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영토, 메타버스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IP Universe Vol.2

2021-05-26T19:06:37+00:002021.05.27|FEATURE, 컬처|

‘슈퍼 IP를 잡아라.’ 지금 한국 콘텐츠 산업의 첫 번째 미션이다. 서로 다른 분야라 생각했던 기업들이 쳇바퀴처럼 맞물려, K-콘텐츠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은 의심할 여지 없이 IP의 시대다. 왜 그토록 중요한가?

IP가 화두다.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매니지먼트, 게임 등등 분야를 막론하고 한국 콘텐츠 산업에서 지금 가장 핫한 주제다. IP(Intellectual Property)란 콘텐츠를 기반으로 각종 부가 사업과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재산권’ 묶음을 말한다. 지식재산권은 저작권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지적 능력을 가지고 만들어진 창작물에 대한 권리’다. 시장성이 있고 훌륭한 콘텐츠 하나가 결국 여러 부가 사업을 낳는 권리이자 그 자체의 힘을 가지게 된다. 온갖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아이돌도, 불멸의 히트송으로 남을 ‘상어가족’을 만든 유아 콘텐츠 브랜드 핑크퐁도 강력한 IP 를 바탕으로 하는 셈이다. 사실 IP라는 용어를 알지 못했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일 잠재력이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 정도로 대강 이해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이 용어가 점점 하나의 대명사로 널리 쓰이는 건 창작물에 대한 ‘법적 권리’가 그만큼 중요한 시대라는 의미일 것이다.

IP를 이야기할 때 곧잘 거론되는 용어가 ‘세계관’이다. 세계관은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국내외 콘텐츠 산업의 규모가 커졌고, IP를 활용하려는 관련 업계는 결국 하나의 씨앗을 통해 무성한 가지를 뻗어 나가는 모양새를 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가지들의 합이 고유의 세계관을 이루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마블 씨네마틱 유니버스’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분야는 웹툰과 웹소설 IP를 활용한 시장이다. 단순히 일회적인 영상화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러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거나 기획부터 서로 함께 출발하는 식이다. 웹툰과 웹소설은 좋은 원천 스토리 역할을 할 수 있고, 기존 팬덤을 끌어오기에도 좋다. 자연히 연재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웹툰의 영향력이 커졌다. 게임회사인 넥슨은 지난해에 ‘글로벌 IP를 확보하는 데 1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캐릭터와 스토리, 팬들의 충성도까지 담보한 게임 업계야말로 예전부터 IP 활용에 나섰던 대표적 분야다. 분명한 건 IP 를 둘러싼 움직임이 분야별로 각자의 길을 걷는 게 아니라, 서로 얽히고 결합하는 식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현재 어떤 분위기 속에 있는지 들여다보면, 우리가 보고 즐기는 것들의 ‘탄생 서사’도 함께 보인다.

새로운 영토, 메타버스

지금 가장 뜨거운 두 영역, 메타버스와 IP가 교집합을 그리며 전개하는 엄청나게 시끄럽고도,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야기에 대하여.

이것은 작년 10월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진행한 그래픽 테크놀로지 콘퍼런스 ‘GTC 2020’의 기조 연설에서 건져 올린 한 장면. 전염병 시대에 걸맞게 자신의 주방 아일랜드를 연단 삼아 연설을 시작한 젠슨 황은 말했다. “지난 20년이 놀라운 세월이었다면 앞으로의 20년은 공상 과학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바야흐로 메타버스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젠슨 황의 선언처럼 지금 메타버스는 전 세계 산업 지형도에 거대한 발자국을 찍고 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최신 메타버스 소식을 실어 나르기 바쁘고, 메타버스란 호재를 만난 투자 시장은 가장 타율 높은 ‘메타버스 관련주’는 무엇인지 호시탐탐 그 과녁의 정중앙을 엿본다.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익히 들어온 가상현실(VR)에서 한 발 진보한 개념으로, 이용자가 아바타를 이용해 사회·경제·문화적 활동을 하게 되는 3차원의 가상세계라 할 수 있다. 방점은 현실의 ‘나’가 단순히 아바타를 이용해 가상세계를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에서와 같은 사회·경제·문화적 활동을 한다는 지점에 찍힌다.

