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이면서 공적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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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블유>의 전 피처 디렉터 황선우가 인터뷰집 <멋있으면 다 언니>를 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위치를 오가는 그와 함께 ‘인터뷰’라는 내밀한 화학 작용을 분해해봤다. 

인터뷰는 문자 그대로 정면 승부다. 인터뷰라는 약속으로 만난 이상, 마주 앉은 두 사 람은 대화 도중 곤경에 처한다고 해도 어디 도망갈 곳이 없다. 현장에서의 한판 승부로 끝이 아니다. 글의 형식으로 세상에 전달되는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말’을 ‘활자’ 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작업이다. 말의 토씨 하나까지 고스란히 옮긴다고 해서 오해의 소지 없는 인터뷰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며, 이 작업은 말에 담긴 의도를 파악해 읽기 좋은 결과물로 완성해내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상의 진실함을 드러내기 위해 종종 각색과 편집을 필요로 한다. 인터뷰란 ‘사실적인 거짓말’이기도 하다. <더블유>의 피처 디렉터였던 황선우는 2005년 <더블유> 창간 때부터 2019년 3월 프리랜서로 독립하기까지의 시간을 포함해 20년간 잡지 일을 했다. 한집에 사는 작가인 김하나와 함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썼고, 현재 두 사람은 ‘퍼블리’를 통해 프리랜서의 일과 삶에 관한 대담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유튜브 채널 <펜유니온 TV>를 운영 중이다. 지난 5월에는 황선우의 인터뷰집 <멋있으면 다 언니>(이봄)가 출간됐다. 작년 하반기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 형식으로 공개한 인터뷰 9건을 모은 책이다. 미디어의 환경이 역동적으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피처 에디터의 큰 책임 중 하나는 좋은 기사를 쓰는 일이다. 거기엔 좋은 인터뷰 기사 역시 포함된다. 스스로 영향력과 파급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매체일수록, 결과물을 대할 독자, 청중, 관객의 존재를 늘 인식해야 한다. 개인의 기술을 바탕으로 그렇게 일하기를 황선우는 오랜 시간 지속했다. 이젠 자기 이름을 건 인터뷰 프로젝트를 이끄는 인터뷰어이면서 작가로서 질문을 받는 입장의 인터뷰이가 됐다. 이 역동의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과 이야기의 힘에 대해, 그 매개체가 되어주는 인터뷰라는 장르에 대해 논하기 적절하다. <더블유> 사무실에서 함께 지낸 그녀는 웬만해서는 침착함을 유지하는 사람이었고, 유머러스한 촌철살인의 달인이었다. 우리는 마감 때면 방망이 깎는 피처팀이 되어 마감의 대미를 두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사이기도 했다.

하얀 오버사이즈 베스트 재킷과 통 넓은 팬츠는 모두 스포트 막스 제품.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20년을 보냈으니 퇴사 후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 많이 듣지 않았나? ‘잡지 일을 할 때가 더 좋아, 프리랜서 생활이 더 좋아?’

황선우 IT 회사에서 일하다 소설가가 된 <일의 기쁨과 슬픔>의 장류진 작가도 그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일의 만족도를 구성하는 요인에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시기에 따라 그 요인들의 비중이 들쭉날쭉하곤 한다. 프리랜서로 혼자 글을 쓰거나 소규모의 팀으로 일하는 지금은 일단 자유로운 시간 운용의 면에서 만족스럽다. 에디터 일이라는 게 강도가 세고 야근이 잦은 점도 있지만, 쉴 때조차 일에 관한 생각을 계속 가동해야 하는 사이클이니까.

직장 생활과 프리랜서 생활을 모두 해본 사람이라면, 결과물에 대한 반응이 나를 포함한 회사와 조직의 이름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개인의 몫이 되는 체감도 할 것 같다.

온전히 나에게로 뭔가가 돌아온다는 그 감각도 겪어보니 만족도가 높다. 다양한 분야의 영감과 자극, 뛰어난 사람들과 협업할 기회가 매달 새로 주어진다는 면에서는 잡지사같이 정신없고도 흥미진진한 일터가 드물 것이다. 나도 그 점을 즐겼기 때문에 잡지 일을 오래 할 수 있었다.

