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의 길 [더블유 9월호 안보현 화보 & 인터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안보현의 길

2021-08-26T12:34:45+00:002021.08.26|FASHION, FEATURE, 피플, 화보|

 안보현은 지금 여기 서서 자신의 길 위에 놓였던 바둑돌을 하나하나 돌아보기로 했다. 기쁜 날도, 서글픈 날도 있었고 그게 모여 오늘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앞으로도 계속될 안보현의 길은 지금, 예감으로 가득 차 있다.

페이턴트 가죽 소재의 트렌치코트와 검은색 톱, 슈즈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제품.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살이 많이 탄 것 같다.

일부러 태웠다. 9월 방영하는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촬영 때문에 태닝만 20번 넘게 한 것 같다. 극 중 주인공 유미(김고은)의 남자친구인 구웅 캐릭터를 맡았거든. 원작 웹툰에서 피부가 까맣고 장발에 턱수염이 덥수룩하다고 묘사되는 인물이다.

 

최근 촬영장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돼 화제가 됐다. 구웅 분장을 한 당신을 보고 사람들이 말하더라. ‘이렇게까지 웹툰을 고증할 필요는 없는데…(웃음).’

이번 작품을 하면서 많은 걸 내려놨다(웃음). 통가발도 처음 써봤다. 사진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지. 뜻밖의 화제에 감독님도 은근히 좋아하시는 눈치다.

 

캐스팅 소식을 접하고 ‘안보현이 구웅을?’이라고 생각했다. 작년만 해도 당신은 ‘코리안 조커’로 통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서 연기한 장근원이 엄청난 악역이었으니까. 반면 웹툰 속 구웅은 미련 때문에 질척거리는, 다소 찌질한 남친의 전형이다.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었다. 배우로서 표현하고 싶은 게 많은데 장근원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다 보니. 구웅은 장근원과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다. 연기적으로 터닝포인트가 되겠구나 싶어서 이번 작품을 선택했다. 참, 그리고 항변하고 싶은 게 있다. 사람들이 구웅을 단순히 찌질하다고 하지만 나는 웹툰에 등장하는 세 명의 남자 캐릭터 가운데 구웅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자부한다(웃음).

 

유바비, 신순록이 아닌 철저히 ‘구웅파’인가?

그럼. 만약 캐스팅 당시 세 캐릭터 모두 내게 열려 있었다면, 그때도 나는 구웅을 택했을 거다. 찌질하고 앞뒤 막히고 허구한 날 쪼리만 신고 다니는 인간이지만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또 마냥 순수하고 좋아하는 상대에게는 직진한다. 가끔 속마음을 표출하지 못하고 꿍해 있어서 그렇지. 아마 드라마가 방영되면 속으로 ‘나 구웅 좋아하네?’ 하는 사람 많을 거다(웃음).

 

상대 배우 김고은과의 촬영은 어땠나?

고은이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다. 다양한 작품을 한 데다 연기야 워낙 잘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현장에서 고은이를 보면 그저 유미 같다. 김고은이 연기하는 유미가 아니라, 유미가 된 김고은 같달까. 상대 배우 입장에선 감정 이입이 잘될 수밖에 없다. 촬영의 80%가 고은이와 단둘이 함께하는 신이다. 게다가 보통 커플이 연애하는 것과 똑같이 극장 가고, 카페 가고, 또 카페 가는 것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게 지루하지가 않더라고. 현장 ‘케미’가 정말 좋다.

니트 풀오버와 팬츠, 첼시부츠는 모두 디올 맨 제품.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네임>의 촬영도 마쳤다 들었다. 액션 누아르 장르의 드라마인데, 왠지 물 만난 고기처럼 찍었을 것 같다. 액션물 좋아하지 않나?

