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남자 모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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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브랜드의 모델을 남자들이 평정했다. 그들이 대세로 떠오른 이유가 뭘까?

“기자님, 보도 일정 전까지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브랜드 역사에 모델이 없었던 샹테카이에서 브랜드 최초의 모델로 유아인을 낙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럭셔리 브랜드의 첫 번째 쿠션 제품인 ‘퓨처 스킨 쿠션’ 론칭을 위해 한국 남자 배우를 택하다니. 쿠션 종주국인 한국에서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펼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유아인 쿠션’은 출시 한 달 만에 샹테카이 메이크업 카테고리 톱 2에 등극했고, 일부 컬러는 출시 직후 완판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서준은 샤넬 뷰티의 앰배서더를, 남주혁은 디올 뷰티의 앰배서더로 활동 중이다. 그들과 함께한 첫 번째 화보의 주인공은 향수로, 박서준은 주로 여성에 소구되던 ‘샤넬 N˚5’를 섬세하고 담백하게, 남주혁은 야성적인 남성미의 상징인 ‘디올 소바쥬’를 그만의 고급스러운 강인함으로 풀어냈다. 이는 Z세대에게 젊은 향수로 어필하는 계기가 됐고 이들은 향수 외에 스킨케어, 메이크업 등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남자 아이돌의 활약도 주목할 만하다. 지방시 뷰티의 모델로 새로운 메이크업 룩을 선보일 때마다 화제가 된 강다니엘은 현재 아이스프레이와는 미스트 단일 제품을, 메르넬과는 미스트를 제외한 스킨케어 라인으로 계약한 상태다. “모두가 탐내는 모델이라 섭외가 쉽지 않았습니다. 1월 초 브랜드 론칭과 동시에 팬 고객의 유입으로 사이트가 마비됐고, 넉넉히 준비 한 패키지도 모두 완판됐죠.” 덕분에 브랜드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메르넬 이민구 이사는 강다니엘의 애칭인 ‘녤’을 차용해 브랜드명을 ‘메르녤’로 바꾸는 건 어떨지 농담마저 오간다고 이야기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엑소 백현을 영입한 티르티르는 발탁 후 기존 이삼십대였던 주 고객층이 십대 까지 확장, ‘백현토너’와 ‘백현틴트’로 인기몰이를 했고, 톰 포드 뷰티와 오 랜 기간 함께한 GOT7 진영은 고가의 로즈 프릭 향수를 없어서 못 사는 ‘녕긔템’이 되게 했다. 또한 1월 말 몬스타엑스의 발탁을 알린 어반디케이 의 포토카드 증정 이벤트는 품절에 임박했으며, 셔누와 함께하는 모스키 노 향수 역시 그가 토이 향수를 품에 안은 화보를 공개한 직후 올리브영 온 라인몰에서 이틀 만에 품절됐다. 신인이던 위아이의 김요한을 낙점한 토니모리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마스카라, 아이라이너, 블러셔 등을 사용 한 치명적인 젠더리스 메이크업을 선보인 것. 이는 성별을 불문하고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내는 모든 이들을 응원하는 토니모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맞아떨어졌고, 국내외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정식 모델이나 앰배서더가 아닌, 단발성 협업도 마찬가지다. 랑콤과 뉴이스트 황민현, 바 비 브라운과 엑소 카이 등 글로벌 메가 브랜드와 소셜 파워가 확실한 아이 돌의 조우가 대표적인 예. 바이럴 마케팅이 중요해진 디지털 시대에 각종 매체와의 화보는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 나가고, 그 효과를 톡톡히 보 여준 셀렙은 여타 뷰티 브랜드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거나 전속 모델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에스티 로더와 협업한 얼굴 천재, 아스트로 차은우가 파티온의 뮤즈로 발탁된 것처럼!

지금은 전설이 됐지만 테리우스 안정환, 살인미소 김재원을 필두로 컬러 로션을 선보이며 ‘꽃미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꽃을든남자’ CF는 2002년 화장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화제가 됐다. 이후 비오템 옴므의 다니엘 헤니, 라네즈 옴므의 조인성 등 조각처럼 잘생 긴 미남 배우들이 옴므 라인을, 네이처 리퍼블릭 동방신기, 에뛰드 하우스 샤이니 등 풋풋한 아이돌 그룹이 로드숍 브랜드의 모델로 기용됐다. 남성 소비자의 접근성 확대가 목적이든, 팬덤을 등에 업고 가려는 목적이든, 이 러한 움직임은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건 스킨케 어나 향수, 베이스 메이크업을 넘어 진한 색조 화장에까지 그 영역이 확대 됐다는 점이다. 선명한 발색의 풀 메이크업을 한 남자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깊은 눈매와 탐스러운 입술에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눈이 호강하는 비주얼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거듭나고 싶은 남성과 여성을 포함한 모든 젠더의 잠재적 고객을 비주얼 앞에 붙들고, 이는 자연스레 그가 바른 그 제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결된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 은 오직 팬심만을 활용한 일차원적 마케팅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이 다. 가치 소비, 개념 소비를 중시하는 영리한 ‘요즘 애들’은 차별을 반대하 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적 메시지와 브랜드 가치도 꼼꼼히 따진다. “브로마이드를 샀더니 화장품을 주네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끼워 팔기로 스타의 이동에 따라 움직이는 ‘팬’이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찐고객’을 창출하려면 장기적 관점의 전략은 필수다. 남성 모델의 발탁이 뜨고 지는 트렌드가 아니라 지속될 것이 분명한 지금, 쉬운 편승이 아닌 진 정성 있는 마케팅이 숙제임엔 틀림없다. 에디터 역시 애정하는 배우님, 류준열이 광고하는 비오템 온천수 에센스를 바르고 잠들겠지만 말이다.

뷰티 에디터
천나리
아트워크
허정은
사진
OURTESY OF CHANECAILLE(유아인), DIOR(남주혁), GIVENCHY(강다니엘), TONYMOLY(김요한), MOSCHINO(셔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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