에디터의 업무는 원고 작성 외에도 복잡다단하게 많지만, 피처 에디터의 경우 글에 대한 태도를 놓고 봤을 때 기자 마인드인 부류와 작가 기질의 부류가 있다고 본다. 에디터 시절 황선우는 어떤 정체성에 가까웠나?

회사원의 정체성?(웃음) 마감 때 최후의 순간까지 붙들고 앉아서 좋은 원고를 쓰려고 애쓰는 걸 작가적 기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과물을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 보여주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없었다. 그저 회사원으로서 기능을 잘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특히 <더블유>처럼 훌륭한 매체에서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들은 분명 있다. 그에 맞춰 언제든 신뢰감 있게 안정된 퀄리티의 기사를 써내고, 맡은 일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점을 편집장과 동료들이 알면 되는 거고.

지금은 어떤가?

프리랜서가 되고서는 능동적으로 자신을 알리면서 일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프리랜서로 독립하는 시점에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냈고, 그 책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운이 좋게도 디딤돌 역할을 해줬다.

잡지사에서 오랜 시간 수많은 인터뷰를 하고 살다가 황선우 작가로서 인터뷰를 당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어떻던가? 굉장히 역지사지가 되는 경험이었을 듯한데(웃음).

나를 인터뷰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똑같은 말도 다른 결과물로 나온다는 걸 경험했다. 아니, 똑같은 말도 아니지. 인터뷰어가 이끌어주는 정도를 통해 내가 뱉는 말의 가능성이 달라진다. 좋은 대화를 위해서는 잘 듣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자기 질문지의 질문들만 던지면서 정작 답변을 제대로 듣지 않는 모습을 보며 충격받은 적도 있다. 인터뷰 현장에서의 대화로 끝이 아니라 그걸 정리해주는 역량에 따라 아주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역시 인터뷰란 참 어렵고 그만큼 욕심나는 장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인터뷰어로서 쌓은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양쪽 입장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런 만큼 ‘좋은 인터뷰’에 관한 성찰이 깊어지지 않았을까?

인터뷰는 확실히 ‘화학 작용’이다. 정신과에서 환자와 상담자 사이의 협조 관계를 일컫는 ‘라포’라는 용어가 있는데, 인터뷰의 짧은 시간 안에도 서로 형성하는 친밀감이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인터뷰를 통해서 나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 있다. 청탁받은 글을 쓸 때나 혼자서 일방향의 말하기를 할 때는 정리되지 않은 무언가를, 인터뷰어가 일깨워주면서 꺼내주는 거다. 좋은 인터뷰란 두 사람이 같이 가기 때문에 다른 길로도 가보게 되는 경험이다.

책 <멋있으면 다 언니>에 담긴 인터뷰는 2020년 하반기,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된 인터뷰를 모은 것이다. 이 일은 어떻게 출발했나?

‘멋진 여자들의 인터뷰를 해주면 좋겠다.’ 카카오페이지에서 제안한 큰 꼴은 이 정도였다. 인터뷰는 내가 좋아하고 잘 만들 수 있는 콘텐츠라서 ‘우리도 처음 시도하는 프로젝트인데 같이 한번 해보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짜릿했다. 에디터 시절에도 모든 인터뷰이에게 기본적으로 고마움을 품고 대했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에 인터뷰 결과물에 대한 오해와 갈등의 소지도 다분한데, 그걸 감수하고 임해준다는 거니까. 이번에도 그런 마음으로 내 역량을 다해 진실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작가 이슬아, 피아니스트 손열음, <문명특급>의 진행자 재재,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등 9명의 여성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뭐였나? 인터뷰이로 그들을 선정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겠다.

어떤 이들을 만나야 할지 떠올려봤을 때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어린 시절 보고 들었던 성공한 여자들의 방식이 동시대에도 과연 통할까.’ 나만 해도 잡지사 공채 시험을 보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정규직으로 자리 잡는 게 너무 어려운 시대고, 일에 관한 환경 자체가 급격히 변했다. 잡지사 인턴 생활을 경험했지만 조직 안에 들어가기보다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일간 메일링 구독 모델을 만들어버린 이슬아 작가 같은 인물이 2020년대적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시스템 바깥에서 뭔가를 해내는 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개척가적인 면모가 있는 인물 말이다.