좋아한다. 몸을 쓰고 다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다. 워낙 해보고 싶던 장르여서 현장에 가는 하루하루가 정말 행복했다. 웬만한 액션 신을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하기도 했고. 또 연출을 맡은 김진민 감독님의 오랜 팬이다. 감독님의 전작 <인간수업>, <무법 변호사>를 아끼며 봤거든. 하반기 공개 예정인데 여기저기서 잘 나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나도 기대 중이다.

 

드라마가 공개되면 ‘한국의 톰 크루즈’ 소리 좀 듣겠다.

에이, 그럴 일은 없을 거다(웃음). 그런데 감히 말하자면 기대해도 좋을 거다. 뻔한 수사물이 아니거든.

 

<마이네임>에서 마약수사대 형사 전필도를 맡았다. ‘능력 있고 강단 있는 원칙주의자.’ 여태 공개된 전필도에 대한 유일한 단서다. 어떤 인물인가?

모든 면에서 철두철미하다. 일밖에 모르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어떻게든 관철시킨다. 오로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혼자 살아가는 인물이다.

 

왠지 인간 안보현과 닮은 느낌이다. 혼자 투지 있게 사는 것. 과거 당신도 복싱 선수에서 모델,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하지 않았나? 전부 몸을 쓰며 온전히 혼자 하는 직업이다. 스스로 그런 지난날을 돌이키며 속된 말로 ‘존버했다’고 말한 인터뷰 기사를 본 기억도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여태 맡은 캐릭터가 다 그랬다. 속된 말로 ‘독고다이’라고 하지. 타인에게 의지할 줄 모르고 힘들면 힘들다 표출 못하고. 고민 끝에 해결책을 낸다 한들 ‘과연 나아질까?’ 생각하고. 전필도도 자신이 가진 아픔을 머리 싸매며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고 한다. 그걸 강인함이라고 말할 수도, 독고다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런 걸 보면 내가 살아온 방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안보현의 삶도 독고다이였나?

그렇지. 내가 운동을 하지 않았나. 요즘 올림픽을 보면서 다시 느낀다. ‘얼마나 힘들까.’ 운동은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거든. 그 버릇이 몸에 남아서인지 나한테 당근을 잘 안 준다. 내내 채찍질만 하면서 나이를 먹은 것 같다. 또 중학교 3학년 때 독립해 계속 혼자 살기도 했고. 이런 성격은 아마 죽을 때까지 똑같을 것 같다. 잘 바뀌지 않더라고.

니트 풀오버와 코트, 팬츠, 컴뱃 부츠는 모두 펜디 제품.

처음 복싱을 시작한 계기가 생계 때문이었다 들었다.

키가 크니까 어려서부터 농구부, 배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마침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복싱부가 있었다. 처음엔 ‘한번 해볼까?’ 싶어 시작한 운동이었다. 그런데 대회에서 입상하면 상금까지 탈 수 있더라고. 당시 상금이 몇십만원이었는데 나한테는 굉장히 큰돈이었다. 그걸 집에 보내 보탬이 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체육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기숙사에서 생활하니 의식주도 해결되겠다 ‘이건 효도다’ 싶었지. 짐을 덜어주는 것 자체도 효도로 볼 수 있지 않나. 의식주도 해결돼, 상금도 받아, 이건 내 길이구나 생각했다.

 

얘기 들어보니 왠지 어린 시절 속 한 번 안 썩이는 착한 아들이었을 것 같다.

속 썩일 틈이 없었다. 사춘기도 없어서 ‘사춘기가 뭐지?’ 싶다.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 걸 느껴볼 겨를이 없었다. 혼자 산 세월이 길고, 혼자 해 먹은 밥이 더 많다 보니까.

 

일찍 독립했으면 어머니와 데면데면할 법도 한데, 어머니와 함께 출연한 MBC <나 혼자 산다>를 보면 꼭 딸 같은 아들이더라.

