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이라는 IP와 세계관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IP Universe Vol.3

2021-05-28T00:25:53+00:002021.05.28|FEATURE, 컬처|

‘슈퍼 IP를 잡아라.’ 지금 한국 콘텐츠 산업의 첫 번째 미션이다. 서로 다른 분야라 생각했던 기업들이 쳇바퀴처럼 맞물려, K-콘텐츠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은 의심할 여지 없이 IP의 시대다. 왜 그토록 중요한가?

IP가 화두다.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매니지먼트, 게임 등등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지금 가장 핫한 주제다. IP(Intellectual Property)란 콘텐츠를 기반으로 각종 부가 사업과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재산권’ 묶음을 말한다. 지식재산권은 저작권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지적 능력을 가지고 만들어진 창작물에 대한 권리’다. 시장성이 있고 훌륭한 콘텐츠 하나가 결국 여러 부가 사업을 낳는 권리이자 그 자체의 힘을 가지게 된다. 온갖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아이돌도, 불멸의 히트송으로 남을 ‘상어가족’을 만든 유아 콘텐츠 브랜드 핑크퐁도 강력한 IP 를 바탕으로 하는 셈이다. 사실 IP라는 용어를 알지 못했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일 잠재력이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 정도로 대강 이해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이 용어가 점점 하나의 대명사로 널리 쓰이는 건 창작물에 대한 ‘법적 권리’가 그만큼 중요한 시대라는 의미일 것이다.

IP를 이야기할 때 곧잘 거론되는 용어가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국내외 콘텐츠 산업의 규모가 커졌고, IP를 활용하려는 관련 업계는 결국 하나의 씨앗을 통해 무성한 가지를 뻗어 나가는 모양새를 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가지들의 합이 고유의 세계관을 이루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마블 씨네마틱 유니버스’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분야는 웹툰과 웹소설 IP를 활용한 시장이다. 단순히 일회적인 영상화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거나 기획부터 서로 함께 출발하는 식이다. 웹툰과 웹소설은 좋은 원천 스토리 역할을 할 수 있고, 기존 팬덤을 끌어오기에도 좋다. 자연히 연재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웹툰의 영향력이 커졌다. 게임회사인 넥슨은 지난해에 ‘글로벌 IP를 확보하는 데 1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캐릭터와 스토리, 팬들의 충성도까지 담보한 게임 업계야말로 예전부터 IP 활용에 나섰던 대표적 분야다. 분명한 건 IP 를 둘러싼 움직임이 분야별로 각자의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서로 얽히고 결합하는 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현재 어떤 분위기 속에 있는지 들여다보면, 우리가 보고 즐기는 것들의 ‘탄생 서사’도 함께 보인다.

케이팝이라는 IP와 세계관

영화 산업에 마블이 있다면, 음악 산업에는 한국의 아이돌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 슈퍼 IP가 됐을까.

최근 하이브(HYBE)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YG플러스의 2대 주주가 된 데다 네이버와 손잡고 영상 플랫폼인 브이라이브와 하이브의 팬덤 플랫폼인 위버스를 합치기로 했다. 이 플랫폼의 규모를 바탕으로 해외 아티스트와 관련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위버스 안에 데려올 예정이다. 하이브는 해외에서도 지금 단연 주목의 대상이다.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 합작 법인을 설립하여 보이 그룹을 제작 중인 것은 물론, 매니지먼트로 미국 연예계와 음악 시장에서 입지가 큰 스쿠터 브라운의 회사 이타카 홀딩스를 인수하여 해외 사업을 강화할 준비를 마쳤다. 하이브에 속한 여러 레이블은 각자 독립성을 유지하지만, 그 모든 아티스트와 거기서 파생한 IP를 활용해 2차, 3차 창작을 하는 데 집중하는 법인 ‘하이브 솔루션즈’도 있다. 눈길이 가는 건 하이브가 워너브라더스와도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점이다. 워너미디어의 OTT 서비스인 HBO 맥스를 통해 BTS의 콘서트 및 다큐멘터리 같은 독점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음을 뜻한다.

