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투, 정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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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AM 정진운은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날보다 한 겹 가볍고, 막힘이 없으며, 유쾌하고 명랑할 그의 제2장이 막 펼쳐지고 있다. 

검은색 슈트와 로퍼, 안에 입은 노란색 보디슈트는 모두 프라다 제품.

 오늘 화보 촬영 내내 춤을 추던데, 꽤 신나 보였다. 

너무 재미있던데?(웃음) 작년 10월 전역 후 오랜만의 화보 촬영이다. 최근 몇 달은 평창, 청주에서 영화 촬영만 했고. 간만에 예쁜 옷 입고 사진 찍으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어쩐지 긴장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일이 당신의 첫 영화 데뷔작 <나만 보이니> 언론 시사회가 열리는 날이지 않나?

맞다. 거대한 스크린으로 내 모습을 보는 경험은 또 처음이다. 처음엔 설레고 기대됐는데 이제는 좀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무섭다고 해야 하나. 감독님이 여태 편집본을 보여준 적이 없다. 상상이 안 되니까 더 두려운 듯하다.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텐데(웃음).

영화가 ‘대환장 코믹 호러’라 소개되던데, 출연진은 당신과 라붐의 솔빈을 비롯해 신진들이다. 어떤 작품인지 감이 안 잡힌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시실리2km>, <귀신이 산다>, <점쟁이들>처럼 코믹과 호러 장르를 결합한 영화가 많지 않았나. <나만 보이니>는 바로 그 ‘K-코믹 호러’의 귀환이라 불러도 좋을 작품이다. 오싹한 공포 영화지만 실없는 말장난이 끊임없이 등장해서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영화를 관람하는 체험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친구들끼리 귀신의 집에 놀러 간 것과 비슷할 거다.

예고편을 보니 한겨울에 촬영한 듯한데, 맞나?

작년 10월 전역하자마자 시나리오를 받아 11월 한 달 준비하고 12월부터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한겨울이었지. 촬영지가 경기도 포천에 있는 폐호텔이었는데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날엔 기름이 얼어 난로도 켜지 못하고 촬영했다. 추운 것 빼고는 다 좋았다. 배우들끼리 나이도 얼추 비슷해서 촬영장 분위기가 안 좋을 수가 없었지. 촬영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리조트에서 다 같이 묵으면서 밤이 되면 그날 촬영했던 것 얘기하고, 맥주 한 잔 마시며 뒤풀이하고. 자고 일어나서 현장에서 다시 만나면 자기가 어젯밤 생각해본 거라며 애드리브를 맞춰보는 게 일상이었다.

과거 드라마 <드림하이 2>, <연애 말고 결혼> 등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작품 경험이 많지 않은 데다 전역 후 첫 작품이었다. 부담은 없었나?

딱히. 성격 탓인가? 내 손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라 생각하면 걱정 안 한다. 촬영 준비 기간이 짧다 한들 소위 말하는 ‘군백기’ 후 첫 작품이라 한들 잘 짜인 판에 맞춰 열심히 준비하면 그만이다. 잘한다, 못한다는 평가는 내 욕심에 따라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또 내가 주연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작품이었다. 잘하는 수밖에 없었지. 어느 하나 긴장하는 모습을 비추면 함께하는 스태프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어쩐지 못 미더운 구석이 생기는 거다. 나 스스로 최대한 여유를 갖는 게 중요했다.

마침 극 중 맡은 역할이 스태프를 통솔하는 감독 ‘장근’ 이었다.

그게 진짜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서사를 이끄는 중심이 되어야 했는데, 그래야 한다 생각하니까 괜히 오버하게 되더라고. 최대한 캐릭터 자체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장근은 갓 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데뷔작을 찍으려는 신인 감독이다. 아직 커리어가 두텁지 않고 자기만의 색깔이 뭔지 모르는 초짜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겐 있어 보이고 싶어 하고. ‘지가 뭔데 저러고 있어’ 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괜히 헤드셋도 삐딱하게 쓰고 손도 속주머니에 꽂아 자세도 구부정하게 서고. ‘컷’이라 말해도 될 걸 ‘꺄뜨’라 외치기도 했다(웃음). 그런 장근과 나와 비슷한 점도 물론 있었다. 어쨌든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하려는 것. ‘해야 한다’ 생각하면 물불 안 가리는 편이다.

셔츠는 셀린느 by YOOX.com, 가죽 팬츠는 8 by YOOX.com, 도트 넥타이는 돌체&가바나, 시계는 까르띠에, 반지는 아프로즈X아몬즈 제품.

