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ro Guide Vol.2 [2021년의 레트로와 뉴트로]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Retro Guide Vol.2

2021-08-05T01:36:26+00:002021.08.05|FEATURE, 컬처|

가까운 과거에서 취한 것들이 역동적인 현재를 만들고 있다. 레트로와 뉴트로, 추억과 추억팔이가 뒤엉킨 유쾌하고 혼란하고 아쉽기도 한 2021년을 진단한다.

불과 몇 년 전 우리는 ‘뉴트로’를 말했다. 지금의 포스터나 간판을 레트로풍으로 패러디하는 놀이가 SNS에 챌린지처럼 번지고, 청청 패션과 어글리 슈즈가 흔했으며, 비디오를 보고 자라지 않은 이들이 VHS 효과를 구현해 영상을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뉴트로란 재현보다 해석에 방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겪지 못한 과거의 것에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고 취하는 행위를 해석이라고 말하긴 거창하지만, 과거, 그리고 그와 무관한 세대가 만나 일으키는 생경한 화학 작용을 볼 때면 ‘뉴’를 느낄 순 있었다. 최근 다시 어른거리는 복고 경향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유튜브 콘텐츠와 예능이다. 연관 단어로는 ‘추팔(추억팔이)’이 있겠다. 사실 과거를 추억하는 건 시대를 불문한 인간의 오랜 습성일 텐데, 이제 두드러진 점이 있다면 그 과거와 지금의 텀이 갈수록 짧아진다는 것이다.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라는 부제를 달고 2014년 국내 출간된 <레트로 마니아>는 분노와 지성으로 무장한 음악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팝 음악의 복고 경향에 대해 촘촘하게 분석한 책이다. 2000년대의 팝뿐 아니라 어느 주어와 문화를 갖다 대도 조응할 법한 꽤 많은  서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까운 과거에 이토록 집착한 사회는 인류사에 없었다.’ 레트로의 미덕은 과거에 빛을 보지 못한 좋은 것을 발굴해 재조명하거나 지금의 결핍을 충족하는 데 있다. 그 주체는 세대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능하다. 디지털 패러다임이 세상을 지배하면 물질성을 그리워하는 움직임이 생기고, ‘양’이 기치인 사회가 되면 ‘질’에 대한 욕구가 솟는 것도 ‘지금 희소한 무엇’과 관련이 있다. 결핍을 채우려는 심리에서 그저 그랬던 과거가 윤색되기도 한다. 미덕이나 결핍 운운할 것 없이, 추억 거리와 향수라는 것은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다. 여기서는 그 ‘누군가’가 세대에 따른 문제가 된다. 추억할 게 있으려면 그만큼 산 날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전제 아래 2021년의 레트로 내지 뉴트로를 살펴보면 그 양상이전보다 복잡하다. 90년대생에게 ‘캬 추억 돋는다’고 할 만한 과거가 쌓였다.더불어 갈수록 추억하는 과거의 시점이 가까워진 건, 일일이 소화할 수 없을정도로 데이터 과다의 시절을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예전부터 추억할 건 이미 실컷 했던80년대생도 관여된다. 80년대 중반생에게 띠동갑으로 윗세대는 나와다른 문화를 향유하며 자란 다른 세상 사람이지만, 아래로 그만큼 나이차가 나는 세대와는 아이돌과 인터넷 문화 등을 경험한 공통분모가 있다.결정적으로 유튜브와 인터넷에는 오늘도 과거가 되어 전보다 무수한 자료가쌓인다. ‘N년 전’ 같은 타임라인도, 세대차도 상관없이 만인이 어우러지는그곳을 탐험하는 동안 누군가의 추억 거리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발견이되고, 댓글로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지점을 얘기하는 일도생긴다. 레트로와 뉴트로, 추억과 추억팔이가 뒤엉키는 가운데 유쾌한코드와 안일함이 뒤섞인다. 피로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모든 현상이역동적인 것도 사실이다. 이쯤 해서 지금 레트로와 관련된 지형도를 한눈에보고, 그 작동 원리를 들여다보며, 아직 추억 거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세대의말을 들어보는 건 ‘세대 공감’이라는 말로 퉁칠 수 없는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더듬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이 지나면 금세 과거의 데이터가 쌓이는세상에서 현시점의 레트로를 정리해봤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무엇
2000년대를 되새김질하는 지금, 망령처럼 곳곳에 깃들어 있던 1990년대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이제 덜 회자될 그 시절을 향한 인사쯤이라고 해두자. 1980년대의 요소를 기억하는 채로 1990년대를 통과해, 2002년에서 회상을 멈췄다. 미처 다 담을 수 없는 그때 보고 듣고 즐긴 요소들은 추억으로 남아 있거나, 어떠한 형태로 여전히 존재한다. 