하이브가 최근까지 광폭 행보를 이어온 중심에는 물론 BTS라는 거대한 IP가 있다. 과거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케이팝 그룹을 IP로 인식한다거나 상상력을 발휘해 활용하지 못했다. BTS를 단순히 그룹 자체만으로, 그 존재만으로 대단한 IP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BTS는 몇 년간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해 ‘학교 3부작’, ‘화양연화’ 시리즈, ‘Lover Yourself’ 시리즈와 같은 그들의 세계관을 구축해했다. 이렇게 구축한 BTS 유니버스를 바탕으로 다양한 포맷과 이야기가 확장되거나 서로 묶이는 중이다. BTS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챙겨봐야 할 게 많다. 그룹의 세계관을 다룬 웹툰인 화양연화 Pt.0 <Save Me>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됐고, 그 세계관 안에서 일곱 소년의 성장 서사를 다룬 드라마 <유스>도 제작 중이다. 넷마블에서 모바일 게임으로 출시한 <BTS 월드>를 비롯해 ‘타이니탄’이나 ‘BT21’처럼 실물 피규어 및 디지털로 존재하는 캐릭터도 있다. 여기에 자체 제작한 다큐멘터리, 하나의 브랜드로서 팝업 스토어나 광고 등으로 비치는 이미지까지 생각하면 BTS의 세계관은 거대할 뿐 아니라 나름대로 촘촘함까지 유지하고 있다. 아티스트 IP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선보이며 케이팝계에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중인 셈이다.

아이돌의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처음 들고나온 주인공은 EXO다. EXO는 데뷔 때부터 각 멤버에게 부여된 캐릭터가 있었고, 그 콘셉트와 스토리를 가사, 뮤직비디오 내용 등으로 이어갔다. 엑소플래닛이라는 미지의 세계, 멤버들의 초능력, EXO-K와 EXO-M의 평행세계 등등 그 설정의 자세함과 규모는 단순 콘셉트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관’이었다. 하지만 세계관을 면밀하게 드러낼 기회인 멤버들의 솔로 앨범에서 그런 활용을 제대로 해내진 못했다. 대신 솔로 앨범은 아티스트로서 각자의 기량을 훌륭하게 드러낸 작품이 되고는 했다. 세계관 문제를 생각하면, EXO야말로 큰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선두주자였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다. 기대되는 건 작년 11월 데뷔한 걸그룹 에스파를 기점으로 펼쳐질 SM엔터테인먼트의 ‘SM 컬처 유니버스’다. 에스파 데뷔 직전, 유튜브로 생중계된 제1회 세계문화산업포럼에서 이수만 회장은 앞으로 SM 컬처 유니버스를 통해 소속 아티스트들이 서로 연결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에스파 멤버들은 현실과 하나로 이어지는 가상세계 속의 아바타 멤버도 보유하고 있다. 아바타 멤버들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 지켜볼 만하다.

아이돌과 게임이 손잡는 경우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과거에는 아이돌이 기존의 게임 내 아이템이나 스킨 정도로만 활용됐다면, 훨씬 진화한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BTS뿐 아니라 아이즈원 역시 모바일 게임 <아이즈원리멤버즈>를 출시해 존재감을 다졌다. ‘악몽을 잡아주는 꿈의 요정들’에 관한 세계관을 지닌 걸그룹 드림캐쳐는 모바일 게임 <킹스레이드>와 적극적으로 협업한 사례다. 2019년 스페셜 미니 앨범 <Raid of Dream>을 내고, 게임의 메인 스토리를 음악과 뮤직비디오에 녹였다. 걸그룹 체리블렛은 실제 게임을 출시하진 않았지만, 독특한 설정으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가상의 ‘체리블렛’이라는 컴퓨터 운영체제 안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서로 다른 주특기를 가진 멤버별 로봇 캐릭터가 존재하는가 하면, <네가 참 좋아> 뮤직비디오에서는 멤버들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AR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케이팝 아티스트가 탁월한 IP 형태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물론 현실에서의 매력이 탄탄하게 받쳐줘야 한다. 여기에 고유한 세계관 역시 아이돌 그룹의 디폴트가 됐다. 그러나 잘 짜여진 세계관 자체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진득하게 끌고 가며 서사를 구축하느냐다. 케이팝에서 세계관이란 그저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구축한 뒤에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하여 내실을 다지고, 그 과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아티스트와 기획사는 포기하지 않고 전작의 연장선에 놓인 후속작을 발표해 변주를 시도하는 동시에 그룹의 팬덤과 세계관의 팬덤을 동일하게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 팬들은 스토리를 따라가며 작품을 분석하는 한편, ‘떡밥’이라 불리는 단서들로 후속작의 내용을 추측하며 좇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런 행위가 팬들의 큰 재미이고, 팬덤이 유지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훌륭한 IP의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는가’ 여부는 분명 큰 기준이다. 기획사들이 음악과 영상뿐 아니라 게임, 웹툰, 책 등 서로 다른 포맷의 작품을 연결해 즐기는 재미를 줄 수 있을지도 고민하는 때가 왔다. 코로나 19로 인해 공연 사업이 타격을 입고, 그 상황을 타개하는 과정에서 기획사들에겐 음악과 아티스트를 IP로서 접근하는 일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잘 준비된 기획사라면 그룹 활동의 공백을 IP를 활용한 콘텐츠로 메울 수도 있다. IP를 둘러싼 행보가 케이팝을 통해 음악 산업 전체에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글 | 블럭(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