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튀르 등판 Sterling Ru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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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S/쿠튀르 컬렉션에 새롭게 등장한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Sterling Ruby 스털링 루비

아트와 쿠튀르의 가치를 결합한 아티스트 스털링 루비의 쿠튀르 컬렉션.

성공적인 쿠튀르 데뷔 쇼를 축하한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다.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쿠튀르를 준비했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스털링 루비 고맙다. 우리는 오트 쿠튀르와 패션 협회로부터 쿠튀르 스케줄에 참여해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2019년 이탈리아 피티 이마지네에 참여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피티에 참여했을 때부터 서너 번쯤 새로운 컬렉션을 소개하려고 준비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나름 야심찬 준비가 무산되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번의 초청이 매우 감사하고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부터 2021년 초까지 이어진 미국의 정치적 격변 상황, 코로나로 인한 여러 제한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었다.

멀리서 보기에 아티스트인 당신이 쿠튀르에 참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아트 퍼포먼스 같다고 생각했다. 쿠튀르에 참여하는 건 디자이너 스털링 루비, 아티스트 스털링 루비로서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하다.

나는 럭셔리 메종이나 패션계 사람들과 함께한 경험이 많아 그 스튜디오들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잘 아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곳들이 구축하고 보유한 체계가 없을뿐더러,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아틀리에의 핵심적인 가치이다. 디자이너의 손이 하나하나의 의상을 거쳐 간 ‘메이드 인 하우스’라는 아이디어 말이다.

쿠튀르 쇼를 준비하며 어떤 프로세스로 옷을 완성했는지 궁금하다.

내 쇼에 등장한 대부분의 액세서리는 이탈리아에서 만들었다. 그러나 75~85%의 컬렉션은 스튜디오에서 우리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중 몇 가지는 하나밖에 존재하지않는 유니크 피스다. 염색 작업도 대부분 수작업으로 했으며, 컬렉션 피스는 손바느질과 기계 둘 다 사용해서 만들어졌다. 패턴은 우리가 직접 제작한다. 협회의 초청을 받았다는 게 기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우리 브랜드는 시작부터 모든 과정에 쿠튀르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애써왔다고 자부한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그 가치를 더욱 깊이 탐험할 수 있었다.

이번 쿠튀르 쇼에 접목한 표면의 실, 페인트 튄 자국, 열 압착 사진 인쇄 콜라주, 위빙 디테일, 새롭게 선보인 소재 시폰, 구조적인 실루엣 등 다양한 효과와 오브제를 활용해 하나의 마스터피스를 창조했다. 그동안 당신의 레디투웨어에서 보여준 아이코닉한 기법뿐 아니라 새롭게 시도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몇 년 전 나는 부드러운 조각들이라고 불리는, 천으로 만 든 조각 작품을 여럿 선보였다. 당시 나는 섬유 염색을 하 며 나온 효소 성분으로 헹굼을 한 천 조각들로 유니크한 모형과 뱀파이어의 입을 표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거기에 털실을 더하기 시작했다. 이번 컬렉션에 등장한 털 실 장식의 작품, 수작업으로 만든 독특한 경첩 모양의 가 방이나 대왕 프린지가 달린 털실 코트는 다 이 라인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사실 이것은 우리 집에서 아이디어를 얻 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 집에는 아트 작업실이나 아이들 놀이방이 여러 개 있는데, 이 방들의 카펫 위에는 아이들 이 털실을 가지고 논 흔적인 털실 쪼가리들이 널려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굉장히 아름답더라. 그리고 내가 20세 기 섬유 아티스트인 주디스 스콧(Judith Scott)의 작품을 사랑하는 것도 털실 테크닉을 개발한 계기로 작용했다. 이 러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모여서 털실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다.

묵직한 것과 살랑거리는 시폰의 대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 이질적인 소재의 교차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 있나?

