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소피아 코폴라가 담은 세 여인들의 초상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All Dressed Up With Nowhere to Go

2021-07-15T00:56:56+00:002021.07.15|FASHION, 화보|

 감독 소피아 코폴라가 어느 시절 화려한 여인들의 초상을 화보에 담았다. 코폴라의 뮤즈인 세 여배우는 어디 갈 곳도 없이 한껏 꾸민 채 집 안에 있다. 

커스틴 던스트가 입은 가운은 Rodarte, 침대 시트는 The Vermont Country Store 제품.

엘르 패닝이 입은 드레스는 Celine by Hedi Slimane 제품.

엘르 패닝이 입은 보디슈트는 Wolford, 스커트는 Carolina Herrera, 목걸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및 Ben-Amun by Isaac Manevitz 제품.

로시다 존스가 입은 클라우스, 스커트, 이어링, 슈즈는 모두 Chanel, 커프는 Verdura 제품.

로시다 존스가 입은 톱, 스커트는 AZ Factory, 목걸이는 Cartier 제품.

커스틴 던스트가 입은 드레스는 Valentino, 팔찌는 Beladora 제품.

커스틴 던스트가 입은 드레스는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제품.

소피아 코폴라가 10대 청소년이었던 1980년대에, 미국 <더블유>의 페이지들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초기 발행본들을 훑어본 그녀는 ‘화려한 배경에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채 포즈를 취하는 사교계의 주빈들’에게 끌렸다. “예전처럼 파티나 모임을 즐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 화려함과 풍요로움, 아름다운 패션에 굶주려 있는 것 같아요. 화보 속 모든 것이 극도로 페미닌하고 화려했으면 좋겠어요. 여자들이 이런저런 가운을 입어본 후 지친 듯이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느낌도 좋고요.” <더블유>가 제안한 화보 프로젝트에 대해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인 소피아 코폴라가 말했다. 20세기 사교계를 풍미한 유럽의 왕족인 마렐라 아닅리, 리 라지윌, 그리고 디다 블레어가 그들의 호화롭고 예술적인 거실에 있는 것 같은 풍경 말이다. 코폴라는 그녀와 영화 작업을 하며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된 세 배우를 모델로 선정했다. 감독 데뷔작 <처녀 자살 소동>에 등장한 인물이자 코폴라의 가장 유명한 뮤즈인 커스틴 던스트, 열한 살의 나이로 <썸웨어>에서, 또 열여덟 살에는 <매혹당한 사람들>에서 코폴라와 만난 엘르 패닝, 작년 개봉한 영화 <온 더 록스>의 주인공인 라시다 존스가 바로 화보의 주인공이다.

