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S/S 쿠튀르 컬렉션에 새롭게 등장한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Alber Elbaz 알버 엘바즈
랑방을 마지막으로 홀연히 패션계를 떠난 지 5년 만에 쿠튀르 컬렉션으로 컴백한 알버 엘바즈의 AZ팩토리(AZ FACTORY).
오랜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척 궁금하다.
알버 엘바즈(Alber Elbaz) 잘 지냈다. 충분히 쉬며 재충전했다. 한국 식당에서 식사도 하며 지냈다(웃음). 한국 음식은 정말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식단이다.
당신을 만나면 정말 묻고 싶었다. 왜 홀연 패션계를 떠났나?
시간이 필요했다. 패션계의 무수한 이야기와 격변하는 환경에서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과 미래를 위해서 숙고할 여유와 새롭게 결심할 시간이 필요했다. 패션과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지게 될 그런 시간과 의미 말이다. 너무 오랫동안 쉬지 않고 몰입했으니까. 어느 순간 즐겁지 않은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오늘날 우리들은 심심한 것을 금기시하지 않나. 하지만 가끔은 눈에 띄지 않을 필요가 있다. 심심함은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하는 이에게 아주 중요한 요소다. 밖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소소한 ‘일상’을 포함해서 말이다.
하우스 브랜드에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가 채워질 때마다 당신이 아닐지 종종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쿠튀르로 복귀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무척 반가웠다. 레디투웨어 쇼가 아닌 쿠튀르로의 복귀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처음 시작은 쿠튀르가 아니었다. 원래는 9월에 론칭했어야 했는데 코로나로 많은 공장과 연구실이 문을 닫았다.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수 없고, 그들과 만나서 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시도한 다른 가능성이 바로 쿠튀르 기간에 선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복귀를 쿠튀르로 소개하는 것이 맞는지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쿠튀르의 정수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숙고 끝에 도달한 결론은 쿠튀르는 레드카펫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쿠튀르는 기술적 혁신이고, 개성이다. 많은 여성이 쿠튀르를 입는 이유는 그저 유니크한 것과는 다르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찾던 것이었다. 이번 쿠튀르를 준비하며 우리가 한 것은 연구실과 함께한 어마어마한 수집이었다. 광범위한 수집 과정을 통해 개인의 개성을 찾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자 했다.
팬데믹으로 봉쇄된 세상과 정반대인 쿠튀르를 준비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줌으로 만나고 일하는 시대다. 그러면서 편안함을 많이 찾는 것 같다. 어서 대면할 날이 오기를 희망하지만 말이다. 물론 내가 몇몇 검정 원피스를 만들었지만 나는 10cm짜리 하이힐이 아닌 조깅이나 팬츠, 스니커즈, 레깅스 같은 편안한 것들을 좋아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패션은 필링이고, 테크놀로지는 그것을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패션은 히스토리와 노스탤지어에서 와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내 생각은 다르다. 인생은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과거를 알아야 하지만 과거에 살면 안 된다. 같은 여성이 아니고 같은 몸이 아니다. 같은 음식이 아니고, 같은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다.
Az Factory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에이는 알버의 첫 글자, 제트는 엘바즈 마지막 글자. 공장이라는 단어는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불려왔는지를 탐구하며 포착한 것이다. 그들은 처음 재단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가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달았고, 이후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타이틀을 가졌고, 지금은 인플루언서로 불린다. 이젠 그것을 넘어서 프로듀싱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직업이다. 그리고 그것은 쇼룸보다는 공장에서 이뤄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팩토리 사람들의 마인드가 좋다. 그들과 함께 일할 때 더 편안하고 진실성이 느껴진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처럼 말인가?
그렇다. 요즘 사람들은 각자 일하는 것에 무척 익숙해졌다. 커뮤니티가 중요하다 말하지만 결국 각자 일한다. 하지만 함께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문화 예술이 엄청나게 발달했다. 찰리 채플린과 조세핀 베이커가 나왔다. 사람들은 그 시기를 문화의 황금기라 하지만 나는 그 시기야말로 정말 스마트한 시간으로 가득 찬 시기였다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르네상스는, 인텔리전트이다. 이게 내가 말하는 스마트함이다. 그저 블링블링한 것이 아니다. 화려함도 좋지만, 어느 순간 그런 것에 빠지면 장님이 되어버린다. 내가 그리는 미래는 재즈와 같다. 재즈는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느낌을 가지고 함께 연주하는 것 아닌가. 혼자 할 수 없는 음악, 상대방을 바라보고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음악이다. 나에게 미래란 그런 것이다.