방송용인 것 같다(웃음). 못 보겠더라고. 제작진이 워낙 편집을 잘해줬다. 실은 굉장히 무뚝뚝한 집안이다. 다들 표현이 서툴다. 나는 우리 집이 일반적인 줄 알았다. 서로 쓰담쓰담해주는 집을 못 봐서 몰랐던 건가? 군대 갈 때도 아버지와 악수 한 번 하고 끝이었다. 나도 ‘그냥 가는 거지’ 싶었고. 면회나 입소할 때 따라오는 것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대전까지 와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집에 어떻게 가려고 따라와’ 생각했지. 그런데 살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우리 집이 평범하진 않았구나 싶더라고. 이제 나이가 드니까 어머니한테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표현하려고 하는데,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진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첫 휴가는 보통 가족과 보내지 않나?

에 안 갔다. 아마 집에선 내가 휴가 나온 것도 몰랐을걸?(웃음) 보통 군대 가면 집에 전화해 이것저것 보내달라 하지 않나. 나는 그런 것도 딱히 없었다. 또 군대도 의장대로 갔거든. 총 돌리고 성과 좋아야 열외가 될 수 있어서 훈련하기 바빴고 몸 만들기 바빴다. ‘나가면 뭐, 뭐 해야 하니까 몸 만들어야 해’란 생각에만 집중했다. 배식을 받으면 두부, 미역만 골라 먹고 PX도 잘 안 간 것 같은데 지금 와선 좀 후회한다. 제일 혈기왕성하고 젊을 때인데 재미있게 즐기면서 추억도 좀 쌓을걸. 물론 그렇게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나 생각도 들지만.

 

악바리였네.

그렇지. 좀 다른 말이지만, 내 모든 게임 아이디에 ‘악바리’가 들어간다(웃음).

 

왜 그렇게 악바리일 수밖에 없었나?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IMF가 터졌다. 우리 집이 굉장히 잘 살다가 IMF로 한순간에 힘들어졌다. 나는 그 시기엔 모두 그렇게 힘들게 사는 줄 알았다.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못했지.

기하학 패턴의 톱은 프라다 제품.

당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나?

고향이 부산이다. 고향 친구들이 술 마시면 하는 말이 있다. ‘저놈은 무인도에 떨어뜨려놔도 바닷물 다 마시고 걸어 나올 놈이다.’

 

고향 친구 중 유일하게 당신만 서울에서 지내나?

그렇다. 단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친구들이 휴가를 서울의 우리 집으로 온다. 결혼한 친구도 많은데 지금보다 집이 작았을 때도 아내, 애기들 데리고 자주 놀러 왔다. 마음대로 우리 집에서 휴가 보내다 나 빼고 가평 놀러 갔다고 하고(웃음).

 

거의 숙소 제공이네.

근데 그게 또 좋다. 다행히 배우 일을 하면서 집도 조금씩 커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같이 행복해한다. 말만 그렇지 다들 그냥 오지 않는다. 양손 가득 집 반찬이며 몸에 좋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 온다. 엄마, 장모님이 갖다주라고 했다면서.

검정 테일러드 재킷과 팬츠, 프린트 보디슈트, 로퍼는 모두 프라다 제품.

당신의 지난날을 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직업을 세 번 바꿨는데 셋 다 누구나 쉽사리 택하지 않는 길들이다. 쉽지 않을 게 뻔하니까. 그런데 당신은 왜 그런 길들에 자신을 기꺼이 던져왔나?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다이내믹했다. 앞만 보고 달릴 땐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한번 뒤돌아보니 정말 그렇다. 그냥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했다. 가만히 있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된다고 생각했고. 복싱 선수를 할 때도, 모델을 할 때도 ‘이쯤이면 됐다’의 그 이상은 다 한 것 같다. 글쎄, 모르겠다. 내 업보 같은 거겠지.

 

편법 없이 산 사람. 지금껏 당신과 대화하며 든 인상이다.