2008년부터 연구된 메타버스는 기술 정체 등의 이유로 오랜 잠을 자다 최근 팬데믹이 불러온 ‘비대면’을 만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 1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발표한 ‘코로나 이후 글로벌 트렌드 – 완전한 디지털 사회’ 보고서에선 근미래를 좌우할 7대 기술 중 하나로 메타버스를 꼽을 만큼, 오늘날 산업 전방위에서 메타버스 기술이 전천후로 활용되는 중이다. 메타버스는 다양한 분야 가운데서도 특히 IP 산업을 무궁무진하게 다각화 할 수 있는 블루오션으로 호명된다. “메타버스는 현실과 함께 숨 쉬는 또 하나의 ‘세계’라 할 수 있어요. 그 세계를 슬기롭게 건설하기 위해선 세계관이나 스토리텔링, 즉 콘텐츠가 필요하죠. 개발 초기 단계에 콘텐츠 IP를 확보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데 기존 음악, 게임, 영화 시장에서 탄탄한 팬덤을 확보해온 검증된 IP는 굉장히 매력적인 커뮤니케이션 툴이 될 수밖에 없죠. 동시에 IP 사업자는 메타버스 기술로 파생 콘텐츠를 만들며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고요.” 하늘로 떠난 가족을 VR 기술로 소환하는 이야기를 그린 MBC 휴먼 다큐 <너를 만났다>를 기획·제작해 화제를 모은 국내 CGI 전문 스튜디오 ‘비브스튜디오스’ 박태춘 상무의 말이다. 실제 하나의 IP가 메타버스와 만나 폭발적 시너지 효과를 낳은 사례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작년 4월, 배틀로얄 형태의 메타버스 게임 ‘포트나이트’에선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싱글 앨범 <The Scotts>의 발매를 앞둔 래퍼 트래비스 스콧은 자신의 신곡을 발표할 쇼케이스 무대로 포트나이트 내 3D 소셜 공간인 ‘파티 로열’을 택하고 이곳에서 아바타로 변신해 가상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전 세계 총 1230만 유저가 동시 접속했고, 그 결과 포트나이트는 약 221억원에 달하는 게임 내 상품 판매 수익을 올렸다. SNS상에선 아바타가 신고 있던 나이키 신발의 모델명이 뭔지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타버스와 IP의 만남이 가장 빠르게, 또 전략적으로 구현되는 분야는 패션과 엔터테인먼트다. 특히 루이 비통, 구찌, 발렌시아가 등 콧 대 높은 글로벌 패션 하우스들이 런웨이 대신 메타버스 플랫폼을 통해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치는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패션 브랜드에 있어 메타버스는 ‘의류 제조’라는 물리적 환경 중심의 기존 사업 모델을 디지털로 재편, 확장하는 탁월한 수단이 된다. 나아가 브랜드 로고나 심벌, 디자인 등 다양한 시각 IP를 기반으로 메타버스에 유통할 디지털 패션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일은 이들에게 철저히 ‘남는 장사’나 다름없다.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는 세계 명품 소비에서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5년 58%까지 증가할 것이라 예측한다. 바로 이 MZ세대가 주요 유저층을 차지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아바타 코스튬 등의 상품을 출시하는 것은 곧 미래 잠재 고객을 만나는 일이며, 플랫폼상에서 브랜드 옷을 입고 활동하는 아바타를 통해 홍보 효과까지 누리는 기회인 셈이다. 물론, 상품 판매에 따른 수익은 덤이다. 올해 구찌가 네이버 Z의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통해 버추얼 컬렉션을 판매하고, 발렌시아가가 2021 F/W 컬렉션을 메타버스 게임 형태로 발표하며, 루이 비통이 라이엇게임즈의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와 손잡고 디지털 캡슐 컬렉션을 출시하는 것 등은 단순한 트렌트의 농간이 아닌, 요즘 시대에 통용되는 가장 효율적이고 획기적인 마케팅 전력이다. 고객의 오프라인 쇼핑 경험에 총력을 다하던 패션 브랜드들은 이제 메타버스상의 시민, 즉 아바타가 가상 공간에서 입고 싶어 하는 옷을 만든다. 그리고 그 재료는 원단이나 실밥이 아닌I, P인 것이다.

한편 엔터테인먼트, 그중에서도 케이팝 아이돌 산업은 메타버스와 만나며 필연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증강현실, 가상현실,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현시대의 거의 모든 첨단 기술이 녹아든 메타버스는 아이돌 세계관을 다층적으로 실현시켜줄 탁월한 툴이 된다. 아티스트의 존재감은 IP가 메타버스와 만났을 때 이용자들에게 현실감, 몰입감을 선사하고 이는 한층 흡인력 강한 파생 콘텐츠의 생산으로 직결된다. 그렇기에 실제 다수의 아이돌 엔터테인먼트사가 메타버스 기술을 이용해 자사 IP의 몸집을 키울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는 신인 걸그룹 ‘에스파’를 선보이며 동시에 이들 4인 멤버의 아바타 버전인 ‘아이(ae)’를 공개했으며, 블랙핑크는 ‘제페토’를 통해 팬 사인회를 개최해 가상세계에서 총 4600만 명의 팬을 만났다. 아직 이 아바타들의 활동이 공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추후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며 아티스트 IP의 유료화를 자연스럽게 이끌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아이돌 IP 기반의 아바타 상품 개발에 제작사가 기름을 붓고 있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하다. ‘완벽한 가상’이라 할 수 있는 아바타는 초기 개발 단계에 적지 않은 자본이 투입되지만 그만큼의 확실한 ‘아웃풋’을 생산한다. 인간과 달리 영원히 늙지 않는 아바타는 사생활 문제를 일으켜 회사 주식을 떨어뜨릴 일이 없고, 군 입대 로 인해 돌연 활동을 중단할 일도 없으며, 다양한 기획으로 그룹을 재창조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다. 물론, 발 빠른 사람들은 이미 움직였다. SK텔레콤의 혼합현실 제작소 ‘점프스튜디오’, 엔씨소프트의 케이팝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유니버스’ 등 아바타 경제의 시대를 앞당기는 서비스가 줄지어 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2025년 전 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약 31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메타버스 시장이 계속해서 팽창하는 이유는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될 수 있는사 업적 범용성의 탁월함에 있다. 한편 IP 산업의 핵심 키워드 또한 ‘확장성’으로 꼽힌다. 하나의 IP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숱한 파생 콘텐츠를 다양한 층위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제공하기에 메타버스만큼 좋은 캔버스는 없다. 가상의 해상도는 점점 높아지며, 메타버스는 대체 불가능한 미래로 다가오고 있다. 무한의 가능성이 열린 세계에서 IP는 어떠한 새로운 문을 열 것인가. 여태까지의 IP와 메타버스의 만남을 예고편처럼 보이게 만드는 본편이 막 시작되고 있다. 글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