카카오페이지에는 ‘멋있으면 다 언니 : 황선우의 스압 인터뷰’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다. 이 콘텐츠의 ‘커버’에 해당하는 썸네일 이미지는 만화로 돼 있더라.

그 점이 이 프로젝트의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콘텐츠 자체는 진지하고 딥한 인터뷰지만, 그 포장지는 웹툰과 웹소설을 보러 이 플랫폼을 찾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 딱 봤을 때 산뜻하고 경쾌한 이미지의 포장지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인터뷰 기획 전체를 아우르는 그 제목은 직관적으로 툭 나온 걸까?

제목 후보가 100개도 넘었다(웃음). 에디터 시절에는 기사 제목을 툭툭 잘 짓는 편이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도 내가 지었고, 그 책을 함께 쓴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 <힘 빼기의 기술> 같은 제목도 내가 옆에서 어렵지 않게 던져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어려운 거다. 웹툰과 웹소설 기반의 플랫폼에 연재된다는 전제를 고려하자니 처음엔 나도 고민이 컸다. 예능 프로그램의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지었다.

콘텐츠가 어떤 플랫폼을 통해 전달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애초 디지털 플랫폼을 위한 글이라면 우선 분량의 제약에서비교적 자유로웠을 텐데. 그 사실이 원고를 작성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시사하는 바가 얼마나 큰지!

아주 재밌는 경험이었다. 예를 들어 인터뷰이에 대해 본문이 아닌 전문에 지나가듯 언급하고 말거나 분량상 미처 담지 못했을 정보를 대화로 전달하고, 그 안에서 그 사람의 캐릭터를 구축하기에도 좋았다. 기획 단계에서 형식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호흡의 문제다. 잡지사에서 일하던 시절의 인터뷰가 달리기라면, 이번에는 산책하는 느낌의 인터뷰를 완성하고 싶었다. 카카오페이지 연재 당시 썼던 ‘스압 인터뷰’라는 제목에서부터 아예 ‘스크롤 압박’이 있는 쪽을 표방했다(웃음).

인터뷰 글을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문답식으로 정리할 때 ‘했나요?’ ‘그랬습니다’처럼 존댓말로 쓰는 경우, 혹은 ‘했나?’ ‘그렇다’ 식으로 정리하는 경우가 있다. <더블유>는 후자의 방식을 취한다. 그 미세한 뉘앙스의 차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잡지 글뿐 아니라 모든 인터뷰 콘텐츠에 있어서 다가가는 방향성이 변한 것 같기는 하다. 과거에는 반말투 인터뷰 기사가 많았다. 매체의 권위나 전통성, 인터뷰이와의 거리를 드러내는 데는 그게 어울리니까. 하지만 이제 인터뷰는 개개의 질을 떠나 전보다 일상적인 것이 됐다. 1인 매체를 포함해 다양한 플랫폼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만큼 친근한 형식이 된 거다. 매체 종사자일 때와 그렇지 않은 지금을 비교하면, 바로 이 부분에 대한 관점이 크게 달라졌다. 어떤 권위를 갖기보다는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느낌도 있기 때문에, 이젠 반말로 글을 정리하지 않는다.

<더블유>의 인터뷰를 위해 자주 그 지점을 고민한다. 대화를 실제 그대로 존댓말로 정리하는 게 보다 정중한 뉘앙스를 띤다는 걸 알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는 글자수가 적은 반말체를 써야 한정된 지면에 훨씬 많은 말을 담을 수 있어서다.

나 역시 지면용 인터뷰를 쓸 때는 늘 글의 밀도를 높이고 압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그 많은 대화의 양을 조금씩 쳐내고, 핵심만 담을 수 있을지. 압축할 때도 그 안에서 흐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세상에 보여지는 모든 인터뷰 콘텐츠가 완성되기까지, 인터뷰이를 배려하면서 가장 최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지난한 과정이 따른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인터뷰가 그저 남의 말을 받아 적는 행위라 폄하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예민한 눈을 지닌 독자들이나 업계 종사자들은 얼마나 여러 번 글을 재배열하고, 앞뒤로 자르거나 붙이는 시도를 반복하는지 알아볼 거라 믿는다.