의외다. 2AM 활동을 통해 발라더로서의 모습을 많이 봐서인지 당신을 ‘소프트’한 사람이라고만 짐작했다.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려는 성격이다. 그래서 나를 잘 아는 형들은 나보고 고집 센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이것 만들고 싶다’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발로 뛰어서 공장 찾고 몇 달이 걸리든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뭘 그렇게 만드는데?

굿즈 같은 것. 회사에선 잘 안 만들어주거든(웃음). 만들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아이디어는 많은데 썩히는 게 싫어서 내 돈 들여 뭘 만든 적도 많고. 작게는 팬들에게 나눠줄 스티커도 만들고, 정진운 밴드로 활동하던 시절엔 시그너처 기타도 사비로 제작했다. 음악을 하면서, 연기를 하면서 멋지다고 생각하는 게 있으면 꼭 만들어본다. 그것들이 쌓여 정진운만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거니까. 장근의 경우도 자기가 만든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에 한 획을 긋겠다고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자기가 어떻게 한 획을 긋겠어. 그런데 나도 비슷한 욕심이 있는 것 같다.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 말이다.

당신이 쓰고 싶은 ‘정진운 스토리’는 무엇인가?

2AM으로 데뷔해 꾸준히 활동해왔지만 사람들이 알아줄 만한 또렷한 작품을 남겼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 돌이키면 내가 만든 노래, 내가 기획한 것이 아닌 늘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 안에서 화초처럼 자랐다.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 혼자 하나하나 차근히 무언가를 이뤄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마치 화성에서 감자 심는 사람처럼.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자잘한 것들이 쌓여 사람들이 정진운 하면 ‘리스펙트’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록스타란 방금 당신이 말한 리스펙트할 수 있는 사람을 빗댄 표현이었다 할 수 있나?

맞다. 쉽게 말하면 록스타가 되고 싶은 거지. 내가 생각하는 록스타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는 대명사와도 같은 사람들이다. 연기도 하고 음악도 하며 사람들이 리스펙트하는, 환상으로 가득한 사람 말이다.

페이즐리 패턴의 셔츠는 디올 맨 제품.

전역 후 음반이 아닌 연기로 첫 도장을 찍은 이유가 있나?

음악, 예능 활동도 소중하지만 연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차근차근 보여주고 싶었다. 군대에 있으면서 실은 내가 누구보다 차분하고 혼자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깨닫기도 했고. 그간 예능에서 비친 것처럼 내가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거든. 오히려 한없이 진지할 때가 많다. 군대에서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게 연기였다. 지금은 욕심부리지 않고 천천히 발돋움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이젠 ‘왜 TV에 안 나와?’ 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휘둘리지 않는다. TV에 나가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욕심도 내려놨다. 과감히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이젠 내가 해야 하는 것에만 몰두하려고 한다.

반대로 욕심낸 시절도 있었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은데? 특히 2AM 활동이 종료된 2014년 즈음엔 사람들 눈에 빵 띄고 싶어서 욕심을 많이 부렸지. 내 한계는 너무나 명확한데 그걸 넘어서서 뭐든 더 하려 했고. 그런 사람이 욕심을 버리려니까 처음엔 조바심도 났는데 지금은 좀 덜하다. 이젠 천천히 걸으려고 한다. 대신 남 눈치는 안 보면서 진짜 내 것을 할 거다.

어느덧 데뷔 14년 차라 들었다. 지금 여기에서 지나간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

열심히 잘 걸어왔다. 모난 짓 안 해서 너무 고맙다. 업다운을 모두 경험해보면서 사람이 되기까지 참 고생 많았다. 이 정도?

지난날 하나하나를 바둑돌이라고 할 때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바둑돌 세 개는 무엇인가?

깊게 사랑해본 것, 깊게 절망에 빠져본 것, 군 생활을 하면서 욕심을 버릴 줄 알게 된 것.

그 세 가지가 당신에게 줬던 게 각기 다를 것 같다.

너무 다르지. 사랑을 통해선 나누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상대방과 나 사이 얼마큼의 교집합이 생겼을 때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나를 양보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나의 잘못이 아닌 일로 주변 사람이 나를 떠나며 절망해본 경험을 통해선 인간관계에 있어 초연해질 수 있는 태도를 배웠다. 슬프다면 슬픈 얘기겠지만 덕분에 이제는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않게 됐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 나를 쪼개도 되지 않을 정도의 사랑을 누군가에게 주고, 그걸 그 사람이 알아주고 고마워한다면 함께하고, 혹여 그가 떠난다 해도 즐거웠다고 생각하자고.