헤비한 털실 피스들의 반대쪽에 하늘하늘한 시폰을 배치 한 건 마치 과거와 현재의 유령 같은 공존을 상기하는데, 볼륨을 넣은 실을 달아서 아주 얇고 비치는 드레스를 만 들었다. 그리고 이번 컬렉션에서 열 인쇄 사진 압착 테크닉을 전체적으로 사용했다. 특별한 점은 올해 계속 뉴스를 도배한 인공호흡기의 부족 사태와 사람들이 기계에 의존 해 목숨을 연명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고속 엔진 옆에 인공 심장의 이미지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이 미지의 교차는 굉장히 빛나고 강력하고 고급스럽지만 한 편으로는 수수께끼 같고 차갑고 임상적이다. 최근 미국에 서는 매일 인공호흡기가 몇 대 있어야 하고, 얼마나 많은 기계가 필요한지, 중환자실에 병상이 몇 개나 남아 있는지 에 대한 뉴스로 가득했다. 이 모든 것들이 직접적인 관계 는 없지만, 세상을 보면서,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커넥션을 강조하고 싶었다.

크고 묵직한 실루엣이 인상적이다. 웅장한 퍼, 재킷, 드레스에서 내재된 힘이 느껴졌다. 드레스에서도 매니시함이 느껴졌고 말이다.

맞다. 나는 볼륨을 다루는 데 공을 들였다. 라이트하거나 헤비한 섬유, 얇게 비치거나 불투명한 텍스처, 몸에 착 달 라붙는 것과 오버사이즈한 구조적인 실루엣의 대비 등등. 나는 젠더에 연연하는 편은 아니지만 내가 만든 것들의 페르소나나 섹슈얼리티, 퍼포먼스 같은 본질을 중요시 여 긴다.

멜라니 시프(Melanie Schiff)의 사진이 레이어된 작품의 작업 과정도 듣고 싶다. 무척 현대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멜라니 시프의 프린트 중에는 직물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꽤 많다. 빛이 천을 통해 비치는 이미지나, 나뭇가지와 줄 기가 엉켜 있는 털실처럼 보이는 그녀의 이미지를 천 위 에 프린트했다. 그녀는 빛을 굉장히 독특하게 다루는데, 나는 그 이미지들을 천에 옮긴 후 드레이핑과 몸을 감싸며 곡선을 이룰 때 혹은 바람에 날릴 때마다 변화하는 실루엣을 보고 싶었다.

이번 쿠튀르를 준비하면서 당신한테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

코로나 상황 탓에 계속 바뀌는 프로토콜로 인해 1월 내내 슈팅은 어떻게 할지, 모델은 몇 명으로 할지, 얼마나 큰 규모의 프로덕션이 될지, 스튜디오 내에 몇 명이 있을 수 있는지 등이 계속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에 연연하기보다 일의 탄력을 이용하여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끈질기게 계속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 다고 느꼈다.

원래 계획된 쇼가 있었다고 들었다. 비디오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당황했을 것 같은데…. 비디오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된 건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멋진 음악도.

몇 년 전 LA 변두리에 있는 페인트 볼 코스에서 영상을 찍은 적이 있다. 그 영상을 보면서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 올 법한 풍경을 떠올렸다. 특히 미국에 대하여, 미국의 정 치나 논란의 중심인 애국심에 관한 불협화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래서 두 명의 모델을 풍경에 세워둔 채 미로 를 탐험하는 것처럼, 시청자들을 현실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처럼 길을 잃은 듯 계속 돌게 했다. 음악은 Swans / Angels of Light의 미카엘 지라(Michael Gira)가 만든 ‘물의 약속(Promise of Water)’이다. 굉장히 아름답지만 극도로 반이상적인 노래다. 이 영상은 꿈속에서처럼, 포스 트-아포칼립스 세상에서 페인트가 사방으로 튄 풍경에서 펼쳐진다.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처음 패션 사업을 시작했을 때, 너무 상업화된 예술계에 당신의 작품을 좀 더 대중에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아티스트가 만드는 옷을 산다기보다 스털링 루비의 작품을 사 모으듯 수집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 대화의 폭이 굉장히 넓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패션계가 얼마나 예술계와 유사한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말하자면, 쿠튀르의 역사와 신조는 패션의 아주 최고점이 라는 것. 그러므로 이 쿠튀르 컬렉션은 내가 컨템퍼러리 아트 작업을 하는 것과 동일 선상에 두고 작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쿠튀르가 또는 컨템퍼러리 아트가 25세 청년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세상이 변하듯 계속 바뀌고 있다. 이 생각이 접근성에 영향력을 미쳤다. 가끔 나는 아트나 패션이 그저 특정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가라는 걱정을 한다. 그 생각이야말로 지금의 내게 가장 큰 화두이다.

패션 에디터
김신
사진
Courtesy of Sterling Ru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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