워크맨 
소니가 최초의 카세트 워크맨을 출시한 건 79년이고 삼성의 마이마이도 81년에 처음 출시됐지만, 한국에서 10대 학생들에게까지 워크맨 내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보편적으로 퍼진 건 90년대 들어서다.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전성기가 길었던 것 같지만, 금방 CD와 MP3가 등장하면서 밀려났다.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어학용 재생기는 2013년경까지 나름 수요가 있었다. 

공일오비, 서태지 그리고 듀스 
1세대 아이돌 시대를 연 듀오 그룹 아이돌과 HOT가 데뷔한 건 96년. 그때부터 시작된 계보로 진화한 것이 지금의 케이팝 아이돌이라면, 이 세 이름은 10대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서태지가 새로운 시대정신을 일깨웠다면, 듀스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힙합 뮤지션들에게 ‘스타일’에 있어 큰 영향을 끼쳤다. 객원 가수제라는 신선한 시스템을 도입한 공일오비는 X세대의 테마송을 낳았을 뿐 아니라 발라드를 통해 ‘청승의 미학’을 세련되게 선보였다. 시간이 흘러 정석원은 예의 그 감성을 아이유와 박재정 등에게 곡으로 써주기도 했다. 

영화지 
95년, 주간지 <씨네 21>과 월간지 <키노>와 <프리미어>가 창간했다. 80년대에 창간한 <로드쇼>와 <스크린>이 있는 상황이었고, 타르코프스키의 유작인 <희생>이 뒤늦게 개봉해 1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끌 정도로 영화를 향한 열기가 뜨거운 한국이었다. ‘21세기 영상 산업’이라는 표어와 함께 대기업들이 영화 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97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 2000년에는 주간지 <필름 2.0>이 창간했다. 아직까지 남아 영화 저널리즘을 선보이는 전문지는 <씨네 21>뿐이다. 

편지지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인 편지지는 동네 문방구가 아닌 팬시 전문점의 등장과 함께 디자인과 종류가 다양해졌다. 특히 영화 포스터나 브로마이드 형식의 편지지가 물밀듯이 쏟아졌다. 95년부터 엠넷과 OCN등의 케이블 방송 시대가 열리고, 98년 일본 문화가 개방하면서 폭발한 엔터테인먼트 소스가 종이의 영역으로 결합한 것. 걸 잡지와 패션지가 늘면서 편지봉투 대신 화보나 광고 페이지를 뜯어 봉투처럼 접어 쓰기도 했다. 

농구와 연고전 
국내 프로 농구 원년은 프로 야구와 프로 축구보다 훨씬 늦은 97년이다. 하지만 프로 농구 출범 전 ‘농구대잔치’라는 대회가 인기를 끌었고, 무엇보다 대학 농구가 활약했다. 여기에 <슬램덩크> 국내 초판이 92년부터 96년까지 출간됐다. 94년 초엔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있었다. 90년대를 농구의 시대로 이끈 라이벌전의 주역들은 2021년 예능 <뭉쳐야 쏜다>에 출연해 여전히 ‘연고전’이냐 ‘고연전’이냐를 놓고 티격태격한다. 

데님 브랜드 
열 손가락 안에 다 꼽기 힘든 ‘청바지 상표’의 춘추전국시대. 다만 90년대 중반부터 청소년 패션에 ‘강남은 힙합, 강북은 복고 스타일’이라는 구도가 생겼다. 그 시절 영 브랜드 종사자들은 선명하게 기억하는 화두다. 한쪽에선 동네 먼지를 다 쓸고 다닐 정도로 통 넓고 헐렁한 바지를 입다 운동화 뒷굽에 압정으로 밑단을 고정해주기도 하는 10대 무리가 있었고, 또 한쪽에선 통 좁은 바지나 나팔바지에 타이트한 재킷 등의 차림이 유행했다. 그 극명한 차이는 90년대 미스터리 중 하나. 