편법도 쓸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거라고 생각했다. 정당하게 산다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진 게 없는 사람들에겐 이게 당연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연기자가 돼서 좋았던 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디션 기회가 찾아온다는 거였다. 기회가 평등하니까 다른 생각 안 했던 거고, 어쩌면 그래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아까 친구들 말이 떠오른다. 정말 당신은 무인도에 배가 있다면 그걸 훔칠 바엔 차라리 바닷물 다 마시고 걸어 나올 사람이네.

배가 있다면 타지 않았을까? (웃음) 아무리 그래도 무인도인데. 아니다. 나라면 그냥 배 타고 즐겼을 것 같기도 하고?

 

하하. 편법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의 이력에서도 느껴진다. 한 단계, 한 단계 차곡차곡 작품을 쌓아 올리다 작년 두 작품 <이태원 클라쓰>, <카이로스>로 마침내 결실을 맺은 듯한 느낌이다.

조물주가 그렇게 만든 건지 모르겠는데, 내 인생이 그냥 그런가 보다. 정말 이름도 없는 단역부터 시작했거든. 그러다 대사 한 마디가 생겼고, 직업이 생겼고, 이름이 생겼고, 어느 날 포털 사이트에 내 사진과 이름이 올라갔다. 정말 운이 좋았지. 이런 작은 것들을 이룰 때마다 희열을 느꼈고 그게 큰 자극제가 됐다. 앞으로도 내가 올라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았다고 느껴졌으니까.

 

천천히 이뤄왔기 때문에 당신에겐 성취가 손에 잡힐 만큼 선명하게 느껴지겠다.

그런데 손에 잡히는 큰 것들은 없어서(웃음). 아직 멀었다. 그냥 뭐라도 잡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은 거지. 돌이키면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느낀다. 늘 ‘포기하지 말자’ 다짐했거든. 다시 부산으로 가고 싶진 않았다. 하고 싶은 걸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포기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럴 일만큼은 없게 만들자란 생각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 같다.

컬러 그러데이션이 돋보이는 셔츠, 재킷, 팬츠, 레이스업 슈즈는 모두 벨루티 제품.

배우를 하며 조급했던 적은 없나?

항상 조급했지. 처음엔 보조 출연자로 시작할까 생각도 했으니까. 그런데 그것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하더라고. 막 서울에 와서 아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지하철 탈 때도 잘못 타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던 시기였으니까(웃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것 같고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라 부담이 컸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조급해할 때 다행히 회사며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계단 올라가는 방법을 배웠고. 아, 그런데 이런 조급함은 없는 것 같다. ‘작품이 잘돼야 하는데, 다음 작품 뭐 해야 하는데.’ 지금 내 위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화보를 찍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감을 크게 느낀다. 주어진 것에 감사를 느끼는 편이라 그런 조급함은 별로 없다.

 

보조 출연으로 시작할 생각을 했다는 게 지극히 당신다운 것 같다.

일단 눈도장을 찍고 싶었으니까. 현장에 가면 직접 볼 수 있으니까. 왠지 같은 물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도랑물이든 뭐든 간에. 정말 예전엔 매니저를 해볼까도 생각했다. 운전면허는 있으니까. 어찌 됐든 배우란 직업이 프리랜서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생계는 유지해야 하고, 아르바이트를 찾을 때도 보조 출연처럼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택한 거지. 그렇게 일용직도 해봤고.

 

그러다 작년 한 해 <이태원 클라쓰>, <카이로스>가 방영되며 당신을 많은 대중에게 알릴 수 있었다. 작년이 당신에게 남긴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진짜, 그냥, 감개무량했다. TV로만 보던 <런닝맨>, <나 혼자 산다> 같은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생기고 차기 작품 제안이 들어오고 미팅을 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개무량했다. 속으론 좋아 죽겠는데 차마 티는 못 내고 ‘아, 그래요?’ 하고 넘겼지만(웃음). ‘이런 날이 오네, 미쳤다’ 하면서 혼자 술을 진짜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친구들과 1시간 동안 영상 통화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벌써 1년이 지나갔구나, 그런데 지금도 하고 있구나, 다행이다, 싶을 뿐이다.