특히 SNS가 생긴 후 ‘긴 글을 읽지 않는 시대’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리게 되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요즘 애들은 긴 글 안 읽어’, ‘잡지는 사양 산업’ 같은 말은 내가 신입 기자이던 1999년에도 있었다(웃음). 알고 보면 100년 전부터 그런 말이 돌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그건 새로운 세대에 대한 선입견일지도 모른다. 나는 20대와 30대가 긴 호흡의 글을 읽어줄 것 같았다. 모바일 스크롤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내 인터뷰 글 한 편을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20분 정도라고 하면, 웹드라마 한 회 분의 시간과 비슷하다. 재밌는 뭔가를 얻기 위해 그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 집중력은 누구든 발휘할 만하다.

황선우가 9명의 인터뷰이에게 던진 질문 중 일부를 황선우에게 그대로 던져보고 싶다. 마침 피드백과 악플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독자들의 피드백에 직접 노출되는 시대예요. 너그럽지 않은 큰 소리들도 있을 텐데 그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지키세요?”

악플이 전혀 없을 수 없는 세상이고, 내가 한 일과 상관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너무 좋은 반응도 적절히 걸러 들을 필요도 있고. 인터뷰이들의 말이 내게 큰 참고가 됐다. 이수정 교수는 ‘내가 해온 것들이 있는데, 악플 한 줄로 인해 그 해온 것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앞으로 할 것들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재재는 ‘슈퍼스타에게는 원래 ‘빠’와 ‘까’가 다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고. 또 좋건 나쁘건 간에 양적으로 많은 반응을 접하면서 자연 담담해지는 부분도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멋있으면 다 언니> 해시태그가 벌써 1000개 이상이니까.

“살면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무언가가 있나요?”

일이 지금의 나를 형성한 것 같다. 직업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일에서만 삶의 기쁨을 찾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훨씬 게으르거나 이기적으로, 타인과 어울리기 힘든 사람으로 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생에서 일이 아주 소중한 사람이고, 길게 일을 하고 싶다. 이미 내 나이 또래나 그 이상의 선배들이 점점 사라지는 걸 볼 때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일한다는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영화감독 김보라와의 인터뷰 도중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여성 작가들의 네트워킹이 필요하다는 걸 깨쳐가고 있다’는 언급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나?

회사를 관둔 후 여실히 느꼈는데, 정말 일만 하는 스타일의 여자들이 다수인 것 같다. 서로 안부 묻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식으로 네트워킹이 자연스레 몸에 밴 남자들의 사례는 많이 봤다. 프리랜서로 얼굴과 이름을 걸면서 일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유독 여자에게 적용되는 허들이 복합적으로 높다고 느꼈다. 그 영향으로 자꾸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악순환도 생긴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없을 때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끼리 서로 정보 공유도 하면서 일하는 방식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상당히 동기 부여가 된다.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일을 지속하는 여자들을 보면 그 존재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거나 기분 좋을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커리어 역사가 길다는 사실은 조명받을 의미가 있는 점인데, 때로는 올드함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나는 <멋있으면 다 언니>의 작가 프로필 첫 문장에 ‘잡지 만들고 인터뷰하는 일을 20년 했고’라고 썼다. 친구가 말렸다. ‘너 요즘 시대에 20년 일했다고 밝히면 너무 늙어 보여.’(웃음) 하지만 오래 일했다는 사실이 긍정적으로 보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 말을 넣었다. 내 인터뷰 콘텐츠를 보고 누군가 재밌다고, 의미 있다고 느낀다면, 그 콘텐츠를 만든 사람이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버틸 때는 버티고, 쌓을 건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누구든 어리고 경험이 적을 때부터 일을 잘하기는 힘든 법이니까.

<멋있으면 다 언니>의 서문에서 ‘이야기는 힘이 세다’고 썼다. 그 이야기를 읽는 동안 우리는 ‘현실과 직면할 용기를, 다르게 시도해볼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용기와 도전에 대해 어떤 주석을 덧붙이면 좋을까?

용기와 도전이 대단히 거대한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면의 많은 문제들을 안은 채로 매일의 출근 시간을 성실히 지키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를 뒤집어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회사에서 더 높은 직급을 꿈꿔보는 것도, 오래 일해온 분야에서 조금 방향을 바꿔보는 일도 도전일 수 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더 오래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라고 썼는데, 일하는 여성들의 캐릭터와 서사가 다양하게 눈에 보일 때 각자에게 그런 참조점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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