새로운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여성 그 자체였다. 이제 우리는 나라나 대륙을 이야기하기 전에 ‘여성’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 당신(여성)은 시장이 아니다. 인간이다. 아시아 시장, 미국 시장,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내가 아는 수많은 여성은 국적도 인종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훨씬 많다. 그녀들은 초콜릿을 좋아하고, 슬플 때 울며, 기쁨을 누릴 줄 안다. 세상 모든 여성에게 공통된 여성으로서의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여성들은 지금 변화를 겪고 있다. 르네상스라 할까? 스스로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증명하려고 하는 시대다.
공개된 Az Factory는 기존의 쿠튀르 쇼와는 확연히 달랐다. 당신에게 쿠튀르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지는 결과물이었다.
럭셔리가 무엇인가? 가방인가? 비싼 물건인가? 여성이 어떤 제품에 완전히 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는 테크놀로지가 그런 환상을 실현시켜줄 방법이었다. 나는 이번 쿠튀르를 통해 11벌의 원피스를 선보였다. 인종과 나이를 염두에 두고 만들지 않았다. 누구든 11벌 중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 레깅스나 스니커즈와 매치해서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했다. 파티를 위한 옷이 아니고 지극히 활동적인 옷들이다. 레깅스와 스웨트셔츠에는 무려 10가지 색깔을 입혔고, 여섯 사이즈로 출시해 거의 모든 여성의 신체를 커버할 수 있게 했다. 여성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당신은 ‘마이 바디 팩토리’ 비디오를 통해 제품이 공장에서 어떻게 엔지니어링되는지 보여줬다. 공정 과정을 공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비디오를 보고 당신은 어떠했나? 내 생각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나?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투명한 정보를 원한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이 쓰는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한다. 향수를 출시하면 여배우를 모델로 쓰고 사람들은 모델을 보고 그 향수를 샀다면 이제는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은 향수가 나에게 어울리는지, 성분은 무엇인지를 따진다. 이런 것을 보면 나는 소셜미디어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많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럭셔리 제품을 모르는 채로 가격으로만 만났을 때는 어떻게 옷 한 벌이 수백수천만원이 될 수 있는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물론 기천만원짜리 옷은 회사에 갈 때 입는 옷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투명하게 보여주자 사람들은 이제 옷의 가격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이테크의 하이패션으로 전환이 무척 신선하다. 화려한 장식과 거한 드레스가 아닌, 몸을 자유롭게 하고 바른 자세를 만들어주는 첨단 기술을 하이패션으로 끌어들인 것이 그 무엇보다 쿠튀르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쿠튀르 기간에 옷을 선보인 이유다. 1년이란 시간 동안 방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물이다. 그것이 쿠튀르 기간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당신의 쇼를 보는 내내 전통의 전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패션의 최전방에서 떠나 있는 동안 당신의 많은 것이 변했나 보다.
우리는 종종 혁명적인 패션을 해야 한다 생각한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혁명적인 것은 사진을 위한 것이다. 오늘날 혁명적인 건 힘들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열정은 있지만 참고 기다리는 것은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것은 혁명이 아니라 리셋이다. 리셋에서는 과거의 것을 혁명적으로 깨부수지 않아도 된다.
비디오를 제작하면서 가장 고민한 지점은 무엇인가?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를 보면 긍정적인 뉴스를 찾기 어려운 시절이다. 코로나19 상황, 브렉시트, 정치 이슈, 에코 이슈.. 아침에 일어나서 접하는 소식들이 나에게 영감을 주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나는 디자이너이기 전에 인간이기도 하니까. 어두운 뉴스들을 볼 때마다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많이 생각하게 된다. 더 하드한 것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기분이 좋아지기 위한 어떤 것을 해야 하는 가. 그것을 가장 고민했을 거다.
필름에서는 단순히 옷을 보여주는 느낌만 들지는 않았다. 답을 듣고 싶다.
나는 팬데믹으로 인한 멈춤이나 곤란은 일종의 디톡스의 시간이라 생각한다. 집에 ‘있게’ 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집에서 음식을 해 먹고 즐길 것을 찾는다. 그전에는 거의 모든 식사를 밖에서 해결했다. 그리고 이전처럼 단 이틀을 머물기 위해 10시간씩 비행기로 이동하지 않는다. 집에서 줌으로 회의한다. 이건 아주 거대한 변화다. 물론 변화하는 것들 중에 좋은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 슬픈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함께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허그를 하며 인사하고, 마주 보고서 이야기하고 싶다. 아주 사소하지만 그런 것들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그리고 엔터테인먼트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고, 연극을 보고, 운동을 하고… 우리에겐 커넥션이 필요하다. SNS에서 라이크를 누르는 게 아닌 ‘페이스 투 페이스’가 간절하다. 좋은 것은 재고할 필요 없이 다시 하면 된다. 변화는 다시 하는 게 아니라 새로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가 아닌 예전에 우리가 좋아하던 것을 다시 하는 것도 필요하다.
- 패션 에디터
- 김신
- 사진
- Courtesy of AZ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