이젠 무엇보다 ‘나’가 중요해진 건가?

그렇다.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더라고. 그리고 최근 전역하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내가 가진 것의 한계는 생각하지 않고 다 끌어안고 가려고 욕심을 부렸는데, 이제는 내가 진짜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어 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애먼 것에 힘쓰는 걸 안 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어느 때보다 편하고 재미있다.

셔츠는 세터, 데님 팬츠는 와이 프로젝트, 목걸이는 락킹에이지 제품.

최근 2AM의 컴백 소식도 알렸다. 2014년 정규 3집 <Let’s Talk> 이후 7년 만의 활동이다. 긴 시간을 지나 7년 만의 컴백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

멤버 각자가 새로운 회사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을 당시에 얘기했던 게 있다. 훗날 2AM의 스케줄이 생긴다면 그것을 최우선시하자고. 그래서 멤버 네 명의 계약서를 보면 1조 1항이 2AM 활동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형제 그룹이라 불려온 2PM도 오랜만에 완전체로 컴백했다.

그렇지. 또 최근 MSG워너비가 활동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나와야 할 때가 됐군’ 생각했다(웃음). 빅마마 선배님들, 노을 형들도 너무 잘해주고 계시니까 빨리 나오고 싶더라고. ‘선배님들, 저희도 잘할 수 있습니다!’ 싶은 심정이지(웃음). 발라드를 좋아하고 여태 불러온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 요즘 듣기 좋은 발라드가 적다는 사실도 아쉽다. 듣기 편한 발라드를 부르는 그룹이 많지 않고 지금은 솔로 발라드 곡이 대세고.

다시 만난 멤버들과는 어떤 얘기를 나누나?

연차가 쌓여서인지 다들 엄청 진지하다. 확실히 조심스러워지는 게 있다. 옛날 같으면 ‘이런 것 해야 해’가 앞서 튀어나왔을 텐데 이제는 ‘이런 건 하지 말자’부터 얘기하면서 모든 것을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맞춰간다. 이런 변화가 좀 재미있었다.

그럼 공통적으로 ‘이건 하자’라며 입 모은 것도 있나?

무조건 2AM의 색깔을 또렷이 가져가자. 요즘 고음을 내지르는 게 대세라고 해서 그걸 따라가지 말자. 듣기 편안한 2AM만의 발라드를 하자. 과거 그랬듯 여전히 고급스러운 슈트를 입고 무대에 서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왔고.

연륜 충분히 쌓인 지금 슈트 입고 무대에 서면 정말 ‘그림’ 나오겠다.

과거엔 단순히 멋으로 슈트를 입었다면 이제는 무대에서 슈트를 차려입어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겠다. 내가 슈트를 입는 행위가 어떻게 보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마찬가지니까. 예전보다 훨씬 담백해 보일 거다. 과거엔 슈트 입고 거기에 팔찌나 액세서리를 치렁치렁 찼다면 지금은 고급스러운 시계 하나 딱 찬 정도에 비유할 수 있을까? (조)권이 형이 어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거든. 이제 깨질 대로 깨지고 닳고 닳아서 진짜 진심으로 노래할 수 있다고.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다시 설 무대가 기다려진다.

2AM은 정진운을 어떤 사람으로 만든 것 같나?

형들을 고등학생 때 만났다. 내가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형들이 나란 사람을 모나지 않게 잘 다듬어줬다. 그리고 2AM은 나에게 항상 기회를 줬다. 밴드를 할 수 있었던 것도 2AM이 잘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고 연기도 마찬가지다. 형들을 보며 나만의 것을 찾으려고 했고 그런 점에서 2AM은 나란 사람을 찾게 하는 나침반이 되었다.

요즘 자신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 있나?

음… 없는 것 같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요즘엔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더 해도 돼. 기회는 많고 열려 있으니까 얼마든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괜히 ‘나 잘하고 있나?’라며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다.

내일 시사회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늘 밤은 어떻게 보낼 건가? 집에서 물 떠놓고 기도할 건가?(웃음)

스튜디오 근처에 평양냉면 잘하는 집이 있다. 일단 거기서 냉면 한 그릇 빨리 하고(웃음). 집에 가면 왠지 잠 못 잘 것 같으니 위스키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거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이준경
스타일리스트
이민규
헤어&메이크업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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