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자 영국인인 안지혜는 영국 새빌로에서 맞춤 의상을 만드는 재단사이다.
새빌로(Savile Row)는 센트럴런던의 메이페어에 있는 거리이다. 주로 남성 정장 맞춤 제작의 대명사로 자주 언급되는 이 거리는 영국의 우수한 테일러 전통을 상징하며, 그 역사가 무려 400년 가까이 되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 ‘새빌로는 꼼꼼한 재단사와 바느질 장인들의 도움으로 소년이 신사가, 그리고 왕자가 왕이 되는 곳’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수많은 재단사들이 한 나라가 정체성을 형성해온 역사에 힘을 보태고 있는 그 현장에서, 영국스러움이라는 것과 새빌로에서 일한다는 것을 발전시키는 한 젊은 재단사가 있다. “여기서 일한 지 몇 년 되었지만, 매번 출퇴근할 때마다 짜릿한 기분이 들어요.” 29세, 새빌로의 재단사 안지혜는 새빌로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명성 있는 ‘에드 앤 레이븐스크로프트’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 1689년에 세워진 이곳은 새빌로에서 가장 오래된 매장 중 하나이며, 영국 왕가는 이들의 가장 충성스러운 고객 중 하나다. “역사책을 보면 새빌로의 재단사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작업하는 사진이 나와요. 제가 여기 있다는 게, 그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사실이 저를 들뜨게 한답니다.” 그녀가 유명해진 계기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그녀의 멋진 작업물 덕인데,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은 작품의 사진부터 그녀가 실제 일하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까지, 그녀는 전 세계의 호기심 많은 팔로워들에게 근사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른바 신인류다(@be_spokenbyjihae).
변화의 폭이 큰 유행과 그에 맞춘 대량 생산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새빌로의 주문 제작 방식은 패션이 산업 기계가 아닌 시간의 기술인 공예로 대우받던 시기를 상기시키며 패션사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제가 일하는 곳은 아직 패션의 일부이기는 하죠. 그렇지만 제가 패션을 선택한 것 같지는 않았어요. 일하면서 종종 디올과 샤넬이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지를 떠올리곤 한답니다.” 그녀는 유서 깊은 모리스 세드웰에서 재단 일을 시작하였고,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을 톰 스위니의 수석 재단사이자 그녀의 스승인 훌리오 몸포의 덕으로 돌린다. 몸포는 자신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고, 현재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처음 새빌로에서 만들어진 정장을 입었을 때, 마치 파워 레인저가 된 기분이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어른처럼 대우해주었죠. 다른 곳에서는 이런 느낌을 절대 받을 수가 없어요.”
“이를 악물고 이 자리까지 왔어요.” 재단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다른 인종을 바라보는 구시대적이고 차별적인 시각을 가린다. 그리고 영국을 대표하는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새빌로에서 가장 영국다운 것이 무언인지 상기시켜주는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영국다움인 것 같아요. 이 나라, 민주주의, 그리고 영국의 다양한 부분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말이죠.” 최근, 그녀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바로 의상을 통해 그녀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영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결합하는 것이다. 새빌로 재단사로서 그녀의 기술은 쓰리피스 정장에 있다. 그리고 한국 여성으로서 그녀는, 한복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그녀는 한복의 고요하면서도 활동적인 측면과 정장의 형식을 합친 앙상블을 제작하는 중이다. “저의 목표는 영국인이자 한국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에요. 둘은 절대 따로 분리할 수 없습니다.”
- 패션 에디터
- 김신
- 글
- ISIAH MAGS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