날씨가 우중충한 어느 날, 베벌리힐스에서 커스틴 던스트와 라시다 존스의 촬영이 시작됐다. 엘르 패닝은 런던에 머물며 <더 그레이트> 시즌 2를 촬영 중이었기에, 코폴라와 사진가가 줌을 통해 화보 촬영을 하는 원격 작업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줌 화면으로 코폴라의 열네 살 딸 로미가 사람들에게 인사하겠다며 별안간 머리를 불쑥 내미는 순간도 있었다. 코폴라는 잠옷 차림으로 차를 마시며 이 작업에 임했다. 사진가의 두 살짜리 아들이 엄마의 무릎에 앉아 촬영 화면을 지켜보기도 했다. 엘르 패닝의 촬영 장소는 영국의 핸드 페인팅 벽지 회사 ‘드 고네(de Gournay)’ 창립자의 딸이자 디자인 디렉터인 해나 세실 거니(Hannah Cecil Gurney)의 집이었다. 꽃무늬 벽지의 화려함과 다채로움 때문에 선정된 공간이다. 화보의 결과물을 보면 <처녀 자살 소동>의 리스본 자매들이 자라 소설가 톰 울프 작품에 나오는 우주의 지배인과 결혼해서는 럭셔리한 의상을 제작 주문한 듯하다. 나른하고, 화려하며, 약간은 유령 같기도 한.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들은 심미적으로 무결하다. 화보 사진에 등장하는 꽃부터 진주 목걸이 한 줄의 휘장까지, 모든 디테일은 특정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고심 끝에 선택된 것이다. 코폴라는 말했다. “80년대 주빈들은 항상 작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꽃 장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세 배우는 코폴라에 대해 얘기하면서 모두 ‘큰언니’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현재 38세인 커스틴 던스트와 22세인 엘르 패닝은 말 그대로 소피아 코폴라의 촬영장에서 자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극도로 연약했던 시기, 카메라 뒤에 존재한 그 여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커스틴 던스트는 <처녀 자살 소동>에서 코폴라와 작업한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정말 보호받는 느낌이었어요. 감독님은 나라는 존재 자체로, 그리고 내 치열이 멋지다고 느끼게 해주셨고, 저는 예뻤죠. 16세 때 나는 자신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무렵 저의 변화를 남성의 관점으로 성적으로 보는 게 아닌, 다른 여성이 축하해준 것이 좋았어요.” <처녀 자살 소동>을 시작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매혹당한 사람들>, <블링 링>의 카메오 출연까지, 두 사람은 요즘 영화 산업에서는 보기 드문 예술가와 뮤즈의 관계를 맺었다. 커스틴 던스트는 이어 말했다. “우리는 서로가 아이 갖는 것을 지켜봤고, 그런 우정을 나누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가족이 아닌데도 이렇게나 오래 관계를 지속하고 협업하는 경우는 저에게 거의 없어요.” ‘베벌리힐스’ 룩 중 하나를 위해, 현재 둘째를 임신 중인 커스틴 던스트는 두 명의 절친을 만났다. 이번 화보를 위해 커스텀 화이트 드레스를 제작해준 로다테의 케이트와 로라 멀리비다. 커스틴 던스트는 <스파이더맨> 프로모션 투어를 하던 시절부터 그들의 의상을 입었다. 심지어 로다테의 2018 F/W 룩북을 통해 첫 임신 사실을 발표했다. 오늘 화보에서 커스틴 던스트가 입은 커스텀 드레스는 그 당시 입은 것과 비슷한 실루엣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이는 그녀의 어머니가 임신한 그녀의 현재 몸에 맞을 것이라고 상기시켜준 것이다. 코폴라는 화면에 잡히는 배경, 질감, 심지어 꽃잎 한 장 한 장의 배치마저 섬세하게 신경 썼다. 사진가는 커스틴 던스트가 특정 포즈를 취하도록 구슬렸다. “바닥에 앉아서 한 촬영이 많았어요. 저는 ‘일어나지를 못하겠어!’ 하면서 있었죠(웃음).”

자, 다시 런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어울리는 피치 톤의 침실에 있는 엘르 패닝은 커스틴 던스트가 낮게 누운 자세를 똑같이 취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커스틴 던스트처럼 코폴라와 함께한 어릴 적을 회상했다. 사춘기 직전의 아동으로 <썸웨어>를 받아들인 엘르 패닝은 영화 촬영 기간 동안 트레이닝 브라가 필요했고, 그 사실을 코폴라에게 말할 수 있어서 안도했다고 기억한다. “11세가 되니까 신체적, 감정적, 정신적으로 변화가 왔어요. 주변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되고요. 당시 여성이 이끌던 우리 영화는 여성에 대한 표준을 만들어냈어요.” 안경이나 치아 교정 장치처럼 어색한 사춘기 소녀의 흔적까지도 자연스레 영화에 녹아들었다. 즉, 다른 감독이었다면 알아주지 않았을 사소한 영화 속 진실이랄까. 엘르 패닝은 말했다. “소피아 코폴라는 영화에서 모두를 한 꺼풀 벗겨낼 수 있어요.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재미없고 사소한 것들을 완벽하게 환상적인 무언가로 만들죠.” 7년 뒤 촬영한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은 엘르 패닝에게 또 다른 전환점이 된다. 아역 배우 매니저 없이 하는 첫 촬영이었다. “마치 대학에 입학하는 것 같았어요. 소피아 코폴라, 커스틴 던스트와 진심으로 어울릴 수 있었던 그때를 기억해요. 뉴올리언스의 호텔에 묵었는데, 어느 날은 우리 모두 늦은 밤까지 깨어 있었죠. 잘나가는 사람들 무리에 속한 기분이 들었어요.” 코폴라는 10대인 커스틴 던스트가 학교에서 맞은 무도회를 위해, 자신이 골든 글로브 때 입고 나간 존 갈리아노 드레스를 빌려줬다. 엘르 패닝이 21세가 됐을 때, 생일 파티에 참석할 수 없었던 코폴라는 주문 제작한 핫 핑크색 샴페인 병들을 선물하며 그녀를 놀라게 했다. “참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순간, 바로 저희 어머니께 전화해서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대요.”