순정만화 
세상엔 순정만화를 보는 소녀와 그러지 않는 소녀가 있다. 원수연의 <풀 하우스>나 <엘리오와 이베트>, 천계영의 <언플러그드 보이>와 <오디션>, 이은혜의 <블루>는 만화를 보지 않는 소녀도 친구의 영향으로 알 수밖에 없었던 것들이다(이제는 네이버 ‘시리즈’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블루>의 경우 OST까지 발매했으니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다. <언플러그드 보이>에 등장한 대사, ‘난… 슬플 땐 힙합을 춰’는 아직까지 패러디된다. 참고로 천계영은 송강이 출연한 넷플릭스 히트작 <좋아하면 울리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v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팝 디바’는 시기마다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벳 미들러, 마돈나와 신디 로퍼,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가 그랬던 것처럼. 99년에 나타난 틴 팝계의 두 소녀, 브리트니와 크리스티나는 각각 ‘Baby One More Time’과 ‘Genie in a Bottle’로 데뷔했다. 둘은 한국으로 치면 <뽀뽀뽀> 정도에 해당할 유명 버라이어티 쇼 <미키 마우스 클럽(MMC)> 출신이기도 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둘 다 노출과 퍼포먼스의 수위가 상당히 세졌다. 브리트니는 타고난 퍼포머였다. 그에 비해 크리스티나는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으니… 

엽기 
국산 플래시 애니의 주인공 마시마로, 일명 엽기토끼는 캐릭터 자체로 상당한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방점은 ‘엽기’에 찍힌다. 국내 인터넷 문화가 빠른 속도로 자리 잡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신조어와 합성물, 댓글과 패러디 등을 낳으며 인터넷 담론을 이끈 키워드가 바로 엽기다. ‘아햏햏’이라는 시대의 언어를 낳은 디시인사이드의 엽갤, 웃긴대학 등 커뮤니티를 통해 유저의 주체적인 참여와 B 급 정서가 폭발했다. 엽기 코드는 오늘날 네티즌 문화의 씨앗이라 할 수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히딩크가 K리그의 고참과 주전들 대신 박지성이라는 루키를 선택하고, 안정환이 반지 키스 세리머니를 하고, 대한민국이 이태리와 스페인을 이긴 그 여름의 우주는 모든 기운을 우리나라에 집중 투자해준 듯하다. 강남역 대로변과 시청앞이 차가 아니라 오로지 인파로 뒤덮인 풍경, 시위나 전쟁이 아닌 축제를 위해 거리가 그만큼 물드는 날이 과연 또 올까? 


귀환추진위원회
MZ세대 10명이 과거에서 속히 귀환하길 희망하는 그것을 꼽았다. 자취를 감춘, 하지만 다시 돌아와야 마땅할 그때 그것이 잔치처럼 펼쳐졌다. 

지금과 다른 홍콩의 풍경을 담은 왕가위 영화 
“2013년 여름, 백색 소음처럼 틀어놓은 TV에서 어느 이름 모를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그날 처음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를 알게 되었다. 영화에 담긴 1994년의 홍콩은 낯익은 듯하면서도 여러모로 생경한 모습이었다. 처음엔 짧게 자른 머리에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페이(왕페이)에게 이끌렸다면, 영화를 본 이후에는 주인공 네 명 모두의 서사와 도시의 분위기에 매료됐다. 스쳐 지나가다 부딪치고 어긋나고 가끔은 이상하리만치 꼭 맞아 들어가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학생이던 나에게도 예민하게 다가왔다. 영화에서 여러 차례 나오는 ‘California Dreaming’을 들으며 홍콩이라는 도시를 동경하게 된 중학생이 자라나 대학생이 되는 동안,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 올해 8월 1일, 개인의 입출국을 제한할 수 있는 홍콩의 이민법 시행을 앞두고 많은 시민들이 홍콩을 떠났다. 영화, 사람들, 어지럽고도 자유로운 도시의 공기까지, 우리가 사랑한 홍콩의 풍경이 언젠가 제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 김하은(대학생) 

본방 사수하게 만드는 흡인력 강한 로코물 
“2000년대 초중반 지상파 드라마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넷플릭스, 왓챠 등 OTT 플랫폼이 활성화된 지금과 달리 그때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본방 사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PPL은 웬 말, 어딘가 촌스러운 주인공의 옷차림, 말투, 세트장을 보며 TV 속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안도하기도 했다. MBC <커피프린스 1호점>, <내 이름은 김삼순>과 같은 로코물이 브라운관에 흘렀을 때의 나의 여름, 우리의 여름을 기억하는지. 최근 몇 년간 한국 드라마의 중심에는 장르물이 있었다. 소재는 점점 강렬해지고 한 작품 안에서도 스릴러, 오컬트,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가 휘몰아쳤다. 우리의 일상에 다정하고 촘촘하게 스며들던 로코물의 부활이 간절히 기다려진다.” – 최예다운(작가) 