 

작년 잇따라 두 작품이 흥행했다. 그리고 올해 <유미의 세포들>, <마이네임>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어떤 두려움이 있나?

과거 <이태원 클라쓰>, <태양의 후예>, <그녀의 사생활> 등을 하며 (송)중기 형, 진구 형, (박)서준이를 보며 느꼈지만 정말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한다. 지금 같이 작품을 하고 있는 고은이를 보면서도 느끼고. 다들 지금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 싶다. 나도 그런 깜냥을 만들어야겠다 다지게 되고.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유미의 세포들>의 경우 원작이 워낙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고. 그래서 지금 기대치에 부응하려고 현장에서 열심히 통가발 쓰면서 하고 있다(웃음).

 

작년 <더블유>와 인터뷰했을 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오래 일하고 싶다. 그동안 신세 진 사람들에게 보답하며 살아야지.’ 어떤 사람들에게 인생의 빚을 졌나?

아까 다들 나처럼 살아온 줄 알았다고 말했는데 꼭 그렇진 않더라고. 먹고살기 바쁜 와중에도 가족들 챙기며 잘 살아온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다. 정작 나는 무심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했던 것 같고. 가족이 제일 크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봐준 사람들, 어떻게 올라왔는지 지켜봐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체크무늬 셔츠와 재킷, 니트 베스트, 팬츠는 모두 구찌 제품.

당신의 유튜브 채널을 보며 알게 됐는데 취미 부자더라. 캠핑, 낚시, 사이클링까지. 그런데 그 취미 생활의 중심엔 ‘크롱이’가 있던데, 1996년식 현대 갤로퍼지?

취미 생활의 중심이 크롱이였는데 지금은 자동차를 알아보는 분들도 많고 무더위를 피해 잠시 지하 주차장에 있다(웃음).

 

당신이 크롱이를 ‘동반자’라고 표현하던데.

나랑 햇수로 8년째다. 진짜 힘들 때 데려와서 20만원, 30만원 벌 때마다 하나씩 고쳐가며 탔던 애라 애착이 간다. 서울에 와서 이사를 다섯 번 다녔는데 그때마다 같이 움직였던 내 신발이기도 하고. 지금은 자주 못 타니까 오히려 좋은 분한테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크롱이와의 이별인가?

원래 자동차는 타줘야 하거든. 안 타면 죽는다. 그래서 한 번 죽었다. 죽어서 심장 이식을 했다. 200만원 주고. 이럴 바엔 좋은 사람한테 보내주는 게 좋다는 생각도 들지.

 

보통 캠핑 가면 하루가 어떻게 흐르나?

술 마시러 가는 거지. 별거 없다. 다만 해 뜨는 건 무조건 보고. 대본도 읽고 ‘불멍’ 하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친구들한테 전화도 돌리고. 내가 캠핑 간다 하면 열심히 낚시도 하고 이것저것 한다고들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다. 하는 게 없다.

 

설마 술버릇이 전화 돌리는 것?

아니다(웃음). 단체 카톡방에 ‘캠핑 왔다’ 남기면 전화가 오지. 그러다 번개로 올 사람은 오고.

 

최근 당신의 유튜브 채널에 제주도 산방산 보문사에 올라 소원을 비는 영상이 올라왔다. 어떤 소원을 빌었나?

다들 비는 것 빌었다. 할머니 안 아프게 해달라, 코로나19 빨리 없어지게 해달라, 건강검진 결과 잘 나오게 해달라(웃음).

 

<유미의 세포들> 촬영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디로 ‘차박’을 떠나고 싶나?

아직까지 크롱이와 제주도 한 번 못 가봤다. 크롱이는 배에 실어 먼저 보내놓고 나는 비행기 타고 가서 쉬고 싶다. 알아볼 사람이 있을지언정 그냥 계속 도는 거지. 목적지 없이 떠나서 예쁜 곳 있으면 세우고. 그렇게 좀 쉬다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