 않은 건가’ 싶은 불안감도 조금 느꼈던 거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가수 놀이를 즐기던 어릴 적부터 괜히 내가 특별한 아이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유하의 성격을 표현하기 좋은 단어는?

강아지(웃음). SNS상으로는 내가 좀 도도하게 느껴지나 보다. 사실 나도 도도한 이미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처럼 보이고자 노력도 해봤지만… 워낙 강아지과에 가까운 인간이라 쉽지가 않다.

음악 외에는 뭘 좋아하나?

필라테스, 복싱, 헬스를 꾸준히 하고 자전거도 탄다. 복싱한 지는 1년 정도 됐는데, 스트레스가 풀리고 재밌다.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 것 치고는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내게 건강한 이미지가 있다면 그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든 어택, 오버워치, 롤도 좋아한다.

예능 방송에서 아침부터 떡볶이를 만들어 먹는 모습을 봤다.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와 술. 최근 위스키에 빠졌다. 위스키에 사과 주스를 타 먹으면 맛있다.

즐겨 보는 종류의 콘텐츠는?

먹방. 먹방을 보면 자극받아서 뭔가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오랫동안 그룹이 대세인 K-Pop 시장에서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각오는? 

나는 나에게 자신이 있는 편이다. 무엇보다 조급한 마음이 없다. 당장의 인지도가 크지 않고 부족한 면이 있다 해도 매번 최선을 다해 가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잘하는, 행복한 가수가 돼 있을 거라고 믿는다. ‘역주행’이라는 것도 있으니 시간이 흘러 내 지난 노래가 더 큰 사랑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많이 떨린다. 그런 것도 시작하는 단계인 지금이니까 겪는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유하가 꼽는 ‘최고의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엄마. 아무래도 그렇다. 엄마의 매력은 ‘아우라’다.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매력과 힘에 있어서는 내가 아는 알려진 사람 중에 으뜸이다. 그 외에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때에 따라 입맛이 달라지듯 자주 바뀐다. 요즘 빠져든 이는 도자캣. 그 영향으로 나도 랩 곡을 좀 써보는 중이다.

유하에 관해 알려줄 TMI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키를 쟀을 때 171cm였는데 거기서 더 자란 것 같다. MBTI 결과는 ENFP. 혈액형은 원래 A형으로 알고 있었지만, 중학생 때 검사한 결과 O형으로 밝혀졌다. 지금은 어떨까? 혹시 또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닌지. 그러니까 내 혈액형이 무엇이라고 함부로 발설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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