10대의 영상 교과서, 하이틴 드라마 
“초등학생 시절 미국 FOX 채널에서 방영한 <글리>는 느닷없이 내 인생에 찾아온 드라마였다.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이 드라마는 청소년 임신, 성, 정체성 고민, 학교 폭력 등을 전천후로 다뤘다. 하이틴 드라마라 해서 결코 착하지만은 않은, ‘매운맛’을 보여주며. 돌이키면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부정하며 퀴어를 혐오하는 이를 용서하는 일, 첫 섹스의 환상이 깨지는 아픔 등 학교와 가정에서 배우지 못한 삶의 형태와 자세를 <글리>를 통해 배운 듯하다. 언제나 위로와 극복을 이야기했던 <글리>는 그 시절 최선의 대리 경험이었고, 최고의 인생 공부와 다름없었다. 영미권에선 하이틴 장르가 비교적 흔하지만 한국에선 2011년 KBS <드림하이> 이후 그렇다 할 하이틴 드라마를 볼 수 없었다. <글리>의 매운맛을 한 스푼 더한 2021년 판 <드림하이>가 과연 새로 찾아올 수 있을까?” – 박희주(영화감독)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 
“1990년부터 2000년대 초반 영상감독 홍종호가 1세대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를 번쩍번쩍한 질감으로 담아냈다면, 김세훈은 절절한 비극 서사와 막대한 규모로 승부를 본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나는 누아르, 교통사고, 전쟁, 이별 등 최루성 소재로 빼곡히 채워진 김세훈의 영상을 챙겨 보는 사람 중 하나였다. 김세훈이 연출한 조성모의 ‘투 헤븐’, 김범수의 ‘보고 싶다’ 뮤직비디오는 유튜브가 없던 그 시절 ‘벅스’에 접속해 자주 돌려보곤 했던 영상이다. 학창 시절 감정을 애절하게 들끓게 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는 이젠 노래방에서나 가끔 마주치는 유물이 됐다. 요즘엔 서사 대신 가수의 현란한 퍼포먼스를 강조하고, 빠른 호흡으로 컷을 편집하고, 화려한 CG를 흠뻑 칠한 뮤직비디오가 대세니 말이다. 가끔은 유난히 절절했던 그 시절 영상들이 그립다. 과거 그랬듯 지금 가장 잘나가는 ‘톱스타’ 배우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해 옛 드라마타이즈를 다시 펼쳐 보이면 어떨까?” – 김윤희(광고기획자) 

캠퍼스 판타지를 정조준한 청춘 시트콤 
“내 주변 성숙한 또래들은 초등학교 시절 한 번쯤은 MBC <논스톱> 시리즈(2000~2005)를 보며 대학 생활을 꿈꿨을 거다. 사랑, 청춘, 캠퍼스 일상을 빼곡히 담은 <논스톱>은 그 시절 최고의 ‘캠퍼스 판타지물’로 통했다. 서른 가까운 나이가 되며 <논스톱>의 줄거리며 등장인물은 머릿속에서 대부분 지워졌지만, 극 중 한예슬의 처피뱅 헤어스타일과 “짜증 나! 짜증 나!”를 외치던 뾰족한 눈빛만큼은 여전히 기억한다(예슬 언니는 무려 2003년에 처피뱅을 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풋풋한 캠퍼스 풍경을 담은 청춘 시트콤은 물론 MBC <하이킥> 시리즈,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같은 일일 가족 시트콤도 자취를 감췄다. 최근 미국 드라마 <프렌즈> 시리즈의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인 <프렌즈: 리유니언>의 방영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도 2021년 판 청춘 시트콤의 부활을 기대해도 좋을까.” – 오채은(대학생) 

영원한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 
“초등학생 시절 등굣길 선곡은 단연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Lucky’였다. 과거 마돈나가 피운 불씨를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거대한 횃불로 만든 그때를 기억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응원하는 사람이었다. 사춘기를 앞둔 내게 그녀는 이런 존재였으니까. ‘희대의 비치(Bitch)로서 기죽지 않고 당당히 갈 길 간다.’ 아무리 그녀가 탄탄하고 건강한 몸매를 자랑했다지만 진정한 면모는 그게 아니다. 마돈나 이후 끊긴 솔로 여가수의 명맥을 굳건히 잇고 지켰다는 데 초점 두는 게 맞다. 2000년대 미국 팝을 쥐고 흔들던 나의 아이돌, 전사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대체할 만한 인재를 찾기 위해 괜히 요즘의 케이팝 신을 뒤져본다.” – 정소진(<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에디터) 