라시다 존스가 촬영 중인 베벌리힐스의 집에는 꽃무늬 친츠가 가득했고, 정원에는 장미가 한창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화려한 엄마의 옷장을 들여다본 작은 여자아이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지금 45세인 라시다 존스는 오스카 수상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초안 작업 중이던 2003년에 코폴라를 처음 만났다. “저는 실직한 여배우일 뿐이었죠. 코폴라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저를 진정으로 존중해줬어요.” 라시다 존스는 첫 만남 이후 줄곧 코폴라의 마음에 머물렀다. 결국 이 둘은 2015년 넷플릭스 영화인 <어 베리 머레이 크리스마스(A Very Murray Christmas)>에서 합을 맞추게 된다. 거기서 라시다 존스는 빌 머레이가 칼라일 호텔의 바에서 케이크와 음악으로 위로를 건네는 사면초가의 신부를 연기했다. 라시다 존스와 빌 머레이는 작년 <온 더 록스>에서 다시 만난다. 코폴라는 그녀에게 40대가 되기 직전의, 영웅적인 아버지(빌 머레이)를 둔 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주인공 역을 제안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로라는 창작과 결혼 생활의 위기를 동시에 겪으며, 아버지에게 의지하게 된다. “로라의 나이가 어리지 않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영화는 성인이 되어가는 이야기예요.” 새삼스러운 얘길 하자면, 코폴라의 아버지는 전설적인 영화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이고, 존스의 아버지는 역시 전설적인 음악가이자 제작자인 퀸시 존스다.

코폴라는 스스로 모성과 창의성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몸부림치던 시기 <온 더 록스>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다른 작품이 그렇듯 영화는 심각하기보다 익살스럽게 흘러가고, 교양 있는 디테일을 위한 코폴라 특유의 시각 역시 발휘된다. “제가 1990년에 파리에 살 때, ‘씨네+이모션’이라는 TV 채널이 있었어요. 우리 집에서는 그걸 ‘컴포트 채널’이라고 불렀죠. 그 채널에서는 보는 사람이 스트레스 받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가 항상 방영되고 있었거든요.” 코폴라는 말했다. “저는 깊은 주제로 씨름하지만, 동시에 보기에 재밌고 예쁜 뭔가를 원했어요.” <온 더 록스>가 작년 10월 애플 TV+에서 개봉했을 때, 코폴라는 이 영화를 시대물이라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다시 보게 됐다는 점에 놀랐다. 뉴욕의 풍경이 추억 속의 뉴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라시다 존스와 빌 머레이는 바에서 마티니를 마시며 재회할 뿐 아니라, 사실상 팬데믹으로 대부분 문을 닫은 뉴욕의 전통적인 레스토랑과 바를 탐험한다. 지금과는 “바라건대, 곧 우리에게 찾아올 뉴욕의 생동감 있는 모습을 화면에 담을 수 있었다는 점이 기뻤어요.”

소피아 코폴라의 다음 프로젝트는 이디스 워튼의 소설 <그 지방의 관습>을 애플 TV+ 한정 시리즈로 각색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시대물이 될 예정인데, 20세기 말 뉴욕 사회와 프랑스 귀족 사회의 예절과 결혼에 대한 풍자적 시각을 담는다. “이 소설의 가장 놀라웠던 점은 모든 것이 너무나 현대적이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비슷한 것들과 씨름하고 있잖아요.” 소설에서 사회적 계급에 목마른 주인공, 언딘 스프라그에 대해서는 어느 비평가가 간단명료하게 ‘국제적으로 벼락출세한 나쁜 년’ 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 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와 할리우드의 유명한 10대 도둑을 모티프 삼은 <블링 링>의 니키 무어 사이 그 어딘가, 코폴라 영화의 주인공답지 않은 여주인공의 범주에 들어맞을 것이다. 또는 그녀의 휘황찬란한 라이벌들에게서 어쩌면 80년대 주빈들의 원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확실히, 저는 화려한 사회의 여성들에게 매료되어 있어요.” 코폴라가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 저희 엄마가 ‘그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니?’ 하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70년대 히피 예술가들의 혼란 속에서 자란 것일지도 모르고. 가장 반대되는 세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