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입어야만 답일까. 이번 시즌 ‘색’ 있는 옷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야말로 컬러 패션을 즐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여성지라는 매체의 특성상 매달 여성복 트렌드와 컬렉션 리뷰를 다루는 데 비해 남성 컬렉션은 봄과 가을 시즌에 발행하는 책과 함께 굵직한 트렌드 기사 위주로 소개해왔다. 대략 10~12가지 키워드에서 ‘컬러’라는 테마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지만 들여다보면 시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먼저 블랙, 베이지, 화이트, 그레이 등 모노톤에서 파스텔 같은 부드러운 터치를 지나 형광과 비비드한 원색이 겨울과 여름 시즌에 따라 시소 타듯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한다. 한 번 입어도 열 번 입은 것 같은 효과를 주는 팝한 컬러는 그저 입는 사람만 입겠거니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번 시즌 남성 컬렉션에서 색에 대해 특별히 들여다보고 싶었던 이유는 지난해 8월 상하이에서 열린 루이 비통 컬렉션에서 받은 인상 때문이다. 무대를 채운 거대한 오브제와 어우러진 형형색색의 컬러들, 이를테면 쨍한 푸른색 슈트 착장에서 시작해 옐로, 레드, 다시 블루, 핑크, 옐로, 레드로 마무리되는 사이클 안에서 쇼가 끝나고 나니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컬러, 프린트, 다시 컬러.’ 김빠진 콜라처럼 밍밍하다 는 생각이 드는 쇼에 비해 컬러 플레이가 주는 잔상은 꽤 강렬했다. 루이 비통만의 얘기는 아니다. 펜디를 보면 뉴트럴과 화이트, 블랙이라는 사이클을 돌다 클라이맥스에서는 올 레드 룩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베르사체에서는 무지갯빛 프린트만큼이나 튀는 형광 핑크, 블루, 오렌지와 형광 블루, 연두, 핑크라는 눈에 띄는 슈트의 조합이 나타난다. 원색 플레이를 더 들여다보면 확실히 레드가 강세기는 하다. 앞서 언급한 브랜드는 물론이고 붉은색 오버사이즈 셔츠와 붉은색 카고 팬츠로 90년대 그런지 룩을 선보인 발렌시아가, 발목까지 오는 커다란 아노락 점퍼와 헤드피스를 쓰고 등장한 겐조, 스판덱스 톱과 타이츠 팬츠, 슈즈까지 레드로 착장을 맞춘 GMBH를 살펴보라. 버버리의 올 블루 트렌치코트 스타일과 오렌지 아웃도어 룩, 톰 포드의 상하의 핑크 룩은 과하다기보다 어쩐지 수긍할 만하다. 이번 시즌 네온 컬러로 눈을 돌리면 형광 노랑으로 압축되는데, 회색 아이템을 더해 우아하게 연출할 것을 권한다.
남자에게 원색 입기란 아직도 소수에게 허락된, 쇼에서 더 빛을 발하는 패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은 계속해서 컬러 입기를 제안하고 트렌드로 소개할 것이며, 우리는 그 손사래를 치던 대담한 컬러 조합도 익숙해질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름은 색 있는 옷을 즐기기 가장 좋은 계절이지 않나.
- 패션 에디터
- 이예진
- 포토그래퍼
- LESS
- 모델
- 박진영
- 헤어
- 이혜진
- 메이크업
- 이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