뚜렷한 개성을 가진 세기말 제품 디자인 
“내가 태어난 1998년, 애플은 아이맥 G3를 출시했다. 성인이 돼서 접한 아이맥 G3의 첫인상은 이랬다. ‘무려 반투명 재질의 데스크톱이라니!’ 당시 애플은 지금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CMF(컬러·소재·마감)를 적용한 아이맥 G3를 들고 성공가도를 달렸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제품 디자인을 보면 브랜드, 디자이너의 뚜렷한 취향이 읽힌다. 반면 지금은? 모두가 ‘미니멀’을 입고 획일화됐다. 미니멀이 질리지 않아 좋다고들 하지만, 사실 미니멀도 질린다. 지금을 두고 다양성의 시대라지만 다양한 취향이 존재했던 건 오히려 과거였던 것 같다. 세기말 Y2K스러운 디자인이 언젠가 다시 돌아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 날을 기다려본다.” – 김수린(그래픽 디자이너) 

화려한 디바이스 패션의 피처폰 
“옛 시절 피처폰은 기능의 제한 때문인지 몰라도 지금의 스마트폰과 비교해 아주 화려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순백의 ‘고아라폰’, 빅뱅의 ‘롤리팝’ 등 명쾌하게 접히는 폴더폰부터 소녀시대의 ‘초콜릿폰’, 전설의 ‘연아 햅틱’, 라이터 모양의 ‘듀퐁폰’과 같이 지금으로선 다소 어설프게 느껴지는 폴더폰까지. 심지어 화면을 밀어 올리면서 옆으로 꺾어서 보기도 하는 ‘혼종’을 경험하기도 했다. 모토로라, 스카이, 블랙베리 등 여러 기업이 독자적인 디자인을 어필하며 경쟁하던 당시는 단연 휴대폰의 르네상스 시기였을 거다. 반면 지금은? 아이폰과 갤럭시의 대결 구조가 절대적이다. 가끔은 그 화려하던 디바이스 패션의 귀환을 상상해본다. 스티커를 붙이거나 케이스를 갈아 끼우는 단순 옷 입히기에서 벗어난 완벽한 ‘트랜스포밍’을 소망하며.” – 유아연(설치미술가) 

‘야후! 꾸러기’ 시절의 RPG 게임, 마법학교 아르피아 
“내 또래들 중 ‘마법학교 아르피아’를 모르는 이가 얼마나 될까? 소년소녀 마법사를 육성하고 대마왕을 물리치는 지극히 익숙하고 흥미로운 서사, 모험심을 자극하는 널따란 게임 속 환상 세계는 당시 꼬마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법학교 아르피아’는 내게 처음으로 ‘현질’의 맛을 알려준 게임이기도 했는데, 부모님과의 길고 치열한 협상 끝에 우리 남매가 산 것은 ‘애플링’이라는 이름의 천원짜리 게임 속 펫이었다. ‘마법학교 아르피아’는 2012년 ‘야후! 꾸러기’ 서비스 종료와 함께 운영이 종료됐다. 언젠가 게임이 그때 당시 그래픽과 설정을 그대로 들고 돌아오기를, 어리고 무구한 과거의 기억들을 눈앞에 재현해주기를 바란다.” – 송희지(시인) 

안 ‘쿨’한 소통법, 단문문자메시지(SMS) 
“카카오톡 이전, 옛 시절엔 SMS가 있었다. 80바이트 용량에 맞춰 문자를 보내야 했던 그 시절엔 40자 내로 기승전결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고심하며 버튼을 꾹꾹 눌렀다. 아슬하게 80바이트가 넘어가기라도 할라치면 어쩔 수 없이 마침표로 만든 여운이라든지 깜찍한 이모티콘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야 했다. 2000년대 학창 시절엔 문자로 허튼소리를 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남은 문자 개수를 계산해가며 나름의 중요도와 체계를 세웠고, 못다 한 이야기로 아쉬움이 남을 땐 추가 요금을 물더라도 MMS로 전환해 마음을 전했다. SMS로 감성을 주고받던 시절을 지나 우리는 ‘999+’란 알람과 함께 빼곡히 찬 단톡방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안 ‘쿨’하고 조금은 진지했던 그 시절만의 소통법이 부활하는 상상을 해본다.” – 이민주(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